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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는 기다리지 않는다" | 2017 대선 동성애 논쟁을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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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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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많은 이들이 그렇겠지만, 최근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선후보자 토론을 보는 것은 굉장한 인내심을 요구한다. 한편으로, 대선 후보자 개개인에 대한 이런저런 평가들을 떠나고서라도, 한국의 문화나 공교육 구조에서 토론하는 것을 생활화하지 못한 우리의 총체적 한계를 재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가야 할 길이 참으로 멀다는 아득함을 느끼게 한다. 여성의 가사노동은 '하늘이 정해놓은 것'이라고 공공연하게 인터뷰를 하는 대선후보자, '동성애'를 심각한 인권문제가 아닌 단지 득표의 수단으로 삼는 대선 후보들이 한국이라는 거대한 배를 운항하는 선장이 되고자 한다. 동성애 주제를 가지고 보수 기독교인들의 표를 얻기 위한 대선후보들의 갖가지 타협의 제스처들이 등장하고 있다(보수 기독교인들이 성서/신/예수의 이름으로 동성애혐오를 정당화하는 문제를 가지고 2016년에 썼던 글의 링크를 나눈다). 21세기 한국의 인식론적 지표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인가. '보수'라고 스스로 자처하는 이들은 사실상 기존의 전통을 지켜내고자 한다는'보수주의자'가 아니라, 돌아갈 수 없는 과거에 대한 노스텔지어적 '퇴행주의자'이다. 이 다층적 착잡함 앞에서 어디로 가야 하는가.


2.

사람마다 이러한 총체적인 착잡함을 대처하는 방식은 각기 다를 것이다. 내게 있어서 하나의 방식은 인류역사에서의 변화들을 되돌아보는 것이다. 미국에서 여성운동이 처음 공식적으로 시작된 것은 1848년이다. 이들이 목적했던 여성의 참정권 획득은 1920년이 되어서야 이루어졌다. 72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법적 평등의 보장이 일상생활에서의 평등으로 직접 연결된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곳곳에서 성차별은 갖가지 옷을 입고서 벌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는 이루어져 왔고, 앞으로도 이루어질 것이다.

3.

그렇다면 동성애는 어떤가. 이 21세기에 '동성애를 찬성하는가 아닌가'라는 질문은, '이성애를 찬성하는가 아닌가'라는 질문처럼, 질문 자체가 잘못 구성된 것이다. 다양한 섹슈얼리티의 문제란 한 개인들의 '존재방식'이기 때문이다. 이들 성소수자들이 사회정치적으로 평등성이 확보되기까지는, 여성 역시 남성과 동등한 존재라는 인식이 정치적으로 제도화되는 데에 걸렸던 시간처럼 참으로 긴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그러나, 모든 변화는 끈기 있게, 포기하지 않고 변화의 걸음을 걸어가는 이들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변화의 단계들이 있다는 것, 이것을 늘 기억하고 인내심 있게 한 걸음씩 떼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4.

정치란 다양한 '절충(negotiation)'에 관한 것이다.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가치를 파기하고 버리는 '타협(compromise)'과 달리, '절충'은 그 가치를 파기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 변화를 위한 끈기 있는 걸음을 내딛는 다층적 여건확보의 과정이기도 하다. 적어도 동성애에 대한 노골적 혐오와 정죄가 아닌 '인정'을 하기 시작하는 것으로부터, 한국 사회에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제도적 평등성을 향한 변혁의 걸음이 시작되는 것이라고 나는 본다. 인간의 다양한 섹슈얼리티에 대한 인식이 공적 영역에서 논의되고, 다양한 형태의 성소수자들이 인간으로서의 존중과 인정을 받는 사회가 되기 위하여, 다층적 변화가 요청된다. 이러한 다층적 변화를 이루어내기 위하여 궁극적 목표를 설정하면서, 비판적이고 합리적인 '절충'을 끌어낼 수 있는 인권에 대한 예민성을 지닌 정치가들이 곳곳에서 등장해야 한다. 동시에 대중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하여는 끈기 있는 인내심과 곳곳에서 작은 변화들을 이루어내기 위한 지속적 의식화운동이 요청된다.


5.

매일매일 혐오의 시선과 차별적 제도들에 의하여 고통 속에 있는 이들에게 끈기 있는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아픈 일이다. 성소수자들에 대한 정의는 즉각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상태에 대한 절망과 좌절이 아니라, 이루어내야 할 정의를 향한 지속적이고 끈기 있는 희망의 끈을 부여잡아야 하는 것이다. 데리다의 말은 이 점에서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정의는 기다리지 않는다. . . 그러나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정의는 언제나 '다가올 정의'이다 (Justice does not wait . . . But for this very reason, justice remains justice-to-come)."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