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획일성의 문화, 그 존재론적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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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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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벨기에 르뱅대학교에서의 학회를 마치고 미국으로 갔다가, 다시 한국으로 왔다. 각기 다른 세 대륙을 짧은 기간 동안 오가며 내가 '한국'이라는 공간에 들어섰다는 분명한 인식을 하게 된 곳은 비행기에서이다. 비행기에 탄 승객을 대하는 승무원들이 몸매, 나이, 표정, 성별이 너무나 유사한 모습으로 있는 '획일화의 공간'에 들어섰음이, '한국'과 자동적으로 연결되었다. 이러한 획일화된 모습의 여자 승무원들의 모습이 새로운 것은 아니건만, 새삼 매우 불편하게까지 느껴진 것은 단기간에 내가 각기 다른 비행기들을 타면서 만나왔던 승무원들과 너무나 다른 대조를 경험했기 때문인지 모른다. 획일화된 모습의 여자 승무원들이 주는 불편함은 사실상 '불치병'처럼 한국사회 구석구석에 계속 남아있는 '위계적 획일주의'의 한 단면을 드러내기도 하기 때문인 것 같다.


2.

유럽과 미국에서 비행기를 탔을 때, 나는 돋보기안경을 목에 걸치고 있는 여자승무원, 음식을 제공하는 40~50세를 훌쩍 넘은 남자/여자 승무원, 소위 '날씬한' 몸매가 아닌 다양한 몸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여자 승무원들, 다양한 형태의 머리모양을 한 승무원들을 보는 것이 흐뭇했다. 이제 '여자 승무원'이 지닌 전통적인 획일적 모습들을 홀연히 넘어서서, 한 인간으로서 지닌 '다양성(나이, 몸매, 성별 등)'을 전혀 가리거나 억제하지 않으면서 '직업인'으로서 요구되는 일들만을 성실하게 수행해 나가는 '당연한' 사실을 보는 것이 내게 미소를 준 것이다. 이제 자연스럽게 이러한 '탈획일성의 문화'가 승무원들의 모습 속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유럽과 미국의 비행기에서 보면서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한국행 비행기를 타니, 전혀 다른 세계이다. 승객을 서브하는 승무원들은 너무나 유사한 나이, 몸매, 헤어스타일, 말투와 자세를 지니고 있어서, 개별성을 지닌 인간의 모습은 획일성으로 감추어져 있고, 마치 서로 복제된 인형과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들이 복제된 것 같은 미소를 띠고 내 앞에서 서브를 할 때마다 나는 매우 불편한 마음을 지우기 어려웠다.

3.

인간의 다양성을 억누르고 획일성으로 포장하는 사회 - 그러한 사회에서 진정한 학문, 예술, 문학, 그리고 정치의 영역에서의 창의성과 진정성이 꽃 피우는 것을 기대하기는 참으로 어렵다. '전통의 계승자'로서의 삶을 살아내야 하는 우리는 어떠한 '전통'과의 연속성 또는 불연속성을 유지하며, 동시에 새로운 전통을 창출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인가. 획일성의 문화는 무수한 개별적 존재들의 창의성과 존엄성을 억누르면서, '가만히 있으라'는 말 잘 듣는 세월호의 아이들을 희생시키는 파괴성을 지닌 '존재론적 폭력'이다. 이제 한국 곳곳에서의 촛불 시위는 '대통령 퇴진'이라는 직접적인 목표만이 아니라, 정치-경제-종교적 권력, 성별, 장애, 외모, 나이 등에 따른 '위계주의적 획일성 문화의 퇴진'으로까지 심화되고 확장되어야 하지 않을까.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