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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당선, 그 충격 한가운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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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INTON SUPPORTER WATCH
Rick Wilking / 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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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11월 8일 이후, 지난 이틀 동안 나의 일상이 정지된 듯한 느낌과 씨름해야 했다. 길고 긴 선거 캠페인을 매일 뉴스를 통해 지켜보아 왔기에, "트럼프"로 대변되는 것이 지닌 문제점들이 얼마나 심각하고 위험한 것인지를 보아왔다. 그렇기에 그가 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미국의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는 것이 주는 충격은 너무나 크다. 물론 이 충격은 나만의 것이 아니다. 11월 9일 아침, 학장으로부터 학생과 교직원들에게 긴 이메일이 왔다. 11월 8일 저녁부터 대학라운지에서 선거결과를 함께 지켜보던 학생들이 선거결과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하자, 그 충격과 절망감 때문에 너무나 힘들어 한다는 것이다. 밤 10시에 학생라운지를 찾아서 그 학생들을 지켜보던 학장은, 고립 속에서 혼자 괴로워하지 말고, 그 충격과 절망감의 정체에 대하여 조명하고, 어떻게 그것을 대할 것인지를 '함께' 대화하자는 제안을 했다. 그래서 절망감에 대처하는 대화모임을 11월 10일에 가지겠다는 이메일이었다.


최소한의 비판적 성찰과 합리적 대화가 불가능하다는 것, 내가 트럼프로부터 느낀 지독한 절망감이다.


2.

트럼프의 선출에 왜 이렇게 나의 학생들, 교직원들이 충격을 받고 있는가를 이해하려면 트럼프가 선거 켐페인 내내 드러냈던 그의 가치관/인간관/세계관이 무엇이며, 그러한 그의 가치관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사람들의 일상에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텍사스에 위치한 내가 일하는 대학교를 이루는 학생/교수/직원들은 이 미국사회의 축소판이다. 1만여명의 학생들, 2천여명의 교직원들은 미국사회의 주류에 속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여성, 유색인종, 성소수자들, 이슬람교도, 이주민 등 다양한 배경에서 주변부에 속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 힐러리 클린턴이 지닌 여러가지 한계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적어도 이러한 소수자들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권리를 존중하고 확장하고자 하는 정책을 변호해 왔다. 반면, 트럼프는 다양한 혐오주의와 적대를 노골화하면서, 여성, 이슬람교도, 이민자들, 성소수자 등 사회적 소수자들을 비하하고 비인간화하는 그 노골적인 적대와 혐오주의를 그의 말과 행동으로 거리낌 없이 표출해왔다. 최소한의 비판적 성찰과 합리적 대화가 불가능하다는 것, 내가 트럼프로부터 느낀 지독한 절망감이다.


기독교중심주의, 자민족중심주의, 남성중심주의, 백인우월주의, 이성애중심주의, 자본중심주의 등의 가치를 일생 동안 자신의 말과 행동을 통해서 거침없이 표출해온 트럼프가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절망적인 사건이다.



3.

트럼프 당선 사건을 조명하는 것은, 단편적인 요소들만이 아니라, 거시적 접근과 미시적 접근을 통한 매우 복합적인 분석이 요청된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북한과 '대화'를 할 것이라는 것에 긍정적 측면을 보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이 오랜 선거 캠페인 동안 거의 매일 뉴스를 통해, 그리고 그의 언설들을 통해서 드러난 트럼프는, '대화'가 거의 불가능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정치공학적인 의미에서 그가 표면적으로 대화의 양식을 지닌 6자회담을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트럼프 자체에 기대를 걸지는 못한다. 오히려 그가 그 특유의 독단적 결정방식을 통해서 어떠한 파괴적이고 충격적인 행동을 할지 심히 우려스럽다. 보수적-배타적 기독교중심주의, 자민족중심주의, 남성중심주의, 백인우월주의, 이성애중심주의, 자본중심주의 등의 가치를 일생 동안 자신의 말과 행동을 통해서 거침없이 표출해온 트럼프가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절망적인 사건이다.


사람들은 트럼프의 부와 성공이 자신에게도 돌아올 것이라는 판타지를 가지고, 그의 백인성, 남성성을 혐오주의와 왜곡된 기독교중심주의와 결합시켜서 트럼프의 당선을 이루어냈다.


4.

나는 충격과 절망과 씨름하고 있는 나의 학생들의 다양한 얼굴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들 중에는 성소수자들, 여성들, 이슬람교도들, 멕시코 이민자들, 장애인들 등 트럼프적 가치에 의하여 위협받고 폄하되었던 이들도 있고 그들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켜내는 운동에 관여해오던 '주류'에 속한 이들도 있다. 많은 이들이 힐러리 클린턴이 결함 없는 완벽한 후보여서, 트럼프 당선에 절망하는 것이 아니다. 트럼프로 대변되는 참으로 위험하고 노골적인 혐오주의 때문에, 충격과 절망감을 느끼는 것이다. 다양한 분석들에 따르면, 트럼프 당선에 지대한 기여를 한 그룹은 '백인-남성-보수 기독교인-노동자(working class)-저학력자' 라고 한다. 만약 트럼프가 여성이었다면 또는 천문학적 부를 축적한 사람이 아니었다면, 아마 트럼프가 당선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사회 저변층에 있는 사람들은 트럼프의 부와 성공이 자신에게도 돌아올 것이라는 판타지를 가지고, 그의 백인성, 남성성을 혐오주의와 왜곡된 기독교중심주의와 결합시켜서 트럼프의 당선을 이루어냈다.


5.

한국에서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미국에서는 '트럼프-당선'이, 각기 다른 충격과 절망감을 경험하게 하는 사건이 되고 있다. 이제 어디로 갈 것인가. 극도의 절망의 경험을 하는 이들에게 남겨진 선택은 두 가지이다. 그 경험을 통해서 모든 것에 냉소적이 되고 무관심하게 됨으로써 '파괴적 경험'으로 만들 것인가, 아니면 그 절망의 경험을 보다 나은 세계에 대한 열정을 구체적이고 끈기 있게 모색하는 새로운 '변혁적 경험'으로 만들 것인가 하는 것이다.


6.

오늘도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의 좌절감과 절망감이 이메일과 SNS를 채우고 있다. 나는 한 학생에게 이 충격과 절망의 경험을 '좌절의 공간'으로 만들지 말고, '변혁에의 열정의 공간'으로 전이시켜야 하는 것, 이것이 우리에게 남겨진 유일한 선택이라는 말을 해 주었다. 이 복잡한 현실세계에서 '무엇이 문제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자기학습' 그리고 그러한 인식에 근거한 판단과 실천적 행동을 통해서, 이 시대의 절망감을 조금씩이라도 넘어서는 문을 열어나가게 될 것 아닌가. 어쩌면 이것이 충격과 절망의 경험을 한 사람들에게 남겨진 유일한 선택인지도 모른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