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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종류의 분노 | 대통령의 '사과담화'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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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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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1월 4일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담화가 있다기에, 한국시간으로 알람을 해 놓고서 보았다. 9분여의 '낭독'을 들으며, 한 작은 학교를 대표하는 사람이라도 취할 수 없는 태도와 언어를 가지고, 한 국가를 책임진다는 대통령이 자신을 '외로운 사람'으로 표상하면서 국가정치를 지극히 '사적인 낭만화'의 언설(言說)로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에 참으로 깊은 착잡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SNS가 다층적 분노로 채워지고 있는 것을 보는 것은 놀랍지 않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분노하지 말고 기도하자'는 포스팅들이 회자되는 것을 본다. '분노'는 특히 종교들에서 종종 매우 부정적인 것으로 간주되곤 한다. 그러나 사실상 분노는 한 종류가 아니며, 따라서 모두 부정적인 것으로 간주해서는 안된다. 대략 세 가지 분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2.

첫째, 본능적 분노이다. 이 본능적 분노는 어떤 폭력이나 상처에 대한 동물적인 본능적인 반응이다. 이러한 본능적 분노나 분개함은 아이이건 어른이건 또는 동물들에서조차 나타난다. 자신에게 어떤 육체적 고통이 주어졌을 때, 즉각적으로 반응하게 되는 것으로서 어떤 도덕적 성찰이 개입되는 것은 아닌 반응이다. 예를 들어서 뱀이 개를 물려고 할 때, 그 개는 뱀을 향해서 본능적으로 으르렁 거린다. 즉 자신을 공격하는 것에 대하여 본능적인 분개함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이러한 본능적이고 즉각적인 분개하는 것은 인간 역시 유사하게 가지고 있다. 이러한 본능적 분노는 자신을 보호하려는 자기보호본능에서 유발되는 것으로서 이러한 본능적이고 즉각적인 분노에는 그 어떠한 성찰이나 윤리적 숙고가 개입되지 않는다.


3.

둘째, 성찰적 분노이다. 성찰적 분노는 어떠한 잘못된 행위에 대하여 성찰적인 도덕적 반응으로서 그 잘못에 대하여 분개하는 것이다. 본능적 분노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분노의 원인에 대하여 사유하면서 그 분노가 과연 정당한 분노인지 또는 왜 그 분개의 감정이 있는 것인지를 성찰하고 난 후에, 가지게 된다는 의미에서 성찰적 분노이다. 따라서 본능적이고 즉각적인 분노와 달리 이 성찰적 분노는 어떠한 사건이나 누군가의 '행위'에 대하여 부당함, 불의함, 불공평함 등의 윤리적 판단이 반영되는 도덕적 분노이다.

사람들은 폭설, 지진, 쓰나미 같은 자연재해에 의하여 상처를 입고 극도의 피해를 입었어도, 그 자연재해에 대하여 윤리적 판단을 적용하는 성찰적 분노를 표출하지 않는다. 성찰적 분노가 생기는 것은 누군가의 '고의적인 행동'에 의하여 한 개인이나 그룹이 부당한 피해를 입었을 경우에 한해서이다. 인간으로서의 자긍심이 파괴되고 안녕이 위협을 받는 것과 같은 경우에 인간은 성찰적 분노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성찰적 분노가 주는 중요한 이득이 무엇인지를 유추해 낼 수 있다. 첫째, '개인적 차원'에서의 이득이다. 이 성찰적 분노는 폭력적 상황으로부터 개인들을 보호하고 자기존중감을 유지하게 한다. 자신에게 부당한 일이 일어났는데도 아무런 분노를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은 이미 그 개인 속에 지켜낼 자존감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다. 둘째, '공적 차원'에서의 이득이다. 이러한 성찰적 분노는 잘못된 일을 하는 가해자들에 대한 윤리적 판단과 그에 따른 처벌을 요구함으로써 '정의의 집행'이 가능하도록 할 수 있다. 이러한 성찰적 분노를 통해서 잘못한 사람들을 처벌하게 하는 효과도 있고, 동시에 이러한 것을 통해서 미래에 다른 사람들도 그러한 잘못을 하지 못하도록 서로를 보호하는 의미도 될 수 있다.


4.

셋째, 파괴적 분노이다. 파괴적 분노는 본능적 분노나 성찰적 분노가 지나치게 될 때 증오, 원한, 복수로 전이된 분노이다. 즉 증오, 원한, 복수심으로 변모되는 분노는 반(反)종교적이며 반(反)도덕적인 것이다. 성찰적 분노와 파괴적 분노를 종종 혼돈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근본적 차이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성찰적 분노는 '부당한 행동'이라는 그 행동 자체에 초점이 주어진다. 반면, 파괴적 분노는 부당한 행동보다는 '행위자'를 향하여 있다. 즉 그러한 부당한 행동을 한 사람에 대한 적개심과 증오로 전이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당신을 증오한다'하는 표현은 가능하지만, '나는 당신을 분노한다'라는 표현은 맞지 않는다. '나는 당신의 행동에 대하여 분노한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한 것이다. 파괴적 분노는 증오의 형태로 나타나며, 행위가 아닌 행위자를 향하여 있다. 따라서 그 행위자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방식으로 나타나기에 매우 파괴적이다.



5.

나는 이번 '박근혜-최순실 사태'의 그 근원적 부당성에 대한 우리의 분노가, '파괴적 분노'가 아닌 '성찰적 분노'로 전이되고 확산되기를 바란다. 이러한 '성찰적 분노'를 통해서 민주사회 시민으로서의 책임성과 성숙성이 비로소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