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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을 알 수 없는 저잣거리 아녀자" 그 레토릭의 위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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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우뉴스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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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 10월 29일, 청계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 현장에서 차기 대선주자로 꼽히는 L 시장이 "...국민이 맡긴 무한 책임자에 대한 그 권력을 근본을 알 수 없는 저잣거리 아녀자에게 던져주고 말았습니다"라는 발언을 했다. (링크 참조) 나는 이 촛불집회에서 그의 연설이 지닌 중요성을 간과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대통령의 권력남용에 대한 비판을 하는 주요 정치인이, 다른 종류의 심각한 문제의식을 드러내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나는 본다.


2.

어떤 이들은 이러한 발언은 '사소한 것'이라며, 이 발언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은 지금 보다 '중요한 것'의 전선을 흐리게 한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이 발언이 담고 있는 문제는 참으로 심각하다고 본다. 특히 그가 무명의 '보통사람'이 아니라,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꿈을 구체적으로 꾸고 있는 사람이라면 문제는 더더욱 심각하다. 어떤 특정한 부분의 진보성이 다른 부분의 지독한 보수성과 문제성을 덮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며, 더 나아가서 그의 이러한 발언이 담고 있는 가치는 사실상 한국 정치인들의 차별적 가치체제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선 세 가지만 짚어보자.


3.

첫째, "근본을 알 수 없는"에서 보여지는 '근본'에 대한 집착의 문제이다. 이 레토릭은 '흑수저-금수저' 레토릭과 그 맥을 같이한다. 그는 또한 '근본도 알 수 없는 목사의 가족'이라는 표현이 아닌, "근본도 알 수 없는 무당의 가족"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한국사회에서 다른 종교와는 달리 재력과 권력을 지니지 못한 샤머니즘의 '무당'과 그 가족에 대한 비하를 자연적인 것으로 쓰고 있다. 만약 최순실의 집안이 정치계, 재계, 또는 종교계에서 내로라 하는 소위 '금수저'의 뿌리를 가졌다면, '근본을 알 수 없'다고 하기는 어렵다는 결론에 이르게 한다. 더 나아가서 이 '근본'에 대한 집착은 한국사회에 학연중심주의, 지연중심주의, 남계혈연중심주의, 인맥중심주의를 다양한 방식으로 지속시키고 강화시켜왔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4.

둘째, "저잣거리"의 비하이다. '저잣거리'란 다양한 일상품들이 있는 보통사람들, 특히 사회저변층의 사람들에게 중요한 일상적 생활공간이다. 이 '저잣거리'가 하찮은 공간이라는 암시를 담은 이 표현은, 보통사람들을 '개-돼지'로 표현한 어느 정치인의 레토릭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 저잣거리가 주요한 삶의 공간이 사람들은, 사실상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이며, 무시를 받아도 된다는 '계층차별주의'에 뿌리를 둔 위계주의적 가치관이 깊숙이 담겨 있다.


5.

셋째, "아녀자에게"란 표현이 담고 있는 성차별주의의 문제이다. '아녀자'란 '결혼한 여자'에 대한 '집단적 표지(mark of the plural)'로서 사용되고 있으며, 이미 그들에 대한 비하적 표현으로 사용되곤 하는 표현이다. 중성적인 의미로 '어린이와 여자'를 아울러 쓰이는 개념 자체도 사실상 성차별적 가치를 드러낸다. 여성을 아이와 같은 범주에 넣어서 생각하는 이 사유방식은, 여성은 '영원한 미성년자'라는 인식으로 인해, 참정권을 부여하지 않았던 가부장제적인 남성중심주의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아이와 남자'를 아우르는 '아남자'가 존재하지 않는 이유이다.

구체적인 현실속에서 이 '아녀자'란, 대부분의 경우 '별 볼 일 없는' 결혼한 여자들, 한 인간으로서의 그 어떤 고유한 개별성도 지니지 못한 집단적 표지로서 사용되는 말이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결혼한 남성'과 '결혼한 여성'이 가지게 되는 문화-정신적 가치는 매우 다르다. '결혼한 여성'은 사회문화적 자본 (capital)으로서의 의미를 상실한 존재로 간주된다. '아녀자'에 상응하는 '아남자'와 같은 남성용어가 한국어에서 대중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영어로 '마녀 (witch)'에 상응하는 남성용어, 즉 '마남'이 없는 것과 유사한 맥락이다. 유독 여성을 향한 부정적인 가치를 이미 담고 있는 언어들이 남성중심적 사회에서는 자연스러운 것으로 대중화되곤 한다.


6.

L시장의 소위 '끝장연설'은 치밀한 계산에 의하여 문서화된 것이 아니다. 그런데 오히려 나는 그의 이러한 레토릭이 이렇게 '즉각적'으로 구성된 것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이러한 임의적이고 즉각적 연설은 한 정치인의 평소 가치관과 인간관이 여과 없이 드러내게 되는 정황이기 때문이다. '대선주자'로 간주되는 한 정치인이 지닌 이러한 은밀하지만 강력한 계층차별이나 성차별적 의식에 대한 비판적 성찰은, 그의 정치적 개혁성에 대한 성찰만큼 '중요한' 사안이다. 이러한 비판을 '사소한 것'으로 치부하는 그 시선 자체는, 또 다른 이름의 권력의 남용이다. 왜냐하면, 어떤 사안에 대한 '중요한 것'과 '사소한 것'을 결정하는 것이 어느 특정한 사람/집단의 절대적 권위로 행사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7.

한 정치인에 대한 맹목적 반대, 또는 맹목적 지지는 '비판성의 결여'라는 점에서 그 뿌리가 같다. 오히려 무엇이 그 특정인의 장점과 기여점이며, 동시에 무엇이 단점과 한계성인지에 대한 비판적인 조명을 하는 것이, 한국의 정치인들이 보다 성숙한 정치의식을 만들어가는 데에 요청되는 것이라고 본다. 다층적 차별과 배제에 대한 복합적 예민성을 지닌 시민의식이, 성숙한 정치인과 그들의 정치의식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