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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받은 삶'이란 없다 | '존재의 정원'이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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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MAS QUASTHOFF
ASSOCIATED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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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즈음 내가 하루를 시작하며, 그리고 마감하며 듣는 음악이 있다: 토마스 크바스토프 (Thomas Quasthoff)의 목소리. 그의 목소리는 한 인간이 지니고 있는 생명성의 치열성과 아름다움, 그리고 끊임없이 비상하고자 하는 그의 절절한 '존재에의 갈망'을 담고 있다. 그는 성악가로서 '연기(perform)' 하지 않는다. 그의 목소리는 그의 존재 자체를 매 음절마다 소중한 생명의 선물처럼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내가 그에게 빠져드는 이유인 것 같다.

크바스토프가 다니엘 바렌보임과 함께 연주하는 이 "Gute Nacht (Good Night)"는 듣는 이들에게 '밤 인사'만이 아니라, "Guten Morgen (Good Morning)"을, 하루를 지내기에 충분한 삶의 에너지를 준다. 적어도 내게는.


2.

그는 치명적인 육체적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 키는 134 cm 이며 두 팔이 없다. 간신히 어깨에서 삐져 나온 것 같은 '팔' 에는, 묘사하기조차 힘든 특이한 갈퀴모양의 손가락이 몇 개 있을 뿐이다. 그가 자랄 때, 종종 그의 옆을 지나는 사람들은 그를 '마녀의 의해 저주받았다'고 수근거리곤 했다고 한다. 그는 지금 무수한 상을 타고, 성공한 음악가로 간주된다. 그러나 소위 '성공한' 성악가인 그는, 자신이 '모델 장애인'이라고 사람들이 부르는 것을 거부한다. 그는 이 우주에 유일무이한 고유한 한 존재일 뿐이다. 그가 지닌 '육체적 장애'가 그의 존재를 규정하는 우선적 '표지(marker)'가 되지 않는 삶을 창출해 온 것이다. 그는 자신의 육체적 장애란 한 인간 존재로서의 그를 구성하는 지극히 한 부분으로 만들었으며, 그 '장애-너머'의 심오한 존재성을 끊임없이 가꾸어오고 있다.

3.

독일 잡지 <쉬피겔(Spiegel)>지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두 종류의 성악가들이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목소리의 소유자 (voice owner)', 또 다른 하나는 '연기자(performer)'이다. 2004년에 나온 자신의 자서전적 책의 제목을 <목소리 (Die Stimme)>로 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목소리속에 자신의 존재를 모두 쏟아부으면서, 그 목소리의 전적인 소유자가 되는 것이다.


4.

한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의 삶을 지켜내게 한 중요한 자신의 삶의 철학을 소개한다:
"자기 자신에게 늘 진실하라. 자신이 아닌 어떤 사람의 모조품이 되지 마라... 눈속에서 자신의 고유한 발자국을 만들어가야 하는 것은, 나 자신이다 (Stay true to yourself. Don't be an imitation of someone else... I have to make my own footsteps in the snow.)"
한 사람의 '진정성은 냄새가 난다 (you can smell the authenticity)'고 나는 간혹 학생들에게 말하곤 하는데, 나는 크바스토프에게서 바로 그러한 '진정성의 냄새'를 맡는다. 자신에게 언제나 진실하게 되는 것은 얼마나 치열한 자기와의 씨름인가.


5.

어떠한 이유에서든, '저주받은 삶'이란 없다. 모든 개별 존재들은 그 자체속에 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대체불가능한 유일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생명의 선물을 '선물'로 키워내고 가꾸어가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존재의 정원'을 치열하게 가꾸어내는 사람의 아름다움, 우리 각자는 이러한 아름다움을 오늘도 가꾸어내야 하는 '존재의 정원사'인 것이다.

그의 "Moon River" 도 마음을 울린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