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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향욱 사건'의 근원적 문제들 | 공무원과 언론인들의 '회식'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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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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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 고위 교육공무원이 99%의 사람들을 '개-돼지'라고 표현하면서 신분제를 공고화해야 한다는 발언을 하여 사회적 물의를 빚었다. 이 '나향욱 사건' 은 '파면'이라는 징계로 결론 내려지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유독 이 한 공무원만 이렇듯 식사자리에서 문제가 있는 발언을 한 것일까. 나는 이 사건을 통해서 한국사회에 대하여 더욱 근원적인 문제들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2.

내가 우선 알고 싶은 것은 공무원과 기자들 간의 이 '식사' 자리가 애초에 왜 필요한 것이었는가 하는 점이다. 얼마나 자주 소위 고위급 공무원들은 언론사의 기자들과 이러한 식사를 함께해 왔으며, 그리고 '누가' 이 식사비용을 냈을까.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사회 곳곳에서 무비판적으로 행하여 지고 있는 이러한 무수한 '식사자리'에서 얼마나 많은 '개-돼지' 방식의 이야기들이 오고 갔을까. 아마 '나향욱' 씨는 유독 자신의 이야기만이 '운 나쁘게' 밝혀져서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3.

한국 대학교에는 당연한 관행이고 일상적인 일인데, 미국의 대학교에는 전혀 없는 것이 있다. 바로 '회식'이라는 것이다. 미국 대학교에서 10년 넘게 일해왔지만, 총장이나 학장이 주도하는 무수한 회의들을 하면서도 '커피' 한 잔을 공금으로 제공 받은 적이 없다. 물론 온종일 하는 특별한 교수회의가 있을 때, 미리 샌드위치를 주문받아서 회의자리에서 먹는 경우는 있지만, 학교 밖에서 '회식'을 하거나 어떤 공적 식사자리를 관행적으로 갖는 경우는 전혀 없다.

이 대학에서 일하기 시작한 지 2년여 되었을 때 '인사위원회'의 위원으로 임명받아서 일한 적이 있다. 교수 한 명 뽑는 데에 120여 명이 지원하였기에 읽어내야 할 서류가 참으로 많았다. 몇 차례에 걸친 면밀한 심사와 토론 과정을 거쳐서 인사위원들이 합의한 1차 리스트에 속한 후보자들을 다른 지역에서 열리는 연례학회장에서 면접한 적이 있다. 나는 학회에 와서 이렇게 학교 일을 하니, 6명의 후보자를 면접하는 날 인사위원들이 함께 차도 마시고 식사도 하겠거니 하는 기대를 했다. 한국의 대학교에서는 당연한 일 아닌가. 더구나 학장도 그 자리에 함께했으니, '공금'으로 당연히 인사위원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식사는커녕 그 면접자리에서 마시는 물이나 커피와 같은 음료수도 각자 알아서 내야 했다. 학생으로 경험했던 미국의 대학교와 교수로서 '내부'에 들어가서 경험하는 대학교는 참으로 다르다는 것을 비로소 보기 시작한 경험이었다. 그 이후, 한국의 대학에서는 무수하게 벌어지는 '회식'이라는 개념 자체가, 미국의 동료 교수에게는 설명조차 하기 힘들다는 것을 경험하곤 했다. 공적인 일과 사적인 일의 경계를 분명히 한다는 것 - 한국사회의 곳곳에서 더욱 의도적으로 연습해야 한다고 나는 본다.


4.

개인이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판공비'등의 명목으로 충당되는 갖가지 종류의 회식문화가 한국의 대학교는 물론 공기업/사기업 등 다양한 사회적 공간에서 지금도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다. '공금'이 다양한 자리에서 '회식'의 이름으로 불필요하게 쓰이는 것은 물론 공금 남용의 문제로서도 심각하다. 그러나 보다 근원적인 문제는 합리적이고 공평한 공적 의사결정의 사적화(privatization)이다. 공평성, 합리성, 민주성이 덕목으로 실천되어야 할 공적 세계가, 불공평성, 비합리성, 비민주성이 '자연스러운' 결정요소로 변질되곤 하는 것을 아주 당연하게 여기는 문화를 재생산하고 있다는 점이 바로 '회식문화'의 치명적 위험성이다. 소위 '줄서기'를 잘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 회식문화가 담고 있는 '가치'가 아닌가.

5.

'나향욱 사건'을 공적 세계로 드러낸 한 언론사 기자의 용기 있는 행보에 나는 찬사를 보낸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문제적 발언을 공적 장으로 끌어낸 그러한 언론인/언론사의 용기가, 그러한 발언들이 자연스럽게 오고 가는 '회식 문화' 자체에 대한 비판적 문제 제기까지 하는 것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그 언론사가 이제 그 어떠한 '식사'자리도 거절하겠다고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언론의 사명은 두 가지이다. 기존의 현실을 파헤치고 드러내는 '반영자(reflector of reality),' 그리고 동시에 지금보다 정의롭고 평등한 새로운 현실을 지속적으로 구성하고 제시하는 '창출자 (producer of reality)'의 역할이다. 이러한 두 가지 역할을 책임적으로 수행할 때, 비로소 언론의 막중한 책임성과 윤리성이 확보되는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미디어는 '제2의 신(the second God)'으로 간주된다. 그만큼, 미디어는 우리의 현실 세계를 좌우하는 강력한 권력기관이다. 언론사들은 그 주어진 '권력(power)'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를 치열하게 씨름해야 할 것이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