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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비정상' 레토릭의 위험한 덫 | 혐오의 몸짓을 거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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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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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에서 오늘 (6월 11일)은 '퀴어 퍼레이드'가 열리는 날이다. 이 퍼레이드를 저지하고자 하는 집단에서 가장 두드러진 이들은 일부 개신교도들이다. 이들이 근거로 삼고 있는 것은 이성애(heterosexuality)만이 '정상'이며, 다른 여타의 섹슈얼리티는 모두 '비정상'이고 따라서 '죄'라고 하는 것이다. 물론 이들은 이러한 주장의 근거를 성서에서 들고 있다. 그런데 이들이 보지 못하는 것이 있다. 성서는 다양한 상충적 주장과 가치를 담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한, 성서에는 소위 트랜스젠더, 레즈비언, 또는 양성애(bisexual)의 문제는 등장하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동성애(homosexuality)'라는 개념도 사실상 성서 속에 등장하는 '남색'의 개념과 동일한 것은 아니다. 성서에 근거하여 성소수자들을 혐오하고 박해하는 기독교인들이 진정 '성서대로' 살고 싶다면, 우선적으로 그들이 따라야 하는 것은 타자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용서, 그리고 환대이다. 이러한 가치야 말로 성서가 담고 있는 시대를 초월한 '절대적 진리의 가치'이기 때문이다.

2.

노예제도를 지지하는 사람도, 그 제도를 반대하는 사람도 또는 여성평등을 반대하거나 지지하는 사람도 모두 '성서'에 근거하여 자신의 주장을 전개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어떠한 가치를 성서 속에서 찾고자 하는가에 따라서 사람들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성서 구절을 찾아낼 수 있다. 성서는 억압적 전통과 해방적 전통을 동시에 담고 있다. 따라서 해방적 가치를 지닌 '절대적 진리'와, 시대문화적 제한성속에서 전개된 억압적 가치를 지닌 '상대적 진리'를 구분해내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과제이다. 니체의 "사실이란 없다, 다만 해석들이 있을 뿐 (there are no facts, only interpretations)"이라는 말이 현대의 사유방식에서 중요한 이유이다. 소위 명백한 '사실'이라는 것은 사실상 독자들의 가치관이 이미 개입된 선별적 '해석'이기 때문이다.


3.

예를 들어서 성서에는 많은 이들이 생각하는 '비정상적' 결혼 양태인 '일부다처제'가 '정상'으로 등장한다. 또한 무수한 '첩'들을 지닌 남성들의 결혼생활이 매우 '정상'적인 것으로 등장한다. 이러한 성서의 이야기들을 보면 딸/아내/첩의 역할속에 있는 여성들은 아버지나 남편의 '소유물'로서 손님들에게 환대의 의미로 내어줄 수도 있다. 성서 곳곳에서 여성은 '살아 있는 죽은자 (living dead)' 로 간주되면서 집단성폭행의 대상으로 '사용'되고 있다. 창세기 19장이나 사사기 19장을 보라. 또한 성서는 여성들이 공적 자리에서 자기 의사를 표현하거나 물음을 물을 수 없다고 하면서, 질문이 있으면 사적 공간인 집에서 남편에게 조용히 물어야 한다고 한다. 바울의 유명한 가부장제적 텍스트들이다. 그런데 성서를 따른다며 성소수자들을 혐오하는 이들이, 과연 이 현대사회에서 자신의 딸/아내/며느리 등을 집단성폭행의 대상으로 다른 남성들에게 내어줄 수 있는가. 성서학자인 필리스 트리블(Phyllis Trible)은 '테러의 텍스트 (Texts of Terror)'라는 자신의 책에서 성서의 특정한 구절들이 얼마나 다층적인 '테러'들을 여성들에게 가하고 있는가를 면밀히 분석한다.


4.

종교 (특히 기독교)는 이러한 '정상-비정상'의 레토릭을 인류의 역사속에서 끊임없이 양산해왔다. 이러한 '정상화(normalization)' 또는 '규범화(normativization)'가 목적하는 것은 현상유지적 권력의 확고화이다. 여전히 일부 교회들은 '자위(masturbation)'를 하거나 또는 결혼한 부부라도 성적 관계중 '쾌락'을 느끼는 것을 '죄'로 규정하기도 한다. 부부간의 성적 관계는 성적 쾌락이 아닌, 생산(reproduction/ procreation)의 행위로 규정하는 것이 '정상적 성' 관계라고 보기 때문이다. 미셸 푸코가 우리에게 준 중요한 통찰 중의 하나는 이러한 '정상화 (normalization)'의 과정이 어떻게 종교적, 사회정치적 통제 권력을 구성하고 유지하게 하는 가에 대한 분석이다. 한 사회에서 어떠한 특정한 존재 방식을 지닌 이들이나 그들의 행위를 '정상' 또는 '비정상'으로 규정하는 것은 언제나 그 사회에서 권력을 지닌 그룹이다.


5.

성서는 한 사람에 의하여 쓰여진 '단일한 문서'가 아니다. 성서의 텍스트들은 다양한 역사문화적 또는 사회정치적 정황에서 쓰였다는 사실은 성서 안에서 상충하는 레토릭을 찾을 수 있다는 것과 연계된다. 성서에는 자신과 상이성을 지닌 타자에 대한 무조건적 환대의 가르침도 있고, 그 '다름'을 조금도 용납하지 않는 노골적 적대와 혐오의 이야기도 담겨 있다. 예수를 자신들의 종교생활에 가장 중요한 '중심'으로 간주하는 '기독인 (Christian)'들이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예수는 인간의 섹슈얼리티의 다양한 양태에 대하여 전혀 언급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 점을 기억하면서, 무조건적 환대, 연민, 사랑이라는 예수의 가르침으로 나와 다른 타자에 대한 혐오를 단호히 넘어서야 할 것이다.

한국의 퀴어 퍼레이드에서 '성서의 이름으로' 성소수자들에 대한 혐오를 정당화 하고자 하는 '예수 믿는 이들'은, 정작 예수는 혐오가 아닌 포용과 사랑을 가르쳤다는 '진리'를 분명하게 기억해야 해야 한다. 그래서 성소수자 혐오를 위하여 쓰는 시간과 에너지를, '혐오 저지 운동'과 '소수자와의 연대운동' 으로 단호히 전환하기 바란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