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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돕는 이들의 외면받는 고통 | 소방관 국가직 전환이 필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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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기억하는 한 특별한 환자가 있다. 예보에도 없이 급작스럽게, 온 세상을 천둥소리와 함께 흠뻑 적셔버리는 대단한 비가 내리던 날이었다. 그래서 그날은 늘 냉방이 서늘하게 유지되는 응급실의 공기마저 축축한 기운이 느껴질 정도였다.

환자들도 그날은 조금은 습기어린 상태로 날 맞이했다. 그리고 평범한 환자들 사이로, 그 특별한 환자는 들어왔다. 기본적으로 그 환자가 특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너무 확률이 낮아 도저히 불가능하다고까지 생각할 수 있는 일을 겪었기 때문이다. 바로 벼락을 맞은 것이었다. 그것도 직격으로 혼자. 우리는 그 확률을 백팔십만 분의 일이라고 계산한다. 보통 사람을 포함해 나조차도, 염두에 두거나 생각하며 살 수 없는 확률이다.

나도 난생처음 보는, 벼락을 맞은 그녀는 카트에 실려 들어왔다. 비가 너무 많이 내려 카트와 환자가 물에서 방금 건져낸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처음으로 벼락을 맞은 사람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온몸이 그을려 있었지만 표면이 불탄 사람과는 달랐다. 고압의 전류가 순식간의 그녀의 몸을 관통했고, 겉은 대체적으로 온전했지만 익어버린 냄새가 너무 심했다. 그 찰나에 고압으로 그녀의 내장과 근육이 전부 타버린 것이었다. 그것은 전기로 살아있는 생명체를 구웠을 때 나는 냄새와 비슷했지만 그것보다도 훨씬 더 매캐하고 지독했다. 나는 그때 벼락에도 냄새가 있음을 처음 알았다. 그것은 축축하고 먹먹한 물내와 자욱하고 바짝 익힌 생명체의 냄새가 뒤섞인 것이었다.


단 세 문장이었다. 하지만 깜짝 놀랄 만큼의 노고가 담긴 말이었다.


세 명의 구급대원이 그 환자와 같이 왔다. 전부 주황색 방수복 차림이었지만, 그들도 물에서 방금 나온 것 같은 몰골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러니 그 카트와 대원들은 어쩌면 한 덩어리 같았다. 그중 한 명이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숨을 불어넣고 있었고, 마지막 한 명은 카트를 밀고 있었다. 그중 카트를 밀던, 가장 고참으로 보이는 대원이 탈진한 목소리로 내게 전했다.

"북한산 정상에서 벼락을 맞았습니다. 출동하니 심정지 상황이었습니다. 심폐소생술을 유지하며 왔습니다."

단 세 문장이었다. 하지만 깜짝 놀랄 만큼의 노고가 담긴 말이었다. 나는 그 단순한 문장에 담긴 정보와 그들의 몰골로 비추어, 찰나에 이들이 여기까지 오게 된 경위를 되짚어 보았다. 일단 그들에게 누군가 벼락을 맞았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북한산 정상이었고, 비가 너무 내려 헬기는 뜰 수 없었으므로, 직접 달려가는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촌각을 다투는 심정지였다. 그들은 전화를 받자마자 방수복을 챙겨 입고 서를 뛰어나와 젖은 산길을 달려 올라갔다.

보통 사람이라면 산 정상에 오르는 것만으로 지친다. 게다가 비가 내리고 있고, 그들은 달려서 올라야 했으므로, 더 지친 채로 환자를 발견했을 것이다. 그리고 심정지를 인지했다. 환자를 포기할 수 없었으므로 병원까지 지속적인 심폐소생술이 필요했다. 그 말은 환자를 들고 심폐소생술을 유지하며 북한산을 온전히 내려와야 한다는 말이다.

대원은 세 명이였다. 산길을 카트로 이동할 수 없으니, 환자를 직접 드는 수밖에 없었다. 두 명이 환자를 앞뒤로 들었다. 들것과 환자가 푹 젖어 이미 무거웠고, 그 위로 대원들의 몸과 들것에 비가 사정없이 내렸다. 그 상태 그대로도 벌써 힘겨웠다. 하지만, 남은 한 명은 하늘을 보고 똑바로 누운 환자의 흉부가 푹 들어갈 정도로 세차게 눌러야 했다. 버텨야 하는 힘과 눌러야 하는 힘이 전부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팔과 다리가 떨어져 나갈 것 같은, 순간순간이 고문과도 같았을 것이다.

지친 대원들은 그 폭우 속에서, 그 상태를 유지하면서 서로 역할을 바꾸어 경사진 북한산을 내려왔다. 그 상황에서 심폐소생술이 제대로 되었음은 만무했지만, 힘이 조금이라도 떨어지는 것만으로 이 사람의 생사를 가를 수 있다고 생각했음은 분명했다. 그 장대비를 맞으며, 생명의 존엄에 관한 소명을 품은 채 환자와 직접 피부를 맞대고 있는 사람이,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들은 기어코 불가능해 보이는 최선을 다해 미끄러운 비탈길을 온전히 내려왔다.

나는 듯한 발걸음이었고, 구급차는 산 아래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환자를 그 안에 급히 실었고, 그 순간까지도 그들의 손길은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빗길을 한시바삐 뚫고 그들은 이곳, 응급실로 뛰었다. 형편없이 젖은 몰골이나 쇠잔해지는 육신을 돌아볼 시간은 도저히 없었을 것이다.

나는 단 세 문장에서 이 경위를 순식간에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환자를 급히 마주했다. 그녀는 이미 푸른 기색이었고, 벼락의 냄새가 진동했으며, 피부가 잔뜩 불어 있었다. 손발도 차디찼다. 나는 그 지난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시간이 많이 걸릴 수밖에 없음에 생각이 미쳤다. 결국 산 정상에서 물리적으로 사람을 데리고 내려오는 것은, 온전히 사람의 힘이 아니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나는 신고 시간을 확인했다. 두 시간이 넘겨 있었다. 벼락을 직격으로 맞으면 사람의 심장은 그 자리에서 쇼크로 멈춘다. 그리고, 내가 확인한 시간은 이미 두 시간을 넘겼다. 나는 빗물에 불어난 팔과 다리를 이리저리 들어보았다. 관절이 전혀 접히지 않았다. 나는 상황을 축약하고 판결했다.

"돌아가셨네요. 시간이 너무 오래되었습니다. 병원에서 더 이상 할 처치가 없습니다. 지금 이 시간으로, 사망 선언하겠습니다."


언제나 냉철한 모습만을 보이던 대원들은 급격히 동요했다. 두 명은 체면도 없이 응급실 바닥에 고스란히 주저앉아버렸다.


매정한 느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독하게 냉철하고 돌이킬 수 없는 판단이었다. 내가 아무리 모든 사람을 안타깝게 여길지라도, 죽은 자를 살릴 선택지는 없었다. 의료진이 카트를 받아 시체처럼 느리게 이끌었다.

반면 언제나 냉철한 모습만을 보이던 대원들은, 카트를 넘기고 내 말이 떨어지자마자 급격히 동요했다. 두 명은 체면도 없이 응급실 바닥에 고스란히 주저앉아버렸다. 방금 그 상황을 설명하던 리더로 보이는 한 명도, 풀린 다리로 간신히 서 있었다. 그리고 이미 탈진된 지 오래인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죽었단 말, 말씀입니까?"
"네, 시간이 너무 오래됐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 아, 어떻게 해, 아, 아니, 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는 뭐라고 항의하려는 듯한 기색이었다가, 이내 접었다. 그 기색도 필연적이었고, 그 접은 마음도 필연적이었다. 누구든 그럴 것이었다. 그들은 그 힘겨운 사투 속에서 그녀가 살아나는 장면만을 상상했을 것이다. 적어도 목숨이라도 붙는 장면과, 보람을 느낄 수 있는 말 정도는 기대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의 생사를 눈앞에 둔, 그리고 그것이 오롯이 자신에게 달려있다고 여겼던 인간의 태도란, 분명히 그럴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하필 하늘에서 내려치는 불운을 맞았던 그녀와, 소명을 다해 온 힘을 바쳐 뛰었던 그들은, 내 말로 그날의 완벽한 패배자가 되었다.

그들은 곧 사지를 추스르고, 흠뻑 젖은 장비와 카트를 실어 응급실 바깥으로 나갔다. 빈 카트 위에 장비를 실었을 뿐이지만, 그를 굴리며 응급실 자동문을 빠져나가는 몸짓이 무척 힘이 빠져 보였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만연한 탄 냄새를 들이키며, 그들이 차로 돌아가는 모습을 마지막까지 바라보았다. 그처럼 쓸쓸한 대원의 뒷모습은 아직 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나는 그 일반적인 확률로 일어날 수 없었던 불운을 뒤집어 쓴 그녀와, 뒤늦게 달려온 아들의 한맺힌 절규를 아직 기억하고 있지만, 그날 내내 그 맥없는 뒷모습이 어른거리며 머릿속에서 가시지 않았던 것도 유난히 뇌리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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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간 35명의 소방관이 자살했고, 전체 소방관의 40% 정도는 외상 후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응급실은 병원에서 소방대원을 직접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곳입니다. 그러기에 저는 현장에 직접 갈 일은 없지만, 소방대원들의 고충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 대원들의 이야기를 조금 풀어보고자 합니다.

현장에서 겪는 소방관의 노고는 서술하기도 미안하고 벅찹니다. 위 이야기는 극단적인 상황이지만, 비슷한 일은 언제건 때를 가리지 않고 발생합니다. 대원들은 신고를 받자마자 달려가 어떤 상황이건 환자를 살리기 위한 사투를 벌여야 하고, 심지어 죽은 사람도 수습해야 합니다. 강에서 시체를 건지거나, 기계나 차에 분쇄되거나 불탄 시체를 수습하고,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는 부패된 시체를 처리하기도 합니다. 그 환경이 매번 위험천만하고 위태로울 것은 당연합니다. 5년간(2010-2014년) 33명의 소방관이 순직했고, 1596명이 다칠 정도입니다. 이렇게 동료와 환자들이 위험에 빠지고, 때론 죽어나가거나 이미 죽어버린 끔찍하고 잔인한 상황에서, 정신적인 무게가 막중함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5년간(2010-2014년) 35명의 소방관이 자살했고, 전체 소방관의 40% 정도는 외상 후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직업 만족도는 조직 중 최하위권입니다.

하지만 전반적인 소방관에 대한 사회적인 대우와 현장에서의 인식은 전혀 합당하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119의 실제 업무 중 화재는 10% 미만이고, 대부분 구급이나 기타 출동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119가 화재뿐 아니라 다양한 문제를 해결해준다고 신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람들은 술을 많이 먹었다는 이유나, 혹은 단순히 불편감을 느끼거나, 코피 같은 증상에도 119에 전화합니다. 심지어 집 문이 잠기거나, 개를 잃어버리거나, 이웃과 다투어도 신고하는 일까지 다반사입니다. 가벼운 전화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119 대원의 1회 출동 원가는 30만 원에 달합니다. 반면 신고자는 한 푼도 내지 않습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누구나 간편하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회적 구조인 것은 긍정적이지만, 공짜이므로 사람들은 가볍고 당연하게 생각하며, 때로는 현장에서 대원들이 무시당하거나 폭언을 듣는 것도 현실입니다.

일선에서 자신을 가볍게 여기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겪어보지 않고서는 모릅니다. 2009년부터 2014년 6월까지 현장에서 폭행당한 소방공무원은 661명에 달합니다. 이 현실에서 대원들은 자신이 구해내야 하는 사람들이 언제나 자신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폭행을 경험하더라도, 자신들의 위치와 소명 때문에 적극적으로 항변할 수 없는 위치에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입을 대원들의 마음의 상처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일단 이 인식의 개선은, 우리의 안전을 책임지는 사람들이 직면한 가장 중요한 당면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소방공무원의 또 다른 행정적인 문제도 산적해 있습니다. 여러분은 최근 '소방공무원을 지방직에서 국가직으로 전환하자'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일견 우리는 왜 소방공무원이 현재 국가직이 아닌지, 혹은 왜 당연히 국가직으로 전환되지 않는지 의아해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아주 행정적으로, 또 정치적으로 첨예한 사항이 엮인 문제입니다.

국가직이란 국가에서 임용해서 국가기관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이고, 지방직은 시, 도에서 임용해서 지방기관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입니다. 현재 소방관은 지방직이므로 시, 도에서 임용해서 지방기관에서 근무하지만, 범국가적 조직인 국민안전처 소속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체계가 일원화되지 않은 채, 국민안전처의 명령을 받으면서 시, 도의 지시까지 전부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지자체 행사에 비번인 소방관이 불려 나와 의자에 쌓인 눈을 닦고, 도지사가 개인적 업무 때문에 소방헬기를 부르는 등, 모두를 갸우뚱하게 하는 업무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어떻게 보면 터무니없는 사항이지만, 지자체가 이 주도권을 놓지 않고 싶어 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지방직으로 남은 특정직 공무원은, 국방, 치안, 안전 중에 안전뿐입니다.


허나 이 때문에 인력이나 자원의 배분 문제가 발생합니다. 국가직이 아니므로, 국가에서 내려온 예산을 지자체는 자의적으로 소방 부분에 편성하게 되어 있습니다. 당연히 부유한 지자체일수록 안전쪽으로 편성할 여유가 많겠지요. 그래서 서울이나 경기 등, 부유한 지자체의 소방 예산은 넉넉하고, 지방으로 갈수록 당장 티가 나지 않는 안전 부문의 예산을 줄일 수밖에 없습니다. 고로 인구가 적고, 활동 반경이 넓어야 하는 지방일수록 인력은 부족합니다. 서울의 구급차에는 평균 3명이 타고, 지방의 소방차에는 평균 1.7명이 탄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원칙상 구급차의 탑승 인원은 3명이 맞지만, 지방엔 소방차 4대를 보유한 서에 근무 소방관이 5명인 경우도 다반사입니다. 애초에 보유한 차가 전부 출동할 수 없는 아이러니한 구조입니다. 인력 채용 뿐 아니라, 봉급도 지자체에서 지급하므로 지방에서는 수당이 부족해서 억지로 퇴근을 시키거나 심지어 체불하는 경우도 있으며, 복지에서도 당연히 차이가 납니다. 게다가 체계의 일원화가 되지 않아 인력이나 장비의 유동적인 재분배도 불가능합니다. 여름 휴가철 바닷가나 봄 가을의 명산이면 그 근방 대원들은 훨씬 바쁠 것이 분명하지요. 하지만 인력 충원이라곤 없어 대원들은 그냥 과부하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뿐입니다.

특정직 공무원, 즉 직무의 특수성을 인정해주는 공무원은 우리나라에 50만 명이 있습니다. 군인, 경찰, 검사, 법관, 소방관 등이 이에 속합니다. 그중 국가직은 46만 명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소방관은 4만 명입니다. 지방직으로 남은 특정직 공무원은, 국방, 치안, 안전 중에 안전뿐입니다. 국가적으로 관리되지 않는다는 뜻은 가령 이런 것입니다. 여러분은 경찰병원과 국군병원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겠지만, 소방병원은 들어본 적이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소방조직은 국가적 관리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일견 당연히 보이는 소방관의 '국가직 전환'은 요원합니다. 일단 지방직으로 남아 있을 때 권력을 누리고 이권을 행사할 수 있는 윗선의 몇몇이 반대하기 때문이고, 자원이 풍족한 시도나 그 시도민들은 적극적으로 주장할 필요가 없는 문제이기도 하며, 그에 피해를 입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미미하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점은 이 현실에서 절박한 사람들은 사회의 변방에 밀려있는 사람들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확히 그 이유로, 정복 차림으로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와 호소하는 소방관들의 목소리가 매번 대중들에게 잊히고 마는 것도 현실입니다.

이것은 안전에 관한 문제입니다. 고통받는 약자까지 소방조직의 힘이 충분히 닿도록 하는, 어쩌면 사회의 분배와도 직결되는 안전의 문제입니다. 안전과 생명에는 빈부격차가 있을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이들이 정치와 행정의 논리로 오가는 현실과, 합당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이들이 거리로 나와, 누구도 귀기울이지 않을 말을 외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너무 송구스럽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사람을, 더 이상 저렇게 대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뿐입니다. 이 글로 저는 현장의 사람들에 대한 인식의 개선과, 이 땅의 사람들이 약자의 입장에 귀 기울이며 안전의 문제를 확립하자는, 어떻게 보면 당연하고도 당위성 있는 주장이, 실제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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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들의 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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