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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왕 김혜수'와 나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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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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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첫 책이 세상에 처음 나온 날의 일이었다. 내 눈앞에는 출판사 직원이 들고 온 난생처음 보는 내 책이 잔뜩 쌓였다. 출판사 관계자들은 홍보용으로 책을 읽는 명사들에게 내 책을 보내겠다고, 나에게 스무 권 정도 사인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역시 난생처음 하는 저자 사인이었다. 나는 그 '유명인'의 명단을 훑어보고 출판사 관계자에게 몇 번이고 물었다. "이게 다 제가 아는 그 작가나 티브이 나오는 그 사람들 맞나요?" "네 맞아요."

이 질문은 사인을 한 번씩 할 때마다 계속되었는데, 그전까지 내가 이름만 알고 닿을 수 없던 각종 명사들이 지나갔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배우 김혜수 씨의 이름이었다. "여기 쓰여있는 김혜수라는 이름이 정말 그 제가 아는 배우 김혜수 씨 맞나요?" "네, 책 많이 읽으신대요. 그분 맞아요."

나는 그리고 한동안 내 책에 처음으로 잔뜩 사인했던 일을 잊고 있었다. 직접 전한 책들에 비해선 별다른 반응이 오지 않아서였다. 그러던 이번 달 문득, 출판사를 통해서 김혜수 씨가 나에게 고마움을 따로 전했다는 사실을 들었다. 좋은 책이었고, 정말 잘 읽었다고, 그 때문에 책을 보내준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무명의 일개 저자인 나를 위해 출판사를 통해서 연락을 주었다고.

나는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참으로 감사한 생각이 들었고, 또, 한편으로는 너무 유명인이었기 때문에 약간 믿기 힘들었다. 그래서 나는 주변에 자랑하고 싶었지만, 결국 어머니에게만 잔뜩 자랑하고 그 일을 가슴속에 새겨두고 있었다.

그리고 며칠 전, 김혜수 씨의 인터뷰 기사가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쉬는 동안에는 집에서 안경을 끼고 책만 읽어요. 좋아하는 작가가 생기면, 그 작가 쓴 책을 몽땅 사서 읽어요. 아직 번역이 안 된 작품이면 개인적으로 번역가에게 부탁해서 읽곤 해요." 누리꾼의 반응은 칭찬 일색이었다 '이미지 때문에 그럴 줄 몰랐다. 대단하다.' '돈은 저렇게 써야 한다.' '멋진 취미 생활이다.'

이 기사를 보고 나는 새삼스레 그녀가 감사한 마음을 내게 보낸 순간과, 내가 받았던 감동에 대해 다시금 떠올렸다. 내가 그냥 유명한 배우라고만 생각했던 그녀는, 분명 내 책을 봐주지는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사인해 보낸 책을 꼼꼼하게 봐주었고, 또, 분명히 진지하게 독서하는 사람의 자세로 책에서 나름대로의 감동을 발견하고 책을 보내준 출판사와 쓴 저자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그런 사람이 인터뷰에서 자연스럽게 책을 사랑하노라 말하는 것도, 내가 받은 메시지로 비추어 보았을 때 너무나 당연했다.

그녀의 서재에는 분명 여기저기서 보내온 책들이 잔뜩 쌓여 있을 것이다. 그녀는 그중의 한 권인 내 책을 그냥 안 읽을 수도 있었고, 읽었더라도 아무 말 안 할 수도 있었고, 읽고 친구들에게 이야기나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꼼꼼히 읽고 책을 보내준 출판사에 연락해 이름도 낯선 저자에게 고마움을 전달하는, 책과 글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방식을 택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번 화제를 보고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고, 아니면 그냥 친구들에게나 말이나 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분명 보지 못할 글이라도 꼭 이 일화와 응원하는 한 마디를 써서 덧붙이고 싶었다. 왜냐하면 그녀같이 책을 사랑하고, 또, 글을 쓰는 사람에게 예의를 표할 줄 아는 사람은 정말이지 멋진 사람이기에. 나는 그런 마음가짐을 가진 사람에게 감사함을 표현하고 응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그녀가 배우로 활동하든지, 혹은 활동하지 않고 독서가로 남아 있더라도 그녀를 열렬히 응원하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덧붙여 나는 책과 독서를 좋아함으로 화제가 되고, 또 사랑받는 분위기가 믿을 수 없이 좋다. 고로 나는 그 목소리 사이로 들어가 그녀의 한 명 팬이 되어, 그녀를 계속 응원하며 행보를 따뜻한 마음으로 지켜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