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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와 설희의 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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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혼잡한 응급실 접수 창에 한 환자의 이름과 신상 정보가 올라왔다. 열한 살, '설희'라는 예쁜 이름의 아이였다.

아이는 곧 그 이름의 주인공이 자신이라는 듯 119 카트에 실려 왔다. 좁은 카트가 익숙한 듯 누운 채 실려 온 아이의 몸은 삐쩍 마르고 왜소해, 도저히 열한 살로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사지의 끝이 오므라져 손으로는 무엇도 잡을 수 없고, 발로는 땅조차 제대로 디딜 수 없어 보였다. 마르고 비틀린 몸도 한눈에 띄었지만, 모두의 시선을 잡아끌었던 것은 아이의 머리였다. 그것은 잘 익은 제철 수박보다도 훨씬 커다랗고 둥글었다. 보통의 성인 머리 크기의 두 배 정도는 됨직했다. 눈, 코, 입이 얼굴의 가운데에 몰려 있고 정수리 부근이 아주 크게 부풀어 있어서, 멀리서부터 솟아 있는 아이의 머리가 유난히 두드러져 보였다.

가까이서 마주하자 풍선같이 부푼 머리통에 마르고 가느다란 육체는 의사인 나에게도 기괴한 느낌을 주었다. 스스로 완전한 숨을 한 번도 쉬어보지 못한 듯 목 한가운데에 호흡을 위한 튜브가 꽂혀 있었고, 배에도 영양 공급을 위한 튜브가 꽂혀 있었다. 뱃가죽 한가운데 푹 꽂힌 튜브의 주변이 빨갛게 헐어 상당히 오랫동안 외부에서 위로 직접 음식물이 공급됐음을 알려 주었다. 머리와 몸 그리고 전반적인 상태로 판단하건대, 전형적인 선천적 신경계 질환의 환자로 오랜 기간 투병해온 모습이었다. 허나, 평생 같은 상태로 살아가는 것을 투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것은 그냥 병은 어딘가에 따로 존재하고, 아이는 그 바탕에서 일생을 남들처럼 살아왔다고 불러야 마땅했다.

이런 아이들은 보통 한 곳의 병원만을 다니므로, 내원 기록을 찾으면 일생 대부분을 파악할 수 있다. 나는 전산에서 아이의 이름을 클릭해 그간의 차트를 전부 열었다. 컴퓨터가 잠시 버벅대더니, 길고 긴 목록을 뱉어냈다. 'Lissencephaly'. 한국말로 '활뇌증'이나 '뇌회결손'이라고 불리는 진단명이 반복해서 길게 화면 위로 나열되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학생 때 공부했던 텍스트와 이미지를 떠올렸다.일명 매끄러운 두뇌(Smooth brain), 주름이 쪼글쪼글하게 잡혀 있어야 할 대뇌가 생선의 알처럼 한 덩어리로 뭉쳐진 이미지였다. 선천적으로 이 아이들의 뇌엔 고랑이 생기지 않는다, 그로 인하여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뇌의 기능적인 발달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다.

뇌회결손인 아이가 정상적으로 커서 자라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성장의 저하를 겪고, 수시로 경기하며, 전신의 근육이 심하게 경직되거나 전부 풀어진다. 얼굴 표정은 대부분 비틀어지고, 대체로 음식물을 삼키질 못하며, 손발 끝에 기형이 생긴다. 신경계의 다른 선천적 질환과 마찬가지로, 치료 방법이 없으며, 터무니없이 짧은 시간 동안만 생을 유지한다. 전산상에는 기침이나 미열 같은 사소한 진료 기록들과, 반복된 입퇴원 기록이 과부하가 걸릴 정도로 많이 떴다. 나는 빠르게 그것들을 뒤져 파악했다. 그리고 실재하는 환자를 보러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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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옆에는 푹 늙은 기색이 완연한 데다 한눈에도 아주 완고한 성격으로 보이는 할아버지가 서 있었다. 아이의 혈압과 체온, 심박 수 등 기본 생체 징후를 체크하는 간호사의 손길을 매우 못마땅한 눈길로 쳐다보고 있어, 베테랑인 간호사도 제법 긴장한 모습이었다. 할아버지는 응급실이라는 곳에 와 있다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은 듯 씩씩대고 있었다. 나는 그 기묘한 분위기를 뚫고 진료를 위해 아이의 침대 가까이에 다가섰다. 할아버지가 초면인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벌써부터 위압감이 느껴졌다.

"어떤 일로 아이가 병원에 온 건가요."
"낯선 양반이네. 이 병원에 차트가 있어요, 차트. 근데, 당신 말고 늘 우리 아이 진료를 보던 사람 불러주쇼. 아이한테 손대지 말고."
"응급실에 오셨으니, 나중에 소아과 의사를 부르더라도 일단 응급의학과 의사인 제가 아이의 상태를 파악해야 합니다."
"이놈의 절차, 이놈의 병원. 이 망할 병원은 매번 이게 문제야."

할아버지는 아이의 상태는 이야기하지 않고, 이미 의료진의 멱살부터 잡을 기세였다.
"할아버지는 저를 처음 보시겠지만, 저는 아이가 어떤 치료를 받았는지 기록을 전부 살펴보고 왔습니다. 며칠간의 아이 상태와 병원에 오게 된 경위만 말씀해주시면 소아과 진찰 전에 제가 아이 상태를 미리 파악하고 전달하겠습니다."
할아버지의 기세는 약간 누그러졌지만, 목소리에는 여전히 노기가 있었다.
"변비 때문에 왔소. 변을 볼 시간이 지났는데 아이가 좀체 변을 안 보더라고. 배도 불편해 하는 것 같고."

나는 살며시 아이의 배에 손을 댔다. 어디를 바라보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뒤틀린 표정의 아이는 그냥 '아아아' 소리만을 냈다. 아이는 평생 이 소리만을 내며 살아왔을 것이고, 할아버지도 평생 이 소리의 변화만으로 아이를 판단해왔으리라. 할아버지의 염려와는 다르게 아이의 배는 몰캉했고, 많이 부풀지 않았으며, 장 소리도 크게 나빠 보이지 않았다.

아이가 지닌 병으로 인해 전반적인 상태는 처음부터 좋지 않았으나, 위급한 문제가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나는 복부 엑스레이 처방을 내고 소아과 의사를 호출했다. 할아버지는 그동안 구석에 우뚝 서서 지나다니는 의료진과 응급실 허공을 못마땅한 눈길로 쏘아보고 있었다.

호출을 받은 소아과 동료는 곧 응급실로 내려와 아이와 할아버지를 면담했다. 낯익은 얼굴이어서인지 할아버지는 조금 누그러진 표정으로 소아과 주치의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아이를 사이에 두고 둘은 한참 동안 말을 나누었고, 진료를 마치자 나는 소아과 동료를 붙잡고 아이에 대해 물었다.

"활뇌증 환자는 응급실에서 처음 본다. 근데 저 할아버지, 왜 이리 까칠하셔?"
"저 할아버지, 우리 과에선 유명한 분이야. 보통 이 병증의 아기들은 얼마 못 살아, 옛날에는 두 살이면 다 죽었다고 하더라. 그런 설희를 열 살도 넘게 살게 한 사람이야. 아이에게 정성스럽고 극진해서 설희가 지금까지 살아 있는 거라고 생각할 정도야. 투병기간이 오래다 보니 낯 모르는 의료진이 설희를 건드리는 것을 싫어하시고,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거야."

"근데, 엄마 아빠는 어디 가고 할아버지가 설희를 보는 거야?
"나도 정확히는 모르는데, 부모가 이혼하면서 나 몰라라 도망가버렸나봐. 활뇌증 아이는 태어나고 몇 개월까지는 정상처럼 보이다가, 점점 발달이 느려지거든. 아이가 정상이 아닌 걸 깨달으면서 부부 사이가 어긋나고, 서로 네 탓 내 탓 싸우다가 결국 이혼하고. 그러다 할아버지가 세상에 혼자 남은 손녀를 떠안은 거지. 그 후로 할아버지는 자기 삶도 없이 아이만 보고 있어. 매일 기저귀를 갈면서 대소변을 받고, 끼니마다 주사기에 유동식을 채워서 튜브로 쏴 주고, 매시간 욕창이 생길까봐 자세를 바꿔주고, 산책시킨다고 저 늙은 몸으로 아이를 번쩍 들어서 휠체어에 옮겨 산책시키고, 아이가 '아아아' 하는 소리를 듣고 아프면 병원 데리고 가고. 그걸 십 년도 넘게 했는데 얼마나 힘들겠어. 그래서 우리 과에서는 할아버지가 좀 까칠해도 전부 이해하고 있어."

"음... 그런데 저 머리는, 뇌수종(Hydrocephalus) 때문일 텐데, 저 정도로 머리가 커지면 브이피 션트(VP shunt, 뇌실과 복강을 연결하여 머릿속에 물을 빼는 수술)는 고려 안 해본 거야?"
"말도 마. 십 년도 넘게 설희와 떨어지지 않고 지낸 할아버지가 아직도 설희의 뇌가 자랄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 대뇌에 갑자기 주름이 생기면서 아이가 말을 하고 걸어다닐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니까. 그래서 우리가 머리에 관을 꽂는 수술을 하겠다고 할 때도 저 머리가 내일부터 당장 줄어들기라도 할 것처럼 성을 내며 반대하셨어, 귀한 손녀 머리에 이상한 수술을 하려고 한다고. 물론 의료진이 설득해서 끝내 수술을 했지만 그마저도 제대로 기능을 못해서 결국 지금 보는 상태가 됐어. 그 과정이 보통 아니었지."

소아과 주치의는 잠시 지난날을 회상하다 말을 더 이어갔다.
"그 전에는 아이가 음식물을 삼키지도 못 해서 매번 콧줄로 밥을 줬거든. 그러니까 코랑 코 안이 온통 헐어서 더이상 줄을 유지할 수가 없더라구. 의료진이 그 때문에 이제 한계가 있으니 위루성형술(Gastrostomy, 위로 통하는 구멍을 뚫어 직접 영양을 주입하는 법)을 하자고 했을 때도 할아버지는 기어이 반대하셨어. 내일이라도 끔찍하게 헐어버린 코 주변이 당장 낫고, 갑자기 설희가 식탁에 앉아 수저를 들고 밥을 먹을 것처럼. 결국 버틸 수가 없어서 지금은 위루로 영양분을 공급하긴 하지만. 그렇게 매번 의료진이 가망이 없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듣지를 않아. 하여간 대단하신 분이야."

순간 신경질적인 할아버지의 표정이 아이의 상태와 겹쳐 보였다. 그것은 세상 하나밖에 없는 혈육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나는 하루 종일 누워 있는 설희와 할아버지가 사는 집을 상상했다. 곤히 잠들거나 웃는 듯한 표정을 짓는 설희를 보고 그나마 삶의 위안을 찾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그 몇 장면 말고는 할아버지는 내내 이 세상에 둘만 남겨진 듯한 기분일 것이다. 말도 통하지 않아 전혀 의지할 수 없고, 자신이 모든 것을 책임져야만 하는 아픈 아이. 자신이 무거운 짐을 끌고 있으나 앞에서 폭풍우가 몰아치는 느낌. 그 생활이 십 년이었다면 익숙하지 않은 타인에게는 무조건 까칠해질 수밖에 없다. 세상에서 아이를 지킬 사람은 자신밖에 없으되, 자신의 생활조차 녹록지 않은 투쟁이었다고 생각하면, 할아버지에게는 당연한 완고함이었다.

이야기를 조금 더 나누던 할아버지와 소아과 주치의는 곧 아이를 입원시켰다. 주치의 말로는 아이의 입원은 대중이 없다고 했다. 사실 아이의 상태는 매번 고만고만했다. 그저 아이가 하루 종일 내는 언어도 아닌 소리와, 몇 개의 표정, 느낌만으로 판단하여 할아버지가 아이의 입원 여부를 결정한다고 했다. 입원해도 해줄 것이 특별히 없어 병원에서는 가만히 상태를 관찰할 뿐이지만, 할아버지는 그 곁에서 항상 누구보다도 정성스럽게 아이를 지켜본다고 했다.

hospital doctor

그날, 새벽이라 응급실 환자가 거의 끊긴 무렵 나는 낮에 입원한 설희가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했다. 또 그 완고한 할아버지가 아이를 어떻게 지키고 있을지 직접 한번 보고 싶었다. 나는 응급실에 일이 생길 경우 호출을 부탁하고, 설희를 보기 위해 소아과 병동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이들이 깊이 잠든 시간의 소아과 병동은 매우 고요했다. 나는 설희의 불 꺼진 병실을 찾았다. 그리고 약한 조명 아래 큰 머리를 지닌 마른 몸의 설희가 누워 있고, 그 곁에 할아버지가 인광을 빛내며 깨어 있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았다. 아이는 미동 없이 잠든 기색이었고, 아이의 심박과 산소 포화도는 무료하게 그림과 숫자를 실시간으로 그려냈다. 할아버지는 늦은 시간임에도 자지 않고 설희의 모습과 모니터 속의 숫자를 두 눈을 부릅뜨고 번갈아 보고 있었다. 그 표정이 여전히 완고해 보였지만, 어둠 속에서도 손녀에 대한 애정을 숨길 수 없었다. 나는 소아과 스테이션으로 돌아와 물었다.

"설희 보호자분은 워낙에 밤에 안 주무세요?"
"아, 설희 보러 오셨군요. 할아버지는 항상 거의 못 주무시고 저렇게 아이만 보고 계세요. 저러다가 아무리 늦은 시간이라도 혹은 이른 새벽 시간이라도 아이가 안 좋다고 생각되면 의료진을 마구 호출해요. 좀 귀찮기도 하지요. 근데, 저 정성 유명해요. 어쩔 수가 없지요."

더 이상 물을 것이 없어 나는 고개를 돌렸다. 저 완고함이 아이의 생명을 그토록 오래 붙잡고 있을 터였다. 그것을 확인한 것만으로 충분했다. 나는 설희가 앞으로도 할아버지의 굳은 비호 아래 잘 지낼 것이라고 생각하며 응급실로 내려와, 다른 환자들을 지켰다.

cardiogram

그리고 나는 한동안 그 아이를 잊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소아과 동료를 응급실에서 마주치게 되었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대뜸 설희를 화제 삼았다. 얼마 전 설희가 갑자기 죽었다는 소식이었다.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할아버지는 어둠 속에서 설희와 설희의 생체 징후가 그려내는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밤은 깊었고, 모든 것은 안온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깜빡, 깜빡, 정신이 나른하게 가물거렸다. 십 년이 넘게 쌓인 피로였고, 밤새 한시도 잠들지 않을 수는 없었다. 할아버지는 잠시 눈을 붙여 풋잠이 들었다. 의식과 기억이 캄캄한 터널을 잠시 지난다. 이윽고 그가 눈을 뜨자, 모니터에는 십 년 동안 한 번도 보지 못한 숫자와 그래프가 떠 있었다. 0이라는 숫자와, 가로로 길고 곧게 놓여 한없이 평행선을 달리는 심전도. 마치 인형이나 허공과 연결되어 있는 것 같은 모니터 속 표시들.

할아버지는 그 어두운 새벽 스테이션으로 나와 울부짖는다. 몇 년간 할아버지와 설희를 봐온 간호사들은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하고, 설희의 병실로 뛰어든다. 설희의 큰 머리는 힘없이 침대에 놓여 있고, 작은 눈과 코, 입은 감겨 움직이지 않는다. 마르고 비틀어진 몸통마저 미동 없이 축 늘어져 있다. 그 새벽에, 온 병원에, 소란스러운 심정지 경보가 울린다. 잠들어 있던 의료진마저 깨어나 설희에게 달려든다.

같은 병실의 보호자들이 전부 일어나 사태를 지켜본다. 패닉에 빠진 할아버지는 흰 가운을 입은 의사들 사이에서 더 처량하고 쪼그라들어 보인다. 흰 가운을 입은 의사는 목에 있는 구멍에 풍선같이 커다란 엠부를 연결해 있는 힘껏 짜면서 설희의 연약한 몸 곁에 무릎을 꿇고 그녀의 심장을 부서질 듯 누른다. 할아버지는 아이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무조건 죽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아이의 흉부가 무너져나가는 꼴을 눈앞에 보자 말리고 싶은 마음에 손을 머뭇거린다. 그러곤 시선을 돌려 바닥과 천장을 번갈아 바라보며 흰 가운들 사이에 서성댄다.

"할아버지! 설희는 지금 심정지 상태입니다. 설희의 뇌가 온전치 않은 건 아실 거예요. 그래서 심정지가 오면 뇌에 저산소증이 오는데, 이걸 온전하지 않은 뇌는 거의 견뎌내질 못해요. 저희가 최선을 다해볼 텐데, 일단 설희가 살아나기는 힘들다고 생각하셔야 해요."
"왜, 왜 우리 설희가, 곧 건강해져야 할 설희가, 왜, 이렇게 된 거요?"
"잠들기 전까지는 모든 게 안정적이었으니, 이런 경우는 보통 호흡이 막혀서 생기는 건데요. 밤새 호흡관이 막힐 일, 혹시 생각나는 거 없으신가요?"

순간 할아버지의 전신이 굳어지고 오한이 든다. 지난밤, 뱃가죽에 흘린 유동식을 닦던 노란 손수건이 눈앞에서 나풀거린다. 그게 잘 기억나지 않는 어딘가에 올려져 있었다. 그리고 새벽녘 희미하게 들렸던 설희의 조금 쌕쌕대고 불편하던 모습. 그것 때문이었나. 작고 성기게 짜인, 노란 작물 한 장이, 그게 폴랑거리며 어딘가로 내려앉아, 우리 설희를 죽였나.

"그 손수건이... 손수건이..."
"일단 단정할 수 없어요. 아이는 이 병을 앓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정말 오래 살았어요. 무슨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일일 거예요."
"......십 년을 키웠는데...... 그 손수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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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희는 곧 짧은 생을 마감했다. 0과 평행선의 행렬은 다신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그간은 행복했고 지금이 유일한 슬픔의 순간이라는 듯, 그 새벽 너무나도 서럽게 울었다. 이젠 죽어서 축 늘어진 오그라진 팔다리를 붙든 채, 자기 머리보다도 훨씬 큰 설희의 머리와 얼굴을 맞대고 온 병동이 떠나가도록 울부짖었다. 그 모습이 보호자나 다름없었던 의료진과, 새벽잠에서 깨어난 옆 침대의 아이와 보호자들까지 전부 눈시울을 붉게 만들었고, 결국 그 광경이 너무 처절해지자 사람들은 보다 못해 고개를 돌렸다. 그에 아랑곳없이 할아버지는 계속해서 울고 있었다.

결국 아침은 왔고, 장례식장이 설희를 기다리고 있었다. 설희의 사후 처리는 다른 아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 하얀 포가 덮이고, 하얀 옷을 입은 직원이 설희가 누운 침대를 밀고 영안실로 내려갔다. 이제 울 기력도 없어 보이는 할아버지는 주치의와 눈이 마주쳤다. 할아버지는 기력 없는 목소리로 혼잣말하듯, 주치의에게 말했다.

"나는 설희가 죽으리라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어. 근데 휠체어에 아이를 태워서 돌아다니면, 사람들이 보고 깜짝깜짝 놀라. 내가 모를 것 같아? 병원에서 아이가 가망이 없다고 그러면 그걸 듣고 가망이 있다고 생각했을 줄 알아? 나도 다 알았어. 우리 설희가 남들 볼 때 불편하게 생기고, 이 병에 가망이라고는 없는 거. 하지만 머리로는 이해가 되어도, 마음으로 이해되지 않는 게 있어. 이 아이는 나에게 유일한 희망이었거든. 누구나 자기 희망을 접을 수가 있나. 이 아이가, 얼마나 이쁜데. 나한테 단 하나 남은 가족이자 손녀였는데. 튜브로 밥을 먹지만, 그마저 얼마나 이쁘게 먹었는데. 가끔 웃으면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같았어. 그 모습만 보고 있어도 모든 걱정이 사라지곤 했지. 근데, 이렇게 설희가 싸늘하게 죽어 있으니까, 실제로 죽었다는 소리를 들으니까, 이제야 알겠어. 설희는 진짜 죽을 아이였구나. 이게 꿈이 아니라 현실이었구나. 이 할아버진 그래도 인생을 통틀어서 설희를 돌보고 사랑했어, 사랑받는 아이였으니까 설희는 행복했을 거야. 하늘나라에서도, 행복할 거야."

할아버지의 말은 중간부터 울먹이느라 잘 들리지 않았다. 몇 십 년을 완고했던 할아버지가 오열하며 말을 잇지 못하자, 아침나절의 스테이션은 숙연해져 아무도 침묵을 깨지 못했다. 그렇게 할아버지는 소아과 병동을 떠났다.

그리고 소아과 의료진이 점차 설희를 잊어가던 오늘 아침, 회진을 준비하는 의사들과 임무 교대를 하는 간호사들로 붐비는 소아과 병동에, 설희 할아버지가 갑자기 저 멀리서 나타났다고 했다. 할아버지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으므로 모두 하던 일을 멈추고 그가 다가오는 것을 바라보았고, 할아버지는 간식거리가 가득 담긴 병원 앞 편의점 봉지를 두 손에 들고 왔다고 했다. 두 손은 묵직해 보였지만, 할아버지의 몸짓은 오히려 가벼워 보였다고 했다. 그리고 가끔씩 미소를 지으며, 그간 아이를 돌보아준 교수님과 주치의, 그리고 간호사들에게 하나하나 감사함을 표했다고 했다. 그 모습에 사람들은 마음이 아릿해졌고, 할아버지는 제법 편안해 보였다고. 그래서 할아버지의 투쟁은 어느 정도 마무리된 것이 아니겠느냐고, 동료인 소아과 주치의는 나에게 전했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