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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의 시작은 평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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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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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의사는 과학자다. 과학자는 정해진 사실과 축적된 자료를 근거로 이성적인 판단을 내린다. 학문적인 통계와 수없이 쌓인 증거와 사례를 바탕으로 가장 합당한 결과를 도출하여 이를 사람에게 적용한다. 셀 수 없이 다양하고, 서로 어떤 점도 같을 수 없는 인간에게. 왜냐하면, 의사는 과학자니까.


1.

불행의 시작은 평범했다. 그것은 언제나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는 순간 찾아온다. 그녀는 다른 교통사고 사망 환자와 다를 것 없이 요란하고도 급박하게 응급실 안으로 빨려 들어왔다. 땀에 전 주황색 옷을 입은 구급대원이 숭고하고도 격앙된 눈빛으로 한 명은 카트를 밀고, 다른 한 명은 누워 있는 환자의 흉부를 누르며 달렸다. 심정지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웅성이던 사람들이 비껴나면서 내가 서 있는 곳까지 하얀 선이 그어진 듯 길이 트인다. 나는 어떠한 사람이 오든, 절대 비켜서는 안 되는 사람이므로 내 앞에 죽어가는 사람이 빨려들 듯 다가온다. 그리고 무한한 책무가 시작된다. 이 과정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너무나 평범했다.


2.

아직 40대였다. 교통사고라고 했다. 죽기에는 너무 이르고 아까운 여자였다. 게다가 겉으로는 특별한 외상도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도착했을 때는 이미 심정지 상태였다. 그것도 사망 추정 시각이 상당히 오래전인 상태로, 그래서 살아날 가망도 사라진 상태로. 절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내 몸이 기계적으로 움직였다. 삽관과, 정맥로 확보와, 각종 약물 처치와, 흉부 압박이 이어졌다. 기본 처치를 신속하게 마친 뒤, 나는 원인을 찾아내기 위해 실마리를 모으기 시작했다. 남편이 차를 운전했고 아내는 조수석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운전 중 사고가 났다. 같이 타고 있던 남편은, 얼빠진 상태였지만 기적적으로 멀쩡히 살아 카트 뒤를 따라왔다.

"한적한 국도였어요. 한밤에 국도는 당연히 어두웠지요. 헤드라이트 불빛에 의지해서 가고 있었어요. 그것도 꾸불거리는 산길이었지요. 그런데 갑자기 고라니, 네, 분명히 고라니가 갑자기 튀어나왔어요. 반사적으로 핸들을 확 돌린 것 같아요. 그러고 차가 심하게 요동치더니 차도 옆 도랑에 처박혔어요. 그 순간까지 기억나요. 그러고는 정신을 차려보니 구급대원이 절 깨우고 있더군요. 전 멀쩡히 깨어났는데, 제 아내의 맥박이 뛰지 않는다고 했어요. 그러고 지금 이 상태고요."

긴 머리를 질끈 묶은, 행락객 차림의 남편이 한 말은 대략 이러했다. 그는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해 안절부절못해 했고, 초조해 보였다. 말에도 두서가 없어, 사건을 잘 종합해야 했다. 갑자기 깨어나 아내가 죽었다는 말을 들으면 이런 느낌일까, 이 정도의 당혹스러움이 밀려오는 것일까.

구급대원은 지나가던 차가 도랑에 처박힌 사고 차량의 모습을 보고 이를 신고해 현장에 가보니 문이 잠겨 있어 급히 창을 깨고 차량에 탄 이들의 상태를 살폈으며, 환자의 심정지를 인지해 급히 의료지도를 받고 심폐소생술을 하면서 병원까지 왔다고 했다. 한적한 국도변인데다 유리창을 깨고 사람을 빼낸 후 현장 처치가 필요한 상황이라서 병원까지 오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했다. 사고 발생 시점부터 신고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렸는지도 모르는 상황이라 더욱 안타까웠다. 병원으로 오면서 이미 50분이나 지났고 심정지까지 족히 한 시간은 되었다. 한 시간이면 포기해도 좋은 시간이지만, 종합적인 변수를 고려할 때 무조건 포기할 상황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더욱 최선을 다해 몇 번의 제세동을 가했고, 몇 장의 가운을 땀에 적셨고, 결국 30여 분에 걸친 처치 끝에 그녀의 맥을 살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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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시간이 없으니 빨리 들으세요. 일단 아내 분의 맥박을 돌아오게 했습니다. 이제부터 원인이 무엇인지, 외상에 관한 검사를 할 겁니다. 원인을 찾아내더라도, 아내 분의 목숨은 장담할 수 없습니다."

"아...... 살아...... 살아날 수 있는 거요? 전처럼 같이 살 수 있다는 거요?"

"장담할 수 없습니다. 지금은 아무것도 모릅니다. 저는 예측불가능한 상황을 미리 말씀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맥박이 돌아온 그녀의 외상 부위를 면밀히 관찰했다. 하지만 다시 살펴보아도 사망의 원인이 될 만한 심한 외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외상이 없어도 장기 출혈이나 뇌출혈로 사람은 쉽게 죽는다. 나는 위험을 안고 전신 CT사진을 찍기로 결정했다. 사망의 원인을 찾아 막아야 한다. 일단, 그렇게 되면, 적어도 같은 이유로 다시 죽지는 않는다. CT촬영 수납을 안내받은 남편은, 희망적인 말을 들어서인지 아니면 이미 절망적이라고 느껴서인지 방향감각도 잃어버린 듯했고 부들부들 떨면서 응급실을 걸어나갔다.

30분 후 받아본 CT사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정말 한 점의 출혈도 발견되지 않았다. 게다가 그 30분간, 뇌 손상이 진행된 그녀에게 다시 심정지가 왔고, 나는 급히 처치해 또다시 그녀를 세상으로 되돌려놓았다. 그녀는 확정적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상황은 미궁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뇌출혈과 과다 출혈, 주요 장기 손상을 빼면 외상으로 죽을 수 있는 경우의 수는 거의 남지 않는다. 아니, 실제로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눈앞에 죽어가는 사람이 있다. 찾아낼 수 있는 원인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내가 놓쳤거나, 아직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죽음의 세계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죽음의 세계는 알 수 없는 것이니까. 하지만 어찌 되었든 나는 당장 그녀를 치료해야 했다. 그녀는 분명히 위태로웠다. 미약한 바람에도 촛불이 꺼지듯 훅 목숨이 날아가버릴 것처럼.

신경외과와 일반외과는 공식적으로 그녀의 입원을 거부했다. 원인이 명확하지 않다면 그들은 개입하지 않는다. 그들이 이렇게 손을 떼 버리면, 응급의학과의 내 이름으로 입원해야 한다. 응급의학과로 환자가 입원하는 경우는 설명할 수 없는 사고이거나, 자살이거나, 아니면 죽음의 원인을 알 수 없는 경우다. 그리고 입원 환자들은 대부분 의식불명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고로 연유는 끝까지 밝혀지지 않는다. 나는 모니터를 열어, 환자의 입원 지시를 눌렀다. 주치의는 내 이름으로. 그녀는 이제, 끝까지 나와 함께하기로 한 것이다.


4.

자정이 넘은 시간. 비보를 듣고 그녀의 온가족이 모여들었다. 언니와 형부, 아직 어린 나이의 아들과 딸, 그리고 짐작할 수 없는 사이의 혈육까지 수십 명이 침통한 표정으로 모였다. 위아래가 어울리지 않은 옷차림과 구겨진 신발은, 그들이 얼마나 황급히 달려왔는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이들은 서로 머리를 맞대고 울거나 주저앉아 있었다. 같은 슬픔을 느끼고 있는 일군의 집단에는 옆에 서 있기만 해도 두려운 공기가 흐른다. 나는 말문을 열었다.

"제가 주치의입니다. 처음부터 환자 분을 처치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앞서 남편 분께 말씀드렸지만, 지금 환자는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기적입니다.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난 상태로 도착했습니다. 상태가 아주 위태로워서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원인도 현재로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출혈이 한 방울도 없어요. 아주 드문 경우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 생각을 이제부터 제가 할 겁니다. 원인이 무엇이든, 어머님께 심정지가 왔고, 지금 목숨이 꺼져가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아니, 그런 것이 가능하다는 거요? 그러니 죽었다는 거요, 아니면 살았다는 거요?"

"당혹스러운 점이 있다는 건 이해합니다. 저도, 이런 죽음은 당황스럽습니다. 진부한 말이지만, 최선을 다할 겁니다. 그리고 일단 살아 있게 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보호자들에게 에둘러 설명을 마쳤다. 그들은 무리지어 웅성이거나 서로를 감싸 안고 통곡했다. 가족의 죽음은 그만큼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다. 그리고 나에게도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일단 내부 출혈은 없었으므로 24시간 저체온 요법의 적응증이었다. 이는 환자의 체온을 일부러 낮춰서 심폐손상을 최소화하는 방법이었다. 중환자실에서 신경이 곤두선 채로 주치의가 환자를 모니터링해야 했다. 보호자들에게 이 방법을 설명한 후, 일단 응급실에서 체온을 내리고 초기 처치를 했다. 주치의는 나였으므로, 당장 응급실에서 먼 중환자실로 갈 수 없었다. 주치의가 곁에서 떠나면 환자가 금방 안 좋아진다. 하지만 나에겐 몰려드는 다른 환자도 있었다. 그 자정부터, 나는 그녀와, 그녀에 대해 묻는 보호자들과, 다른 환자들의 불행과 싸우며 곱절은 힘든 밤을 보냈다. 아니, 견뎌냈다.


5.

밤을 새워 100여 명의 환자를 견딘 나는, 이제 중환자실로 올라간 내 환자가 있었으므로 오프를 반납했다. 그녀를 살려내거나, 아니면 패배할 때까지는 집에 가지 않을 작정이었다. 실은 이 예측가능한 죽음을 무조건 내 손으로 맡고 싶었다. 응급실 업무에서 벗어난 나는 중환자실로 옮겨진 환자의 얼굴을 보며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출혈이 나타나지 않아도 순간적으로 뇌신경의 엑손이 타격을 입으면 심정지가 오는 경우가 있지. 하지만 그렇다고 보기엔 너무 깨끗해. 그래도 죽을 수 있나? 심장이 잘못 비껴맞으면서 부정맥으로 사망하는 수도 있을 거야. 위험한 순간에 물리적인 타격을 받아 회로가 엉키는 거지. 그건 드물지만 증례證例도 있잖아. 과연 그런 환자가 나한테 온 건가?' 수면 부족으로 육체적인 피로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환자를 보며, 외상성 부정맥에 관한 논문을 뒤지고, 기타 사망 가능성이 있는 증례를 찾았다. 없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바로 내 눈앞에 그러한 사례가 있었으니까.

환자의 얼굴은 이미 붓고 망가져갔다. 그런 일을 겪은 사람은 점점 중환자의 모습으로 바뀌어간다. 하지만, 생체 징후는 위험한 고비를 넘기고 저체온 요법을 견디는 안정 추세로 접어들고 있었다. '식물인간까지는 될 수 있겠어. 뭐든 해볼 거야.' 그리고 나는 어두운 응급실 구석 골방에 틀어박혔다.

평화롭던 내 전화기가 30분 혹은 한 시간마다 울리기 시작했다. 나는 적절한 지시를 하고, 잠깐씩 눈을 붙였다. 옆 건물에 있는 중환자실로 그녀를 체크하러 가면, 고민 대신 슬픔에 젖어 보호자 대기실에서 먹고 자던 10여 명의 가족이 달려와 환자의 상태를 물었다.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고, 그녀의 상태는 약간 안정적이라는 말을 했다. 그들은 어떻게 되어가냐며 나에게 화를 내기도 했고, 살려달라며 애원하기도 했다. 그 시간 동안, 그들은 내 발소리만 들어도 벌떡 일어나 다가올 정도로 나에게 의지했다. 쪽잠마저도 쉽게 청할 수 없었다. 반납한 오프는 죽음의 기색으로, 그렇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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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새로운 듀티duty가 시작되었다. 새로운 환자들이 역시 내 이름으로 응급실에 몰려들었고, 역시 아무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수면 부족으로 확실히 내 정신이 흐려지고 있었다. 저체온 요법을 끝내고 40여 시간을 세상에서 더 버틴 그녀의 몰골은, 이미 다른 중환자들과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붓고 흐려졌다. 생을 붙잡고 간신히 하루 정도를 버텨냈으며, 이제 더이상 버티기 힘들다고 그녀의 생체 징후가 말하는 것 같았다. 약간은 안정적이라던 중환자실에서 걸려온 전화는, 이제 확연히 위험을 알리는 전화로 바뀌었고, 빈도도 잦아지고 있었다.

만 이틀째, 그녀에게 다시 심정지가 임박했다. 나는 전화를 받자마자 응급실에서 하던 모든 것을 제쳐두고 뛰었다. 중환자실은 옆 건물 3층에 있었고, 나는 전력질주하다가 한 번에 세 계단씩을 뛰어 올라갔다. 정확히 2분 15초가 걸렸다. 나는 후들거리는 다리로 심폐소생술을 해서 그녀의 맥박을 되돌렸다. '안 돼, 당신은 아직 갈 때가 아니야.' 이틀째 병원에서 버티고 있던 보호자 수십 명은 내 발소리를 듣고 벌떡 일어나 중환자실 문에 매달렸다. 준비도 못한 채 달려왔던 그들의 몰골은 이미 나만큼 꾀죄죄했고,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내가 탈진한 표정으로 나오자 그들은 무릎을 꿇고 나에게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었다.

"심정지가 왔지만, 일단 살려냈습니다. 죽음에서 간신히 구출한 겁니다."

그들은 일단 울었다. 그리고 안도했다. 아니, 혼란스러워했다.

"그게 어떻게 되었다는 겁니까. 그래서 원인을 알아냈다는 겁니까, 곧 죽을 거라는 이야기입니까?"

"저는 일단 전력질주를 해서 환자를 살릴 뿐입니다. 드물게 심장이나 뇌에 타격을 입은 죽음이라고 생각할 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환자 분이 버틸 때까지 저는 살려낼 겁니다."

나는 이제 아름다웠던 그녀가 죽어버리는 환영을 보기 시작했다. 20분마다 걸려오는 전화는 죽음이나, 죽음과 비슷한 것을 알려댔다. 나는 진찰중에 청진기를 팽개치고 뛰어가기도 했고, 상처봉합중에 실과 바늘을 놓고 뛰어가기도 했다. 세 번의 전력질주가 더 있었다. 그때마다 잠도 자지 않고 죽음을 기다리던 보호자 무리는 벌떡 일어나 나를 신도들처럼 쫒아왔고, 죽었다 살아났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저미는 가슴을 안고 울었다. 극심한 피로에 지쳐 잠시 풋잠이 들면, 나는 그녀의 생명줄을 붙잡고 매달리거나 목덜미를 잡아채며 어디론가 달려가는 꿈을 꾸다가 땀에 절어 깨어났다. 전화가 오는 꿈을 꾸었고, 꿈을 꾸었다고 생각하고 일어나면 전화가 울렸다. 나는 중환자실에 노티notify 내용보다 일단 내가 뛰어야 할지 말지부터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나에게 먼저 뛰라고 하면, 일단 뛰면서 상황을 들어야 시간을 아낄 수 있으니까. 나는 전화가 오면 중환자실 쪽으로 걸음을 옮기면서 전화를 받기 시작했다.

정신적인 피로가 몸과 마음을 조였다. 죽음에 관한 노이로제로 머릿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그날 밤, 사고로 전신이 부러진 환자 한 명이 응급실에서 비참하게 죽었다. 나는 내 입으로 사망선고를 내리고 정신을 추스르지도 못한 채 다섯번째로 전력질주했다. 발을 쿵쾅거리면서, 발소리만 들어도 무언가 또 불행한 일이 생겼으리라 짐작하며 모든 이가 쳐다보는 고요한 새벽에, 나는 혼자 뛰어가 그녀의 심장을 되살려냈다.

"다시 살아났습니다." 보호자들은 이제 안도하는 게 아니라, 점점 미쳐가는 것처럼 보였다.


7.

나는 24시간 동안 몰려드는 응급실 환자들을 간신히 버티고 주어진 두번째의 오프를 반납했다. 전신에 굵직한 관이 뚫리고, 각종 약물 투여와 인공호흡기와 수차례의 심정지를 겪어낸 그녀는 이제 거의 푸르딩딩한 시체가 되었다. 나는 가족들을 다시 모아, 패배를 인정했다. "못 살릴 것 같습니다. 결과는 그렇지만 원인은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결과를 바꾸지는 못합니다. 저는 어느 순간부터 눈앞의 죽음을 버텨냈을 뿐, 다른 것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것마저도 이제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가족들은 이미 너무 많이 오열했지만, 마지막으로 기운을 짜내 더 크게 오열했다. 떡진 머리를 감싸쥐고, 자신의 때묻은 티셔츠를 잡아당기며 독한 슬픔의 공기를 뿜어냈다. 나는 연민과 극심한 피로에 찌든 눈동자로 그들을 멍히 지켜보다가, 응급실 한 켠 볕이 들지 않는 골방에 틀어박혔다. 죽음은 왜 시작되는 장면과 끝나는 장면이 다른가. 이 점철된 오류로도 죽음은 오는 것인가. 머릿속이 엉킨 것처럼 혼란스러웠고, 심장이 격하게 뛰어 역겨웠다. 그녀가 눈을 감고 있었던 시간만큼 나는 자지 못했다. 그리고 이제 죽음을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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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모든 기대를 저버린 저녁, 나를 보면 제일 앞서 일어나고, 가장 먼저 울던 큰아들이 면담을 요청했다. 수차례의 면담이 이어졌으므로 앞선 이야기의 반복일 뿐일 면담 요청을 나는 받아들였다. 이것으로라도 도움이 된다면 해야 했다. 큰아들은 씻지도 자지도 못해 행색이 말이 아니었다. 부릅뜬 눈은 언젠가부터 충혈이 가시지 않았다. 어머니의 죽음을 앞둔 그는, 너무나 비통하고 처참해 보였다. 우리는 조용한 곳에서 면담하기 위해 진료실로 들어갔다. 내가 진료실 문을 덜컹, 하고 닫자마자 그가 갑작스레 말을 꺼냈다. 아니, 소리를 질렀다.

"그 새끼, 그 새낍니다. 그 새끼라고요."

"네? 무슨 소리죠?"

"그 남자요. 그 새낀 우리 아빠가 아니에요. 새아빠란 말입니다. 친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그 새끼를 만났어요. 그 새끼 하는 짓이 처음부터 이상해서 가족들이 반대했는데, 어머니는 뭔가 홀린 듯이 만나더라고요. 그 새끼 행동거지가 처음부터 역겹고 불순해 보였는데, 사고 이후 알아보니까 그 새끼가 우리 엄마 앞으로 생명보험을 대여섯 개나 들어놨어요. 돈도 없는 새끼가 말도 안 되는 비싼 보험을요. 씨발, 살인마 새끼. 계속 피해자인 것처럼 선생님께 붙어다녀서 말할 기회가 없었어요. 그 새끼 하는 꼴이 역겨워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어요. 선생님도 생각해보세요. 그 새끼가 했던 말 말고 알아낸 게 뭐지요? 한 가지도 없잖아요. 원인도 모른다고 했잖아요. 그 새끼는 살인마라고요. 우리 엄마 죽으면 내가 그 새끼를 갈아 마실겁니다. 끝까지 파고들어서 죽여버릴 거라고요. 선생님이 도와주셔야 합니다."

순간 혼탁하던 내 머릿속에서 섬광이 일었다. 아귀가 맞아떨어졌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참혹한 범죄였다. 살인이었다. 살인마가 나와 이야기도 하고, 통곡도 했다. 그의 계획에서 염두에 두지 않았던 상황에 대한 일말의 불안과, 깨어나서 살 수 있느냐고 묻던 질문이 떠올랐다. 그것은 죽음이 아니라, 살아남에 대한 불안이었다. 그리고 논리적으로 교통사고 사망자의 옆자리에 탔던 사람이 멀쩡한 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분명 살해 방법이 있을 터였다. 그것을 입증하는 방법은 바로 부검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내가 최선을 다해서 3일이나 목숨을 붙들었다. 각종 약물을 쓰고 삽관을 했으며 혈관을 뚫었다. 그렇다면, 증거는 전부 날아가버렸다. 이제, 어떤 부검을 해도, 그것을 밝혀낼 방법은 없었다. 나는 그녀에게 너무 많은 노력을 해댔다. 그녀에게서 살인의 흔적을 찾지 못할 것임을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나는 과학자였으므로, 살인 가능성은 염두에도 두지 못했다. 그의 증언을 믿어야 했다. 나는 사망만을 선고하는 판사였고, 다른 문제에 관해서는 전혀 판결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나는 피해자가 되는 것인가? 아니면 헛된 노력을 가해 사인死因을 무마한 범죄자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살인자와 같이 이야기하고, 친절한 면담도 한 공범인가? 도대체 내가 한 일은 무엇이었나? 눈앞에 살인자가 있는데, 의학저널과 논문을 뒤지는 일이었나? 도저히 이 죽음에 대해서 알 수 없다고 지껄이던 일이었나? 그것도 아니라면, 고작 매번 전력질주를 하던 거였나? 삶이 끝나는 장면과 죽음을 저지르는 장면이 엉켜 머릿속이 흐물거리며 흘러내리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상황은 명확했다. 나는 마치 살인을 저지른 사람처럼 침울하게 가라앉았다.

"네. 저는 제 모든 것을 걸고, 제가 본 것을 전부 기록하고 증언할 겁니다. 지금까지 저를 믿으셨으니, 그것도 믿으실 수 있을 겁니다."


9.

나는 정신적인 공황으로, 서 있기도 힘들었다. 그리고 곧, 나는 환자에 관한 모든 것을 포기했다. 어리둥절해하는 후배에게 환자를 떠넘기고 나는 집으로 가는 차를 몰았다. 주치의가 포기해서 곁을 떠나버린 환자는 절대로 오래 살 수 없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교통체증으로 꽉 막힌 퇴근길 어두운 불빛 속에서, 그 멈춰진 차 안에서, 후배에게서 온 전화를 받았고, 그것으로 그녀는 죽었다. 나는 후배에게 '미상, 사인을 알 수 없음'으로 사망진단서를 쓰라고 지시했다. 전화가 끊기자 나는 곧 울기 시작했다. 고요한 울음은 점점 커져 결국 통곡으로 변했다. 나는 발을 동동 구르고, 핸들과 계기판을 내리치며, 손에 닿는 모든 것을 집어던졌다. 입으로는 알 수 없는 비명과 욕설을 내뿜으며.

순간, 나는 입술을 깨물며 불행해지기로 마음먹었다.

지금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보다도 조금이라도 더 불행해지기로,

나는 굳게 마음먹었다.


* 이 글은 필자의 책, <만약은 없다>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