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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적 조현병, 사회적 여성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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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엄청난 양의 피를 뒤집어썼던 환자를 기억한다. 탑골 공원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70대 노인이었다. 양동이로 피를 머리부터 쏟아붓고 온 것 같았다. 주위에 피비린내가 진동했고, 걸친 옷가지 전부와 머리, 얼굴이 피범벅이라 원래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웠다. 목뒤에 벌어진 자상이 제법 많이 관찰되었으나, 그 틈으로 출혈이 그렇게 많았을 것이라고 짐작하기 어려웠다. 그가 뒤집어쓴 게 실제 전부 그 사람이 흘린 피라고 생각했으면, 살아있는 것조차 신기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의식이 명료했으며, 묻는 말에도 대답하고 있었다.

몇 명이 붙어 양동이를 가져와 피를 닦아내자 목덜미와 후두부에 집중된 칼자국이 드러났다. 제법 깊었고, 수술이 필요할 정도였지만 많은 출혈을 설명할 수 없었다. 상처를 틀어막고 있다가, 나는 같이 온 경찰에게서 사건의 연유를 들었다.

70대 노인 두 명이 공원에서 낮부터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얼큰하게 취해 테이블에서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그 길에 40대 여성인 조현병(정신분열병) 환자가 지나갔다. 그녀는 지병 치료 중이었지만, 증상 조절이 잘 되지 않았다. 그리고 조현병의 증상으로 환청이 들려왔다. '앞에 있는 사람이 너를 죽이려고 한다. 네가 먼저 저 사람들을 죽여라.'

그녀는 오른손으로 식칼을 들고 앉아 있는 두 노인을 무차별로 찔러댔다. 취한 데다가 항거할 힘조차 없었던 노인 둘은 그 자세 그대로 칼을 고스란히 맞았다. 앉아 있었던 방향과, 오른손으로 쥔 칼의 방향 때문에 한 명은 인체 앞면으로 칼을 맞았고, 한 명은 뒷면으로 칼을 맞았다. 합쳐서 스무 번이 넘었다. 앞으로 칼을 맞은 사람의 경동맥이 끊어져 마주 앉은 사람에게 피가 분수처럼 뿜어졌다. 경동맥이 끊어진 사람은 영안실로 직행했다. 피를 뒤집어쓰고, 뒷덜미에 구멍이 난 사람은 내 앞에 왔다. 그리고, 수술방에서 십여 개의 자상을 꿰매고 간신히 살아 나갔다.

이건 내가 본 전형적인 조현병으로 인한 '피해망상' 살인 중 하나다. 여기서 우리는 아무도 이 피벼락을 맞은 할아버지를 보고 '노인 혐오'나 '주취자 혐오', '남성 혐오'에 틀에 넣지 않았다. 이 우발적이고, 벼락 같은 범죄를 '혐오'의 틀에 넣어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2.

나는 '강남역 살인사건'이라는, 조현병 환자가 벌인 끔찍한 일에 대해 단순 '여혐'의 틀에 속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내가 가진 젠더나 성향을 떠나, 실제 가해자와 피해자를 마주하고 면담해왔던 의사이기 때문이다. 그도 질병으로 '죽이지 않으면 네가 죽을 것이다'는 환청을 들었다. 그리고 이 관점은 사건을 조사한 경찰과, 대부분 의사들의 의견과 동일선상에 있다.

조현병은 전 인구의 1%에서 발병한다. 우리나라에 50만 명이 있으며, 평상시에는 유순하게, 우리와 같은 사회의 일원으로서 동등하게 살아간다. 그들 일상의 권리를 제한할 수 없으며, 이러한 살인 사건을 저지르는 것도 매우 드물다.

더불어 조현병 환자를 병원에 강제로 끌고 오는 경우는 자신을 포함한 인명이나 사회에 피해를 입힐 경우로 한한다. 그러한 폭력적인 상태의 조현병 환자들은 응급실 당직 중 꼭 한 명씩은 내원하고, 나는 꼬박꼬박 그들을 면담했다. 그 긴박한 순간, 그들의 말과 논리를 들어보면,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납득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어디 다른 세상에서 온 사람들 같다. 이것이 그들이 앓고 있는 '질병'인 것이다.

이 조현병 환자가 '여성'을 이전부터 사회적으로 혐오하고 증오해서, '여성'을 골라서 벌인 '혐오 범죄'라는 틀에 넣기에는 이 질병이 가진 병리적 환청과 망상이 너무 강력하므로, 단순 결부시키기에는 무리가 있다. 또, 이러한 '혐오'의 프레임에 갇힌 시선은 50만 명의 조현병 환우들에게도, 나아가 사회적인 물의를 해결하는 데에도 도움 될 것이 없다.


3.

생물학적으로, 일반적인 여성의 완력은 남성의 완력을 이길 수 없다. 이 사실은 사회가 완벽한 양성평등을 이룩하고, 모든 차별이나 성범죄가 없어진 세상일지라도 변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이론적으로 양성이 평등한 현대 사회에서도, 암묵적으로 남성은 상대적 강자의 위치로 느껴진다.

그래서 이 사건에서 파생된 추모 열기와, '여혐'의 논란 자체를 하나의 현상으로 분석해야 한다. 여성들은 태생적으로 완력이 약하다는 이유만으로 일생을 약자의 입장에 서 있었고, 불안해왔으며, 범죄의 표적이 되었고, 또 실제로도 당해 왔다. 그 때문에 평생을 공포에 떨고 조심스러워 해온 여성들 사이에서 나온 이번 반응을 나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피해자는 어떠한 죄도 없는 스물셋의 여성이었고, 안전하다고 믿어지는 강남역 한복판에서 유희를 즐겼을 뿐이며, '묻지마 살인'의 피해자가 되었다.

나는 칼로 사람을 죽이려면 어떤 상해를 저질러야 하는지 눈에 보이듯 훤히 알 수 있다. 또 그 끔찍한 사체가 느꼈을 감정에 대해서도 이입할 수 있다. 그 가녀린 피해자에 대해서, 같이 숨 쉬는 인간으로서 추모해야 한다.

여기서 나아가, 이 여성 피해자에게 그간 사회에서 잠재적 피해자로 느껴왔던 여성들이 감정이입하는 것도 매우 당연하다. 벌어진 사실은 끔찍하고, 그것이 자신이 될 수도 있었으며, 사회는 실제로 여성들에게 그렇게 느낄 수 있도록 위협을 가해 왔던 것이다. 그래서 이 시선으로, 나는 일련의 이번 사태를 넓은 의미의 '여혐'이 실제로 발현된 것이라고 본다. 엄연히 우리는 여성이 실제 적대감을 느낄 수 있던 사회에 살고 있었고, 이 추모는 피해자와 같은 여성으로서 느낄 수 있는 존중할 만한 시선인 것이다.

그래서 이 추모에 있어서는, '여혐'의 옳고 그름을 떠나 무슨 말이든 용인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약자가 느꼈을 감정을 귀담아듣는 것은 서로를 이해하는 사회가 되기 위해 필수적으로 행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가 그 자리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살아남았습니다.' 도 맞는 말이고, '여성이라 피해자가 되었습니다.'도 맞는 말이다. 실상이 그랬으며, 이 사회의 분위기도 실제로 그래왔다. 이 끔찍한 사건에서 여성들이 그간 느꼈을 위약감을 표현하는 것은 순리에 맞다.

그리하여 그에 맞서서 들고 나와야 할 피켓은 '남성을 혐오하지 마라'가 아니라 '이해한다'가 되어야 한다.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로 치부하지 말아라'가 아니라, '여성이 불안감을 느끼는 사회에 살고 있는 남성으로서 미안하다. 우리는 인간으로서 평등하고, 서로가 안심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도록 노력할 것이며, 약간 완력이 강하게 태어난 존재로 너희들을 꼭 지킬 것이다' 가 되어야 한다. '혐오'의 시비와 서로 편을 가르는 일은, 희생자를 위해서도, 우리와 같은 인간인 50만 조현병 환우를 위해서도 옳지 않으며, 세상 둘뿐인 남녀가 서로를 이해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에 있어서도 옳지 않다.

질병이 있는 환자가 있었고, 처참하게 살해당한 사람이 있었다. 혐오스러운 범죄이지만, 그렇다고 누구든 더 이상 혐오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피해자에게 깊은 의미에 추모를 보내며, 동일 범죄의 위험을 예방하고, 우리의 약자가 그간 느꼈을 감정을 이해하며, 더 이상의 피해에서 모두를 지켜내야 한다. 관용하는 자세만이 우리가 이 사건에서 더 큰 미움을 낳는 일을 막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