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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한 사태는 비상한 해결책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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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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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집단'의 발호를 용인하는 것을 넘어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줬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사실 간접적이기는 해도 박근혜 대통령 자신도 이를 인정했다. 연설문 수정 문제가 JTBC 보도를 통해 사실로 드러났을 때, 청와대 일부 비서진과 최순실 사이의 부적절한 거래로 사태를 몰아가겠구나라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그러나 다음날 놀랍게도 박대통령은 자신이 부탁한 것이라 인정하고 대국민 사과를 했다.

새로운 유형의 국가 위기, 당혹스러운 대한민국

여기서 두가지 문제가 등장했다. 먼저, 왜 박근혜 대통령은 최순실에 대해 그렇게 빨리 요즘 표현으로 '실드'를 치고 나왔는가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자신의 권력보다 최순실의 안위를 더 걱정하는 인상마저 주었다. 대통령의 솔직함이 표현된 것일까? 모든 문제를 권력관계로 해석해온 박대통령에게 가장 기대하기 어려운 태도이다. 다른 누구에게 이런 관대함을 보인 적이 있는가? 두 사람 관계의 특수성이 드러나는 지점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두 사람의 관계에 주술적 요인이 작용하지 않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렇게 확인될 경우 그야말로 충격적인 사태이지만 당장 사실관계를 밝혀내기는 쉽지 않다.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대통령이 '최순실 사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최순실의 문제는 모두 박근혜의 문제가 되었고, 최순실 문제가 드러날수록 박근혜 대통령이 책임을 져야 할 일도 증가하는 상황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대통령은 직무수행이 어렵다. 대통령의 판단능력에 대한 불신이 커진 것이 가장 결정적이다. 지금은 부정부패 문제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지만, 일부 정황이 가리키는 것처럼 최순실이 안보정책까지 영향을 미쳤다면 국민의 생명·안전 문제가 설명하기 어려운 개인적 관계에 의해 결정되었다는 점에서 사태는 더 심각해진다. 현 외교안보수석도 임기 중 대통령과 독대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 역시 반드시 밝혀야 할 일이다.

이 상황은 그동안 겪은 충격적인 일이 한두가지가 아닌 대한민국을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내전, 쿠데타, 그리고 국민항쟁 등과 같은 사태와 달리 권력이 스스로 무너지면서 권력공백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전례없는 사태에 대해서는 누구도 즉각 이렇다 할 해결방식을 내놓기 어렵다. 이에 따라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아이디어가 출현하고 있다. 그중 거국내각이 가장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당장 권력공백의 일부를 채울 수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거국내각과 개헌은 해답이 아니다

그러나 존재적(existential), 즉 국민생명과 국가안보에 대한 결정권을 누가 행사할 수 있는가가 권력의 핵심 문제다. 거국내각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아니다. 우선 내치에 대한 권한을 위임받는 거국내각의 경우 외치, 국방에 대한 결정권은 대통령이 갖는 것을 전제로 한다. 거국내각은 대통령의 직무수행이 어렵다는 판단으로 제안된 아이디어인데, 외치와 국방 등과 관련한 업무를 대통령이 그대로 수행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렇다고 외치와 국방 문제까지 거국내각 총리에게 넘기기도 어렵다. 법률적인 논란은 차지하더라도 현실적 문제가 존재한다. 즉 여야가 모두 동의할 수 있는 총리를 구하더라도 이 문제와 관련해 여야의 입장이 갈릴 경우 그 총리는 자율적 결정능력을 갖기 어렵다. 위기 사태가 출현해도 끝없는 논란만 벌일 가능성이 높다.

차제에 개헌을 통해 새로운 국가체제를 구축하자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이 역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더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우리 정치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헌이 필요하다는 인식은 널리 확산되어 있다. 그러나 현재 사태를 초래한 원인이 제도의 문제인지 아니면 사람의 문제인지, 혹은 또다른 문제인지는 더 세세히 따져봐야 한다. 또한 개헌이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개헌의 내용을 확정하는 과정은 쉽지 않다. 전문, 기본권, 권력구조 문제에 이르기까지 매우 큰 입장 차이가 있다. 따라서 개헌논의에 모두 동의하더라도 막상 논의를 시작하면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상태가 될 것이다. 현 위기 사태는 개헌이라는 또다른 주술적 효과에 기대서는 극복하기 어렵다.

이러한 결말은 우연이 아니다. 이명박정부 시기부터 나타난, 1987년 이후 형성된 민주적 거버넌스를 뒤로 돌리려는 롤백(roll back) 전략은 박근혜정부 들어 이 거버넌스를 전면적으로 거부하고 새로운 영구적 집권체제를 구축하려는 '점진 쿠데타'로 발전했다. 4월 총선에서 민의의 심판을 받으며 그 기도가 벽에 직면했고, 이를 돌파하려는 시도마저 제대로 작동하지 않자 스스로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여러 면에서 한국정치는 이미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고 그 점이 이번에 극적으로 표현된 것이다. 다만 시민사회와 야권도 일상주의적(business as usual) 사고방식으로 그동안의 상황에 대응해왔기 때문에 새로운 사태 앞에서 방향을 제대로 찾는 데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방향을 제대로 찾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앞에 어떤 선택지가 있는가를 분명하게 하는 일이다.

조기 대선이 답이다

현재 상황이 국민의 생명·안전과 국가의 안위가 문제가 되고 있는 비상상황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만약 그렇지 않다는 의견이 다수라면 오늘(11월 2일) 대통령이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지명한 총리를 통해 그럭저럭 상황을 관리하는 방식으로 남은 임기가 진행될 것이다. 지루한 공방전이 다음 대선까지 계속되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런 방식의 수습책으로 현재 국가위기를 넘길 수 있는가는 의문이다. 야당도 이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여전히 한국이 비상사태에 빠져들고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라면(현재 국민여론은 이 방향으로 모아지고 있다) 현행 헌법에 따라 대통령선거를 다시 진행하는 것이 문제를 빠르게 해결할 수 있는 길이다. 이는 어떻게 보면 비상한 해결책이지만 비상한 사태라는 점을 인정한다면 사실 현행 헌법에 따르는 가장 상식적이고 합의되기 쉬운 해결책이기도 하다. 즉 우리는 현 체제의 유지인가 아니면 새로운 대통령선거인가라는 선택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그 사이 어디선가 상황을 관리할 방법을 찾으려는 시도는 실패하고 국가를 더 큰 위기에 빠뜨릴 가능성이 높다.

현직 대통령의 임기 중단에 따른 대통령선거가 현실화될 경우 정치세력들은 그 득실을 따질 것이다. 벌써 누가 유리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선거결과를 예단하기 어렵다. 특히 정파적 이익과 관점에 갇힌 채 현 국면에 대응하는 정치인이나 정치세력은 어느때보다 정치변화에 예민해져 있는 국민들의 지지를 받기 어렵다. 대통령 임기가 중단되는 사태를 겪은 국민이 또다른 실패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우리 사회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비전(여기에는 개현도 포함될 수 있다)을 갖추고, 국민통합을 위한 정치를 할 수 있다는 신뢰를 주는 정치인과 정치세력만이 선택받을 수 있다. 그래야 지금의 국가위기도 극복될 수 있다.

* 이 글은 창비주간논평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