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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 문제에 대한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의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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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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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전 신문에서 읽은 내용이다. 국회 '저출산고령화대책특별위원회'란 곳에서 국회의원들께서 이런저런 돈 쓰자는 얘기와 자리 더 만들자는 얘기를 나누셨다 (물론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는 얘기도 빠지지 않았다). 하나 눈에 띄는 대목이 있었는데, 나경원 위원장이 "저출산고령화 대책은 혁명적 사고,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면서 "다소 황당하다 싶은 정책 제안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기사링크).

그래서 던져 본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의 전환은 바로 '저출산 문제 해결을 목표로 삼지 않는 것'이다 (물론 그러려면 위원회부터 해체해야 하므로 원하던 답은 아닐 것이다).

저출산 고령화를 걱정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보통 노동력의 축소로 인한 성장잠재력의 감소라는 답이 돌아온다. 하지만, 사람 머릿수가 늘어나서 성장하는 것은 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다. 인구가 많아 GDP 세계 2위가 된 중국보다는 인구는 적어도 잘 사는 스위스나 북유럽 국가 쪽이 더 이상적일 것이다(나라 규모가 커야 국제사회에서 힘이 있다든지 인구가 많아야 그 중에서 스티브 잡스 같은 천재도 나온다든지 하는 주장은 논외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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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정말로 애 낳는 기계 쯤으로 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저출산 고령화의 진짜 문제는 연금 및 의료보험 재정, 더 크게 보면 정부재정에 구멍이 나는 것이다. 보험료나 세금을 낼 사람은 점점 줄어드는데 부양해야 할 노인들은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출산율을 늘려서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일까? 혹시 연금제도나 정부의 지출구조를 낮은 출산율 환경에 맞춰서 조정해 나가는 게 더 맞는 답은 아닐까?

"이보쇼, 2750년이 되면 대한민국이 없어지게 생겼는데(기사링크) 무슨 한가한 소리요?"

안 없어진다. 없어지더라도 최소한 저출산 때문은 아닐 거니까 걱정 안 해도 된다 (700년 후를 걱정할 만큼 한가하다면 물론 다른 걱정도 많겠지만 말이다). 시간이 가면 출산율은 조금씩 다시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이 얘기는 뒤에서 더 하기로 하고, 일단은 국민의 행복한 삶이 궁극적인 목표이고, 재정압박의 문제를 다른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저출산의 흐름을 돌리는 것이 그 정도로까지 절박한 과제는 아니라는 점부터 이야기 해보자.

낮은 출산율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한 사회에서 생산활동에 종사할 수 있는 연령대는 보통 15~64세로 본다. 즉, 0~14세와 65세 이상은 그 사회가 먹여 살려야 할 연령계층이다. 고령화가 되니까 노인층의 확대에만 관심이 집중되는 면이 있는데 사실은 반대로 0~14세 층의 비중이 큰 것도 사회적 부담인 것은 마찬가지다. 물론 이들은 나중에 생산인구가 될 것이므로 일종의 투자인 측면은 있다. 하지만 이들이 결국 노인이 되면 부양해야 할 층도 그만큼 늘어난다. 뿐만 아니라 한 사회의 인구가 늘어나면 그만큼 자본축적도 더 되어야만 생산력이 유지된다. 실제로는 감가상각 등의 이유로 인해 저축률이 더 높아져야만 기존의 소비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 요는 인구변화는 장기적 균형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문제이고, 한 사회 전체의 생산과 소비라는 관점에서 보면 저출산이 꼭 나쁘다고만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여기에 중요한 포인트가 하나 있는데, 보통 노령인구일수록 연금이든 의료비든 정부 부담이 크고, 14세 이하의 양육비는 주로 민간이 부담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보육수당 등 정부가 부담하는 부분이 점차 커지고는 있지만 아이들을 낳고 키우는 것은 주로 부모의 몫이다. 더구나 선진국이 될수록 노인복지에 드는 비용이 보육예산보다 더욱 빠르게 증가한다. 따라서 국가재정의 관점에서만 보면 14세 미만의 인구비중이 커지는 것은 상대적으로 덜 부담이 되는 반면, 노령인구의 비중이 커질수록 큰 부담이 된다.

저출산에 대한 사회 전체적인 시각과 국가재정 관점의 시각 사이에 이처럼 서로 차이가 날 수 있다는 점은 Lee, Mason and et al. (2014, 링크)의 주요 착안점이 되었다. 이들은 40개국의 국민이전계정(National Transfer Accounts) 자료를 활용해 각 국의 재정상황과 국민 생활수준(소비수준)을 최적으로 만드는 출산율을 각각 계산해 보았다. 한국의 경우를 소개해 보면 국가재정적 관점에서 볼 때 최적의 합계출산율은 2.07 수준이다. 반면, 자본확대의 필요성까지 감안해서 최적의 생활수준을 달성하기 위한 출산율은 1.25~1.55 수준이다. 참고로 2010~2014년 한국의 평균합계출산율은 1.23이다.

요약하면 이렇다. 아이를 적게 낳으면 사회적 생산도 줄지만 비용도 줄어든다. 정부가 규모를 유지하거나 지금보다 더 키우려 하고, 젊은이들을 쥐어짜 노인을 부양하는 방식인 지금의 연금제도를 그대로 놔둔다면 재정파탄을 막기 위해서는 출산율을 크게 높여야 할 것이다. 반면, 만일 국민 각자가 잘먹고 잘사는 것이 목표라면 지금보다 약간만 출산율을 높일 수 있어도 큰 문제가 없다.

출산율은 사회환경의 변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높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나라는 뭐든지 변화가 극적이라서 문제이긴 한데 출산율의 저하는 사실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특히 우리보다 선진국인 나라들은 거의 예외 없이 출산율 저하 문제를 겪었거나 겪는 중이다.

그런데, 앞선 선진국의 경험을 보면 경제성장과 사회적 환경변화가 출산율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같은 OECD 국가라 해도 미국, 영국, 프랑스나 북구유럽은 출산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반면, 이탈리아, 스페인 같은 남유럽 국가나 일본은 출산율이 우리와 근접한 수준으로 낮다. 왜 그럴까? 아이를 낳는 것은 결국 여성이다. 따라서 여성이 그 사회에서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느냐가 국가별 출산율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는 것은 자연스러운 추론이다.

관련하여 Feyrer, Sacerdote and Stern(2008, 링크)는 흥미로운 가설을 제기한다. 여성의 교육수준이 낮고, 가사를 분담해 줄 노동력을 구하기 어렵거나 문화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사회에서는 출산율이 높다. 경제발전으로 사무직과 전문직 고용이 늘고, 여성의 교육수준도 높아지면 여성의 고용도 늘어난다. 하지만 사회적 관습의 변화속도는 이에 따라가지 못하면서 육아와 가사노동은 여전히 여성의 몫이 되고, 여성들이 큰 부담을 느끼면서 출산율이 떨어진다.

여기까지는 한국의 상황과도 정확히 부합한다. 하지만 Feyrer 등은 시간이 더 가면 사회환경도 점차 적응을 시작한다고 보고 있다. 아버지와 남편들의 가사노동 분담이 늘어난다. 정부 및 기업도 육아휴직이나 보육시설의 확충 등에 나선다. 궁극적으로 가정과 노동시장에서의 양성평등이 강화되면 결국 출산율도 그 사회의 인구를 유지하는 수준(합계 출산율 2.1)에 가깝게 회복된다는 것이다. 일본과 남유럽은 아직 그 단계까지 가지 못했고, 북유럽과 미국, 영국 등은 최종단계에 근접하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이들의 주장이 얼마나 타당한지는 모르겠다. 출산율도 다른 사회현상과 마찬가지로 여성의 지위라는 요소 하나만으로 설명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진국의 경우 여성의 사회참여 비율이 높은 나라일수록 출산율도 높다는 사실은 이들의 주장에 힘을 실어 준다. 아래 그림은 OECD 국가의 25~34세 여성 풀타임 고용률(주 30시간 이상으로 정의)과 출산율과의 관계를 나타낸 것으로 Goldin(2016, 링크)에서 얻은 것이다. 이상치인 포르투갈 정도를 제외하면 여성의 고용률이 높은 국가일수록 출산율도 높아지는 관계가 분명히 드러난다. 개인 차원에서는 직장을 다닐수록 출산과 양육이 더 힘들 것이므로 직장여성이 많을수록 출산율도 적어져야 할 것 같다. 그럼에도 이처럼 정(+)의 관계가 나오는 것은 사회적 환경의 차이라는 공통요소가 여성의 고용률과 출산율을 함께 높였기 때문이라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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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과 생산참여 확대는 출산율 저하로 인해 생기는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도 큰 역할을 한다. 앞서 우리는 15~64세의 연령층을 생산인구라고 이야기 했다. 그런데 이 중 절반은 여성이다. 이 연령층의 여성이 생산에 나서지 않고 집에서 논다면 그만큼 생산인구는 줄고 부양해야 하는 인구는 느는 셈이어서 사회적으로는 곱절로 손해인 것이다. 한국의 여성들은 특히 결혼과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을 겪는 경우가 많다. 출산율을 올리기 위해서는 이들을 가정으로 보내는 게 더 나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저출산으로 인한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하려 한다면 여성들이 가정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되도록 만드는 쪽이 더 낫다. 그렇게 하면 남성이 손해 볼 것이라는 생각은 단견이다. 여성이 가정에 묶이지 않게 되면 남성도 지금처럼 직장에만 묶이지 않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결론을 내보자. 한국의 출산율이 급전직하한 것은 경제성장이 워낙 빨랐고, 여성의 사회지위는 그만큼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더 지나면서 자연적으로 해소되는 부분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요즘 나타나는 메갈리아 사태나 페미니즘 논쟁 같은 것들도 (옳고 그름을 떠나서) 그러한 사회변화의 일부분이라 생각된다. 정부나 기업도 아무 일 안하고 멍하니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너무 늦고, 너무 비효율적이고, 수동적이다. 저출산 대책 마련한다고 육아수당 몇 푼 쥐어주고, 미팅 주선하고, 청와대에 인구수석 만들고 해봤자 돈낭비에 비웃음만 살 뿐이다.

다시 말하지만 저출산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는 저출산이 아니라 국민의 생활수준을 높이는 것임을 인식하는 것이 먼저다. 그리고 출산율을 높이고 싶다면 거기에 쓸 예산과 노력을 여성지위 향상과 경력보호에 더 집중하는 것이 낫다. 나머지는 사회와 시장이 자연적으로 해결해 줄 것이다.



P.S.

이 글에서는 연금제도나 국가재정 문제는 다루지 않고 있다. 출산율이 지금처럼 낮은 상태에서는 앞으로 국가재정이 파탄날 것이 예고되어 있는 셈이므로 이는 무시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나는 출산율을 높이려 하기보다는 연금제도를 수술하여 청년층에 부담을 전가하는 구조를 없애고, 재정수입 및 지출의 구조도 크게 수술하는 것이 맞는 방향이라고 본다. 이것들도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최소한 가능성은 있는 반면, 단기간에 출산율을 높임으로써 연금이나 국가재정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 보고 있다.


요약

(1) 저출산 현상은 사회 전체적 관점에서 보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국가재정이나 연금수급의 관점에서는 큰 문제이지만 생산과 소비의 관점에서 보면 생산이 줄어드는 만큼 비용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2) 한국의 출산율이 워낙 낮은 것은 사실이지만 국가재정이 아닌 국민 생활수준의 유지 및 향상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지금보다 약간만 올라가도 괜찮을 수 있다.

(3) 출산율이 비교적 높은 선진국들은 여성의 사회적 지위 및 생산참여 기회를 높임으로써 이를 달성했다. 저출산의 문제는 출산율을 높이는 정책으로 해결하기보다는 여성이 직면한 사회환경을 개선함으로써 자연스럽게 해결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이 글은 필자의 블로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