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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KBS 파업 아나운서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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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타계한 프랑스 누벨바그의 상징과도 같은 배우 잔 모로는 "목소리라는 것은 한 인간의 측면이자 감정이 비치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아나운서 정세진의 목소리가 좋은 예일 것이다. 정세진의 목소리는 프루스트의 문장처럼 물처럼 한없이 흘러가는 듯 하다가도 단단하게 멈춰서고, 대를 물려가며 공들여 사용한 은식기처럼 정감어린 온기가 느껴지면서도 기품이 서려있다. 그녀가 진행하는 93.1FM 라디오 '노래의 날개 위에'에서 정세진의 멘트는 언제나 소개되는 쟁쟁한 성악가들의 노래와 목소리 이상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KBS 파업이 시작되고 파봉단에서 파업영상을 만들고 있는 최승현 PD는 39기 강승화 아나운서를 파업 집회에서 새롭게 발견했다고 평했다. 기수가 낮아, 쟁쟁한 선배들과 다양한 직군이 모두 집중하는 자리인 파업 집회에서 조금도 주눅들지 않고 자칫 딱딱해지기 쉬운 분위기에 촌철살인의 유머와 재치를 더하면서도 날카로움을 간직한 매끄러운 진행으로 한껏 매력을 발산하는 모습이 인상깊다고 말했다. 이런 강승화 아나운서가 월요일 고정을 맡아 모두가 지치지 않고 집회에 즐겁게 참여할 수 있도록 큰 역할을 한다며, 최PD가 직접 대사를 써서 연출한 '적폐와의 대화' 에 주저없이 캐스팅했다고 밝혔다.

KBS 파업이 100일을 훌쩍 넘어가고 있다. 유례없이찾아온 혹한에 맞서며 240시간, 10일동안 547명의 조합원들이 광화문 광장에서 릴레이 발언을 이어나갔다. 아나운서 구역의 정세진, 강승화 두 아나운서를 만나 파업 이야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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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강승화 아나운서(좌), 정세진 아나운서(우)

-파업 현장에서 눈물 고인 얼굴을 하고 있는 사진이 인상깊었습니다. 어떻게 찍힌 사진이었나요?

=강승화(이하 강): 플룻 연주자 분들이 저희 파업 집회 현장에 응원을 하러 오셨어요. 처음에 저는 안 울려고 했어요.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개사해서 '파업이 끝나는 날에' 이걸 노래를 해주셨는데, 눈물이 난 건 아니었어요. 저는 눈물이 별로 없거든요. 가사를 읽고 노래를 하는데 옆의 선배분 들이 거의 흐느끼면서 우시는 거에요. 박영주 선배부터, 저희 기수 높은 선배들이 막 어깨가 들썩이면서 많이 우시는 거에요. 그래서 눈물이 너무 나길래 이걸 참으려고 고개를 들었는데 그게 딱 사진으로 찍힌 거에요. 선배들 옆에서 눈물이 너무 나는데 어쩌나 싶어서 먼 산 봐야지 하는데요. 그게 파업 66일째였나. 그랬어요. 저희 생각보다 파업이 길어져서 대부분 조합원들이 마음이 약해진 상태라 그날 정말 다 울었어요.

-파업이랑 어울리는 분위기는 아닌 분이라 이번에 파업 취재를 하면서 정세진 아나운서님이 2012년에 리셋뉴스 진행도 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에 어떻게 리셋뉴스를 하게 되셨나요?

=정세진(이하 정): 저는 97년 입사인데 그때 막 입사 신입사원으로 연수원에 들어와 있었는데 총파업 중이었어요. 아직 아무것도 감이 잡히지 않은 신입인데 이게 뭐지? 하면서 연수원에서 앵커가 아닌 기상 캐스터가 9시 뉴스를 진행하는 걸 봤죠. 처음으로 파업에 참여하는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건 9시 주말 뉴스를 할 때였어요.

99년도쯤 저는 9시 뉴스에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고 너무 하고 싶어했던 사람이라 위에서 막 늦은 새벽까지 연락이 왔어요. 파업할 거냐, 안 할 거냐. 앞으로의 거취에 대해 묻더군요. 선택을 해야 했어요. 동료들은 당연히 저한테 뉴스 하면 안된다고 했죠. 새벽이었는데, 3-4시쯤에 결정을 직접 내렸어요. 계속 고민했고, 밤새 생각을 했는데 한 순간 명료해지더라고요. 윗 사람에게 전화로 도저히 못하겠습니다, 라고 했어요. 제가 결정한 거기 때문에 이런 결정에 대해 후환이 두렵거나, 그런 건 없었어요. 누가 저를 막 설득하거나 떠밀린 게 아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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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9시 뉴스라면 아나운서 모두가 꿈꾸는 자리 아닌가요? 큰 결정이었겠네요.

=정: 후배들 중에서도 이번에 파업에 참가한 자기 한 사람 때문에 방송이 녹화 들어가기 직전에 안 되었다고, 그러면서 고민하는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아나운서는 대부분 그런 고민을 안 할 수가 없어요. 저는 제가 내린 결정이라 힘겹지 않았던 거고요. 2012년 파업이 있었어요. '리셋 뉴스'가 2012년인데, 저는 그때 파업에 처음부터 들어간 건 아니었어요. 파업에 반대한다기 보다는, 좀 더 전략적으로 준비를 잘 갖춰서 들어가야 한다는 입장이었어요. 파업을 한다는 게 큰 결정인데, 시간을 들여서라도 좀 더 전략을 세워서 들어가야 한다고요.

집행부나 새노조의 구성원들이 굉장히 순수한 마음으로 일을 해요. 좀 계산을 덜 한달까, 저는 파업 기간이 길어지는 것보다는 긴장 구도를 최대한 끌어서 조일만큼 조이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확 들어가는 게 낫다고 생각하거든요. 흔히 투쟁의 대상을 쉽게 생각하는데 우리가 싸우는 상대가 그렇게 쉬운 상대가 아니에요. 그렇게 순순하게 지금까지 쥐고 있던 권력을 내려놓을 사람들이 아니에요. 저는 길어질 거라고 예상을 했어요. 정권이 바뀌었다고 단순히 우리가 원하는 대로 쉽게 결과가 나올 것 같지 않았고요. 정권이 바뀌었으니 장악된 방송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는 건 좀 순진하죠. 더 대오를 갖추고 싸움이 시작되기를 바랐던 거죠.

2012년에 저는 2주 정도 시간을 좀 더 끌다가 내려왔어요. <노래의 날개 위에> 게시판에 글도 올리고, 클래식 음악을 다루는 93.1 FM방송이지만 우리가 어떤 싸움을 하고 있는지 알리고 싶었으니까요. 제가 글을 자주 남기는 스타일이 아닌데 청취자들에게 알리려고 들자 위에서는 제 글도 사진도 바로바로 삭제하더라고요. 약간의 압력도 주고요. 2주 정도 시간이 지나 이미 파업에 참여한 동료들을 저버리는게 제 마음이 너무 안 좋은 거에요. 그때는 새노조에 소속된 아나운서가 15명이었어요. 그렇게 파업에 참여하고 중간쯤 지났을 때 우연히 중국집에서 리셋 뉴스 팀을 만났어요. 선배들이 너무 고생하시는게 눈에 보였어요. "도와드릴 수 있으니까 저도 조합원이니 얼마든지 활용하시라"고 그렇게 말씀드렸어요. 바로 리셋 뉴스를 해달라고 하시는 거에요. 선배 기자들이 계셨고, 저는 같이 식사를 하는 자리도 아니고 따로 간 거였어요. 저는 처음에 뉴스 한 회차를 말씀하신 줄 알았는데, 그 뒤로 계속 하는 거더라고요. 내부적으로나 외부적으로나 속된 말로 저는 리셋뉴스 때문에 찍힌 게 되어버렸죠. 아무래도 화제가 되고, 홍보도 많이 되고 많은 분들이 보셨고 하니까요. 저는 그것도 제가 결정한 거라, 하나도 불이익을 받는 거라는 억울하다는 감정이 없었어요. 제가 누구한테 떠밀려서 갔다면 불이익을 받았다고 느꼈을 텐데, 제가 결정해서 들어간 건데 거기에 대해서 억울하다 여기지 않는 거죠. 진심으로요.

후배들이 물어볼 때가 있어요. 파업해야 하는지, 방송 내려 놓아야 하는지 고민이 되니까요. 저는 언제나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고 늘 이야기 해요. 선배가 끌어주기를 바라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저는 늘 자기가 결정하면 마음이 편해진다고 이야기해요. 스스로의 행동을 결정하고 책임지는 건 성인이라면 당연한 거고요. 누가 끌어줘서, 누가 설득해서 이게 아니라 내가 이게 정당하다고 소신을 갖고 생각한다면 하는 거고, 아니면 방송하는 게 옳다고 생각하면 파업 안하고 방송하는 거고요.

-방송이냐, 파업이냐 본인이 정해야 하는 거군요.

=강: 그걸 안 정하면 파업 내내 마음이 너무 불편해요. 이걸 내가 방송이 너무 하고 싶은데 파업도 하고 싶고, 오락가락 하면 너무 괴롭고 이도 저도 아니게 되니까요. 확실하게 지금 뭘 해야 되는지 각오를 하고 파업을 해야 하는 거에요. 파업이 저희에게는 정말 힘들죠. 우선 생활인인데 월급을 못 받고요.

=정: 이 기간 동안 우리를 돌아보고 반성하게 되죠.

=강: 그 반성이 이만큼 길어지고 있는 거죠. 지금 100일이 넘었잖아요.

-KBS 구성원들과 지난 9월 초순에 인터뷰를 했는데, 파업 얼른 마치고 추석 특집쯤 돌아올 수 있을 거라고 예상하시더군요.

=정: 그게 어떤 면에서는 너무 순수한 거고, 한편으로는 오만인 거에요. 정말 전략적으로 판단을 해야 하는데, 너무 사람들이 순수한거죠. 노조 집행부도 다 너무 순수하게 계산 속이 없는 사람들이에요. 저는 좀 더 전략적으로 움직였으면 해요. 저희 파업이 언제나 그래요. 참 순수하게 대의를 가지고 시작하고, 조합원들도 순수하게 따라주거든요. 결과가 늘 가시적으로 눈에 보였던 것은 아니지만 대신 사람들끼리의 결속력이랄까, 이런 건 참 좋아지더라고요. 서로 각각 구역이 달라서 모르던 사람을 다 만나고 또 보게 되니까요. 사람을 알게 되는 기회에요. 어떻게 행동하는지 다 보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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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인터뷰에서는 아나운서로서 새노조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블랙리스트라고 전해들었습니다.

=강: 저는 지역에 있을 때에는 새노조 아니었고 서울에 와서는 새노조에 바로 가입했어요. 제가 지역 근무 갔던 대구가 새노조 활동이 쉬운 곳도 아니고요. 왜 새노조에 들어갔느냐고 묻는다면 정치적인 신념 때문은 아니에요. 어차피 노조라는 건 사람들이 모인 곳이고, 내가 속해야 할 곳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뜻이 같은 사람들이 있는 곳이 잖아요. 2014년에 서울에 오니까 딱 새노조에 가입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가입할 때에는 아나운서 실에 구노조가 6, 새노조가 4였는데 1년 지나고 역전이 되었고요. 이번에는 거의 9대1로 바뀌었고요.

-돌아가시면 어떤 방송을 하고 싶으세요?

=정: 저는 제가 하고 있는 방송인 '노래의 날개 위에'를 워낙 좋아해요. 석달 넘게 재방송이 나가고 있어서 제가 파업을 하는지 모르는 청취자 분들도 있을 거에요. 목소리 그대로 나가고 날짜나 이런 이야기를 안하니까요. 이 추위에 폭염 이야기 하는게 나오고 그렇지만 (웃음) 제가 제일 좋아하는 방송이고, 방송을 통해서 저 자신을 더 알게 해준 그런 고마운 방송이에요. 클래식은 방송을 하면서 제가 적성을 찾은 거에요. 그 전에는 클래식을 전혀 안 들었고 회사 다니면서 좋아하게 된 거에요. 아나운서는 제작하는 분들로부터 선택을 받는 사람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제작하는 쪽에서 원하는 것과 우리가 잘 할 수 있는게 합이 맞아야 하고요. 그게 서로 딱 맞을 때 방송이 잘 되고 흔히 말하는 "뜬다"는 것도 그때 가능한 거고요. 방송을 접하는 사람들이 다 인지를 하게 되요. 그게 안 맞아 떨어지면 아무리 열심히 해도 사람들에게까지 다 전달이 안된달까. 아나운서인 내가 원하는 건 이건데 피디가 원하는 건 저거니까 저거를 하고 따라가야지, 그게 잘 안되거든요. 저는 뉴스와 클래식 음악, 두 가지를 제가 찾은 거고요. 뉴스보다도 사람들이 클래식 프로그램을 더 이야기를 많이 하더라고요. 처음에 저는 이게 어울릴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어요. 제가 성격도 굉장히 털털하고 남성스러운데, 보이는 이미지는 또 그렇지 않아서 사람들의 눈에 비치는 이미지와 진짜 나 중에 뭐가 제 모습인가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스튜디오에 혼자 앉아서 1시간짜리 음악을 듣는게 너무 좋더라고요. 특히 성악곡들은 다 외국어라서, 이게 직접적으로 들리지가 않잖아요. 그냥 음가를 가진 소리로 들리는 거라...가곡이나 우리말 가사는 직접적으로 들려서 생각을 좀 방해하는데, 저는 그 자체로 듣는 게 좋아서 가사를 굳이 그 의미까지 알려고 하지 않을 때도 많아요. 소리만으로도 그 자체가 음악적으로 선율과 함께 완성이 된 상태로 느껴져서요. 가사를 분석해달라는 이야기도 종종 들려오는데, 저는 그냥 포인트만 잡고, 제가 음악을 전공한 건 아니라 절대 음감이거나, 화성의 변화를 느낀다거나 하는 건 못하지만 직감적으로는 알고 선율을 느끼죠. 클래식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파업이야기를 한다는 게 뭔가 참 안 어울린다는 생각이야 들지만 음악 이야기를 하면서도 끝날 때에는 투쟁의 역사에 대해 말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제가 멘트를 집어 넣었어요. 혁명이나 정의를 위해 투쟁하는 주인공이 나오는 아리아를 고를 수도 있었을 것 같네요.

=강: 저는 39기로 연차가 매우 낮은 편이라, 제가 뭘 선택할 수 있는 그런 급이 아직 아니고요. 저는 앞으로 변화할 우리 프로그램들이 기대가 되요. 제가 파업 직전에 했던 프로그램이 '서가식당'이라고, 책을 소개하면서 책에 나오는 음식을 해먹는 그런 컨셉이었거든요. 교훈적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재미도 추구하고, 대중들에게 쉽게 다가설 수 있는 흔히 종편스러운 면이 있는 프로그램이었죠. 제가 왜 '서가식당' 이야기를 하냐면, 출연자 섭외가 참 힘들었어요. 제가 엠씨고 배우 권해효, 박찬일 셰프, 팝칼럼니스트 김태훈 이런 분들이었어요. 그 분들이 흔히 말하는 진보와 보수의 프레임으로 나누면 진보쪽에 속한 분들이잖아요. 제작진들이 그 분들을 섭외하는 게 너무 힘들었고 프로그램 런칭까지도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고요. 피디들 조차 자기 검열을 정말 지나치게 했어요. 심지어 프로그램이 런칭된 이후에, 책을 이야기 하는 건데 특정 출연자의 멘트에 대해서도 위쪽에서 압력이 있었어요. 보도도 아닌 교양 프로그램이잖아요.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 피디들이랑 이건 좀 아니지 않나? 하는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그 당시에는 파업 직전이라 어쩔 수 없다, 며 서로 위로하고 말았는데 돌아가게 되면 정말 제대로 하고 싶어요. 우리가 할 일이 정말 많았고 할 수 있는 일도 많았거든요. 책도 선정할 때 그 시대가 요구하는, 시의성 맞고, 시사점을 줄 수 있는 그런 책이 많잖아요. 저희가 그런 책을 선정하면 위쪽에서 아니 그거 말고, 라는 식으로 막았어요. 예를 들어 우리가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하겠다고 하면 아니 그 책 너무 어려워, 남녀노소 모두 알고 있는 '선녀와 나무꾼'을 해. 이런 식이었어요. 참 교묘한 억압이죠. 시청자들에게 지적으로 자극을 주고, 조금 어렵고 낯설더라도 사유의 폭을 넓히게 하려는 걸 애초에 차단하는 거고요. 그런 역할을 공영방송이 아니면 어떤 채널이 하겠어요? 이런 건 확실히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파업 이후 저희가 돌아갔을 때, KBS가 달라진다면, 정말 공영방송에 걸맞는 프로그램을 국민들에게 제공하는데 앞장선다면 그런 프로그램의 진행을 하고 싶어요. 교양이든 뭐든 좀 의미를 가진 뉴스를 전달하는 거요.

-그런 간섭과 억압을 많이 경험하셨나요?

=강: 제가 연예뉴스를 전달하는데, 심지어 그런 연예뉴스에서조차 멘트를 하는 거에 대해 자기 검열을 해야 했어요. 원래 연예는 좀 웃기고 재미있는 거잖아요. 약간 비꼬고 해학적인 구석도 있어야 하는 건데 그런 걸 할 수가 없었어요. 운신의 폭이 너무 좁은 거죠. 누군가 감시하고 있다는 느낌을 늘 받았어요. 자기 검열을 자꾸 할 수밖에 없도록 시스템이 되어 있어요. 그래서 이번 투쟁 이후에, 앞으로는 변화가 있을 거라고 봐요. 지난 10월말 국정감사에서 특정 당에 소속된 모 국회의원이 왜 개그콘서트에서 "다스"를 이야기 하냐고 KBS가 왜 그런 내용을 만드냐고 뭐라고 했거든요. 그게 말이 안되는 거잖아요. 우리가 뭘 만들든, 방송쟁이들이 방송하는 건데 예능 프로그램 내용을 두고 국회의원이 왜 국정감사에서 추궁을 하나요? 국회랑 개그콘서트가 무슨 상관이 있어요? 시즌 1로 끝나버린 '서가식당'을 다시 시작 하든 어떤 새 프로그램을 하든, 힘있는 사람한테도 안 쫄고, 화끈하게 할말을 하고 싶어요.

아나운서들은 특성상 굉장히 조심하고 몸을 사릴 수 밖에 없어요. 프로그램의 가장 최전선에 있고 전달하는 사람이고 또 선택을 받는 입장이라서요. 저는 스포츠 진행할 때 이런 일도 있었어요. '스포츠 대작전'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그 당시 출연자가 박철민 배우였어요. 레이디제인도 나오고, 그게 녹화 하루 전에 폐지가 되었어요. 갑자기 폐지가 되었고, 제대로 된 사유도 없었는데 형식상의 이유는 저희 편성본부장이 "너무 시끄럽다"는 이유로 폐지 시킨 거에요. 너무 난데없었고, 납득이 안 되는 이유였어요. 저희가 추측하기로는 당시 엠씨가 저랑 김현태 선배였는데, 김현태 선배에 대한 공격이 아니었을까도 싶고요. 그때 한창 "비타 500사건" 이 있었어요. 당시 총리가 비타 500상자에 돈을 담아 전달한 사건이 한참 회자되는 중이라 저희가 자유롭게 패러디를 하나 했거든요. 그 사건 직후에 폐지가 되었어요. 겉으로 드러난 건 아무것도 없어요. 그러니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를 일이죠. 다 추측이죠. 정말 비타 500패러디 때문인지 확실한 물증이 있거나 하는 건 아닌데, 정황상 합리적인 의심을 할 수 있는 거죠. 비타 500패러디가 거슬렸거나 진행자 두 아나운서가 모두 새노조니까....

제가 그런 일들을 직접 겪었기 때문에 앞으로는 뭘 하든, 대중들이 궁금해 하는 거, 사실에 근거해서 할 이야기 하고, 힘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좀 더 약하고 어려운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시원하게 해줄 수 있는 내용을 전달하고 싶어요.

=정: 이미 만나셨다는 이슬기 기자도 그렇고 강승화 아나운서도 마찬가지에요. 최전선에서 보도를 하고, 전달을 하는 사람 입장에서 건드려서는 안되는 부분들을 건드려버리니까 그 다음에는 이게 정말 아니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강: 정말 자존심 상하잖아요. 소수의 몇몇이 저희의 생각을 조종하려고 들고, 손안에 쥐고 흔들려고 든다는 거 절대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고요. 이런 교묘한 억압과 굴종을 강요하는 분위기가 없어지면 좋겠어요.

=정: 제가 97년에 입사하고 10년동안은 이런 일들이 없었어요. 2008년부터 서서히 시작되었고 2012년 파업 이후에는 정말 노골적으로 이런 간섭들이 점점 많아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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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골적인 간섭이라면요?

=강: MC 선정, 프로그램 배치 이런 모든 과정에서 불투명한 게 너무 많았어요. 뉴스 앵커를 선정하는데 개인의 능력으로 되는 게 아니니까 그런 것 때문에 이 싸움을 하게 된 거에요. 보도의 공정성은 물론, 개인의 실력대로 정직하게 프로그램을 맡고 경쟁하면서 방송할 수 있게 보장해 달라고요. 방송인으로서 개개인이 가진 역량이 다 다르잖아요. 공영방송이라면 더더욱, 한 개인이 그 역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회사여야 하는 거고, 우리의 양심대로 공정하게 방송할 수 있어야 하고요. 정말 최소한의, 필수적인 조건이잖아요. 그런데 그 동안 KBS에서는 그 최소한이 지켜지지 않았어요. 우리가 싸우면서 요구하는 건 개개인이 자신의 능력치를 최대한으로 발휘하면서 방송할 수 있게, 솔직한 양심에 따른 정직한 이야기를 내보내만 달라는 거에요.

=정: PD나 기자쪽에서 아나운서 누구랑 하겠다고 캐스팅이 들어와도, 윗 선에서 막는게 분명히 있어요. 진행자인 아나운서를 고를 때, 늘 능력 이외의 조건이 굉장히 많이 작용을 해요. 어디든 사람 사는 곳이니까 능력 이외의 것이 완전히 배제된다고는 못 하겠지만 방송만큼은 능력이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하는 직군이죠. 예를 들어 새노조라서 안되고, 자기 라인이 아니라서 안 되고 이렇게 되요. 누가 더 방송을 잘하냐가 판단의 기준이 아니에요. 위에서 결정권을 갖춘 사람들이 능력은 안되지만 하라는 대로 하고, 말을 고분고분 잘 듣고, 옆에서 비위를 맞춰주는 사람을 원해요. 2012년 파업 이후, 저희 때는 새노조에 가입한15명 명단을 같은 아나운서실 선배가 다 직접 적어서 윗사람에게 갖다 주고 그랬어요. 이 15명은, 사람들은 방송에 나가는 걸 철저히 막겠다. 활동 못하게 한다, 이런 게 있었어요. 고생하고 말 잘 듣는 우리 라인 잘 살펴 달라는 거, 실제로 있었고 문서도 있고요. 저는 아홉시 뉴스도 해봤고, 제가 좋아하는 프로그램도 찾았고 아나운서로서 활동을 해보기도 했고, 이제 어느정도 초탈하게 되어서 괜찮아요. 그런데 젊은 사람들한테는 그게 잘 안되죠. 어떻게 저 부분까지 건드리나, 싶은데 젊은 친구들에게 납득이 안가고 황당한 경우가 이어지니까 이렇게 강경하게 파업에 임하는 거에요. 저는 사실 후배들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파업에 참여할 줄은 몰랐어요. 이야기들 들어보니까 말도 안되는 걸 다들 경험하니까, 너무 상식 밖의 일들을 경험하니까 싸워야 다는 생각이 드는 거에요. 말도 안되는 상황이 한 두번 간헐적으로 일어나고 이런게 아니라 거의 모든 것들이 그렇게 돌아갔다고 보시면 되요.

=강: 방송사는 이벤트들이 많잖아요. 이벤트가 생기면 그걸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여럿이죠. 그럼 거기에서 공정한 경쟁을 원하는 건 당연한 거에요. 그런 경쟁이 제대로 이뤄진 적이 지금까지 거의 없었어요.

-KBS는 지난 몇 년간 능력이 아니라 손바닥 잘 비비는 사람이 큰 프로그램을 맡고 잘 나가는 구조인가요?

=강: 그렇다고 확답은 할 수 없지만 합리적으로 추측은 할 뿐이에요. 사람한테 잘하고 업무외적으로 어필하려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고 그게 영향을 미치는 것도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예전에는 능력 9에 사회생활 잘하는게 1이었다면 이제는 사회 생활 잘하고 윗사람에게 잘 보이는 게 더 결정적으로 되는 거에요.

=정: 그런 게 없을 수야 없고 노골적이지 않아야 하는데, 아주 노골적이 되어버렸어요.

=강: 인맥을 쌓고 자기들끼리 친하게 지내고 이런 건 사실 상관이 없어요. 최소한 공개적인 오디션만큼은 공정해야 하는 거잖아요. 거기에선 장난을 치면 안되는 거잖아요. 심지어 오디션 조차 이미 내정 해놓고 눈가림식으로 치르는 경우가 너무 많았어요. 오디션에 참가하는 아나운서들에게 공정한 것처럼 속이면서 헛된 희망을 주는 거였어요. 모를 것 같이 하고 넘어가도 시간 지나면 다 드러나잖아요. 예를 들어 새로 들어가는 프로그램에서 아나운서를 찾아서 제가 지원을 했어요. 모든 피디들이 저를 원하는데 단지 새노조 소속이라는 이유로 결과가 뒤집어 진 적도 있어요.

=정: 자기들끼리 MC선정위원회라는 기구를 만들었어요. 전혀 공정하게 심사하는 게 아닌데, 공정한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예전에는 없던 MC선정 위원회라는 걸 만들어서 공정함을 가장했어요. 제도적으로 기구를 하나 만들어서, 피디도 납득할 수 있도록, 절차적으로는 공정한 것처럼 보이도록요. 실제로는 완전히 편향된 위원회였죠.

=강: 피디들도 정말 피로감이 쌓였을 거에요. 프로그램을 만드는 입장에서 원하는 아나운서 누구를 쓰기 위해 너무 많이 싸워야 하니까요. 피디에게 가장 중요한 건 제작 독립성인데, MC가 대체 뭐라고...어느 선까지인지는 모르겠지만 윗 선에서 계속 개입을 하니 피곤하죠. 어차피 원하는 아나운서를 하려면 너무 많이 싸워야 하니까 아예 아나운서실에 알아서 "아무나 주세요" 하게 되는 경우도 있었어요. 아님 강승화 골라봤자 어차피 안 되는데 차라리 연예인 누구랑 하지, 이런 경우도 있고요. 퇴사한 사람들은 이런 이유들이 적지 않게 작용했을 거에요. KBS가 진짜 멋진 방송국이 되면 퇴사할 필요가 있나요? 여기에서 계속 좋은 방송 만들고 MC하고 그럼 되는 걸요. 저희는 그 어떤 방송사보다도 물량으로나 시스템적으로도 충분한 제작 제반 환경을 갖추고 있거든요. 정말 훌륭한 시사프로그램, 누가 봐도 진짜 좋은 방송이다 인정할 수 있는 거, 만들면 계속 KBS아나운서로 남을 수 있죠. 돈, 명성,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방송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최우선은 좋은 방송을 하는 거에요. 열의가 넘치는 피디들과 기자들이랑 정말 멋진 프로그램을 하는 거, 그렇게 시청자들에게 기억되는 걸 바라는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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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소수의 몇몇이 아나운서실에서 자기 라인 만들고, 사사건건 프로그램에 들어가는 데 개입하고 그랬어요. 선배가 자기 후배들을 명단 만들어서 방송 커리어를 완전히 망쳐버리겠다고 하는 걸 다 지켜 봤거든요. 인사 고과도 제일 낮게 주면서 방송을 몇 년 못하게 되는 게 마치 능력이 부족해서 인 것처럼 하고, 그 사람은 자기 후배들을 팔아 넘겨서 승진을 했고 여전히 방송도 하고 있어요. 그쯤 되면 단순한 부역자 수준이 아닌 거죠. 정권이 바뀌었다고 하면 아마 처세의 달인으로 또 어떤 스탠스를 취할 지 알 수가 없어요.

KBS는 한국사회의 축소판 같달까, 워낙 인원도 많고 사람들의 결이 다양해서 구성원들 중에 태극기 집회에 나가는 사람부터 다 있다고 보시면 되요. 이 다양한 구성원들의 정치적 스펙트럼 사이사이에서 개개인이 각자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움직이기 때문에 MBC랑은 달라요. 그래서 눈에 보이는 결과가 안 나오고 좀 더딘 것도 있고요. 그런 사람들끼리 또 모여있기도 하고 그래서 저희 싸움이 더 힘들어요. 새노조 사람들이 마음이 여리고 또 착해서, 그들을 적대시 하지 않기도 하고요. 시스템적으로 정치적 성향이 다르다고 그들을 해직시키거나 쫓아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쨌든 공존하면서 방송을 같이 만들어 나가야 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KBS는 잘 꾸려나가기가 참 어려워요.

=강: 응징은 사실상 힘들 것이고, 그런 분들이 저지른 악행이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그걸 방지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봐요. 파업이 끝나고 돌아가면 좋은 방송을 만드는 것 못지 않게, 구조적으로 장치를 만들어 투명하게 능력과 성과 위주로 평가될 수 있기를 바라요. 정권이 달라진다고 해서 그에 좌지우지 되지 않을 수 있도록 뭔가를 해야 해요.

=정: 제 경험상, 정권이 바뀌고 방송이 독립성을 지킨다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더라고요. 새노조 안에서도 참 색깔이 다양하기 때문에 시간을 두고 대안을 마련해 나가야겠죠. 더 나아지는 방향으로요.

-희망을 갖고 계시는 거네요.

=강: 저는 MBC 파업 마치고 올라가서 돌아가는 거 보고, 희망을 많이 가지게 되었어요. 특히 보도랑 시사분야에서 무엇을 만들어 낼지 벌써 기대가 되고요.

=정: 저는 24기인데 지금 29기 기자들이 주축이 되어서 모임을 만들고 그 윗선 선배들에게도 할말을 하는 분위기인데요. 26,27기 정도까지는 중간에서 위 아래가 충돌하지 않을 수 있도록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하고요. 결정은 젊은 친구들이 내려주고 그 방향으로 가야지, KBS에 미래가 있고 살아남을 수 있다고 봐요. 저만 해도 70년대 생이라 될까? 의심하는 게 있고 좌절의 기억이 있거든요. 더 젊고, '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야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10년 전에, 탐사보도팀 다 있고, '미디어포커스' 있고, 9시 뉴스 하면서 일하는게 너무 즐겁고 신나서 어쩔줄 모르던 때를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고요. 저희는 그때 방송하면서 당시 방송 지형에서 탐사 보도를 한다는 것에 대해 뿌듯함도 컸고, 사명감을 정말 많이 느꼈고, 그때는 방송 내용에 대해 개입하는 게 정말 아무것도 없었어요. 제가 9시 뉴스 하는 동안 그 누구도 저에게 와서 앵커 멘트 왜 이렇게 썼어? 라고 한다거나 제가 다 고쳐 쓰는데 저한테 와서 무슨 말을 하는 거, 없었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앵커 멘트 고치는 걸 못하게 하고, 고쳐서 가져오면 위에서 기자나 피디들이 다시 다른 뉘앙스로 손대고 뉴스가 한 방향으로만 가더라고요. 이런 젊은 친구들은 저희가 겪었던 거랑은 완전히 다른 경험을 한 거니까요. 그런 것들이 자유로워진다면 저희가 나아지는 방향으로 가는 거겠죠.

-나아지는 방향이라면요?

=강: KBS는 채널이 2개라 공영방송이고 좀 프로그램을 아주 질적으로 잘 만들어야 해요. 그게 저희 사명이고요. 그렇게 안하고 위에서 자꾸 프로그램 폐지하고 배제하고, 출연진 하나하나에까지 간섭하니까 이제 KBS라고 해도 기억에 남는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없어요. 이제 시청자분들이 기억해 줄만한 프로그램들을 돌아가서 만들어야죠.

=정: 올해 가장 화제가 된 프로그램이죠. '알쓸신잡'의 유시민도 KBS에서는 캐스팅이 어려운 사람이니까요. 수준높은 평론이 사라진 시대이고, 'TV 책을 말하다' 같은 프로그램도 '클래식 오딧세이'도 다 폐지되었고요. 라디오 7시 뉴스 할 때 아직도 기억나요. 백남기 농민 사건때 물대포가 아니라 물줄기라고 쓰여진 대본이 왔어요. 그거 읽어야 했을 때 정말 착잡하더군요. 제가 9시 뉴스했던 사람이니까, 아예 그 단어를 빼버리고 제가 멘트를 새롭게 해서 읽었어요. 요 근래 몇 년 동안 너무 말도 안되는, 읽고 싶지 않은 기사들이 막 들어왔어요. 회사가 저희들의 입을 다 틀어막았어요. 멘트를 하면 위에서 싫어한다고 하거나 말도 안되는 이유를 대요. 늘 한쪽 방향에서 보니까 저쪽에서 이렇게 보니까 치우치게 보이죠. 작년 촛불 시위 할때,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촛불' 단어만 언급해도 난리가 나는 거에요. 라디오 뉴스 할 때 받은 대본들의 수준도 그렇고, 이 뉴스 뭐하러 하지? 내가 이걸 왜 읽지? 이런 순간들이 참 많았어요. 작년에 최순실 관련 미르재단 뉴스가 하나 둘 터지고, 국정농단 스캔들이 말 불거지는 시점에, 최대한 최순실 관련 뉴스를 뒤쪽으로 배치하는 거에요. 하나도 안 중요한 것처럼요. JTBC가 터트리고 난 이후에도 어떻게든 중요하지 않은 뉴스처럼 배치를 했어요. 저도 기자도 아무리 위에다 이야기를 해도 편집부에서 다 편집권을 쥐고 있어서 저희가 할 수 있는게 너무 없었어요. 우리는 읽는 사람이잖아요. 뉴스가 내려오면 그걸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거고, 저희가 아무리 그 앞에서 이거 좀 앞에다가 배치해야 하는 거 아니야? 해도 그게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던 거죠. 답답해도 할 수 있는게 너무 없었어요.

-이렇게까지 압박을 많이 받으셨는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강: 이런 걸 압박이라고 느끼지 않는 사람들도 있어요. 우리는 이게 잘못된 거다, 압박하는 거다 느끼는 반면 어떤 사람들은 회사 잘 돌아가는데 무슨 문제 있어? 아나운서는 그냥 원고 나오는 대로, 주어지는 대로 또박또박 읽고 전달하기만 하면 되는 거 아냐? 이렇게 생각하고 회사가 얼마나 고마운 존재냐고, 월급 주고 자아실현 시켜주고 TV에 나오게 해주는데 너네 파업하는 거 다 배불러서 그러는 거야, 이러는 사람들도 있어요. 파업 초기에 뜻을 같이 해 달라고 설득하고, 설명도 해보고 했는데 안 되는 사람은 안 되더라고요. 언론인으로서 이전에 인간적으로 공감능력이 좀 떨어지는 걸 수도 있죠. 세월호 참사 때에도 별로 슬퍼하지 않고, 최순실 사건에도 이게 뭐? 하는 거고. 같은 시간을 지나오면서 느끼는 바가 많이 달랐을 거라고 그래서 이렇게 다르게 행동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주파수가 다른 곳에 맞춰져 있는 거겠죠. 언론인으로서의 사명감 이전에 상사에게 어떻게 하면 잘 보이고 어떤 보직을 받을 수 있는지, 더 큰 프로그램을 맡고 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나 혼자 잘되고 그런 거에 더 집중할 수도 있다고 봐요.

정: 중학교 2학년도 다 이해할 수 있을 수준으로 방송을 해야 한다고 늘 그렇게 교육 받았어요. 그건 전달하는 말을 쉽게 사용하라는 것이지 컨텐츠가 중학교 2학년 수준이어야 한다는 게 아닌데 그걸 놓치기도 하죠. 정말 긴장해서 공들여서 잘 만들어야 하는 방송을 그렇게 안 하는 거고요. 아나운서는 아무 힘이 없고, 주도권을 쥐고 있는 직군이 아니에요. 그래서 저희 아나운서 실장이 나서서 저희를 좀 보호해주려는 제스처를 취해야 하는데, 자신의 보직과 출세에만 관심있는 분이 아나운서실을 이끌면서, KBS안에서 아나운서는 참 보호받지 못하는 존재로 수년을 지나왔어요. 이렇게 연약한 존재들인데 파업할 때에는 노출도 많이 되고, 가장 열심히 해요. 2012년에도 저희가 겨우 15명에 불과했지만 집회 사회도 보고 바깥에서도 저희를 가장 먼저 알아봐 주시니까 전단지 돌리고 하는 것도 열심히 했고 시민들에게 더 보여질 수 있도록 했어요. 이번에도 저희가 사회를 돌아가면서 열심히 보고요. 역할이 그렇게 '보여지는 것'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얼굴 팔리는 일이라 꺼려할 수도 있는데 강승화 아나운서는 심지어 월요일 고정이에요.

강: 다들 월요일은 좀 부담스러워 하니까 제가 먼저 월요일 고정을 하겠다고 했어요. 그럼 우선 한 사람이라도 부담이 줄어드는 거잖아요. 4명만 돌아가면 되니까요. 기수도 낮고 하다보니까 사람들이 제 진행을 좋아해 주셔서 뿌듯해요.

-100일을 훌쩍 넘긴 파업이 이제 방통위에서 강규형 이사의 해임안이 통과되면서 어느정도 끝이 보이는 것 같은데, 어떤 소회가 드시나요?

=강: 아나운서는 약간 개인사업자처럼 각개전투로 활동할 수밖에 없거든요. 다양한 직군들이 나오는 파업집회에서 제가 진행을 하면서 보여줄 수 있는 것도 있고 전혀 모르던 피디들과도 친분이 생기고 돌아가면 하고 싶은 프로그램에 대해 이야기도 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파업이 아니면 절대 다른 직군을 만나 이렇게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질 수가 없거든요. 하고 싶은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를 정말 신나게 나누기도 했는데 돌아가면 정말 근사하게 멋지게 뭔가를 함께 하고 싶어요. 반성을 참 오래 했으니까요. 돌아가서 좋은 프로그램을 하고 싶습니다.

=정: 파업이 끝나고 돌아간다면, 아나운서실의 대장이 자신의 입신양명에만 한눈에 팔린 게 아니라 할말은 하고, 아나운서들이 자신의 적성에 맞는 프로그램을 찾아갈 수 있도록 길잡이가 되어주는 역할을 해주면 좋겠어요. 피디랑 작가, 기자와 함께 프로그램의 구성 단계에서부터 아나운서도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라요. 그렇게 처음부터 같이 만들어갈 수 있는 프로그램을 한다는 건 모든 게 다 셋팅되고 와서 진행만 해주세요, 라는 거랑은 완전히 다른 경험이거든요. 프로그램을 좀 더 온전히 이해하고, 제작단계에서부터 의견을 내고 다른 직군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나운서로서도 굉장히 많은 성장을 할 수가 있어요. 저희가 단지 셋팅된 상황에서 차려입고 꾸민 상태로 나와 그냥 앵무새처럼 읽기만 한다고 느낄 수도 있는데, 단순한 전달자 그 이상의 역할을 할 수도 있어요. 뉴스의 통찰력을 불어넣고 멘트를 다르게 해서 완전히 다른 메시지를 전달할 수도 있으니까요. 저는 운 좋게 이미 '클래식 오딧세이'처럼 제가 제작 단계에서부터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났고, 정말 사명감을 가지고, 뿌듯하게 방송을 하는 경험을 누려봤어요. 얼른 파업이 끝나고 돌아가서 이런 젊은 친구들도 저처럼 방송을 통해 그런 충만한 경험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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