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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딴따라 김민식은 밝고 씩씩하게 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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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말부터 광화문 광장과 전국 곳곳의 도시에서 돌마고(돌아오라 마봉춘 고봉순)가 매주 금요일마다 열리고 있다. 김민식 피디는 거의 매주 무대에 오른다. 무더운 8월의 날씨에도 "사장님팬클럽1호"로 분해 복면을 쓰고, 반짝이 의상을 입고 정성껏 개사한 랩을 쏟아내며, 춤솜씨를 선보이길 주저하지 않는다. 누구보다 열심히 전국을 누비며 '공범자들' 관객과의 대화에 참여하고, '김장겸퇴진운동'에 앞장서 '파업요정'이라는 별명을 얻은 그를 만났다. 진짜 '김민식' 이야기.

-'공범자들'이 끝나갈 때쯤 이 영화의 장르가 드라마로 바뀌는 와중에 장면이 전환되고 5년 전으로 돌아가 피디님과 이용마 기자님이 검찰에 출두하는 차 안을 비춥니다. "오늘 운세가 환대를 받는다"며 밝게 말하는 피디님의 모습과 건장한 체구의 이용마 기자님이 보이더군요. 2012년 170일 파업 당시의 이야기가 더 듣고 싶습니다.

=용마하고 저는 정말 다른 사람이에요. 저는 입사하고, 용마를 보고 이 세상에 우주를 인간과 인간의 거리로 측정한다면, 나와 가장 먼 거리에 있는, 반대편 우주에는 이용마가 있는 게 아닐까 싶었어요. 우린 정말 달라요. 용마는 서울대 정치학과를 나와서 대학원까지 하고, 공부 잘하고 많이 한 사람이고, 무엇이든 진지하게 분석하고 설명할 수 있는 브레인이고, 엄청나게 정치에 대해 진지하게 여기며 살아왔죠. 보도국 기자가 되고, 또 정치에 대해 언론인으로서 목소리를 냈던 사람이고요.

저는 사실 정치와는 아주 상관없는 삶을 살았어요. 제가 대학교 4학년 때 유호프로덕션이라고 정상적인 건전한 삶을 산 사람이라면 당연히 몰라야 하는 프로덕션 이름인데요. 거기에서 비디오 대여점에 배포하기 위한 B급 에로 영화들을 만들어냈어요. 당시에는 유명한 곳이었죠. 대학교 4학년 어느 날 신문을 읽는데 그 프로덕션에서 프로듀서를 모집한다는 광고가 보이는 거에요. 주소지가 충무로였어요. 제가 영화를 너무 좋아하는 사람이라, 그때 진지하게 여기 가서 일을 한번 해볼까? 싶었어요. 헐리웃 감독들, 제임스 카메론 같은 사람도 모두 B급에서 시작해서 주류로 올라왔잖아요. 한국에서 제임스 카메론이 시작한 지점에 상응하는 걸 찾는다면, 그게 에로 영화가 아닐까 싶었던 거에요.

저는 정말 날라리 딴따라였고, 영화 좋아하고, 노는 걸 좋아했어요. 완전 그 시대의 변종이었어요. 변종인데, 그 변종인 걸 문제라고 느끼지도 못했던 사람이에요. 정치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었고, 제가 87학번이고 다들 데모할 때, 그 최루탄 냄새로 가득찬 시절에 학교를 다니면서도 거기에 아무 관심이 없었고, 영화를 보면서 주로 혼자 노는 걸 좋아했어요. 그리고 MBC 들어와서도 용마는 기자고, 우리가 96년도 입사 동기인데요. 용마가 신입사원 동기회 회장을 하겠다고 먼저 나섰어요. 용마는 사람들 앞에 나서서 이끄는 걸 잘하고, 또 그걸 좋아하는 친구였어요. 물론 회장직을 맡아놓고 너무 바쁘고 하는 일도 많아서 한 번도 모임 소집은 못 했고, 저희가 또 그걸 가지고 놀리기도 했네요. 그만큼 저랑 용마랑은 정말 다른 사람들이에요. 집행부로 있을때 의견 충돌이 있었던 건, 2012년 초입에 용마는 이대로 있을 수 없다, 파업에 들어가자,는 쪽이었고 저는 예능과 드라마국을 대변하는 입장이라 파업을 이 시점에 과연 해야하나? 했어요. 그때만 해도 뉴스, 시사교양국이랑 예능, 드라마국 사이에 좀 차이가 있었어요. 이미 시사교양국은 철저히 망가진 상태였는데, 아직 이쪽은 괜찮았거든요.

저는 당시에는 파업에 대해서 회의적이었어요. 제가 눈물 흘리면서 미안해 하는 영상 보고나서, 용마가 민식이가 오해하는 게 있다고, '시사인' 인터뷰에서 파업 끝날 때에는, 본인도 파업 접을 때에는 접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밝혔어요. 저도 접는 건 찬성이었어요. 저희가 무려 170일을 싸웠잖아요. 가정있는 사람들이, 생활비 가져다 주지 못하면서, 대출도 감수하면서 당시 조합원들이 다 같이 싸워준 건데, 노부모를 봉양하고 있다거나, 가족 중 한 사람이 아프거나, 또 무슨 사정이 생기면 파업 관두고 복귀하겠다고 나올 수도 있는 거였어요. 6개월을 버틴 사람들이 7,8개월 들어가면서 무슨 일이 생길 수도 있는거고, 그때까지 단 한명의 이탈자도 없이 대오가 흐트러지지 않고 싸운 건데 이대로 접는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6개월까지 버틴 조합원이 만약 7개월 째에 복귀한다 해서 우리가 그들을 손가락질하고 배신자라고 낙인찍을 수 있을까요? 용마랑 제가 파업을 접으면서 그 이유가 달랐어요. 용마는 더는 싸울 수가 없으니 접자는 거였고, 저는 돌아가서 다시 예능과 드라마를 잘 만들자, 대오가 흐트러지지 않은 상태로 복귀해서 프로그램을 잘 하면서 대안을 찾자는 거였죠. 그런데 저는 더 이상 징계3종 셋트 받고, 프로그램을 연출 못한 거고 용마는 해직을 당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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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극과 극으로 다른 두 분이 노조의 집행부에서 부위원장과 홍보국장으로 어떻게 함께하실 수 있었을까요?

=너무나도 다른 사람인 우리가 6개월을 같이 싸우면서 동지애 같은게 생겼어요. 저는 용마랑 기질이 정말 다른 사람인데, 처음엔 몰랐지만 파업하다 보니 이 녀석이 왜 싸우자고 하는지 알겠더라고요. 그래서 좋다, 이 싸움을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까?를 열심히 생각했어요. 용마는 지사형 인간이랄까, 앞서가는 사람이고, 선구자적이고 혁명가에요. 사람들보다 늘 한 발짝 이상 앞서가죠. 제가 "용마야, 참 좋은 생각인데, 아무리 좋은 생각도 사람들이 이해를 못 하면 소용이 없어. 우리는 방송사 파업이라 콘텐츠로 만들어야 해. 대중적으로 이해를 받고, 지지를 얻어야 해." 이렇게 말했죠. 우리가 아주 좋은 콤비라는 건 나중에서야 알았어요. 서로 다른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너무나 달라서 오히려 상호보완적인 존재였어요. 사실은 170일간, 6개월 동안 급여를 포기하고 40-50대 가장들이 이렇게 싸운다는 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에요. 보통 한국에서는 사람들이 연차 휴가도 아까워서 잘 못 쓰고, 누가 며칠 휴가 써야 하는 상황만 되더라도 당장 생활인으로서 주저하게 되는데, 40-50대 가장들이 그걸 포기하고 싸웠어요. 방송국 다니는 사람들이 연봉이 적은 편도 아니고, 나름 소득이 괜찮은 편이잖아요. 거기에 고정 생활비가 있고, 다들 대출 끼고 집 한 채는 장만해서 하우스푸어로 갚아야 할 대출금이 있고, 생활비라는 게 딱 정해진 거라, 벌이가 줄어든다고 해서 기본적인 생활비가 줄어드는게 아니에요. 결혼 안한 젊은 사람이라면 자기 한 몸이지만, 가정 있는 경우에는 생활비가 정해져 있는 거죠. 아이들도 부인도 다 있는 사람들인데, 지금 와서 드는 생각이지만 어떻게 그 싸움이 어떻게 170일까지 갔을까 생각하면, 참 아직도 미안한 마음뿐이에요.

용마와 제가 둘이서 "질 수 없다. 싸워야 한다." 이렇게 말하곤 했어요. 용마는 이상적으로 우리는 패배할 수 없다. 싸워야 한다. 말한다면 저는 어떻게 즐겁게 재미있게 싸울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저는 싸움을 재미나게 하고 싶었어요. 우리가 직접 겪었잖아요. 이명박 정권에 몸담은 사람들, 쉽게 물러나는 사람들이 아니고, 우리가 뭔가를 요구한다고 해서 그걸 쉽게 내줄 사람들이 아니라는 걸요. 이게 분명히 장기전으로 가서 처절하게 이어질 텐데, 길게 싸우려면 재미있고 신나게 해야 하니까요. 단식농성이나 철야 농성은 오래가는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돌이켜 보면 MBC 노조 조합원들에게 정말 감사하죠. 그렇게 170일을 싸우고도 우리가 졌어요. 졌으니까, 업무에 복귀한 다음에 조합 탈퇴해버려도 사실 할말은 없거든요. 해직자들 복직 아직도 안 되었죠, 파업 복귀 이후에 부당전보, 신천교육대 가서 브런치 만들고.... 그런데도 다들 돌아가서 우리를 그대로 지켜줬어요. 저는 용마에 대한 미안함도 있지만, 조합원들에 대한 미안함도 되게 커요. 그때 제가 더 잘했으면 이겼을 수도 있을까 하는 마음이 늘 남아있어요. 무엇때문에 진 걸까 복기도 자주 했어요. 부채감이죠. 저는 사실 저 빼고 모두에게 다 미안한 거에요.

-미안함, 죄책감을 자기파괴적으로 소모하는 게 아니라, 긍정적인 방향으로 쓰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남은 사람들, MBC라는 곳을 못 떠나고 있는 사람들이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참 교묘하게 무너져요. 공든 탑처럼 쌓아가던 커리어가 그렇게 무너지는 거죠. 9월 초에 나온 책이 한 권 있어요. '잉여와 도구'라는 책인데, 임명현 MBC 기자가 석사 논문을 썼어요. 지난 5년간, 한편으로 너무 이상하지 않나요? 2012년만 하더라도 우리 MBC 노조는 무려 170일이나 파업을 할 정도로 강고했던 그런 조직이었고, 그렇게 결기 있게 독하고 질기고 당당하게 싸웠거든요. 그럼 파업이 끝나고 현장에 돌아가서, 어떻게든 뉴스를 망가뜨리지 않기 위해 노력했을 법한데, 어떻게 그런 사람들이 모여있는 MBC 뉴스가 지난 5년간 그렇게 철저하게, 바닥까지 망가진 걸까? 의문을 가져볼 만 해요. 임명현 기자가 그래서 인터뷰를 진행한 거에요. 석사 논문으로, 연구자로서. 사실 지난 5년간 사람들이 저희한테 너네 뭐하다 이제 정권 바뀌니까 나와서 난리야? 할 수도 있는데 MBC 내부의 사람들은 각자 나름대로 투쟁을 이어왔어요. 저는 블로그를 하고, 글을 썼어요. 각자의 투쟁을 이어왔어요.

이 책을 보면 지난 5년간 MBC 기자는 잉여 아니면 도구가 되었어요. 잉여가 되는 사람들은 보도국 밖으로 내쫓아 버려요. 스케이트장, 드라마 마케팅, 이제 다시는 기자가 아니게, 기자로서 일을 못 하게 만들어요. 내가 있어야만 뉴스 데스크가 굴러간다고 생각하다가 사람들이 직접 보게 된 거에요. 나 없이도 뉴스 데스크가 굴러가네? 그럼 나는 이제 뭐지, 잉여인가? 기자로서 잉여가 되어버린 거죠. 남아있는 사람들은, 나가버리면 잉여가 되는데, 쫓겨나면 더 이상은 기자가 아니게 되네, 난 그럼 어떻게든 버텨야지, 버티려면 뭘 해야할까? 하다가 사측의 도구가 되어가요. 철저히 그 안에서 도구처럼 사용되죠. 그 안에서도 저항을 하는 사람들도 몇몇 있어요. 이게 그런데 정말 잔인한 과정이에요. 옆에서 지켜보는데 정말 미칠 것 같았어요. 5년간 정말...저보고 사람들이 싸우는 거 힘들지 않냐고, 그냥 그렇게 하지 말고 소리 없이 일부가 되어서 굳이 나서지 말라고, 파업할 때 그냥 무리 속에 섞여서 적당히 같이 하고, 조합원으로서 인원수만 보태줘도 되지 않느냐고 하는데, 심지어 제 집사람도, 저랑 20년을 살았는데도 이해를 못 해요. 와이프가 저한테 제가 다치고 상처 입을까봐 그런 거겠지만, 당신이 왜 그렇게까지 심하게 나서서 하느냐, 그렇게 말하죠. 사람들이 이렇게 말할 때마다 제가 늘 하는 말이 있어요. "내가 지난 5년 동안 이 안에서, 뭘 봤는지 당신들은 모른다." 이렇게요. 이 안에서 사람들이 당하는 걸 보고 있으면요. 정말 미쳐요. 괜찮은 사람들이 너무너무 어이없는 방식으로 당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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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내부에서 구체적으로 무슨 일들이 일어났습니까?

=김수진 앵커는 아침뉴스 앵커에요. 2012년 170일 파업 끝나고 드라마국에 와서 마케팅과 홍보 일을 했어요. 아침뉴스 앵커면 기자 중에서도 일을 잘하고 뛰어나고, MBC를 대표하는 얼굴이에요. 그런데 드라마 국에 와서 홍보 일을 하게 되었어요. 드라마, 문화 관련 기사 쓰는 기자들 만나서 접대하고, 인사하고 MBC 드라마 제작 발표회 할 때마다 보도 자료 돌리고, 인사 하고...정말 잔인한 거에요. 사람을 그렇게 만드는 거에요.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시기에 커리어를 쌓아나갈 수 없도록, 앵커인데 더 이상 앵커일 수 없게 만들었어요. 그 김수진 앵커가 요즘 마라토너로 유명해요. 보스톤, 동경, 뭐 이런 세계 4대 마라톤 풀코스 다 뛰는 게 본인 목표래요. 마라톤이 말이 쉽지, 일반인에게 쉬운 일이 아닌데, 풀코스는 물론 기록도 좋은 편이래요.

저희 MBC 사람들이요. 정말 뭔가를 해야하는 거에요. 큰 도전들을 하는 거에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뭔가 몰두하고, 현실을 잊을 수 있는게 필요한 거에요. 그렇지 않고서는 나라는 사람의 내면에 매일 균열이 생기는걸 버틸 수가 없어요. 그걸 지켜보다 보니까, 저도 정말 미칠 것 같고, 그 안에서 어떻게든 버텨야 했고 그래서 무엇을 할까 하다가, 책을 쓰면서 버틴거죠. 처음부터 책을 쓰려던 건 아니었고. 블로그를 했어요. 매일 뭔가 하나씩 썼어요. 제가 글쓰기를 잘해서가 아니라 정말 글을 못 쓰는 사람인데, 잘 못하는 일이다보니까 시간이 더 잘가더라고요. 해직 당한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거에요. 최승호 PD는 뉴스타파 만들고, '자백'에 이어서 '공범자들' 만들었죠. 예술적 감수성 있고 사운드에 민감한 감식안을 갖고 있던 박성제 선배는 쿠르베 스피커를 만들고 있어요. 영화 만들거나 나무 깎아서 스피커 만드는게 말이 쉽지 얼마나 시간과 공력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에요. MBC에는 가방끈이 길어진 분들이 여럿이에요. 석사, 박사 논문 쓰는거 쉬운일아니죠. 그냥 있을 수는 없는거에요. 품이 많이 들어가고 현실을 잠시 잊고 완전히 몰두할 수 있는 걸 각자 찾아서 하는거에요. 그렇게라도 뭔가를 해야, 버틸 수 있었던 시간이 지난 5년이었어요.

참고기사 : [허프 인터뷰] 김수진 MBC 기자는 "당신 편에 서는 뉴스"를 하고 싶다

-피디님은 새로운 뉴미디어를 가지고 현명하게 골리앗과 맞서 싸우는 다윗 같이 보였어요. 변화되고 있는 포맷에 역시 선구자라는 인상도 받습니다. 동료들의 리액션이 없을 수도 있는데, 두려울 수도 있었을 텐데 어떻게 계속 싸워나가는 건가요? 어느 순간 두려움을 뛰어넘은 건지, 두려운데도 계속하는 건지 궁금합니다.

=좋은 질문이에요. 두려운 데도 계속하고 있는 게 맞아요. 저는 사람들한테 계속 이야기 하는 게, 지난 몇 년 사이에 가장 많이 던지는 질문이 그렇게 많이 당하면서 왜 싸우지 않았을까. 이제 와서 대통령 바뀌고, 정권 바뀌니까 너희들 그동안 못 싸우고 있다가 이제야 싸우는 거 아니야? 그럴 수 있거든요. 이제 와서 왜 저래? 이럴 수 있어요. 저는 정말로 지난 5년간 계속 싸웠어요. 피디저널이라고 피디들의 연합 회보가 있어요. 거기서 원고 청탁을 맨 처음 받은 게 2013년 1월이었어요. 대선 끝나고 1달 뒤, 피디연합회에서 전화와서 "고정 칼럼 한번 써보실래요?" 하더라고요. 제가 그랬죠. 저더러 죽으라는 거냐고, 이제 막 시작한 칼날을 벼린 정부 아래에서 칼럼을 쓰라는 거냐고. 결국 제가 쓰겠다고 하고나서, 칼럼 제목을 뭐로 했는지 아세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로 했어요. 저는 정말 PD연합회보에다가 칼럼 연재하는게 PD로서 제가 가졌던 꿈이었어요. 보통 거기 뭔가를 쓴다는 건, 영광스러운 일이거든요. 대박 드라마 연출 방법이라거나, 뭔가 아주 잘 되고 큰 성공을 거둔 뒤에 주어지는 자리에요. 이 지면에 글쓴다는 건 다른 PD들한테도 뭔가 인정받을만한 성과를 거둔 다음에, 그런 뭔가를 하고 나서 그래, 당신들에게 뭔가 연출에 대해서 좀 가르쳐 줄게, 이런 느낌이거든요. 그런데 그 시기에 저더러 글을 쓰라는 건, 다들 어차피 입닫을 테니까, 당신이라도 뭔가를 말해달라는 요청이었어요. 그래서 정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그렇게 썼죠. 계속 칼럼을 썼어요.

계속 그 연재를 하다가, 이어서 뉴스타파에도 칼럼을 썼어요. 제가 계속 짖어대니까 사람들한테 연락이 오더라고요. 피디저널 칼럼을 보고 뉴스타파에서도 연락이 온거겠죠. 그렇게 짖어대니까 회사에서도 더욱 저에게 보복을 해왔어요. 또 다시 발령을 내고 송출실 가고... 저는 기본적으로 젊은 시절에 통역대학원을 졸업하고 통역사를 꿈꿨던 사람이라, 그런 마음이 기저에 있었던 것 같아요. 싸워보는데, 끝까지 하다가 안되면 최후에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SF소설 번역을 하든 통역을 하거나 잘리더라도 어떻게든 먹고는 살 수 있겠다, 굶어 죽지는 않을 거란 어떤 막연한 낙관이랄까. 그러다가 제 나름의 투쟁의 강도를 올리게 된 계기가 있어요. 올해 초 '영어책 한권 외워봤니?' 라고 지금까지 올린 블로그 글을 모아서 책을 냈는데, 그게 갑자기 6개월 동안 10만 부가 넘게 팔렸어요. 책 내고 나서 첫 주에 종합 베스트셀러 8위에 오른 거에요. 처음이라서 감이 안 왔어요. 출판사에서 연락이 와서, 대박이라고 첫주에 종합 베스트 8위다. 어마어마하다, 하시는데 제가 이거 어떤 의미인가요. 물어봤더니 3개월 마다 인세 정산을 하는데 첫 번째 정산에 연봉 절반이 들어갈 거라고 하는거에요. 그래서 제가 감이 안 와서 저 연봉 꽤 되는데, 설마? 했어요. 그런데 정말 나중에 보니 절반보다 더 들어왔어요. 요즘 책이 정말 잘 안 팔리고, 보통은 한 3천 부만 나가도 괜찮은 거라고 하더군요. 통장에 인세를 보고 든 생각이, 32쇄를 넘게 찍는다고 연락 받았을때, 와, 이건 내가 생각했던 거 이상으로 다가온 큰 행운인데, 그걸 어떻게든 갚아야지, 싶었고, 갚는다면 과연 어디에 해야하나? 하다가 그럼 한번 더 회사를 위해, MBC를 위해 세게 한번 더 질러보자. 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인생에 다가온 큰 행운을 MBC를 위해 사용하고 싶으셨던거군요.

=저는 사실 지난 5년간 계속 질러왔고, 싸움이 붙을 줄 알았는데 이게 안 붙더라고요. 한 번 더 해보자. 그래서 그러다가 잘리면 나가서 작가로서 제2의 인생을 살자고 마음 먹었죠. MBC에서 많은 사람들이 제 발로 나갔어요. 스무 명이 넘는 예능 피디, 아나운서들도 절반 가까이 나갔는데 나는 내 발로는 나가지는 말자, 했어요. 그들이 저를 자르지 않고는 못 견딜 정도로 한번 제대로 크게 개겨보자, 그러고 잘리면 이제 마음 편할 것 같더라고요. 저는 정말 그 부채감이 너무 크거든요. 2012년에 용마라든지 함께 싸운 조합원에 대한 부채감이 큰데, 그걸 안고 내 발로 걸어나가 버리면, 그대로 끝이죠. 그럼 저의 이 커다란 부채감은 영영 갚을 길이 없게 되어버려요. 제가 아마 드라마 연출로, 프리랜서로, 다른 곳에 옮겨가 먹고 살 수는 있게 되더라도, 마음의 빚을 해결할 방법은 없는 거잖아요. 저는 평생 채무를 갚지 못한 채 살아야 하는 거고요. 그래서 만약 나가더라도, 최대한 싸우고, 최대한 소란스럽게 하다가 어쩔 수 없이 끌려나가는 그림을 한번 만들어보려고 했어요. 그런데 너무 웃긴 게, 미친 듯이 싸우는데도 제가 생각한대로 징계가 안 떨어지더라고요. 왜 사측 대응이 이정도 밖에 안되지? 싶을 만큼요. 최승호, 박성제 선배들한테는 그때는 이명박 정권이니까 이유도 없이 마구 해고했으면서 저는 정권 바뀌었다고 겨우 출근 정지 20일 때리는거에요. 봉급에는 큰 차이도 없고, 거의 유급휴가 같은 이런 걸 징계랍시고 하는 거에요. 20년 넘게 다닌 회사에 내가 징계받은 다음 날 짐 찾으러 와보니까 신분증 다 막아놓고, 방문증 끊어서 들어가야 하고(웃음)...이럴때 진짜 웃음이 나죠. '공범자들'이 장르가 애매해요. 하나하나 개개인이 겪은 그 지옥들은 정말 비극인데, 또 멀리서 보면 웃긴 부분도 너무 많아요. 그 안에 들여다보다 보면 너무 블랙코미디처럼 웃기고 말도 안되는 상황이 나와요. 찰리 채플린 말처럼 지난 9년 언론탄압의 장면장면이, 비극과 희극이 뒤섞여 있어요.

-'공범자들' 속에서, KBS는 주로 9년 간의 시간 중 초반에 나오고, MBC는 대사와 드라마가 존재합니다. "방송의 미래를 망치지 마세요." 같이 반복되는 문장은 기억에 오래 남습니다. 정서적으로 훨씬 더 공감할만한 부분이 많고, 영화가 끝나고 나면 MBC가 좀 더 기억에 남습니다. 아무래도 최승호 감독님이 MBC 위주로 좀 더 초점을 맞추신 게 아닌가 싶어요.

=저는 파업이 끝나고 각자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다면, 각자의 버전으로 '공범자들'의 후속편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KBS 버전도 만들고, 우리도 MBC버전도 우리 후속편을 내야죠. 내년 추석연휴에는 '공범자들'을 추석 특선 영화로 볼 수도 있다면 좋겠고요.

-베스트 셀러가 된 책이 '영어책 한권 외워 봤니'입니다. 통역은 참 쉽지 않은 업인데, 독학으로 통역대학원에 가는 게 정말 가능한가요?

=가능해요. 그때에는 제가 어학연수는 커녕 회화 학원도 안 다니고 그냥 책을 외워가지고 통대에 들어갔어요. 저는 해외파도, 외교관 자녀나 교포도 아니었고 심지어 공대 출신의 회사원이었어요. 생각보다 이 책을 좋아해주신 분들이 많아요. 제가 페북 라이브를 할 때 제 책 독자들이, 친구가 되어서 페북에 여러분 계셨어요. 올 1월만 해도 제가 이렇게 페이스북 친구가 많고 그렇지 않았거든요. 제 책을 본 독자들이 들어와서 책 잘봤어요, 영어책 외우고 있어요, 댓글 남기고 이럴 때였죠.

-"김장겸은 물러나라!" 페이스북 라이브 영상은 계산을 한 연출로 만들어진 것인가요? 그 페이스북 라이브 영상을 MBC 노조 조합원들이 이어받아 상암동 사옥에서 각자 "김장겸은 물러나라!"며 외치는 모습이 잘 만들어진 주제가 제시되고, 이어지는 변주곡들을 듣는 것처럼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더군요. 인상 깊은 장면으로 남아 있습니다.

=페이스북 영상의 첫 대사가 "어떻게 드라마 피디가 영어 공부법에 대해 책 쓸 생각을 했느냐." 이렇게 시작해요. 저는 영어 공부법에 책을 쓴 게 아니라, 매일 쓰고 싶은 글을 썼는데 그게 어쩌다 보니 책이 된 거고, 지금 이 순간 진짜 말하고 싶은 건 하면서 사장님이 물러나는 거라고, 그렇게 말하고요. 그 영상이 빵 터지는 거 보고 저도 되게 놀랐어요. 그래서 1회적으로 페이스북 라이브로 하고 끝난 게 아니라, 나중에 올린거에요. 영상 중간에 이미 좋아요와 댓글이 막 올라오는 거 보고요. 정말 이렇게 화제가 될 줄 몰랐어요. 그 영상 안에서의 제 대본은 계산을 했지만, 그 영상 이후의 파장은 사실 계산을 못 했어요. 그게 최승호 선배의 '공범자들'에 들어갈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고요. 피디 저널에 몇 년 간 칼럼을 연재했으니까, 제가 책이 나왔다고 1월에 인터뷰를 했어요. 그 1월만 하더라도, 탄핵되기 한참 전이고, 탄핵까지 갈까 말까 대선이 되면 누가 되지? 또 반기문이 되나? 이럴 때인데, 1월에 저는 솔직히 말해 책이 나왔으니 베스트셀러가 되면 좋겠다. 사람들이 궁금해 했으면 좋겠다. 그런 바람은 있었죠. 드라마 피디인데 왜 드라마는 안 만들고 영어책을 쓰고 있을까? 그 사연이 뭘까? 궁금해 하면 좋겠다 싶어서 인터뷰를 했어요. 이 안에서 내가 아무리 발언을 해도, 발언이 안 먹히더라도 뭐든 하고 싶었어요. 제가 피디저널과 뉴스타파에 아무리 글을 써도 사람들이 몇 년 간 다 몰라주고 공영방송 문제에 관심을 영 안 갖고, 이게 안 먹혔어요. 그럼 내가 사람들에게 좀 더 재미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제가 50년 가까이 평생을 살아오면서 한 것 중에, 사람들이 가장 솔깃할만한 것이 뭘까? 하다보니 20대에 독학으로 영어 공부를 해가지고, 통역대학원 나온 거 사람들이 신기해 한다는 걸 깨달았죠.

-결국 SNS의 상호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특성이, 페북라이브 동영상을 만들어 낸 것이군요.

=왜 그렇게 반응이 왔을까 생각해보니까, 사람들이 이게 무거운 투쟁의 언어인 MBC 정상화 운동의 일부나 사장 퇴진 운동의 일부라고 여긴 게 아니라, 처음에는 영어책을 쓴 저자가 자기 책 이야기 하는 줄 알고 보기 시작한 거에요. 그러다가 갑자기 반전이 있고, 시위 영상으로 바뀌니까 그걸 좋아해주신 것 같아요. 저는 이후에 인사위 할때에도 진술서 55페이지 준비해갔고요. 기저귀 차고 들어가서 논스톱으로 계속 몇 시간이고 진술할 마음이 있었어요. 그 55페이지 다 읽으려면 한 5시간은 넉넉히 필요하고요. 거기에 페이스북 라이브로 하면서, 공유할 생각이었고요. 또 여기에 뭔가 반전이 있어야 할텐데 이번에는 뭘로 반전을 삼을까? 궁리를 해요. 뼛속까지 제가 연출가인가봐요.

-훌륭한 연출자들은 짤막한 영상을 찍을 때에도 남다른 실력을 발휘하시더군요. 지난 여름, 용산CGV 박찬욱 관 개관행사에 불참한 봉준호 감독이 직접 찍어보낸 축하영상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거장 감독은 그런 영상까지도 다 연출하고 계산을 하시는게 아닐까 싶었는데요. 파업 영상을 연출하면서 연출가로서 무엇을 가장 염두에 두셨나요?

=약간 강박이 있어요. 연출하는 사람으로서의 어쩔 수 없는 거, 저도 그건 있죠. 2012년 170일 파업할 때, 저의 MBC 프리덤을 가지고 시위하는, 파업 영상에 이렇게 멋지게, 원씬원컷으로 근사하게 찍은 거 처음이래요. MBC프리덤에서 저도 중간에 등장해서 춤을 춰요. 찍을 때, 제가 춤추다가 NG를 제일 많이 냈어요. 제가 연출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조합원들에게 무조건 웃으면서 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우울한 모습이거나, 슬퍼하거나 그럼 안된다고 했어요. 이거는 우리가 더 밝게 웃을수록 그걸 보는 사람들은 더 슬프다. 이 사람들 이렇게 힘든데 그걸 견디고, 버티면서 웃으면서 씩씩하게 명랑하게 싸우고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요. 슬픔과 좌절 앞에서 꼭 눈물과 통곡이 처참하게 등장할 필요는 없잖아요. 어차피 내면에서는 다들 많이 울고, 혼자있을때 통곡하고 싶은 사람들인데 우리가 모여서까지 그럴 필요는 없다고, 다 함께 연대하고 있는거고, 슬픔을 다 같이 나누어 지고 있는 거니까 눈물 대신 웃는 모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다들 제 부탁대로 정말 환하게 웃어줬어요. 그런데 사측에서 그게 얼마나 좋은 셀프 채증자료에요. 마지막에 한명 한명 얼굴을 다 비춰주니까 누가 얼마나 더 열심히 파업에 참여했는지 알 수 있는 자료가 된거죠. 'MBC 프리덤'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춤추고 노래한 사람들이 가장 강력한 징계를 받고 처절하게 유배를 가고 그랬어요. 그걸 알고 나니까....정말 미치겠더라고요. 제 트라우마로 남았어요.

프리덤찍을때 저는 진다라는 생각을 절대 안 했거든요. 질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싸우지 말아야 하고, 질 것이라고 의심하고 우려하는 사람이 나서면 안되는 거에요. 그럼 정말 지니까요. 저희는 진다고 생각하고 싸우지 않았어요. MBC 노조가 얼마나 강성이고 비리 앞에서 투명함을 요구하고, 위기때마다 농성으로 공영방송의 자부심과 정체성을 지킬 수 있도록 한 집단인데, 설마 지겠어? 라고 생각했어요. 채증 자료가 될 거라곤 생각 못하고 여기 안 나온 사람들이 오히려 후회할 것이라고, 그렇게 자신만만했어요. 안 나온 애들은, 유튜브 올리고 나서 만나면 다음에 저한테 2탄 언제 찍냐고 물어볼 정도였어요. 주위 친구들이 보고 전화하는 거죠. 너희 파업 영상 대박인데 너는 어딨어? 이랬으니까요. "선배, 다음에 언제 찍으세요? 저도 좀.." 이러길래 제가 오히려 "찍을 때 잘 나오지 어디갔었어?" 콧대 높게 이랬어요. 저는 연출가로서 파업하는 와중에도 제대로, 완성도 있게 만들었다는 그런 자신감이 있었고, 이런 웰메이드 영상에 안 나오면 안나온 사람만 손해야. 그랬는데 거기 나온 사람들이 다 가시밭길을 걷는 걸 보면서 가슴이 자주 무너졌어요. 그래서 다짐을 하나 했어요. 다음에 내가 만약 시위영상을 찍으면 무조건 셀카로, 혼자 나가겠다. 저 말고는 누구도 안 나오게 하겠다고 생각했어요. 영상 속에 저만 나오면 이후에 문제가 되고 징계가 되더라도 혼자 다 뒤집어 쓰면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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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철 전 MBC 사장이 '공범자들'의 주역 중 한 사람입니다. 어떻게 지역 MBC 사장이자 대선 후보의 언론특보였던 그가 전체 MBC 수장이 될 수 있었을지 의문인데요. 극이 진행될수록 정말 놀랍더군요. 170일 파업 당시 밝혀졌던 사실들도 그렇고요.

=어떤 사람은 김재철의 치부를 공격하기 위해 사생활을 이야기하거나, 하면 그 상대방이 길거리 가다가 사고 당한 것처럼 개인의 사생활을 끌어들이는 거라고도 이야기했어요. 우리가 그렇게까지는 싸우지 말자고요. 2012년에 당시 노조가 법인카드 사용내역을 추적해서, 정명자씨랑 데이트한 코스가 지도처럼 나왔잖아요. 또 정명자씨를 주연 겸 제작자로 말도 안되는 공연을 올리면서 그 제작비 하며, 기막히죠. MBC 사장에게 주어진 권력이 철저하게 사적인 방식으로 이용당했어요. 완전히 막장 드라마잖아요. 김재철이랑 싸우면서도 힘들었어요. 이 정도면 나가겠구나, 할 때마다 안 나가더라고요. 나중에 생각해보니까 그도 불쌍했던 게 이명박이 못 나가게 한 거니까요. 나가고 싶다고 나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던 거죠. 김재철도 김장겸도 사장이 되어서는 안 되는데 사장이 된거에요. 이명박근혜 시대의 특징이에요. 김재철 사장이 했던 이야기가 있어요. 인사를 뽑는데 정말 어디서 듣도보도 못한 이상한 사람들만 본부장을 뽑는 거에요. 다른 부서에서는 그런 사람이 있었어? 싶을 정도로 눈에 띄지 않는 그런 사람이 자리를 꿰차는 거죠. 김재철이 그랬어요. "나는 쓰레기 재활용하는 사람이다. 쓰레기장에서 보석을 찾는 사람이다" 말이 안되는 이야기에요. 원석을 연마해 보석으로 만들겠다도 아니고, 쓰레기장에서 찾아낸 건 쓰레기의 일부일 뿐이에요. 보석은 보석파는 곳에 고이 모셔져 있지, 쓰레기가 보석일 수가 없어요. 김재철 그 자신이 이명박에게 그런 존재였죠. 엄기영 전 사장만 해도 전국민이 그 얼굴을 익숙하게 다 아는, MBC 뉴스데스크 앵커 출신에, MBC를 대표하는 얼굴이었어요. 김재철은 아무리 봐도 사장감이 아닌데, 사장 시켜주니까 이명박에게 충성을 다 했어요. 같은 방식으로 그가 인사를 했죠. 국장이나 보도 본부장 될 만한 사람, 능력있는 사람으로 뽑아주면 자기 잘나서 된 줄 알고, 고마운 줄 모르고 충성할 줄 모른다는 거에요.

-능력이 아닌 충성을 할 사람을 기준으로 인사를 했다니, 수 세기 전으로 회귀한 기분이 듭니다.

=현대사회에서, 개개인이 능력을 최대치로 발휘해야 하는 방송국에서, 윗사람에게 고마워하고 충성하는 게 가장 우선되어야 할 가치인가요? 아니죠. 능력 있는 사람이 그 자리에 가서 보도의 방향을 정하고, 좋은 뉴스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걸 못하게 구조적으로 막았어요. 그 '충성'을 받아보려고요. 김장겸이 사장이 된 가장 큰 이유는 170일 파업 때문이기도 해요. 보통은 파업을 30-40일 하면, 안에서 남아서 방송을 지키는 선배들이 있어요. 근데 그쪽 사람들은 저편이라서 지키는 게 아니라, 젊은 너희들은 조합원이고 노조 활동하고 하니까 나가서 싸워라, 우린 그래도 방송을 지키겠다. 익숙한 대로 하겠다, 그런 거죠. 그 사람들이 후배들 파업하는데, 지켜보고 자기들끼리 어떻게든 방송을 지속하다가 나중에 후배들이 돌아가면 술도, 밥도 사주고 그래요. 그 사람들은 어떻게든 방송을 지속해야 한다고 생각해 버티고, 그 사람들을 저희는 미워하지도 않고, 그들대로 역할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170일이나 해버리니까, 보통의 패턴이 작동 안 했어요. 대략 30일쯤 파업하다가 저희가 다시 업무에 복귀하면, 그런 분들이 이렇게 말해요. 야, 나 내려가려고 했는데 벌써 끝났네? 야, 내가 너 3주까지는 방송 막다가, 이제 막 파업하러 방송 내려놓고 가려고 했는데 이제 올라왔네? 이렇게 나와요. 저희도 그냥 뭐 받아주고요. 그런데 170일을 싸웠으니까 "나도 이제 막 내려가서 싸우려고 했는데 말야. 파업이 끝나버렸네?" 이게 안 되는 거에요. 그러니까 보통 그런 멘트를 하던 선배들 중에 양심이 있는 사람들은 추이를 지켜보다가 3개월쯤에 다 내려와 같이 싸웠어요.

170일 파업을 하고 나서 보니까, 끝까지 남은 건 김장겸 같은 사람들밖에 없었던 거에요. 정말 괜찮은, 일 잘하는 능력 있는 사람들은 이미 다 파업에 참여해버렸죠. 그들이 극렬한 좌파라서 자신의 신념이 대단해서 내려와서 싸우고 이런 게 아니라, 6개월 간을 싸우다 중간에 김재철의 여자문제와, 법인카드 개인적으로 사용한 내역 등이 나오니까 정말 그때는 확 치밀어 올랐을 거에요. 우리의 MBC, 우리가 자부심을 갖고 사랑하는 그 이름, 우리의 젊음과 꿈과 삶을 바친 그 이름에, 3년 짜리 사장이 법인카드 긋고 다니면서 한 걸 보세요. 오물세례를 받은 기분이 그랬을까요.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죠. 안에 남아서 일을 하던 선배들도 그래도 이건 아니지, 이런 상황에서 내가 이런 사장 밑에서 뉴스 만드는게 무슨 의미가 있나? 당장 사장 바뀌어야 한다, 나도 후배들이랑 파업하러 갈래.하고 내려온 거에요. 이런 사람들이 늘어나다보니까 끝까지 파업 참여 안하고 남은 사람들은 정말 저쪽에 충성하는 사람들이었어요. 그들은 170일이 지나도록 끝내 자리를 지켰어요. 2013년 박근혜 정권이 들어서고 나서 보니, MBC에서 170일 파업에 참여 안하고 저 편에 끝까지 남은 사람들은 김장겸을 비롯한 극히 소수에 불과했고, 그 안에서 주요 인사를 하다보니까 주요 보직에 올릴 사람은 김장겸 뿐이었던 거에요. 그만큼 김장겸이 우리 MBC내부에서 가장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해요. 끝까지 우리의 170일 파업에 동참하지 않았고, 그에 대한 보상으로 주어진 권력이자 사장자리에요.

-무능한 개인이 마음속에 이토록 강렬한 권력욕을 가지고, 오랫동안 준비하다가 그게 시대와 조응해 성공 가도를 탈 수 있었다는 게 신기한데요.

=김장겸 사장에 대해 재미있는 일화가 있어요. 동료 중에 한 명이 수년 전인데, 김장겸 당시 기자에게 저도 골프 한번 같이 쳐요. 그랬는데, 그가 수첩을 꺼내 일정을 보는데 대화하던 시점이 4월인데 주말마다 약속이 빼곡하더래요. 그러면서 9월이 시간이 된다, 우리 9월에 갈래? 그랬다는 거에요. 김장겸은 기자로서 리포트를 하고 기사를 쓰고 이게 중요했던 게 아니라 주말마다 국회의원들이나 기업인들 만나서 주말마다 골프를 치기 바빴고 그래서 20년 경력을 돌이켜 보면 월평균 기사 개수가 2.2개인가 그래요. 그렇게 열심히 주말마다 골프는 치는데, 과연 리포트를 할 에너지가 남을까요? 이분은 기자로서의 본령은 이미 무시하고, 오랫동안 정치적 커넥션과 네트워킹을 구축하는데 아주 오랫동안 집중해왔어요. 리포트를 열심히 하고, 방송 기자로서 뭔가 성과를 내는 게 애초에 목적이 아니었다는 거죠.

-마봉춘 세탁소를 보니, "O형은 소고기 먹어도 살 안 찐다"는 헤드라인의 생활 밀착형 리포트였습니다. 매달 2.2개라는 리포트 횟수도 다른 방송기자분들께 여쭤보니 아주 격렬하게 일 안하기로 마음 먹어야만 가능한 횟수라고요.

=저는 그런 내용을 이해할 수 있어요. 왜 이해할 수 있냐면, 그 분은 자신의 행보에 딱 맞는 무척 정치적인 뉴스를 하고 싶었던 거에요. 만약 기업을 상대로 하는 리포트나 혹은 국회의원을 상대로 뭔가 진실을 밝히려고 덤비면, 적을 만들 수가 있어요. "O형 소고기" 이런 기사 쓰면 적이 생길 리가 없죠. 논란이 될만한 건 애초에 피했던 거에요.

-이런 사람이 방송국 사장자리까지 올라갔다는 건데요. 제도적인 장치로 미리 걸러낼 방법은 없었을까요?

=그게 이명박근혜 시대를 지나오면서 우리가 겪은 슬픈 현실이에요. '공범자들' 관객과의 대화 할 때마다, 당신들이 MBC가 정말 괜찮은 조직이라고 하는데, 제도적 문제가 있는 거 아니냐고 질문이 나와요. 지난 20년 넘게 회사 다니면서 그리고 제 선배들도 저는 특별히 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느끼지 않고 방송 잘 만들었어요. 다만 어떤 사람이 그 자리에 오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거죠. 지난 몇 년의 세월이 정말 말도 안 되는 세월이었어요. 그리고 언론 장악하려고 했던 그 권력의 노력이, 다시 그들의 목을 겨누는 칼날이 되어 부메랑처럼 돌아간 거죠. 언론 장악해서 찬양하는 보도만 내보내고, 끝까지 권력을 누리고 부귀영화와 복록을 다 누릴 줄 알았는데 우리 시민들이 일어나서 촛불로서 문제있는 권력을 쫓아내 준 거에요. 저는 딴따라고, 드라마 연출하던 사람이라 사실 제도나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그건 이걸 연구하고 깊이 들여다봐 주는 사람들이 나서서 대안을 제시할 것도 같아요.

저는 무척 단순한 사람이에요. 저의 적은 오로지 김장겸, 한사람이거든요. 싸울 때 그렇게 적을 단순화 해서 싸우고 싶고요. 김장겸 하나만 보내면 우선 목표 달성하는거에요. 내부에 있는 많은 부역자들은 어떻게 되는 거냐고도 물어보세요. 경력기자들, 시용기자들 어떻게 해야 되냐고 물어보시는 분들도 많아요. 저는 적의 규모를 너무 크게 키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적은 오로지 김장겸 한 사람이고, 그 밑에 있는 사람들은 권력에, 힘에 자신들에게 이득이 되기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쫓아갔던 사람들이에요. 대단한 신념을 가지고, 그걸 추구하기 위해 김장겸 밑에서 그 일을 했던 사람은 없다고 봐요. 김장겸 한 사람만 끌어내릴 수 있다면 많은 게 해결되는 거고요. 김장겸도 박근혜라는 당시의 절대 권력을 보고 움직였던 사람이니까 지금 끈이 떨어진 신세고, 저는 우리가 끌어내릴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때까지 계속 싸울 거에요. 김장겸은 물러나라! 라고 외쳐서 유명해질 필요가 없는 사람을 유명하게 만드는 거 아니냐고도 하는데, 김장겸은 사람들이 MBC 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기를 원해요. 그 심리는 물건을 훔친 사람의 그것과 같아요. 도둑이 훔친 물건을 이렇게 숨겨서 잘 도망가고 있어요. 저기까지만 가면 되는데, 갑자기 알람이 울리기 시작하는거에요. 갑자기 촛불 시위가 시작되고, 대통령이 탄핵이 되고, 대선을 시작하면서 그렇게 판도가 바뀐거에요. 자기가 싹 털고 나갈때까지 가게 주인이 잠들어 있었어야 했는데, 갑자기 알람이 켜지고 사람들이 뭐야 뭐야, 쳐다보기 시작하는거죠. 지금 이 상황에서도 김장겸은 자기가 출구까지 이 훔친 장물을 잘 갖고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버티는 거에요. 자꾸 옆에 가서, 아저씨 이거 훔친 거 아니에요? 맞죠? 훔친 거 같은데? 말해주는 게 필요해요. 김장겸 사장에게 MBC는 지금 장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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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물은 물성을 지닌 것이라 그대로 보존이라도 되지만, MBC는 공영방송으로서 계속 끝없이 망가지는 중이라는 게 차이점으로 보입니다. 이제 뉴스도 녹화해서 내보낸다고 하니까요.

=도둑은 이미 알고 있어요. 지금 상태가 망가진 상태라는 것도요. 하지만 장물을 가게 주인이 회수하는 순간, 시간이야 좀 걸리더라도, 복원이 된다는 걸 아니까 끝까지 이걸 가지고 도망가려는 거고 주인 손에 안 주려고 하죠.

-김장겸이 이렇게 일을 안하고, 골프만 열심히 치러 다니던 기자였는데 보도국장, 보도본부장을 거쳐 승진에 승진을 거듭했다면, 공영방송의 미래를 한 인간의 양심에게만 맡기기에는 좀 어렵지 않을까요? 인간은 유혹에 약한 존재이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기 쉽습니다. '기자' 타이틀만 가지고 권력을 추구하며 딴짓을 하는 걸 막을 방법이 필요하지 않나요? '제 4의 권력'인 언론이 망가지지 않고 공영방송이 지켜질 수 있도록, 최후의 보루가 되어줄 제도적 보완이 이어져야 할 것 같은데요.

=이번 싸움이 끝나고 나면, 반민특위를 해야 해요. 반민족 행위자들에게 철저하게, 그 과오와 죄를 묻듯이, 그런 자리를 만들어야 해요. 좋은 게 좋은 거야 라면서 그냥 돌아가서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방송을 만들 수는 없어요. 우리가 지난 5년간 당한 걸 보복하고 갚아주겠다는 복수심이 아니에요. 저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진정한 협력이 가능해지려면 그 전에 관계를 정리하고 청산하고, 필요하다면 응징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과거의 일을 그냥 묻어두는 게 아니라 그것을 들여다보고 정리하는 과정이 필요해요. 철저히 과거를 반성하지 않고서 그냥 덮어두고 협력을 하는거? 그건 말도 안되고요. 이번 싸움이 우리 MBC에는 참 좋은 기회가 될 거에요. 지난 5년간 경험 때문에, 모두들 패배주의에 젖어 있어서 그냥 이대로 흘러갈 수도 있었어요. 외부에서 무언가를 해서, 정치쪽에서 먼저 언론개혁에 대해 칼을 빼들었을 수도 있고, 내년 8월에 방문진 이사의 임기가 다 하니까 그 시기를 기다리자는 말도 있었어요. 그때 방문진 이사도 바뀌고 사장도 어차피 임기가 있는 직책이니 기다리자고요. 저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싸움은 우리가 시작해야 하는거에요. MBC내부에서 투쟁하고, 정의와 개혁을 말하면서 이 불씨가 피어나야 하는거죠. 바깥에서 뭔가 해주기 만을 기다려서는 안되고요. 우리가 아무리 부서지더라도, 직접 온몸으로 부딪히면서 처절하게 싸우고 볼 일이에요. 그 다음에 승리하고 과거를 청산하고, MBC를 이렇게 망가트린 사람들을 응징하는 것까지 우리가 우리 손으로 직접 해야죠. 그래야 외부의 도움이 빛을 보는 것이지, 이걸 바깥에서 뭔가를 해주면 움직여보겠다고 하는 그런 수동적인 자세는 아니죠. 다행히 그래도 조합원들이 크게 싸움을 시작해줘서, 우리가 정상화가 될 것이라고 봅니다.

-돌아가면, 정상화가 되면 무엇을 가장 먼저 하고 싶으세요?

=세월호 유가족 분들을 위해 세월호에 대한 보도를 제대로 하고 싶어요. 인간으로서 겪을수 있는 가장 마음 아픈 일을 겪은 그분들에게 MBC와 KBS가 보여준 보도 행태를 돌이켜보면, 인간에게 행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죄를 저질렀다고 해도 할말이 없어요. 저희가 정상화가 되면 가장 먼저 그 진실을 밝혀드려야 해요. 권력에 붙어서 그 떨어지는 이득을 누려보려고 했던 사람들이 집요하게 그 권력을 지켜주기 위한 어마어마한 노력을 했어요. 이제 국정원의 MBC 문건도 나온 걸 보면, 이게 대단한 권력의 작전에 따라서 진행되어온 게 실체가 드러나고 있어요. 우리가 싸운다고 싸웠는데 지난 5년간 그 큰 힘을 가진 상대를 도저히 어떻게 해볼 수 없었던 것 같아요. 공영방송 정상화하면, 제대로 된 보도로, 그 진실을 밝혀드리고 싶어요. 그게 우리 본래 역할이니까요. 저에게 사람들이 정신적인 내상이 있는거 아니냐고, 이야기하다가 순식간에 눈물을 흘리고 그러니까 물어보시는데 힘든 것에 대해서는 가급적으로 이야기를 안하려고 해요. 제가 왜 밝은 모습으로 싸우고 싶냐면, 사람들이 노동조합 집행부라고 하면 선입견이 있어요. 정면에 나서서 싸우는 삶은 피폐하고 억울하고 힘들다, 이렇게 보시더라고요. 저는 그렇게 보이고 싶지가 않은 거에요. 나서서 싸우는 사람들이 저렇게 억울하고 힘들다고 보여지면 누가 감히 싸우려고 들겠어요? 저는 그래서 이 악물고 강하고 밝은 모습만 보여줬어요. 제가 외부에 의해서 드라마 연출을 못하게 된 건데, 그들에 의해서 내가 드라마 연출을 못하더라도, 내 삶이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려고 정말 오랫 동안 마음을 다스리고 많은 노력을 했어요. 싸운다는 건 사실 정말 힘들어요. 드라마를 연출하고 시트콤을 연출하는 건 정말 기쁘고 즐거운 일이고요. 저는 술, 담배, 커피, 골프, 각종 잡기를 하나도 안 하고요. 제 삶의 유일한 기쁨이자 위안이 코미디 연출인데요. 그걸 5년간 못했죠. 그 힘든 과정에서, 힘들다고 말하는 것보다는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했어요. 사실 놀아봤는데, 그게 나쁘지가 않은 거에요. (웃음) 책도 많이 읽고 베스트셀러도 쓰고, 이 좋은 휴식을 사장님께 권해드리고 싶은 거죠. 일벌레로 4-5년 사이에 정치부장부터 보도국장 보도본부장, 사장까지 초고속 승진하신 건데 이런 일 중독자에게 휴식을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세월호 전원구조 오보'는 과연 어떻게 가능했던 보도인지 아직도 그 내막을 알지 못합니다. 짐작 가시는 부분이 있다면요?

=정부에 불리한 보도를 안 하려고 하다가 세월호 전원구조 오보가 나온 거에요. 최근에 '권력과 언론'이란 저서를 썼고, 이유 없는 해직 이후 힘든 마음을 달래기 위해 대패질을 하다가 목공에 눈을 뜨고, 스피커까지 만든 박성제 선배랑 세월호에 대해 이야기를 해봤어요. MBC가 해직이 많은 이유는 시스템 탓인 것 같아요. 우리는 서울 중심 조직이고, 사실 어디 보내려고 해봐도 보낼 곳이 없어요. KBS는 울산이고 부산 보냈다가 그래도 되고, 3일 있다가 제주도 출근하라고 해버리면 되는데, MBC는 구조상 그럴 수가 없으니 스케이트장에 보내고 소품실에 보내는 거고 멀리 안 보이게 못 치워버리니까 자르는거죠. 박성제 기자가 세월호 오보에 대해서 말하기를, 기자 입장에서 현장에서, 지방에서 올라온 정보를 보통은 더 체크를 한다고 해요. 그런데 정부 쪽인 해경에서는 전원구조라는 소식이 왔고 저쪽 지방에서는 아직 학생들이 안에 있는 것같다고 하는데 이 둘 중에서 해경쪽 발표를 따르는 게 더 속 편하죠. 설령 해경 쪽 정보가 틀렸더라도 이게 정부의 공식입장이니까 기자에게 뭐라고 하지는 않을 거니까요. 정부가 발표한 것이고, 정부에 유리한 오보는 정부가 뭐라고 할 일이 없어요.

그런데 목포 MBC에서 올라온 내용을 아직 확인이 안 된 상태에서 선택하면, 오보일 경우에는 기자의 목이 날아갈 수가 있어요. 정부에 불리한 보도니까요. 원래 MBC가 그런 조직 문화가 아니었어요. 제가 아직도 PD 수첩에서 황우석 줄기세포 관련 보도를 했던 기억이 나요. 제가 그때 집에 와서 집사람한테 그랬어요. 어떤 경우든 우리 이제 망했다. 이 보도가 만약 맞으면, 우리는 국가적 영웅을 죽인 게 되고, 이 보도가 허위라면 우리가 국가적 영웅을 모함한 게 된다. 어느 쪽이든 이제 우린 망했다고요. MBC가 그때 많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고 국가적 손실을 감안하면서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소리내어 말하고 결국 밝혔 거든요. 그런데 세월호 보도에서 보이듯이, 이제 아래쪽에서 그 누가 진실을 이야기하더라도 덮어두고 정부를, 대통령을 청와대를 거스르지 않으려고 하는 체질로 정권의 입맛에 맞추기만 바쁜 방송으로 바뀌어버렸어요. 이게 지난 9년간 방송장악을 하려고 한 저들의 결실입니다. 그래서 나라가 망하기 일보 직전이 되고, 결국 정권의 목을 겨누는 비수가 되어 돌아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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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국에도 정권의 입김이 닿았던데, 어떻게 알게 되셨나요?

=정윤회 아들이 7번이나 MBC 드라마에 낙하산으로 출연할 때, 저희 후배 PD들은 정말 몰랐어요. 저는 이미 주조정실에 MD로 쫓겨나 있어서 드라마국 상황은 몰랐으니까요. 드라마국 후배들끼리 술마시다가 각자 털어놓다가 알게 된거에요. 본부장 부탁으로 누가 왔는데 아주 죽겠다, 어? 나도 본부장이 부탁하더라, 했는데 알고 보니 같은 사람이었던 거죠. 낙하산으로 올 때마다 그 핑계가 아주 다양했어요. 작가 혹은 제작사 대표 빽이다 등등 그때그때 다른 핑계를 대다가 나중에 알고보니 정윤회 전처 소생의 아들이었어요. 드라마 PD들이 이걸 오픈하려고 했어요. MBC 드라마국을 완전히 농단하는거니까. 한편 내부에서는 너무 부끄러우니 밝히지 말자는 목소리도 있었어요. 얘기하면 우리가 너무 창피하잖아요. 드라마 피디들이 겨우 정윤회 전처 소생 아들 출연에 반대도 못하고 다 굽혔으니까, 그 와중에 누가 먼저 그랬대요. 우리가 이대생들보다 용기가 없어? 정유라 부정입학은 사실 이대생들에게 부끄러운 일이잖아요. 이화여대의 수준이 그만큼 떨어졌다는 증거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릇된 일이라는 걸 알고 학생들이 그에 맞서고 세상에 밝혀냈어요.. 잘못된 일이 일어났을 때 내부에서 꼭 이런 목소리가 나와요. 이거 우리한테 쪽팔리는데, 굳이 밝혀야하냐고 말하죠. 그럴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옳지않음을 밝혀야 한다고 말해야 해요. 그 작은 한걸음이 세상을 바꾸는 거에요. 잠깐 쪽팔리는 걸 두려워하지 않고 진실을 밝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혹시 PD로서 차기작을 구상하신 게 있다면요? 지난 5년의 경험을 살려, 파업 이후에 연출자로 돌아가신다면 어둡고 묵직한 느와르로 이 사회의 병폐를 담아내는, 그런 드라마를 연출할 생각이 있나요?

=저는 코미디를 만드는 걸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고, 상업영화 마블스튜디오 영화의 팬이고 정말 즐기는 사람이에요. 제 주 종목은 그리고 제가 잘할 수 있는건 로맨틱 코미디니까 그런 연출로 돌아오고 싶어요. 물론 지금까지 겪은 것들, 제가 그리고 우리들이 상처입고 다친 건 엄연한 현실이죠. 그런 현실을 겪었지만, 우리가 웃으면서 "질기고 독하고 당당하게" 싸웠으니 돌아와 잘 회복된 모습일 수 있을 거라고 봐요. 다치고 훼손되었더라도 회복될 수 있는 거잖아요. 부상을 이겨낸 사람들은 더 강해져서 돌아오잖아요. 저는 우리 MBC가 그렇게 회복될 것이라고, 정상화 되고 다시 예전의 MBC로 돌아올 거라고 믿어요. 그 믿음이 없으면 이렇게 못 싸워요. 사람들이 TV를 보는 건 드라마에서 기대하는 건 환상이고 다른 세계이지 또 다른 현실의 반복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는 계속 판타지를 충족시켜주는 그런 드라마 피디로, 사랑스럽고 웃음넘쳐나는 로맨틱 코미디로 제 연출작들을 채워나갈 생각이에요. '뉴 논스톱'이나 '내조의 여왕'에 이어지는 그런 작품을 만드는 PD로 돌아가고 싶어요.

영화요? 이번에 '공범자들'을 통해서 뉴미디어와 SNS가 해내지 못하는 걸 영화가 해낼 수 있다는 걸 직접 눈으로 봤어요. 어두컴컴한 영화관에 1시간 40분 동안 사람들을 가둬놓고 보여주면 그동안 스마트폰도 못보고 그러니까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집중하게 되고요. 관객들이 그제서야 9년 동안 우리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이해하신 거죠. 우리가 그렇게 싸워오는 동안에는 다들 모르셨고 무관심 하셨는데, '공범자들'을 통해 영화라는 장르의 힘과 특성 때문에 이제서야 알아주시는 거에요. 페이스북 영상이나 유튜브 영상, 제가 만든 'MBC 프리덤' 포함해 이런 영상들이 그동안 우리편에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 힘을 모으고, 으쌰으쌰 하면서 공유하는 것이었다면, 저 쪽에 있는 무관심한 사람들도 한번에 끌어들이는 데는, 영화만한 장르가 없는 것 같아요. 그 강력한 힘에 대해서는 정말 놀랐어요. 원래 꿈이 영화감독이었으니 만에 하나라도 영화를 연출하는 기회가 생길지 모르죠. 머지 않아 드라마 연출로 돌아올 거에요. 그 때가 되면 연출자로서 MBC 이야기말고 제 작품에 대해 말하고 싶습니다.

-지금 파업이 상당히 진행되었습니다. 전망은 어떻게 하고 계신가요?

=희망적인건 우리가 해고무효소송 1심과 2심에서 모두 이겼고, 대법원이 정말 5년이 넘도록 이 판결을 지지부진 끌고 있는데, 판결이 나오면, 2심에서의 판결을 인용만 해주면 해직자들도 돌아와서 같이 싸울 수 있을거에요. 우리가 170일 파업을 한 것도 합법이라고 인정을 받게 됩니다. 그럼 사측에서 저지른 많은 불법행위와 과오가 법적으로 노동법에 위반되는 행위라는 것을 법원 판결로 인정받는 거고요. 대법원도 정권이 바뀌고 나서는 전폭적으로 달라지고 있으니, 저는 희망적으로 생각해요. 제가 파업을 지금 해야 한다고 조급해 했던 건, 제가 일했던 TV 주조정실에 이근행 선배가 있었어요. 일찌감치 해고되었다가 복직이 되었는데, '공범자들'에서 이사회에 맞서서 소년장수같이 어깨 펴고 기개 있게 이야기하는 그 분이에요. 복직된 이후 DMB 주조정실에서 저랑 같이 있었어요. 제가 같이 있으면서 그분을 보고 회사 정상화가 되고 복직이 되어야지, 회사는 그대로인데 대법원 판결이 나와서 복직이 이뤄지면 안된다는 생각을 했어요. 최승호, 박성제 선배 모두 돌아와서도 스케이트장 관리를 할수도 있겠더라고요.

해직이라는게 말이 쉽지 지금 5년간 그 시간을 견디고 있는 거잖아요. 저는 이 선배들이 돌아오기 전에, 우리가 먼저 싸워서 김장겸을 쫓아내는 게 먼저라고 생각해요. 쫓아내고, 해직된 선배들을 맞이하고 싶어요. 만약 김장겸 사장이 버티면, 그 끝이 안 좋을 거라서 제가 미리 먼저 나가게 해드리려는 거에요. 최승호, 박성제 선배가 복직을 하면 파업을 하고있는 상태에서 복직을 해서 조합원들을 이끄는 거니까 그 전투력이 어마어마 할 거에요. 저 같은 딴따라랑은 비교도 안되고요. 파업 안 하고 있으면, 발령을 내면 되지만 전 조합원이 파업을 하는 이 시점이라면 우리 조합원들과 함께 정말 미친듯이 싸울 거에요. 또 하나 바람은요. 용마가 몸은 불편하지만 복직이 되어 "나 이제 기자로 돌아가겠다. 보도국 문 열어라." 이럼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요. 이 친구가 진짜 혁명가인데, 돌아온다고 생각해 보면 그때의 싸움은 정말 또 다른 차원이 되겠죠. 용마는 정말 우리 MBC 파업의 상징같은 존재로, 그렇게 돌아올 거에요. 그 전에 저도 최선을 다해서 싸울 거에요. 용마가, 최승호와 박성제 선배가 돌아오기 전에 김장겸 사장 쫓아내고 싶거든요. 전국의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조연배우인데 주연배우처럼 '공범자들' 관객과의 대화 시간 갖는거, 나이 50에 노래하고 춤추고, 랩하는 거, 무대에 서는 거, 목소리 내는 거 조금도 어렵지 않아요. 저는 지치지 않고 밝고 씩씩하게 싸울 겁니다. 이길 때까지 계속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