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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비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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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0년 10월 고려의 충렬왕은 원나라 황제 성종(成宗)에게 표문(表文)을 올린다. 내용은 노비 제도에 관한 것이었다. 당시 원나라의 고려 통치기구였던 정동행성(征東行省)의 평장사(平章事) 고리기스(闊里吉思)가 고려의 노비제도를 개혁하려 했는데, 충렬왕은 이에 대해 반대했던 것이다.

고리기스는 고려의 노비법을 원나라의 노비법으로 고칠 것을 요구했다. 고려의 노비법은 부·모 한 쪽이 노비면 그 자손은 영원히 노비가 되었다. 이에 반해 원의 노비법은 부·모 한쪽이 양민이면 그 자손은 양민이 되었다. 노비제란 것 자체가 출생 때부터 인간을 차별하는 근본적으로 사악한 제도지만, 그래도 원나라의 것이 고려의 것보다는 관대하다고 하겠다.

고려·조선시대는 노비제 사회였다

충렬왕은 무슨 근거로 원나라의 제도를 반대했던가. 그는 고려의 노비는 원래 종자가 다르니 그들을 절대 양민(良民)으로 만들지 말라고 했다는 태조 왕건의 유훈을 반대의 이유로 들었다. 만약 노비를 양민으로 만들어 주면, 그들이 벼슬을 할 것이고, 요직에 오르면 국가를 어지럽힐 계책을 꾸밀 것이라고 왕건이 말했기 때문에 자신은 그 유훈을 따라서 결코 노비제도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이었다.

충렬왕은 이어 고려의 노비제도의 실상에 관해 소상히 언급한다. 그 내용은 실로 끔찍하다. 호적상 8대 조상에 이르기까지 천류(賤類, 노비)와 아무런 관계가 없어야 비로소 벼슬길에 오를 수 있고, 만약 부·모 중 한 사람이 노비라면 자식은 당연히 노비가 되며, 주인이 만약 노비를 해방시켜 양민으로 만들어 주었다 해도 그 자신만 양민일 뿐, 그의 자식은 다시 노비가 된다. 또 노비의 주인이 죽었을 경우라 하더라도 그 주인의 일족이 다시 노비의 주인이 된다. 요컨대 한 번 노비로 떨어지면 그와 그 자손은 영원히, 세상이 끝날 때까지 노비다.

조선의 노비제도는 고려의 제도를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다. 조선 초기에 약간의 논란 과정을 거쳐 노비제는 어머니의 신분을 따르는 종모법(從母法)으로 확정된다. 어머니가 노비이면 그 자식은 자동적으로 노비가 되는 것이다. 양민 이상의 여성과 노비 남성 사이에서 자식이 난다면 그 자식은 양민이 되겠지만, 현실에서 그런 경우는 흔치 않았다. 따라서 노비제에서 종모법은 아버지의 신분에 상관없이 노비제를 계속 유지하게 하는 지극히 사악한 제도였다. 아비가 정승 판서라 해도 어미가 노비라면, 자식은 당연히 노비가 되었다. 물론 끗발 있는 아비가 속량(贖良)해 주면 노비에서 벗어나지만, 그는 서얼로 낙인이 찍혀 또 다른 차별과 천대의 대상이 되었으니, 그 역시 불행한 삶이었다.

전근대 사회에서 노비제를 포함하지 않는 신분제는 있을 수 없다. 신분제는 곧 노비제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조선시대 노비는 전체 인구 중 얼마나 되었을까 조선 중기의 경우 대체로 전인구의 30~50%를 차지했다고 한다. 노비 비율이 이 정도에 이른다면, 조선사회는 노비제 사회인 것이다. 다른 말로 노예제사회다.

우리는 미국 남북전쟁의 한 꼬투리가 된 노예제를 천하에 몹쓸 제도로 비판한다. 『엉클 톰스 캐빈』과 같은 소설, 『뿌리』와 같은 소설·드라마, 『노예 12년』와 같은 영화, 그리고 현재진행형인 미국의 흑백갈등 등에서 얻은 판단인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돌아보면 우리의 역사, 그것도 가까운 조선 사족체제가 노비(노예)의 노동력의 수탈함으로써 성립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다.

내 신체와 시간은 누구의 것인가

노비란 무엇인가. 자신의 신체와 자신의 시간을 자신의 의지에 따라 자유롭게 사용할 권리가 없는 인간이 노비다. 노비의 신체는 주인의 것이고, 그의 시간 역시 주인의 것이다. 요컨대 노비는 주체 없는 존재다. 자문해 본다. 나는 나의 신체와 시간을 나의 의지대로 어느 정도 사용할 수 있는가.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내 스스로의 생각과 판단, 기호에 하루 동안, 한 달 동안, 한 해 동안, 나아가 한평생 나의 신체와 시간을 얼마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가 말이다.

충렬왕이 노비제도의 개혁에 반대한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남의 신체와 시간을 제 것처럼 사용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그들의 노동력을 남김없이 수탈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 교육부 관료가 한국도 이제 신분이 나뉘어 바뀔 리 없으니, 신분제를 인정하자는 취지로 말했다 한다. 그와 그가 대변하고 있는 자들의 내밀한 욕망 역시 충렬왕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

* 이 글은 다산연구소 홈페이지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