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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레의 정글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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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의 이름을 아흐메트(27)라고 했다. 국적은 수단. 대학에서 엔지니어링을 전공했다는 아흐메트는 5개월 전 수단을 떠났다. 리비아를 거쳐 밀항선을 타고 지중해를 건넜다. 이탈리아로 몰래 들어간 그는 한 달 전 프랑스 북부의 항구 도시 칼레에 도착했다.

아마드(23)의 고향은 아프가니스탄 쿤두즈. 전쟁의 공포와 탈레반의 횡포에 시달리다 2년 전 단신으로 집을 나섰다. 이란·터키·그리스·불가리아·세르비아·헝가리·오스트리아·독일 등 8개국을 도보로 통과하는 천신만고의 오디세이 끝에 6개월 전 칼레에 왔다.

일명 '정글(Jungle)'로 불리는 칼레의 자생적 난민촌에서 만난 두 사람의 공통점은 영국행을 원한다는 점. 아흐메트는 칼레에서 영국 도버로 건너가기 위해 6번의 무모한 시도를 했다. 페리 선박이나 해저 열차에 실려 영국으로 가는 화물트럭의 짐칸에 몰래 숨었지만 4번은 탐지견에게, 2번은 X선 투시에 걸려 모두 실패했다. 영국행의 꿈을 이룰 때까지 두 사람은 칼레를 떠나지 않을 작정이다.

칼레 도심에서 북동부 해변 쪽으로 7㎞쯤 가면 '슈맹 데 뒨(Chemin des Dunes)'에 이르게 된다. 잡목과 수풀 사이로 거대한 판자촌이 보이고 입구에는 수십 대의 프랑스 경찰 차량이 줄지어 있다. 무전기를 든 경찰들이 난민촌을 드나드는 사람과 차량을 일일이 체크한다. 비포장 도로 옆으로 늘어선 각양각색의 가건물과 크고 작은 텐트 사이로 초췌한 난민들의 모습이 보인다. 난민촌 입구의 가건물 벽에는 '우리는 단지 영국행을 원한다(We just want to go in England)'는 글귀가 쓰여 있다.

정글을 찾은 지난 10일, 난민촌은 전체적으로 평온한 모습이었다. 지난달 말 시작된 난민촌 강제철거 작업이 일시 중단되면서 경찰과 난민의 충돌도 소강 상태에 있었다. 프랑스 당국은 난민들에게 컨테이너를 개조해 만든 임시수용시설로 옮길 것을 종용하며 철거 작업을 강행했지만 난민들의 거센 저항에 부딪혀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4500명으로 추산되는 정글 내 난민 중 겨우 200여 명만 수용시설로 옮겼을 뿐이다. 프랑스 당국의 보호를 받게 되면 지문 등록과 함께 법적 처리 절차에 들어가기 때문에 영국행의 꿈은 더 멀어질 수 있다. 차갑고 축축한 땅바닥에 몸을 누이고, 2주에 한 번 샤워를 하는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그들이 정글을 떠나지 않는 이유다.

난민들의 국적은 다양하다. 수단·소말리아·에리트레아 같은 북아프리카 출신에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방글라데시 등 서남아시아 출신, 시리아와 이라크, 쿠르드 난민들이 뒤섞여 있다. 이들이 영국행을 원하는 첫째 이유는 언어였다. 대부분이 영어 외에는 외국어를 한마디도 못했다. 영국에 친척이나 친지 등 연고가 있다는 이유도 있었고 영국의 경제 사정이 프랑스보다 낫다는 이유도 있었다. 프랑스의 실업률은 10%가 넘는 데 비해 영국은 5% 선이다.

하지만 영국은 난민 유입을 철저히 막고 있다. 영·프랑스 간 협정에 따라 칼레 쪽 단속 책임은 프랑스가 맡고 있다. 난민은 몰리는데 도버로 가는 통로는 막히다 보니 그 피해는 고스란히 칼레 시당국과 시민들 몫이 되고 있다.

칼레 시내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마리안 카피텐(60)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며 "난민들로 인한 부정적 이미지 때문에 외지 손님이 줄어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입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매출이 30% 이상 줄었다고 한다. 영국과 유럽 대륙을 오가는 관광객들로 북적이던 칼레가 난민 사태로 된서리를 맞은 셈이다. 칼레 시민들은 중앙정부에 대책을 요구하며 파리로 몰려가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정글에는 시리아나 아프간 난민처럼 유엔 협약이 정한 난민 기준에 부합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단순한 불법 이민자도 많다. 하지만 내전이나 전쟁 같은 눈에 보이는 위기만 위기인 것은 아니다. 빈곤·기아·가뭄·사막화 때문에 도저히 살길이 막막해 다른 곳을 찾아 떠나는 대량 이주 현상도 위기다. 칼레의 정글은 분쟁과 빈곤, 환경 재앙이 낳은 글로벌 위기의 축소판이다. 굳이 그 책임을 따지자면 이 세상을 약육강식과 빈익빈 부익부의 정글로 만든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연민과 이성으로 국제사회가 함께 대처할 수밖에 없다.

칼레 시청 앞에는 '6명의 부르주아 기념상'이 서 있다. 1347년 영국에 포위된 칼레의 시민들을 구하기 위해 칼레에서 가장 부유한 6명이 자진해서 목숨을 내놓은 것을 기리기 위해 1895년 로댕이 만든 청동상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이다. 그걸 보면서 지구촌의 난제가 된 난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래도 누가 먼저 발벗고 나서야 하는지 생각했다.

<프랑스 칼레에서>


calais

4일 프랑스 칼레 인근 난민촌에 무슬림 난민들이 기도를 하기 위해 모여 있다.

* 이 글은 중앙일보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