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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대표께 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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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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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중한 시기에 제1야당 대표를 맡아 얼마나 노고가 크십니까. 국가 안위가 경각에 달린 상황에서 책임 있는 야당 역할을 한다는 게 결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고민이 많고 깊을 줄 압니다. 어제 국회에 복귀한 것도 그런 고민의 결과라고 봅니다.

홍 대표가 지휘하는 자유한국당은 지난 주말 '5000만 핵인질, 공영방송 장악 저지 대국민 보고대회'란 이름으로 서울 강남에서 대규모 거리 집회를 열었습니다. 꽤 많은 사람이 모였습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최대 규모 반정부 집회란 말도 나왔습니다. 귀하는 페이스북에 "10만 명이 모였다"면서 참가 인원을 추산하지 않은 경찰과 보도하지 않은 언론을 질타하는 글을 올렸습니다. "이게 대한민국 언론과 경찰의 현주소"라고 개탄하기도 했습니다.

촛불 시위 때와 비교하면 홍 대표의 불만도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닙니다. 당시 언론은 주최 측이 제시하는 참가자 숫자를 그대로 전달하기에 바빴습니다. 경찰도 집회 때마다 참가 인원을 추산해 발표했습니다. 그랬던 언론과 경찰이 정권이 바뀌었다고 안면을 싹 바꾸니 화가 날 만도 합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입니다.

그날 행사에는 집회 취지에 공감해 나온 사람들도 있었지만 태극기를 흔들며 박근혜 전 대통령의 즉각 석방을 외치기 위해 나온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한국당이 헌법 질서를 무시하고 초법적 요구를 하는 사람들까지 포용하는 극우보수 정당이라면 모르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참가자 수에 연연할 건 아니라고 봅니다. 한국당 지지자들과 '태극기 세력'이 뒤섞인 상황에서 참가 인원을 보도하는 게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언론도 있었을 것입니다.

집회 참가자 수에 집착하는 홍 대표께 저는 되레 묻고 싶습니다. 홍 대표께는 나라가 우선입니까, 당이 우선입니까. 집에 불이 났다면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불부터 끄는 것이 정상입니다. 홍 대표 표현대로 북한 핵에 '인질'로 잡혀 있는 5000만 국민의 불안감을 생각한다면 거리에 모여 세(勢) 과시를 하기보다 초당적으로 대처하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는 게 책임 있는 야당 지도자의 역할이자 도리 아닐까요. 참가자 수를 밝히지 않았다고 언론과 경찰에 역정을 내는 홍 대표의 태도는 국가의 위기조차 당리당략의 기회로 삼는 얄팍한 계산속 말고는 달리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MBC 사장에 대한 체포영장 발부를 홍 대표는 등원 거부와 장외투쟁의 명분으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국민이 보기에는 초록이 동색입니다. 한국당 전신인 한나라당과 새누리당 시절 익히 본 장면입니다. 권력의 외압으로부터 공영방송을 지키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공영방송을 장악한 잘못부터 먼저 반성하고 사죄했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런 잘못을 했는데 그 잘못을 새 정부도 똑같이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식으로 나왔다면 국민의 공감을 얻을 수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핵을 가진 북한이란 공동의 적 앞에서 동맹국인 한국과 미국이 똘똘 뭉치고, 여야가 똘똘 뭉칠 때입니다. 적전(敵前) 분열의 모습을 보여선 안 될 때입니다. 함께 힘을 모으고, 지혜를 짜내도 모자랄 판에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정부를 '디스' 하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유화적 대화'라고 조롱하는 모욕적인 트윗을 날리는가 하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 검토를 지시하기도 했습니다. 앞뒤 안 가리고 마구 질러 대는 철부지 같은 트럼프의 언행에 생각 있는 미국인들도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홍 대표는 한·미 공조에 찬물을 끼얹는 트럼프를 비판하기는커녕 오히려 문 대통령을 나무라고 있습니다. 단합이 필요한 위기 상황에서 동맹국을 비난하는 트럼프도 문제이지만 그런 트럼프에게 동조해 자국 대통령을 비판하는 홍 대표는 더 큰 문제입니다. 한·미 동맹을 이간하고 남남 갈등을 유발하는 김정은의 계략에 말려 드는 자살골 아닙니까.

문재인 정부의 북핵 대응에 대해서는 저도 걱정이 많습니다. 그래서 홍 대표께 당부합니다. 밖에서 손가락질하지 마시고, 직접 문 대통령을 만나 담판을 하십시오. 잘못을 지적하고, 전술핵 재배치든, 핵무장이든 제대로 된 대안을 갖고 문 대통령을 설득하십시오.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숙의해 만든 결론으로 국민을 안심시켜 주십시오. 지금 국민은 당보다 나라를 먼저 생각하는 어른스러운 모습을 홍 대표께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나라를 위한 길이고, 국민의 마음을 얻는 길입니다. 당을 위한 길이기도 합니다. 홍 대표의 활약을 기대하겠습니다.

* 이 글은 중앙일보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