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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산 전망대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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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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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사람들이 제게 묻습니다. 불안하지 않냐고. 제가 사는 곳이 어딘지 알고 하는 질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경기도 고양시 주민입니다. '접경지역 지원 특별법'에 따라 접경지역으로 분류돼 있는 곳입니다. 제 대답은 늘 똑같습니다. '소이부답(笑而不答)'이 제 대답입니다. 애매한 미소로 답을 대신합니다.

옛날 옛적 중국 시인 이백(李白)은 '어인 일로 푸른 산에 사느냐(何事棲碧山)'는 질문에 '소이부답'하니 '마음이 스스로 한가롭다(心自閑)'고 했지만 제 마음은 그렇지 못합니다. 때론 심란한 게 사실입니다. 차로 20분만 가면 북한 땅이 보이고, 30분을 달리면 비무장지대가 나타나는 곳에 살고 있으니 말입니다.

지난 주말 북한이 또 '사고'를 쳤습니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2차 시험발사를 강행했습니다. 이달 초 실시한 1차 때와 비교해 성능이 한층 개선됐다고 합니다. 정상 각도로 발사하면 미국 대부분이 사정권에 들어간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한반도 위기설'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청와대가 '오보'라고 부인하긴 했지만 독자적으로 북한 지휘부와 핵·미사일 시설을 정밀타격하는 시나리오를 마련하라고 대통령이 지시했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접경지역 주민들의 불안지수가 올라가고 있습니다.

그때마다 제가 종종 찾는 곳이 있습니다. 한강과 임진강의 합류 지점에 있는 오두산 통일전망대입니다. 집에서 20㎞ 남짓밖에 안 되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한달음에 달려갈 수 있습니다. 그제도 그곳에 갔습니다. 휴일이라 그런지 가족 단위 방문객이 많았습니다. 남북한에서 각각 발원한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의 망망대하(茫茫大河)는 언제 봐도 장관입니다.

해발 고도 118m의 오두산 전망대에 서면 북한 땅이 손에 잡힐 듯합니다. 전망대가 있는 경기도 파주시와 강 건너 황해북도 개풍군은 말 그대로 지호지간(指呼之間)입니다. 양측 간 강폭이 가장 넓은 곳이 2.1km, 가장 좁은 곳은 640m에 불과합니다. 북한군 초소를 비롯해 김일성 사적관, 인민문화회관, 소학교, 크고 작은 살림집 등을 망원경으로 꼼꼼히 관찰할 수 있습니다. 한참을 살펴봐도 사람들의 움직임은 없었습니다. 유령 마을 같았습니다. 음식점과 숙박시설, 놀이시설들이 즐비한 남측 강변과는 대조적입니다.

전망대에는 통일에 대한 방문객들의 염원을 적는 코너가 있습니다. '그래서 통일이다'라는 말 앞에 통일을 바라는 이유를 써넣게 돼 있습니다. 북한의 ICBM 도발 탓인지 누군가 '통일보다 핵 개발 중단'이란 문구를 그 자리에 남겼습니다. '전쟁에 대한 불안감을 없애고 더 행복해지기 위해' '강대국으로 가기 위해' '일본 배 아프게'라는 문구도 눈에 띕니다. '긴 기찻길 따라 유럽으로 맛집 탐방, 그래서 통일이다'는 문구 앞에서는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습니다.

통일은 되레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핵과 미사일에 대한 북한의 집착 때문입니다.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한 채로 통일이 되는 것을 국제사회가 용인할 리 없습니다. 북한의 비핵화는 통일의 전제조건입니다. 핵에는 핵으로 맞서는 수밖에 없다며 자체 핵무장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국내에서 높아지고 있습니다. 북한과 마찬가지로 남한의 핵무장도 분단의 영구화를 의미할 뿐입니다.

핵무기는 보유함으로써 의미를 갖는 정치적 무기이지 필요하다고 쓸 수 있는 군사적 무기가 아닙니다. 김정은이 온전한 정신을 갖고 있는 한 핵무기를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한·미 양국의 대응도 여기서 실마리를 찾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 '100% 안보'는 없습니다. 절대안보의 추구는 창과 방패의 싸움처럼 끝없는 악순환을 초래할 뿐입니다. 안전을 추구할수록 서로 불안해지는 '안보 딜레마'의 역설입니다. 세상에는 하늘이 무너질까 걱정하는 사람도 있고,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결국 북한 핵 문제도 철학과 세계관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핵과 미사일에 매달리는 한 북한은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제재와 압박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핵과 미사일을 움켜쥐고 버티다 외나무다리 아래로 떨어지는 것이 김정은의 운명입니다. 시간 문제일 뿐 그날은 결국 올 것입니다. 오두산 전망대에서 잿빛으로 변한 북녘땅을 바라볼 때마다 그 믿음은 강해집니다.

활시위를 너무 팽팽하게 당기면 줄은 끊어지게 돼 있습니다. 역사의 철칙입니다. 그래서 저는 북한 탓에 심란할 때마다 종종 오두산 전망대를 찾습니다. 접경지역 주민인 제가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 이 글은 중앙일보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