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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제타격론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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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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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4월 위기설이 확산되고 있다. 이달 중 북한이 6차 핵실험이나 장거리 미사일 시험 발사를 강행하고, 이를 계기로 미국이 대북(對北) 선제타격(엄밀히는 예방적 타격)에 나서면서 한반도에 전쟁이 날지 모른다는 불길한 소문이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중심으로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다.

기대를 모았던 도널드 트럼프와 시진핑(習近平) 간 미·중 정상회담이 싱겁게 끝나면서 위기설이 더욱 증폭되는 분위기다. 트럼프는 중국이 협조하지 않으면 미국 혼자서라도 북핵 문제 해결에 벌 벗고 나서겠다며 기세를 올리고 있다. 모든 옵션이 테이블에 올라와 있고, 선제타격 같은 군사적 조치도 배제하지 않는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다.

대북 선제타격론은 처음이 아니다. 1994년 1차 북핵 위기 때도 빌 클린턴 미 행정부는 영변 핵시설에 대한 외과수술식 정밀타격을 심각하게 검토했다. 하지만 김영삼 정부가 강력히 반발해 실행 직전 단계에서 무산됐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사정이 다르다는 게 2017년 4월 한반도 위기설이 번지는 배경이다.

우선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이 그때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커지고 고도화됐다.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는 수준까지 왔다. 미국과 북한 모두 '리더십 리스크'를 안고 있는 점도 그때와는 확연히 다르다. 트럼프와 김정은 둘 다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럭비공 같은 성격이다. 김정은이 핵실험이나 장거리 미사일 도발을 강행하고, 이에 맞서 트럼프가 시리아를 폭격한 것처럼 대북 선제타격을 명령하는 상황을 배제할 수 없다. 미·중 정상회담이 끝나기 무섭게 미국이 항공모함 칼빈슨함을 한반도 인근 해역으로 이동시키고,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갑자기 한국에 보내는 것도 불안하다.

하지만 선제타격은 비현실적 옵션이라는 게 북한 사정에 밝은 군(軍) 관계자들의 견해다. 무엇보다 표적이 너무 많아졌다는 것이다. 핵과 미사일 관련 시설이 북한 전역에 흩어져 있는 데다 감춰진 시설이 많아 일시에 타격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확인된 곳만 때린다면 효과는 별로 없으면서 부작용만 커질 수 있다. 표적 중 상당수가 북·중 국경지대에 몰려 있는 점도 문제다.

더 큰 문제는 확전 가능성이다. 선제타격에 대한 보복으로 북한이 주한미군 기지를 타격하더라도 한국의 부수적 피해는 불가피하다. 십중팔구 전면전으로 확대된다고 봐야 한다. 이 경우 휴전선 일대에 집중 배치된 북한 장사정포의 가공할 화력 때문에 개전 당일에만 수도권에서 수십만 명의 인명 피해를 각오해야 한다.

요컨대 대북 선제타격은 전면전을 각오하기 전에는 감행할 수 없는 엄청난 모험이다. 충분하고 치밀한 준비와 계획 없이는 불가능하다. 당연히 한국이 동의하고 한·미 연합군이 긴밀히 협조한다는 전제 아래 실행 가능하다. 북한 미사일의 사정권에 있는 일본의 동의와 협력도 필수적이다. 중국의 묵시적 동의도 필요하다. 한국 내 외국인을 미리 소개(疏開)하는 것도 큰 문제다. 이 모든 절차를 은밀히 진행하긴 어렵다. 선제타격은 사실상의 선전포고가 될 수밖에 없다.

수년 내 북한이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완성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미리 싹을 잘라 내야 한다는 게 선제타격론의 주된 논거다. 미국에 대한 잠재적 위협요인을 제거하기 위해 제2의 한국전쟁을 불사한다는 것은 무책임하고 무모하기 짝이 없는 논리다.

최대 피해자는 한국이 될 게 뻔한 상황에서 한국 정부의 의견을 무시하고 미국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순 없다. 어떤 한국 정부도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이나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처럼 그나마 트럼프 정부에서 합리적 사고를 가진 군 출신 인사들부터 반대할 가능성이 크다.

어떤 식으로든 북핵 문제는 해결해야 한다. 현 수준에서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을 동결하고, 남북과 북·미 간 화해를 통해 적대감을 완화하면서 통일과 한반도 비핵화를 최종 목표로 추진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이 경우 기존의 북한 핵을 인정하는 꼴이 된다는 점이 당연히 문제로 제기될 수 있다. 한반도 비핵화가 실현될 때까지는 북한에 상응하는 핵 능력을 한국에도 한시적으로 허용해 '공포의 균형'을 맞춰 줄 필요가 있다. 한국에 전술핵을 재배치하고 미국과 공동 관리·운용토록 하는 것이 하나의 방안일 수 있다.

전쟁을 각오해야 평화를 지킬 수 있다는 말은 맞다. 하지만 안 싸우고 이길 수 있으면 그것이 최선이다. 북한의 도발에는 단호히 맞서야 하지만 뻔한 위험을 보면서도 불에 뛰어드는 것은 어리석은 만용이다. 대북 선제타격은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 수 있는 악수(惡手)다. 그 함정에 빠져서는 안 된다.

* 이 글은 중앙일보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