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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존중할 수 없는 '사법부의 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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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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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주의를 표방한 대통령이 좌파에 대한 지원 축소와 우파에 대한 지원 확대를 표방한 것 자체가 헌법이나 법령에 위배된다고 볼 수 없다"

- 블랙리스트 1심 판결문 보니 (2017년 7월 31일, 한겨레)


우리는 흔히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한다'고 말한다. 그 말 속엔 '사법부의 판단'은 모든 판단행위 중에 가장 공정하고 편향적이지 않으며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판단행위일 것이라는 믿음이 들어 있다. 나 역시 가급적 사법적 판단은 존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인이다. 실망스러울 때도 많지만 그럼에도 사회 어딘가에는 공정한 판단행위를 하는 최종심급이 하나쯤 있어야 하며 그 심급의 판단이 존중되지 않거나 의심받기 시작하면 사회는 곧바로 가치 혼돈의 아노미 상태에 빠지게 된다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나는 매우 온건 보수적인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데 저런 판결문을 마주하자니 사법정의에 대한 내 알량한 존중심이 갑자기 초라하게 느껴진다. 저 법언대로 하자면 아침에 이 기사를 전해 들은 아들이 한 말이지만 게르만 순혈주의를 표방한 히틀러가 유대인에 대한 인권을 부정하고 반유대주의를 표방한 것도 통치자의 국정기조에 해당하므로 사법적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없게 된다. 통치자가 초헌법적 존재가 되고, 통치행위가 초헌법적 행위가 되는 순간이다.

처음엔 황당한 마음에 실소를 했지만 생각해 볼수록 두려워진다. 대한민국 사법부에 저런 판결문을 쓰고도 그것을 '양식'에 부합하다고 믿는 판사가 저 사람 혼자만은 아니지 않겠는가. 판사도 얼마든지 잡아가두거나 겁박할 수 있었던 군사독재시대가 아닌, 또 가까이는 박근혜정권 같은 '블랙리스트 신드롬'이 존재하던 유사 권위주의 시대도 아닌 지금 같은 시대에 저런 판결문이란 그야말로 법관의 온전한 양식의 소산일텐데 그 양식은 도대체 어떤 맥락에서 형성된 양식이기에 저런 괴물 같은 법언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한 사회의 보편적 양식이 집대성된 것이 헌법이고 사법부의 모든 판단은 그 헌법적 가치를 준용하고 있는 한 약간의 논란이 있더라도 존중되어야 한다는 내 생각은, 이처럼 버젓이 헌법을 언급하면서 헌법에 정면으로 맞서는 기이한 '양식' 앞에서 한갓 농담이 되어버린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