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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가 일깨워 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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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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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가 304명의 영혼을 맹골수도라는 레테의 강에 부려놓고 3년 만에 누워서 돌아온 목포항구, 그 도시의 사람들은 봄꽃축제도 취소하고 "목포를 숭고한 인간애가 넘치는 사랑의 도시, 치유의 도시로 만들자"며 그 슬픈 귀환을 맞았다고 한다.

숭고한 인간애...

들어본 지 너무 오래되어서 차라리 낯선 말, 오래된 신화나 비극의 낡은 대사 같은 그 말, 한 개인이 말해도 어딘가 생광스러운 그 말을 남쪽의 작은 항구도시가 선언처럼 대놓고 꺼내놓았다. 우리가 잊어버린 지 너무나 오래된 그 말을.

'숭고'는 높고 신성한 것에 대한 외경이다. 하지만 우리 시대는 그 어떠한 '높고 신성한 것'도 허락되지 않는 시대다. 낮고 추레하고 속된 것만이 횡행하는 시대다. 우리는 외경할 어떤 것도 가지지 못한 인간들이다. 오직 '물신'만을 악착같이 숭배할 따름이다.

하지만, 역사의 천사는 아주 가끔씩 그 '숭고한 것'을 드러내 준다. 그것이 아주 사라지지는 않았다고, 사실은 우리 가슴 깊은 곳에 간직되어 있었다고 알려준다. 광주가 그랬고, 이제 세월호가 그렇다. 광주가 87년을 낳았듯이 세월호가 17년을 낳았다.

나는 세월호를 잊지 않으려는 수많은 시민들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의 치열한 투쟁이 17년의 새봄을 기어이 열어젖혔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인간이다, 다른 이들의 비극적 고통에 결코 눈감지 않는 뜨거운 피가 흐르는 인간이다, 바로 이런 자각이 우리 시대의 '높고 신성한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새로 쓰는 인간의 신화다. 우리는 서로서로 가슴 속에 간직되어 빛나는 이 '높고 신성한 것'에 고개를 숙인다. 그것이 '숭고'다.

온통 노란 것들로 물결치는 4월의 목포가 우리들 마음 속의 그 벅찬 기분을 이 봄에 처음 '숭고'라 이름 붙여 발설했을 뿐이다. 목포는 그럴 자격이 있다. 팽목항에서 펄럭이던 찢어진 노란 깃발을 가슴 속에 영원히 게양하고 있는 한 우리도 그렇다. 우리는 이 봄 가슴 속에 빛나고 숭고한 것 하나쯤 새기고 있어도 좋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