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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의 '끈질긴'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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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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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마마, 용서하시옵소서"

언뜻 봐서 6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입성이 수수한 한 여성이 삼성동 박근혜 집 앞에서 무릎을 꿇고 이마를 땅에 찧으며 흐느끼면서 이렇게 울부짖었다.

생각해 보니 어젯밤 유난히 맥이 풀리고 기운이 없던 게 TV에서 언뜻 보고 할 말을 잊었던 이 장면 때문이었던 것 같다. 혹시 내가 잘못 본 게 아닐까 해서 동영상을 검색해 다시 보니 잘못 본 게 아니었다.

"내 인생은 박정희시대에 결정되었다"라는 말은 지금 50대 이상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그 스펙트럼은 하늘부터 땅까지에 걸쳐 있다. 공포와 불안은 그 공통의 기반이지만 그것에 저항함으로써 평생 황야에서 떠도는 느낌으로 살았던 사람들이 있는 반면, 그것을 내면화함으로써 평생을 노예처럼 살아온 사람들도 있다. 나머지 사람들도 그 사이 어디쯤인가를 오르내리며 살아왔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세대를 넘는 우성인자로 끈질기게 전승되어 내려왔을 것이다.

이번 탄핵으로 우리네 삶에 장막같이 드리워져 있던 박정희의 그림자를 비로소 거두게 되었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에 선뜻 동의할 수가 없다. 박정희의 그림자는 거슬러오르면 식민지시대의 집단 모멸의 경험에 이르고, 내려오면 지금까지도 조금도 나아질 전망이 보이지 않는 황금숭배의 악다구니에까지 걸쳐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정신 어딘가 한 구석에는 그 딸의 집 문앞에 와서까지 무릎꿇고 있는 저 여성의 형상이 여전히 도사리고 있다고 한다면 지나친 말일까?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어대며 이 모처럼의 작은 승리의 국면을 대놓고 능멸하는 저 무도하기 짝이 없는 10%가 기대고 있는 근거가 사실 우리 자신들 속에 끈질기게 남아있는 바로 그 어두운 형상이라고 한다면?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진정 말할 수 있으려면 오천만의 남녀노소에 들어있는 저 박정희들과 파천황의 결전을 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좀 쉽고 간단하게 말하자면 모두가 자기 안의 '국가보안법'을 정면으로 마주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수영이 〈김일성만세〉를 써들고 실어줄 신문사를 찾아 전전하던 것이 50년도 넘은 옛일이다. 과연 박근혜를 몰아낸 지금은 이승만을 몰아냈던 그때보다 얼마나 '미래'인가.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