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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갈리아와 전복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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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갈리아와 관련된 몇 개의 포스팅을 올리면서 온라인 공간에서 사용하는 언어와 수사학에 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먼저 전제로 할 것은 지배자(가진 자/가해자)의 언어/수사학과 피지배자(못 가진 자/피해자)의 언어/수사학 사이에는 명백한 비대칭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지배자의 언어는 이성적, 권위적이고 계몽적이며 교술적이며 그 배경에는 권력 혹은 잠재적 위력이 개재되어 있다. 심지어 지배자의 언어는 태도에 있어서 관용적이며 수사학적으로 유려하고 논리적으로 정연하기까지 한데 그것은 지배자의 언어와 수사학이 오랫동안 지배 이데올로기에 의해 세련화되고 반복적으로 유포된 결과이다.

반면에 피지배자의 언어는 감성적이고 불안정하며 비합리적으로 들리고, 논리적 정합성을 가지지 못하며 수사학적으로 어눌하거나 장황한 양극단을 오가는 것처럼 보이기 쉽다. 지배자 중심의 이데올로기가 편만한 사회에서 피지배자의 말이 지닌 숙명이다. 교황의 법정에서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돈다"고 한 부르노의 말은 얼마나 터무니없는 말로 들렸을까 생각해 보라. 이처럼 피지배자의 언어는 기존 이데올로기와 지배체제의 근간을 흔드는 말로서 조롱거리가 되거나 부정당하거나 심지어 화형이라는 폭력 혹은 희생제의의 대상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 피지배자의 언어는 두 차원으로 분열되어 존립할 수밖에 없게 된다. 하나는 지배 이데올로기와 지배질서에 위해를 가하지 않는 정도로 순치된 형태로 가까스로 시민권을 유지하는 차원이고, 또 하나는 매우 래디컬하고 지배질서에 위협적인 상태로 피지배자 집단 내부에서만 폐쇄적으로 공유되는 차원이다.

한국사회의 젠더지형상 남성이 지배자, 여성이 피지배자의 지위에 있음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상과 같은 지배자의 언어와 피지배자의 언어 사이의 기본적 비대칭성에 의해 한국사회에서 여성의 고유한 언어는 제대로 시민권을 얻지 못하고 배제되어 있는 상황이다. 그 결과 여성의 언어는 한편으로는 남성들이 허용할 수 있는 순치된 언어로, 다른 한편으로는 여성집단 내부에서만 통용되는 래디컬한 언어로 분열된 상태로 존재하게 된다.

전자는 "여성도 남성과 같은 사회적 대우를 받아야 한다" 혹은 "여성성은 보호되어야 한다" 같은 비대칭적 권력관계에 영향을 주지 않는, 지배자 남성들의 양보나 시혜를 구하는 듯한 언어들이고, 후자는 "가부장제 권력은 철폐되어야 한다"거나 "강요된 여성성은 거부되어야 한다"거나 하는 지배자 남성들의 지배체제나 그에 의해 만들어진 여성상 자체를 부정하거나 전복하는 언어들이다.

아마도 그동안 한국의 페미니즘은 남녀 공통의 영역에서는 전자와 같은 순치된 언어로 '남녀평등', '여권신장' 등을 주장하며 점진적으로 여성의 지위를 '향상'시키는 역할, 보다 래디컬하게 말하면 여성을 2등인류로 고착시키는 역할을 수행해 왔으며, 여성집단 내부에서는 마치 지하교회에서 순결한 신앙을 지켜왔던 초기 기독교도들처럼 보다 원칙적이고 전복적인 여성주의 사상을 단련하고 심화시켜 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신자유주의의 야만성이 기왕에 남아 있던 인간적이고 공동체적인 삶의 영역까지 깊이 잠식해 들어오며 한국사회의 구성원들을 극한적인 상호경쟁 시스템으로 몰아넣으면서 피지배 주체들 내부에서 상호 경쟁을 넘어 상호 적대성이 심화되어 가고, 다른 한편으로 계몽과 자각의 반복과 그 점차적 제도화를 통해 형식적 여권이 신장되어가는 과정에서 성장한 새로운 여성세대들의 성평등의식과 사회의식이 증대되는 과정에서 위와 같은 페미니즘의 상대적 안정성은 위기에 처하게 되고 그 변화를 강요받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즉 정규직/비정규직, 취업자/비취업자, 고소득자/저소득자 사이의 갈등과 긴장이 고조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남성과 여성 간의 갈등과 긴장 역시 고조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도래하였다. 나는 그것이 특히 청년세대들 내에서 일베들에 의해서는 극단적 형태로, 나머지 온건한 층에서는 잠재적 형태로 하지만 강력하게 존재하고 작동하는 좁은 의미의 '여성 혐오'의 태반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성들, 특히 청년세대의 여성들의 경우 그간 형식적으로나마 조금씩 신장되어온 여권의식 및 관련 제도와 그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 사회적 실상 사이에서 능력만큼의 대접을 받지 못하고 부당하게 차별받고 있다는 의식이 팽배하던 차에 이러한 '여성 혐오'의 언어와 행동들에 접할 때 그 박탈감과 억울함은 매우 크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 강남역 살인사건이라든가 소라넷 사건과 같은 여성에 대한 폭력과 성적 착취가 노골화된 사건들이 일어나면서 이제 여성들은 더 이상 과거와 같은 두 개의 언어체계에 안주하지 않고 남녀 공유의 영역에서는 더 이상 순치된 언어를 거부하는 한편, 자신들끼리의 배타적 영역에서 소통되던 래디컬한 언어를 공유 영역으로 이끌어 내는 혁명적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그야말로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세월호의 교훈이 여성들에 의해 먼저 선언되고 실천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상이 메갈리아 현상에 대한 나의 맥락적 이해의 내용이다. 메갈리아 현상은 여성들이 가부장적 지배체제와 이데올로기에 의해 강제로 순치되고 분열된 자신들의 언어를 급진적으로 되찾아오는 운동의 시작인 것이다. 이러한 본질적 성격을 애써 부인하고 메갈리아 현상을 그 외화된 결과물만으로 판단한다거나 그 기원을 실증적이고 기술적인 방식으로 해체하여 그 의미를 축소하고 과소평가하려는 일부 남성들의 시도는 매우 이데올로기적으로 편향된 시도에 불과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문제가 되는 '미러링'의 경우, 나는 가부장적 지배체제의 가장 거칠고 세련되지 못한 주변부(일베)의 언어와 수사학을 정확히 겨냥하여 이를 젠더적으로 전복함으로써 가장 효율적이고 신속하게 또 충격적으로 가부장적 지배체제의 언어질서를 교란하는 데 성공한 전술이며 그럼으로써 가부장적 지배체제에 가장 통쾌한 선전포고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고 본다.

일베나 노골적인 여혐담론 혹은 실천의 주체들은 물론, 여성에 대한 의식이나 일상적 행태에서는 일베와 사실상 차이가 없는 위선적이고 이중적인 보통의 남성들에게 이러한 미러링은 자신들의 일상적 언어가 얼마나 폭력적이며 끔찍하게 인간을 사물화하는 수준이었는지 적나라하게 깨닫게 만들어 준 일대 사건이었으며 가부장적 체제의 지배언어의 일부를 풍자적으로 해체하고 전도시키는 과정에서 여성들이 느꼈을 해방감과 자존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으리라 생각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이러한 미러링의 본래의 의도와 목적과는 다르게 해방적이거나 계몽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대신 폭력적이고 외설적인 언어유희나 말 그대로 반사회적인 충동들이 여과 없이 노출되는 부작용도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모든 혁명적 변화에는 그러한 부작용은 어느 정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무엇보다 그러한 유희적 언어나 자칫 반사회적 충동의 언어들의 경우 실제 현실과 직접 대응하지 않는 상상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실제 일베나 소라넷 등에서 구사되는 언어와 수사학의 끔찍한 현실대응성(일베나 소라넷 등에서 남성 참여자들이 구사하는 언어들은 실제 성폭력이나 범죄, 각종의 여성 차별과 혐오의 실천 과정 혹은 결과와 대응되고 그 속에서 발전한 언어들이 대부분이다)과 비교하면 그것은 매우 나이브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이 실제의 현실에 대응하지 않는 관념적이고 상상적인 언어 유희는 그 비현실성으로 인해 지속가능하지가 않으며, 그 때문에 나는 메갈리아의 일부 돌출적이고 과장된, 그리하여 남성들에 의해 호들갑스럽게 그 위험성이 과장된 일부 여성들의 언어행위는 장차 자연스럽게 소멸되거나, 설사 지속된다고 하더라도 매우 제한적이고 컬트적인 형태로밖에는 존재하지 않으리라 믿는다.

나는 이와 같이 메갈리아 현상을 긍정적으로 이해하는 입장이지만 젠더 구분이 더 이상 어떠한 차별과 위계로도 이어지지 않는 사회를 향한 페미니즘의 도정을 길게 고려할 때 지금과 같은 특수 언어의 전복과 탈환이라는 단기적 충격 요법만으로는 젠더적으로 비대칭적 언어상황의 궁극적 해소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단적으로 말하면 모든 피지배자들의 혁명적 저항투쟁의 초기 양상이기도 하며, 근본적으로 비대칭적인 언어 상황에서 불가피한 일이기도 하지만, 현재 메갈리아 현상에서 비롯된 여성들의 전복적 언어 실천과 그에 기초한 남성 지배세력과의 전투적 논전 양상을 지켜보면서 언어의 해방적 수행에도 일정한 규율과 질서는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언어사회학적으로 보면 사회 구성원들의 언어 수행은 무차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각종의 사회적 층위에 기반하여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한 사람의 언어적 수행과 실천은 그가 속한 여러 층위와 성격의 집단에 따라, 또 상황과 맥락에 따라 매우 다르게 전개된다.

나는 대학교수이지만 내가 사용하는 언어는 학생들에게 강의할 때, 학문적 토론을 전개할 때, 동료교수들과 한담할 때, 고등학교 동창생들과 편안한 대화를 할 때, 가족과 함께 있을 때, 나의 사회적 존재를 전혀 모르는 군중 속에 있을 때 등 상황과 소속 집단에 따라 조금씩 또는 매우 크게 달라지는 것이다. 특히 동질집단 내에서의 언어수행과 이질집단 혹은 보다 확장된 공적 집단에서의 언어 수행에는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나는 온라인 공간에서 사람들이 자신이 언어 수행을 하는 공간이 동질집단인지 이질집단, 혹은 혼종집단인지를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는 현상을 매우 자주 발견한다. 동질집단에서는 자기들 사이에서 허용되는 특수한 언어나 수사학이 있게 마련이고 그것은 공유되고 자주 사용될수록 자신들의 집단적 정체성과 결속력을 강화하는 데 기여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가 이질집단이나 혼종집단 안에 들어가게 되면 동질집단 내에서의 언어나 수사학은 매우 이질적이고 낯선 것이 되고 그 안에서의 정상적 의사소통에 장애를 일으키게 된다.

물론 때에 따라서는 이러한 낯설고 이질적인 언어와 수사학이 야기하는 낯설게 하기 효과와 소통 장애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있고, 그것이 곧 효율적인 정체성 투쟁의 무기가 될 수 있다.그렇게 함으로써 기존 언어질서는 교란되고 새로운 언어가 그 시민권을 주장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 이러한 목적의식과 무관하게 자기 동질집단 내의 언어나 수사학을 다른 공간에서도 여전히 폭력적으로 구사하는 일도 적지 않다. 온라인 공간이 그저 익명 뒤에 숨은 언어의 배설구로서만 의미를 갖는다면 아무래도 상관이 없겠지만 이 공간을 통해 어떤 의미 있는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이 점에 대해서 정당한 성찰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또 하나 그러한 의도적 교란과 낯설게 하기를 통해 자기 집단의 정체성 투쟁을 수행하는 경우라 할지라도 거기에는 일정한 조건이 필요하다고 본다. 누구를 대상으로 그 말을 하는가를 정확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상대가 과연 전적으로 적대적 존재인지, 아니면 어느 정도는 자신의 말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우호적 상대인지에 따라 같은 내용의 말이라 할지라도 언어와 수사학의 선택에서 적지 않은 차이를 두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가 올린 포스팅에 댓글의 형태로 전개되었던 주로 남녀 간의 논쟁을 지켜보면서 한편으로는 그 적나라하고 투쟁적인 어투에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하지만 대체로 서로가 상대와의 의견이나 입장 차이의 정도에 대해 조금만 더 고려를 한다면 보다 더 생산적인 논쟁이 이루어질 수 있고 심지어 적대세력을 자신에게 우호적이거나 동지적인 세력으로 바꿔놓을 수도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여러 번 느꼈다.

또 하나 덧붙인다면 삼인칭으로 말할 때와 이인칭으로 말할 때에도 언어 수행에는 큰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 온라인 공간에서는 많이 간과되고 있다. 같은 입장을 가진 사람들끼리는 그 대화 자리에 있지 않은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을 조롱하거나 모욕하는 등 얼마든지 대상화해도 무방할 것이다, 아닌 말로 옛말에도 없는 데서는 왕도 때려죽일 수 있다고 하지 않는가.

하지만 만일 다르거나 적대적 입장을 가진 단수 혹은 복수의 상대와 이인칭의 형식으로 대화를 할 경우라면 사정은 다르다. 그럴 때는 아무리 상대가 밉고 싫더라도 서로 대화를 나누는 한에 있어서는 최소한 상대를 노골적으로 경멸하거나 무시하는 언어 수행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게 일반적 화법의 원칙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말의 형태를 빌린 시정 잡배의 싸움에 불과하고 그것을 통해 얻는 것은 적대성의 강화밖에 없다. 친하던 사람이 멀어지고 조금 멀던 사람은 완전히 멀어지고 적대적인 사람은 원수가 되는 것이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특히 대체로 동질적인 사람들이 모인 공간에서는 언어 수행상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경우가 절대적으로 많다. 그것을 '위악성의 악순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굳이 온라인이 아니더라도 대개의 동질집단에서는 단정적이고 도발적이며 위악적인 언어수행을 즐겨하는 사람이 분위기를 주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개 익명을 사용하고 또 직접 얼굴을 맞대지 않고 말을 주고받는 온라인 공간에서는 이러한 경향이 훨씬 더 심해지기 마련이다.

일베의 극단성이 회원 상호간의 위악경쟁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러한 위악성이 경쟁적으로 나타날 경우 사용하는 언어는 더 왜곡되거나 악화되고 그것이 곧 그 동질집단 구성원으로서의 표지 역할을 하게 된다. 나는 메갈리아에도 그러한 현상이 분명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지배언어체계를 전복하는 것은 피지배자의 해방에 있어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언어 수행이 가지는 이러한 다층적이고 맥락적인 측면에 대한 매우 섬세한 고려가 따라야 한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남성들의 언어가 가해자의 언어이고, 여성들의 언어가 피해자의 언어라면 여성들의 언어는 길게 볼 때 해방적이되 가해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전복적이되 본질적으로 폭력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피지배자의 언어가 지배자의 언어체계를 전복시키고 새로운 해방의 언어로 발돋움할 수 있는 제일의 조건이라고 나는 믿는다. 여성해방은 인류 최후의 혁명이라고 한다. 그런 만큼 매우 길고 오랜 투쟁과정이 기다리고 있다. 그 기나긴 도정에서 피지배자가 의존해야 할 가장 큰 무기는 윤리성이다. 그리고 그 윤리성의 핵심은 모든 존재에 대한 궁극적 존중에 있다고 나는 믿는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