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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협 조합원에서 이사장으로, 수강생에서 환경교육강사로 변모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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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제도 개혁'이 정치 개혁의 첫걸음이라고 믿는 사람들 몇몇이 모여서 '셀럽부터 백수까지' 다양한 유권자들의 선거와 정치 경험에 대한 목소리를 수집해보려 합니다. 인터뷰를 통해 '선거'라는 행위가 정치와 우리의 삶에 어떻게 접속하고 있는지 살펴보면서 선거 제도 개혁에 대한 공감대를 확장하고 싶습니다.

옆 집에 살던 아이는 아토피를 심하게 앓았다. 아이의 엄마는 먹거리에 엄청 신경을 썼다. '한국생협연대(현 아이쿱생활소비자협동조합의 전신)'라는 곳에서 장을 본다고 했다. 생협이 뭔지도 몰랐고 그저 국내산을 취급하는 곳인가보다 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접어든 기사에 마음이 뜨거워졌다. 그 즈음 한국의 한 농민이 멕시코에서 분신자살 한 사건이 있었다. 얼마나 분하고 다급했으면 타지까지 가서 분신을 했을까. 먹거리는 나의 문제이자 동시에 농민의 삶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했다. 생협에 조합원으로 가입했다. 매달 조합비 2만8천원을 내면서 농민을 위해 그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나, 혼자 되뇌였다. 다소 엉뚱한 이유로 조합원이 된 것이다. 2004년의 일이다.

그 사이 아이가 태어났다. 마을 모임을 통해 생협이 돌아가는 소식과 각종 정보를 접할 수 있었다. 마침 여성환경연대라는 시민단체에서 '환경건강관리사 양성과정'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는 소식을 들었다.생활에서 직접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이 궁금했다. 갓 돌이 지난 19개월 된 딸을 업고 매주 강의를 들으러 나갔다. 세상 돌아가는 것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다. 먹거리 문제에서 환경 문제까지 관심사가 넓어졌다. 2006년의 일이다.

그로부터 약 10년이 지났다. 여성환경연대 교육활동가로 여성 건강과 환경 문제를 알리며, 현재는 서울아이쿱 생협의 이사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이선임 님을 만나봤다.

생협 조합원에서 시작한 활동이 지금은 생협 이사장이라는 역할로, 강의를 듣는 수강생에서 강의를 진행하는 교육활동가로.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활동이 확장되고 변모했다는 느낌이 든다. 감회가 새로울 것 같기도 하고. 현재는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최근 관심사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가장 집중하고 있는 활동은 아이쿱 생협의 이사회에서 이사장으로 하고 있는 대내외적인 활동이다. 아이쿱 생협은 전국에 90여개 개별 조합으로 꾸려진 비영리 법인 연대체이다. 농민과 환경을 생각하며 안전한 먹거리를 공급 받고 싶어하는 욕구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만든 소비자생활협동조합이다. 초기에는 3~400명 정도의 규모였는데 현재는 전국 조합원 23만 명으로 덩치가 커졌다. 서울 지역에는 9개의 아이쿱 개별 조합들이 존재하고, 서울 아이쿱도 그 조합 중 하나이다. 서울 아이쿱은 6천 명이 넘는 조합원이 있다. 12명으로 구성된 이사회에서 매년 정기총회를 통해 의결된 사항을 집행한다. 매년 대의원 총회가 열리긴 하나 대의민주주의의 한계가 분명하다는 생각에 조직을 분화하는 데 힘쓰고 있다. 내가 하는 역할은 단위를 쪼개는 일이다. 각 지역이 자치적으로 운영하고 자율권을 가지기 위해서라도 조직이 분화되는 것은 중요하다고 본다. 6천 명을 대표하는 10명 보다, 2천 명을 대표하는 10명으로 쪼개진다면 의사결정 구조 단위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이 늘어난다. 불편하고 지난한 과정일 수도 있지만, 나는 이것이 민주적 시민으로 훈련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운동의 일환이라고 생각한다.


간단한 자기 소개를 기대했는데 첫 답변부터 대의민주주의가 등장할 줄은 몰랐다(전혀 의도 하지 않았음). 마침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이사장이라는 역할을 수행하면서 겪은 조직 내 민주적 소통에 대한 경험 혹은 생각도 궁금하다.

회의체 혹은 회의 문화를 제대로 처음 접한 것은 생협을 통해서였다. 이전가지 학교나 직장에도 공식적인 회의 구조가 있긴 했지만 그건 지극히 형식적이었으니까. 조합원 서너명이 모인 마을 모임에서 출발해 지금은 매달 정기적으로 열리는 이사회에 참여하고 있다. 수다로 시작해 정보를 교환하던 장에서 사람들과 의견을 나누고 토론하면서 민주적 소통을 훈련하게 된다. 이와 같은 끊임없는 교육 기회, 정보 제공과 훈련의 장이 누구에게나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제공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과정에서 조합원은 스스로가 주인의식을 갖게 되고 조직에 관여하게 된다. 도움을 주고 싶다는 작은 마음에서 시작한 움직임이 자발적 활동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된다. 물론 그렇게 발을 들이다보면 어느새 수렁에 빠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도 있지만(웃음). 그래서 아이쿱 생협에서도 조합원 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특히 마을 여성들이 주체적/개별적 판단을 경험하고, 자신이 믿는 이상을 실천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는 측면에서 매우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말씀 들으니 어떤 것이든 교육이 참 중하다는 생각이 다시금 든다. 최근 생협에서 기획한 교육 중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이 있는가?

최근 종로 지역의 조합원들이 기획한 강의가 인상 깊었다. 하승수 선생님(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의 선거 제도에 관한 강의였다.


기다렸다. 그 대답이 나오기를(일동 웃음). 어떤 문제 의식 속에 선거제도 개혁 관련 강연을 들으러 갔고, 듣고 난 후 어떤 고민과 생각이 들었는지 궁금하다.

그 질문 하려고 찾아온 거 잘 안다(다시 웃음). 일단 나는 정치에 대해 늘 막연한 이미지만 가지고 있었다. 선거에 대해 막연히 불합리하다고 느끼는 지점은 있었지만, 정치적 스트레스도 강해서 잘 알아보려 한 적이 없었다. 강의를 듣고 나니 참 당연하고 상식적인 문제인데, 그 동안 내가 간과 하고 있었던 측면을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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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구에서 열린 선거제도 개혁 강의

선거 제도와 관련해 불합리하다고 느끼는 지점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선거 때 마다 반복되는 문제이다. 매번 말 도 안 되는 후보들이 배척당하지 않고 출마할 수 있고 심지어 당선까지 이어진다. 그 동안 '승자독식'이라는 표현의 정확한 뜻을 몰랐던 것 뿐이지 온 몸으로 체감하고 있었다. 이 부분에 대한 문제 의식을 명확히 하고 싶어서 일부러 선거 제도 개혁 강의를 찾아가 들은 것이다. 그 동안 정치에 대해 굉장히 답답했는데 원인을 몰랐다. 왜 만날 정치는 저 모양일까? 저런 말도 안 되는 이상한 사람이 어떻게 계속 당선 될 수 있는거지? 이런 질문이 선거철마다 머리 속에 뱅뱅 돌았다.

강의를 듣고 명확해진 부분은 정치 구조, 선거 제도의 문제라는 것이다. 비례대표 국회의원 의석수는 47석 뿐이다. 그 외는 1등만하면 당선 되는 지역구로 채워진다. 비례대표제의 비율이 이렇게 형편없이 낮은 줄 그 동안은 몰랐다. 비례대표제가 고작 악세서리 처럼 존재하고 있었다니. 비상식적인 정치 제도 속에 살면서 인지를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마저도 현행 선거 제도에 대한 비판과 제안이 있었다고 하는데 참 답답하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어떻게든 달라졌으면 좋겠다. 지금이 적기가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든다.

사람들이 현행 선거제도의 불합리한 모습과 그 사실에 대해서 만이라도 빨리 인지했으면 좋겠다. 자꾸 마음만 급해진다. 왜냐하면 선거제도가 바뀌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막말만 하는 국회의원들의 행태, 제대로 일 안 하는 국회의원과 많은 보좌진 수, 낮은 국민 대표성 등 이 모든 문제가 선거 제도와 연관이 있다. 물론 일반 유권자 입장에서는 정치 피로도가 클 수도 있다. 하지만 현행 선거 제도는 지극히 상식적이고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문제이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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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제도 개혁'을 주제로 한 강의를 듣는 중

만약 비례대표제가 확대된다면 기대하는 변화 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기 위해 넘어야 할 과제가 있다면 무엇인가?

현재 정치에 반영되지 않는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을 것이다. 정치적 기득권을 누렸던 세력은 줄어들고 그동안 존재했으나 드러나지 못했던 목소리가 정치적 주체로 등장할 것이다. 나는 국회의 비례성 뿐 아니라 지방의회도 반드시 같이 바뀌었으면 좋겠다. 마을과 동네에서 일상의 문제를 해결하고, 정치를 이어갈 다음 세대를 키우고, 새로운 변화를 꿈꾸는 사람들이 지방 의회에 들어갈 수 있도록 말이다.

비례대표제가 확대 되는 방향으로 선거제도 개혁되기 위해서는 국회의원, 지방의회 의원의 급여도 건드려야 한다고 본다. 이권은 돈과 연결된다. 정치인이 특권층이 아닌 사회 봉사직이라는 소명 의식을 가졌으면 좋겠다. 현재로서는 과하게 측정된 특권을 제거할 필요가 있다.

앞서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고민이 살짝 언급되긴 했었는데. 의회 정치에 대한 경험 혹은 본인이 가지고 있는 의회 정치에 대한 이미지는 어떤가?

급식문제, 진주의료원 사태와 관련해 경남권역 진주아이쿱 생협 조합원들이 지역 의회 참관 운동을 벌이고 있다. 참관만으로도 의원들의 태도는 달라진다고 한다. 서울 중랑구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안다. 현재 서울시의회 참관활동을 적극적으로 해보려는 움직임도 있다. 유권자가 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경각심을 줄 수 있다. 당장의 결과에는 큰 변화가 없을지라도 최소한 정치인의 태도가 바뀐다. 누군가 지켜보고 관심갖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니까. 이렇게 서서히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고 본다.

물론 나도 대의민주주의의를 조직 내에 실현해야 하는 사람으로서 제도 자체의 한계는 분명 느낀다. 대의민주주의 한계를 메꾸기 위해 감시와 관리, 감독 시스템은 필요하다. 생협 조합원 6천 명 모두 조직의 정체성을 동일하게 이해하길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사람들의 명분과 희생으로 조직이 굴러가는 경우도 생긴다. 하지만 이거라도 안 하면 안 된다는 생각도 있다. 역사의 큰 도약을 가져오진 못해도 민초로서 도약의 발판이 되는 주춧돌을 닦는 일은 누가 하든 필요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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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인 인터뷰의 20번째 외침 ⓒ비례민주주의연대

마지막 공식 질문이다. 현재 삶의 화두는 무엇인가?

요새 사람이 참 다양하다는 사실을 억지로 인정하고 있다. 역할 상 이해되지 않는 사람을 만나야하는 경우도 많은데, 아무리 선의를 가진 사람이라 하더라도 작은 감정이 얽히면 절대 풀어지지 않는 관계가 되기도 한다. 중재 역할을 여러번 해봤으나 성공율은 희박했다. 요즘 느끼는 좌절은 '내가 이상한가?'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다. '세상물정을 모른다', '원래 인간은 쉽게 안 바뀐다', '괜한 노력이다' 등의 반응을 들을 때마다 나를 의심하게 된다.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도통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아무리 생각이 달라도 말랑말랑한 분위기거나 편안하고 여유가 생기면 저렇게까지 날카롭지는 않을텐데 싶어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아이쿱 생협의 이사장이라는 역할을 수행하면서 아무리 하찮은 자리라도 '권력의 맛'이라는 게 있다는 걸 실감한다. 나름 명예직이다 보니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진다. 그냥 활동가, 조합원으로 가서 이야기 할 때랑 한 법인의 이사장으로 가서 이야기 할 때랑 사람들이 바라보는 시선과 대우가 달라진다. 이사장 되고 처음 몇 개월은 적응이 잘 안 되었다. 요즘은 이런 권력 맛에 빠지면 계속 누리고 싶겠구나 싶고, 정치인이 기득권을 안 내려놓는 이유도 조금 알 것 같다. 나는 이런 권력의 맛을 여성이 더욱 겪어봤으면 좋겠다. 겸손, 사양이 몸에 베어 있는 여성들일수록 자발적으로 권력을 맛 봤으면 좋겠다. 단순한 권력 지향이 아니라 권한에 대한 책임을 경험하고 동시에 자존감을 높이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