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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이든 활동이든 소진되지 않는 방식 택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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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제도 개혁'이 정치 개혁의 첫걸음이라고 믿는 사람들 몇몇이 모여서 '셀럽부터 백수까지' 다양한 유권자들의 선거와 정치 경험에 대한 목소리를 수집해보려 합니다. 인터뷰를 통해 '선거'라는 행위가 정치와 우리의 삶에 어떻게 접속하고 있는지 살펴보면서 선거 제도 개혁에 대한 공감대를 확장하고 싶습니다.

학부를 졸업했다. 창당한지 얼마 안 된 정당에서 당직자로 일을 시작했다.여성위원회, 성소수자위원회, 당원 교육 등의 업무를 맡았다. 막상 일을 해보니 더 잘 알면,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전문성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 공부를 더 해보자는 생각에 당직자 일을 그만두고 여성학과 대학원에 진학했다. 대학원에서는 말랑말랑한 주제나 문화 영역의 재미난 일을 다뤄보고 싶었다. 그런데 정작 페이퍼를 쓰면 어쩐지 매번 의회 정치나 정치 제도 문제로 흘러가기 일쑤였다.

어찌저찌 대학원을 수료했다. 막연히 취업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취업에 성공하려면 아무래도 지금까지 해왔던 활동들은 지워버려야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생길 것 같았다. 그런 삶은 살아보기도 전에 불행의 냄새가 풍겨 났다. 마침 대학원을 다니며 모니터링 작업 등 인턴활동을 했던 시민단체인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에서 상근 활동가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렇게 '여성'과 '정치'라는 키워드를 활동의 화두로 삼은 일상이 시작되었다. 젠더정치연구소의 활동가 혜만 님을 만나봤다.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이하 여세연)'은 이름이 참 길다. 어떤 곳인지 간략하게 소개 부탁한다.

1999년부터 2013년까지는 '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다가 연구소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생겨 이름을 바꿨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약칭 '여세연'으로 운동했던 기간이 길어 병행해서 사용하고 있다. 여성할당제 운동을 활발히 하던 시기에는 활동가가 3~4명까지 늘어나기도 했었는데 현재 상근 활동가는 나 1명이다.

상근 활동가가 1명이라니... 정말 오만 가지 업무를 혼자 다 하겠다. 활동에 대한 부담이나 압박은 안 느끼는지?

이렇게 말 할 때마다 고민 되는 지점이 있다. '상근 활동가 1인'이라는 표현이 단체 현실을 보여준다는 맥락에서는 적합한 설명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분명 같이 하는 사람들을 비가시화 하는 측면이 있다. 업무를 주로 내가 다 맡고 있긴 하지만, 대표단과 실무 업무를 분담할 수 있는 구조이고, 비정기적인 활동가들도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예전에 채식을 4년 정도 하다가 그만 둔 경험이 있는데, 그 때의 마음과 현재가 비슷한 상태인 듯 하다. '할 수 있는 만큼 하자'. 운동도 같은 마음으로 대하고 있다. 이렇게 의식하지 않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소진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사명감이 앞선 운동은 단기적으로는 효과적일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언제든 그만둘 수 있다는 생각으로 길게 보면서 활동하고 있다.

온라인 페미니즘 운동이라고 명명되는 흐름이 생겨나고, 각종 페미니즘 출간물, 오프라인 액션 등 페미니즘에 대한 논의가 다양한 형태로 활발해지고 있다. 활동하면서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궁금하다.

일단 친구들과 이야기 나눌 때 실감한다. 예전엔 정작 여성학 공부를 하면서도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과는 그 주제로 이야기를 잘 나누지 못했던 것 같다. 예를 들어 친구가 연애 상담을 하면 이걸 여성주의 언어와 어떻게 연결시킬 수 있을지 떠올리기 어려웠다. 지금은 친구들이 페미니즘 책을 읽고 이야기 하거나 애인과 함께 읽어야겠다고 다짐하는 장면들이 새롭게 다가온다. 강남역 10번 출구 사건, 낙태죄 폐지, 생리대 문제 등이 터지고 페미니즘 서적도 많아지면서 일상의 영역에 좀 더 가까워진 느낌이다. 내가 하는 활동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편해지는 순간들이 생겨났다. 부모님은 나를 남들에게 연구소에서 일한다고 소개한다. 뭐, 틀린 말은 아닌데(웃음). 이제는 페미니즘 이슈가 언론에 보도되면 내가 하는 활동과 어떻게 관련이 있는지 설명을 보탤 수 있는 지점들이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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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하면서 제일 크게 웃은 사진이라 설명을 덧붙여주신 혜만 님

일상의 영역으로 페미니즘이 스며들고 있긴 하나 정치 영역, 특히 제도 정치에서 페미니즘을 기반으로 한 세력화나 논의는 상대적으로 빈곤해 보인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페미니즘에 기반한 정치 세력화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정치 자체에 대한 '낯섦'이 핵심이라고 본다. 시민들이 낯설게 느끼는 정치에 대해 어느 정도까지 친밀감을 제공할 수 있는지, 제도적인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언어가 과도하게 어려운 건 아닌지, 정치 지형의 남성화 문제는 충분히 논의가 되었는지 등등의 질문이 함께 가야 한다. 시민이 자신의 삶에 대한 불평등을 인지하거나 문제를 제기하기에도 어려운 상황에서, 저 멀리 떨어진 의회에 대한 문제를 인식하고 변화를 이야기하기까지는 분명한 거리감이 존재한다.

여세연에서 작년 총선 이후 평가 토론회를 한 적이 있다. 당시 여세연에서 주목한 것은 여성 청년 세대의 투표율이 높아졌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들'은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 의미 있는 변화로 읽히지 못하는 것이다. 이는 여성운동이 평가되는 방식과 유사하다. 여성운동은 항상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어왔다. 그러나 그 움직임은 비가시화되었고 이슈화 되지 못했다.

정당도 마찬가지다. 현재 당직자는 아니지만 당원 활동은 하고 있다. 이제는 나랑 비슷한 여성 당원들이 보다 말하기 시작했고, 페미니즘에 관심이 없었던 남성 당원들도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것이 세력화라고 생각한다. 정치영역에서의 여성주의가 왜 다뤄져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이 등장하고 있다. 오히려 이 사람들에 주목하지 않고 있는 학계, 언론 등에 대한 비판이 세력화 논의에 앞서 필요한 것은 아닐까? 작은 티끌이라도 계속 이야기해야 그 밑에 있는 뿌리가 보일 수 있는건데, 그 시발점 자체가 그 동안은 아예 없었던 게 아닐까.

기존의 페미니즘 혹은 여성 단체들이 이 흐름을 어떻게 진단, 대응하고 있다고 보는가? 역할과 한계를 꼽아보자면?

온라인 페미니즘 운동이나 2030세대 페미니스트들의 공개적인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여성단체에서 이들을 초대해 강의를 하거나 자리를 만드는 경우도 많다. 이런 움직임도 중요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단체 내에 이미 존재했던 목소리를 어떻게 드러낼 것인가에 더 관심이 많다. 이는 시민사회내의 역량 강화나 후배 세대를 어떻게 성장시킬 것인가 하는 논의와 맞닿아 있다. 외부 흐름을 인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단체 내부에서도 그런 흐름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사람들을 발굴하고 단체의 자생력을 되짚어야 하는 시점이다. 그렇다고 기존 여성운동단체들이 활동을 못 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일상적인 업무가 과부하되고 있는 상황이지 않는가. 현 시점에서 우리가 진지하게 성찰한다면 의제와 업무를 쿨하게 정리하고 대응력을 높일 수 있지 않을까.

젊은 활동가에게 '마이크'가 주어지려면 그 젊은 활동가가 담당하는 실무가 나눠져야 한다. 또한 이 문제와 별개로 마이크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도 주어져야 한다. 충분히 준비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주지 않고 마이크만 주는 것은 충분치 않다. 여세연의 경험을 예로 들면, 내가 단체 내에서 사회를 보거나 스피커의 역할을 하게 될 때는, 대표단이 다른 실무를 분담해준다. 활동가의 노동에 대해서 인지하기 위해서는 경험만큼 중요한게 없다고 생각한다.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작은 일로 치부하거나 비가시화 되기 때문이다. 역할을 순환하고 분담할 수 있는 분위기, 망해도 괜찮다는 자신감이 우리에겐 필요하다. 활동 성과에 대한 잘잘못을 활동가에게 따지지 않는 분위기와 태도는 조직이 자신의 몫으로 남기는 것, 기억될 수 있는 지점을 다르게 만들 것이다. 물론 나 역시도 굉장히 부족한 지점이 많다. 그렇기에 소위 '망할 수 있는 여유', '활동의 쿨함'과 같은 언어들을 힘들더라도 언급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로 이런 언어가 명명되어야만 하는 상황들은 이미 과부하된 시민사회의 현실을 반증하는 게 아닐까 싶다.

여세연은 여성할당제 운동을 과거부터 활발하게 해 왔다. 현재 여성할당제가 존재하긴 하나 제대로 지켜지진 않는 실정인데. 그 배경에는 어떤 문제가 있다고 보는지?

거대 원내 정당들의 공천 과정은 모든 게 공개되지 않는다. 따라서 그 과정에서 여성 후보가 탈락되는 맥락이 불합리해도 문제 제기 할 수 있는 틀이 없다. 비례대표 여성 할당이 도입되고 남녀교호순번제가 만들어졌지만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구속력이 전혀 없다. 여성계가 화 내는 것 외에는 딱히 제재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활동하다보면 웃기고 서글픈 상황이 종종 생긴다. 3년 전 대응 활동을 하면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해라', '여성할당제 지켜라', '남녀교호순번제 지켜라'는 메세지가 담긴 요구 피켓을 만든 적이 있다. 며칠 전 기자회견에서 그대로 들고 가서 사용했다.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으니까.

마냥 웃기에는 속이 쓰린다. 여세연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 여성 정치 확대와 어떻게 비례대표제 확대는 어떤 연관이 있나?

나는 여성할당제란 '지금의 정치 제도가 누구의 진입만을 가능하게 하는가'라는 문제 의식에서 출발했다고 생각한다. 이 질문은 연동형 비례대표제와도 맞닿아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도 의회 안의 남성화된 구조를 바꾸기 위한 제도적 방안 중 하나다. 정당이 득표한 만큼만 의석을 가져가고 이것이 제대로 실행될 때, 의회가 다양한 목소리로 구성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여성 정치 확대도 연속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에 '정치개혁 공동행동'에 참여하고 있는 여성단체들이 모여 여성할당제, 남녀교호순번제, 연동형 비례대표제 실시를 요구하는 청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그 외에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 기대되는 변화나 혹은 도입되기 위해 넘어야 하는 과제가 있다면 무엇일까?

일단 많은 여성들이 원내에 진입할 수 있지 않겠나. 여성정치세력화와 관련해 실제로 원내에 진입한 여성 국회의원들의 활동이 충분치 않다는 평가들이 있어왔고 이를 무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할당제에 대한 논의, 현재 국회 현실에 대한 정교한 분석이 더욱 필요하다. 여성의원이 의정 활동을 할 때 의사결정구조에 정치적 권력을 가진 자리에 있었는지, 의회 내부 논의 과정은 그들에게 친화적인 분위기였는지, 어떤 역할을 맡았고 어떻게 정치를 해 나갔는지 함께 봐야 한다. 현재 여성의원은 100명도 안 되는 숫자이기 때문에 일단은 더 많이 들어가야 그 논의가 풍성해질 것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어 다양한 여성들이 국회에 들어갈 수 있는 창구가 되었으면 한다. 지난 총선 때 여성 대표성과 관련해 여성 청년 후보자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나이 어린 여성'이라는 이들의 위치성은 선거 운동 과정에서 겹겹이 더 안 좋은 상황을 직면하게끔 한다. 즉 여성들 안에도 권력화된 구조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여성 대표성에 관한 운동, 연구는 교차되는 지점에 대해 보다 주목하며 활발해질 필요가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의제가 다양한 의회 구성을 의미하는 세력화 운동으로 진행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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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인 인터뷰의 19번째 외침ⓒ비례민주주의연대

페미니즘 담론이 활발하게 논의되는 흐름 속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된다면 페미니즘 정당의 출현도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글쎄. 스웨덴에도 페미니스트 정당이 창당해 활동하고 있지만, 이들은 이미 기존 정당에서 어느 정도의 세력과 지지를 받아 출발한 경우다. 그렇지 않으면 너무 쉽게 소멸될 가능성이 있다. 불공정한 선거 제도 탓도 크다. 현실적인 창당의 어려움도 있겠다.

현재 의회 정치, 정당 영역에서는 페미니즘 의제를 제대로 소화하지 않고 있다. 이 사실이 간과되서는 안 된다. 작년 온라인 페미니즘 운동이 활발했을 때 그 여파가 분명 대선과 각 정당에 일정 정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향에 대해 반응은 미진했고 제대로 '소화도 못 시키는 일'만 반복되었다고 본다.

그러면 의회 정치, 정당에 대한 고민을 버려야 할까? 새로운 공간과 조직을 만들면 해결할 수 있는 일일까? 정치를 한다는 것은 전략적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는 옳고 그름만의 싸움이 아니니까. 가령 나랑 생각이 다른 사람과 어떻게 이야기를 잘 할 것인가, 의 문제다. 만약 나는 페미니즘 의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이게 전혀 쓸모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그랬을 때, '그 사람이 옳지 않기 때문에 더 이상 말 해봤자 소용 없다.'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붙잡고 어떻게 잘 이야기 하고 설득할지 고민하는 것이 정치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나는 더욱 기존 정당을 잘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박에 성공할 수는 없지만 승산이 있는 발판을 만들고 게임을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지막 공식 질문이다. 현재 삶의 화두는 무엇인가?

단체 활동과 당원 활동을 하면서 내 또래의 친구들을 많이 만난다. 그들이 각자가 소진되는 방식을 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이건 내가 나를 볼 때도 마찬가지이다. 시민사회든 정당이든 청년이 운동하기엔 어려운 공간이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그 이유도 비슷하고. 도전, 패기 같은 언어로 청년을 너무 쉽게 퉁 쳐버리지 않나. 정당들의 경우, 정말 당선 가능성이 있는 지역에 또는 비례에 청년을 공천할지, 청년 정치인의 성장 기회에 대한 고민이 있긴 한 건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여기에 여성 청년 당원이면 더욱 배가된다. 정당은 아직까지 남성 활동 당원이 많고, 남성화된 정치 문화가 정당 내에 남아 있는 경우도 많으니까. 시민사회도 마찬가지다. 특히 비혼여성활동가가 지속가능한 활동을 오래 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는 아직도 답을 못 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당이든 시민사회단체든 각자가 내세우고 있는 의제에 대해서 당내 청년 당원, 혹은 단체 내 활동가들에게 어느 정도 보장되고 있는지 확답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유입은 아마 계속 될 것이다. 청년 당원, 신입 활동가는 누군가 튕겨져 나가도 그 자리에 다른 누군가로 채워지면서 말이다. 여전히 우리는 길게 활동할 수 있는 구조에 대해서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으면서 이걸 조직의 중요한 물음으로 가져가지도 않는 현실을 직면해야 한다. 이런 문제 의식 속에서 여전히 정치는 가능성을 주는 운동이라고 느낀다. 정치는 최소공배수의 싸움이 아닐까. 그 최소를 찾기 위해서 끊임없이 말을 하고, 정당 활동을 하고, 그 가능성을 찾는 것 말이다.

진행·재구성 l 복코(비례민주주의연대 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