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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권이 있다고 공정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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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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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역사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다고 할 수 있겠다. 기원전 5세기 경 그리스 아테네를 기원으로 삼으면 그 역사는 무려 2,500년에 달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민주주의는 17~18세기 시민 혁명을 통해 자리 잡은 '근대 민주주의'이다. 이를 기준으로 삼으면 길어야 400년 정도 될 것이다.

이 짧은 민주주의 역사에서 의미 있는 두 가지 사건을 꼽으라면 무엇이 있을까?

첫째는 뭐니 뭐니 해도 '보통 선거권'의 쟁취일 것이다. 1776년 독립선언을 한 미국에서는 '백인, 남성, 21세 이상, 납세 능력이 있는 자'에게만 선거권을 부여했다. 흑인, 여성, 20세 이하, 일정 규모의 재산을 갖지 못한 자는 정치에 참여할 권리가 없는 존재로 규정한 것이다. 다른 나라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19세기 말부터 서구 유럽을 중심으로 여성 참정권에 대한 요구가 본격화 되었지만 온전히 정립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평등과 자유를 민주적 가치로 내건 시민혁명의 국가 프랑스조차 남녀가 평등한 참정권을 갖는다고 명시한 것은 1946년이다. 보통선거권의 쟁취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한국은 OECD 35개 국가 중 유일하게 만 18세 투표권을 보장하지 않고 있다. 민주주의 발전 과정은 이처럼 '보통 선거권'의 확대 역사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두 번째는 조금 생소할 수 있지만 국회를 어떤 방식으로 구성할지 결정하는 '선거제도'이다. 20세기 초반 보통선거권이 정착되는 과정에서 선거제도에 대한 선택은 크게 둘로 나뉘었다. 미국, 영국, 캐나다 등은 소선거구 1위대표제 중심의 선거제도를 선택했다. 스웨덴, 핀란드, 벨기에, 독일 등의 국가들은 정당득표율대로 국회 의석을 배분하는 선거제도(이하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택했다.

이로부터 100년이 지난 지금, 서로 다른 선거제도는 정치에 어떤 영향을 미쳐왔을까?

먼저 복지 국가계의 원조 격인 영국을 보자.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총선에서 승리한 노동당은 사회보장체계 개혁에 나서면서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복지계의 명언을 남겼다. 그러나 이후 마거릿 대처의 보수당이 장기 집권하게 되면서 이 명언은 흘러간 유행어로 전락해버린다. 마거릿 대처 정권은 1979년부터 1990년까지 장장 12년 동안 집권하면서 복지를 후퇴시키는 방향의 정책을 펼쳤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의 활동을 위축시키고, 민영화를 추진하고, 교육·의료와 같은 공공분야의 국고 지원을 삭감했다. 철저히 신자유주의 경제 원리에 입각한 정책들이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보수당은 무려 12년 동안 단 한번도 50% 이상의 지지를 받은 적이 없다. 지역에서 1등만 하면 당선될 수 있는 소선거구제 1위대표제 덕분에 과반수의 지지를 얻지 못해도 과반수의 국회 의석을 차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영국은 보수당이 집권하고 있다. 2015년 총선에서 고작 36.8%의 득표율로 보수당은 국회 의석의 과반수를 차지했다. 그 결과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서 다루는 비인간적이고 관료적인 복지 시스템처럼 인간의 존엄을 훼손하는 정책은 현재 영국의 현실이 되어버렸다.

영국의 사례처럼 소선거구 1위대표제 선거제도는 득표율과 의석 비율간의 불일치(불비례성)을 초래한다. 그 결과 국회는 거대 양당 중심으로 채워지고, 선거를 거듭할수록 기득권 중심의 구조는 더욱 견고해진다. 흔히들 양당제에 비해 다당제가 더 불안정한 정치 지형을 가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러나 오히려 그 반대다. 강력한 양당제 국가인 미국만 봐도 어느 쪽이 과반수를 확보하느냐에 따라 정치 지형이 완전히 뒤바뀌어 버린다. 게다가 지역구에서 1등을 하기 위해서는 거대 정당의 공천이 필요하기 때문에 인맥, 돈, 명성 등에서 유리한 사람들로 국회가 채워지기 쉽다. 국민의 대표성은 개뿔이란 뜻이다.

그렇다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택한 국가들은 어떨까? 상대적으로 행복도가 높고, 덜 부패하고, 민주주의 지수가 높은 순위에 있는 국가들은 겹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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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선거제도 하나 때문에 그렇게 된 건 아닐 테지만. 적어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통해 국회를 구성하고 '다당제' 체계를 갖고 있다는 공통점은 주의 깊게 살펴볼 만하다. 정당득표율에 따라 국회의석이 배분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택한 국가에서는 어느 한 정당이 독주할 수 없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정당간의 견제와 감시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 여러 정당이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것 또한 불가피해진다. 연립 정부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정당들 간의 협상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정당은 인물이 아닌 정책으로 경쟁하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유권자의 선택이 그대로 국회에 반영된다. 소선거구 1위대표제에서는 1등을 제외한 선택은 모두 공중에 사라진다. 1등을 반대하는 사람이 과반수를 넘어도 1등이라 당선된다. 그러나 정당이 득표한 만큼 국회 의석을 나누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에서는 사표 심리 때문에, 차악을 막아야 한다는 논리 때문에, 유권자의 선택이 왜곡될 가능성은 현저히 줄어든다.

이처럼 선거제도는 정치 구조와 사회의 행복 수준에 큰 영향을 미친다. 흔히들 한국은 절차적 민주주의는 이루어졌지만 실질적 민주주의는 달성되지 않았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과연 우리는 진정으로 절차적 민주주의에 도달하긴 한 걸까?

대의 민주주의 사회에서 절차적 민주주의의 핵심은 '정치적 대표성'을 사회 구성원에게 두루 보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나를 정치적으로 대변하는 대표자가 지금 국회에 있는가? 다수결의 원칙이 지켜진다면 엄연히 한국 사회에서 다수로 존재하는 여성, 노동자, 자영업자, 청년 등의 선호와 이익은 정치 과정에 반영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현재 국회는 국민들의 평균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다양한 계층을 대변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사회경제적 약자의 목소리를 국회에서 기대하는 건 허황된 꿈만 같다.

그래서 일단 '선거제도 개혁'이 정치 개혁의 첫걸음이라고 믿는 사람들 몇몇이 모였다. 모여서 '셀럽부터 백수까지' 다양한 유권자들의 선거와 정치 경험에 대한 목소리를 수집해보려 한다. 〈100인의 시민, 선거를 말하다〉를 통해 '선거'라는 행위가 정치, 더 나아가 우리 삶에 어떻게 일상적으로 접속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선거 제도 개혁의 필요성을 널리널리 알리고자 한다. 선거제도 그 자체로 민주주의가 완성될 수는 없다. 다만 정치 게임의 룰인 선거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공정치 않다면 뜯어 고치는 것은 당연하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최초로 시작한 국가, 벨기에의 학자 빅토르 동트(Victor D'hondt)는 비례대표제 시행을 주장하며 이렇게 말했다. '투표권이 있다고 공정한 것은 아니다'

[카드뉴스] 100년 전에 갈라진 길 그리고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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