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허핑턴포스트 블로거의 분석과 의견이 담긴 생생한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 한국 Headshot

타맘, 나의 예멘

게시됨: 업데이트됨:
인쇄

*제목의 '타맘'은 '괜찮다', '좋다'는 뜻의 아랍어입니다.

국경없는의사회의 구호 현장에서 절반 가량을 차지하는 비의료 인력은 의료진이 환자들을 치료하고 살리는 일을 할 수 있도록 현장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최근 7번째 파견지인 파키스탄에서 돌아왔고 곧 다시 다음 현장으로 떠나는 김아진은 그들 중 하나다. 이미 여러 차례 현장에 다녀왔지만, 무슨 일에든 '첫 번째'는 남다른 의미를 지니는 것처럼 첫 현장 파견지였던 예멘은 김아진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지금 무력 분쟁이 격화된 예멘 소식을 들으면 그곳에서 만났던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2015-06-01-1433119084-6732905-1.JPG

2011년 예멘에서 함께 일한 동료들. 왼쪽부터 미얀마인 의사, 김아진, 나이지리아인 간호사, 아일랜드인 의사.
©국경없는의사회

나는 국경없는의사회의 현장 활동가로 7번째 파견지인 파키스탄에서 얼마 전 돌아왔다. 하지만 나는 의사나 간호사가 아닌 행정 담당자다.

최근 한국에서는 의사, 간호사, 약사 등 상당수의 의료인 활동가가 국경없는의사회 현장에 파견을 다녀왔다. 많은 사람들이 의료인만 국경없는의사회와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주로 듣는 질문이 "그럼 의사이세요?"다. 하지만 현장에서 나 같은 비의료인 활동가는 전체 활동가 중 절반 가량을 차지한다. 이들은 주로 인사나 재정, 물류, 위생 및 수질 관리 등을 담당한다. 나 역시 의료인은 아니지만 국경없는의사회의 인도주의적 의료활동에 기여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다.

그렇다면 내가 하는 일은 뭘까? 나는 국경없는의사회 현장 활동에 필요한 인력을 관리하는 인사관리 담당자다. 국경없는의사회 현장에서 병원을 운영하거나 예방접종 캠페인을 하려면 다른 기관들처럼 직원들을 뽑고, 교육하고 또 매달 급여도 지급해야 한다. 또 전 세계에서 온 활동가들을 지원하고 팀으로 함께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사실 하는 일 자체는 한국의 인사 담당자들이 하는 일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전 세계에서 온 다양한 활동가들과 팀을 이뤄 함께 일하고 생활한다는 점, 수백 명에 이르는 많은 직원을 현장에서 관리하는 막중한 책임이 있다는 점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또 내가 일하는 곳이 때로는 아프리카의 오지 한 가운데일 수도 있고 폭탄이 터지는 전쟁터일 수도 있다. 그래서 언제든지 짐을 싸서 떠날 수도 있는 불안정함, 혹은 다르게 말하자면 유연함이 있다는 것도 다른 점이다.

이번에 파키스탄에서 한국으로 돌아와 국경없는의사회의 서울 사무실에서 처음으로 2015년 달력을 넘겨보게 되었는데, 1월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 사진은 바로 나의 첫 번째이자 세 번째 파견지였던 예멘의 암란이었다.

2015-06-01-1433119135-3203106-2.jpg

예멘 암란 주의 오스만 계곡. 국경없는의사회 2015년 달력을 넘기다가 이 사진 속에서 예멘에서 함께 일한 운전사 라비의 얼굴을 발견했다. ©Jacob Zocherman

지금 예멘에는 무력 분쟁이 심해져서 그 나라의 인구가 많은 지역에서 사람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예멘 소식을 뉴스에서 볼 때마다, 그곳에서 국경없는의사회가 부상자들을 지원한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나는 가슴 한구석이 시리고 철렁한다. 그곳에서 폭격에 마음 졸이고 있을 예멘인 동료들을 생각하면 한국에 돌아와 편안하게 지내고 있는 내가 미안해진다.

예멘은 안전한 나라라고 말할 수는 없다. 누구든 쉽게 총기를 소지할 수 있고 중앙정부의 통치력이 지방에까지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갈등이 생길 때는 법이 아닌 지역의 부족장이나 원로에 의해서 해결되는 경우도 많다. 다양한 세력이 복잡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대립하다 보니 예멘에는 끊임없는 분쟁과 충돌이 만들어진다. 이로 인해 정말 필요한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그것이 국경없는의사회가 시시각각 급박하게 변하는, 때로는 아주 위험한 상황 속에서도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이유다.

2015-06-01-1433119236-6238615-3.JPG

예멘에서 함께 일한 운전사 라비. 국경없는의사회 현장에서 운전사는 직원이나 환자들이 이동할 때 안전을 책임지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국경없는의사회

내가 달력에 실린 사진을 보고 놀란 이유는 그 사진 속에서 나와 함께 암란에서 일했던 운전기사 라비의 반가운 얼굴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국경없는의사회인데 운전기사가 있느냐고 하시는 분들도 있겠다. 하지만 어느 현장에나 반드시 필요한 직종이 운전기사이고 그들은 우리 직원들과 환자들의 안전한 수송을 책임진다. 국경없는의사회가 일하는 곳은 아주 외딴 곳이거나 곳곳에 총성이 들리고 폭탄이 터지는 위험한 상황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운전기사는 직원들과 환자들을 목적지까지 실어다 주는 역할뿐만 아니라 여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안전 문제를 판단하고 책임지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여정에서 뜻하지 않은 위험 상황이 발생하거나 경찰이나 군인들이 검문을 할 때도 운전기사의 판단을 따른다. 내 경우에는 에티오피아 초원에서 사자를 만나기도 했고, 예멘에서는 무장한 지역 세력들이 길을 막은 적도 종종 있었다. 물론 전화나 무선라디오가 있어서 급박한 상황에서는 함께 상의하고 도움을 받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이렇게 국경없는의사회는 의료인 뿐만 아니라 안전요원이나 청소부부터 나와 같은 행정직, 그리고 의료인까지 모두가 함께 팀으로써 의료구호 활동을 하는 곳이다.

2015-06-01-1433119337-6986120-4.JPG

우리나라 강원도처럼 험준한 예멘 북부. ©국경없는의사회

예멘 북부는 우리나라 강원도처럼 산악 지형인데, 라비는 아슬아슬하기만 한 예멘의 비포장 산악도로를 능숙하게 잘 운전하는 멋진 친구였다. 예멘에서 이동은 안전 문제 때문에 이른 새벽에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새벽 어둠이 채 가시지도 않은 길은 위험천만하기만 했다. 하지만 라비가 운전하게 되면 가파른 산길을 달려도, 때론 무장 세력이 출몰해서 길이 막혀도 아무 걱정 없이 모자란 잠을 청하곤 했다. 라마단(이슬람교의 단식 기간)이 끝난 후의 이드(이슬람교의 축제일) 휴가에 심심해하던 활동가 팀 전체를 3대가 모여 사는 집에 초대해 준 사람도 라비였다. 거기서는 남녀가 분리되어서 결국 라비는 보지도 못했지만, 라비의 부인과 어머니 그리고 여자친척들을 만나 안 되는 아랍어와 영어로 대화를 하고 한참을 웃고 또 아랍 음악에 맞춰 신나게 춤을 췄다.

왜, 그리고 어떻게 이런 일을 몇 년씩이나 하냐고 묻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나는 위대하고 숭고한 정신을 가졌다거나 사람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성자가 아니다. 전혀 낯선 곳에서, 때로는 너무 덥거나 전기도 수돗물도 없거나 아니면 때로는 근처에 폭탄이 떨어지기도 하는 곳에서, 항상 새로운 사람들과 맞춰 가며 일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국경없는의사회에서 일한 지 한참이 되었지만 나는 아직도 수술실에서 피를 보면 기절해 버리고 급성 말라리아로 목숨을 잃는 아기들을 보면 눈물부터 난다. 한 파견지에서 임무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오면 몇 년을 일한 듯한 피로감을 느끼고,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수십 번씩 한다.

하지만 자석처럼 이 일에 이끌려 왔고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고 또 무엇보다 이 일이 즐겁기 때문이다. 나는 긴급구호 현장에서 직접 사람을 살리지는 못하지만 그 일이 가능할 수 있도록 뒤에서 지원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영양실조에 걸렸던 아기들이 회복해서 다시 병원을 찾거나, 폭발 사고로 목숨이 위태로웠던 환자가 수술을 받은 뒤 재활 치료 하러 오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뛴다. 의료 보건시설이 열악하거나 전무한 곳에 들어가서 병동과 진료실이 운영되도록 인력을 계획, 채용하고 팀의 일원이 되어 어떻게 하면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접근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마침내 그것이 실행되는 것을 보면 밤낮, 주말 없이 일해도 신이 난다. 그래서 나는 다음 파견지로 설렘과 긴장감을 가지고 떠난다.

라비가 예멘에서 전해온 최근 소식

2015-06-01-1433150864-9252049-2015060114331194146985317Untitledthumb.bmp

현재 카메르에서 로지스티션(물류 담당 직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최근 예멘 분쟁이 심해지면서 어마어마한 숫자의 국내 실향민들이 이동하는 것을 봤어요. 이동 진료실 활동과 더불어, 국경없는의사회는 실향민들에게 취사도구와 의료 물품을 제공하고, 실향민들이 모여 지내는 곳의 위생 시설도 수리하면서, 실향민들에게 물도 제공했습니다. 우리 모두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연료가 부족해 상황은 계속 나빠지고 있습니다. 병원을 운영하고, 카메르를 비롯해 여러 활동 지역에서 국경없는의사회 차량을 이동하려면 연료가 필요한데요. 전쟁이 일어나기 전보다 연료 가격이 10배나 뛰었거든요.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교통수단도 없고, 전기도 끊긴 상태입니다. 그래서 물이 너무 귀해져, 전에는 물을 싣고 오는 트럭에서 물을 구하곤 했는데 이젠 더 이상 그럴 수도 없게 됐어요. 물값이 4배나 높아지는 바람에, 실향민에게 물을 배급하고 국경없는의사회가 지원하는 병원까지 물을 배달하는 데에도 훨씬 많은 비용이 들고 있습니다.

[프로필] 김아진 | 국경없는의사회 활동가

2015-06-01-1433119531-8867841-6.JPG

국제인권법을 공부했으며 국경없는의사회에서는 재무, 인사를 담당하는 행정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2011년 예멘의 국내실향민 지원 프로그램에 첫 파견을 다녀왔으며 이후 일본 대지진 긴급 프로그램, 에티오피아 내 남수단 난민 지원 프로그램, 팔레스타인 자치지구 프로그램 등 총 7차례 현장 활동을 다녀왔다. 지난해 팔레스타인 공습 때 쓴 글이 한겨례신문과 허핑턴포스트에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