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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나의 과감한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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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평범한 대한민국의 청년이라고 느끼지만, 그래도 조금쯤은 남다르고 의미있는 삶을 살고 싶은가? 간호사 차선아는 스스로를 대한민국의 평범한 20대라고 말한다. 하지만 얼마 전 그녀는 용기를 내 남다른 길로 들어섰다. 구호 현장에서 일하고 싶다는 어릴 적 꿈을 서른 살이 되기 전에 실천하려는 결심으로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분쟁 지역인 남수단으로 떠난 것이다. 평범하지만 의미 있는 삶을 꿈꾸는 우리 모두에게 전하는 국경없는의사회(Medecins Sans Frontieres, MSF) 차선아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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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수단 민카만 국경없는의사회 진료소 앞에서 현지 직원 앙우이와 함께. ⓒ국경없는의사회

나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20대 여성이다. 시험 점수 맞춰 대학에 갔고 간호학과를 나온 덕분에 요즘 정말 많은 청년들을 괴롭히는 유별난 '스펙' 없이 바로 병원에 입사했다. 어학연수나 장기 해외여행을 가본 적도, 외국에서 살아본 경험도 없다. 밤 11시 통금이 있는 집안에서 자랐고 근거는 없다지만 누가 봐도 전형적인 A형 성격이다. 그래도 좀 다른 면이 있다면 단기간이나마 해외 의료봉사를 한 번 다녀온 것, 계속해서 국제보건활동에 관심을 갖고 있었던 것, 또 잘 알려졌듯이, 힘들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간호사'로 일했던 것쯤을 들 수 있겠다. 아, 하나 더, 소심하지만 할 말은 하고 사는 편이다.

지난 가을, 나는 과감하게 병원을 그만뒀다. 국경없는의사회로부터 모든 채용 심사에 통과하여 인력 풀에 등록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드디어 현장으로 나가게 된다는 설레는 마음으로 애증으로 가득한 첫 직장을 떠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설렘도 잠시, 현장 파견 전 대기 기간이 예상보다 길어지며 나는 조금씩 지쳐갔다. 하루에도 몇 번씩 메일을 확인하며 도대체 언제 현장으로 갈 수 있는 것인지, 다른 직장을 알아봐야 하는지도 고민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정말 급박하게 당장 남수단으로 떠날 수 있겠냐는 메일을 받았다. 드디어 파견 제안을 받다니! 기쁨에 가슴이 뛰었지만, 어렴풋이 뉴스에서 본 남수단 분쟁 상황이 떠오르며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각종 기사와 동영상들은 도대체 국경없는의사회는 무슨 배짱으로 이런 곳에 사람을 보내나 의심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번에 거절하면 또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제안을 덥석 받아들였다.

그때부터 남수단 도착까지 불안과 공포에 정신이 반쯤은 나가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왜 이런 위험한 상황으로 스스로를 몰아넣었는지, 이 일이 내가 정말 원하는 일이 맞는지, 가서 잘못 되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온갖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밥도 잘 넘어가지 않고 잠도 오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 불안해 하는 것에 스스로도 너무 당황했고, 지금이라도 못 가겠다고 말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가족, 친구들도 모두 놀라서 너무 위험한 곳에 가는 것이 아니냐며 다시 생각해 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때로는 적성에 맞지 않았던 간호대학을 그만두지 않은 것도, 아무리 힘들어도 병원에서 경력이 쌓일 때까지 참은 것도, 항상 제자리인 것 같아도 끝까지 영어 공부에 매진했던 것도, 나에겐 언제나 구호 활동가로서 일하고 싶은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자마자 돌아오는 한이 있더라도 일단 가보자 하는 마음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서울을 떠난 나는 우선 국경없는의사회 스위스 사무소에 들러 현장 업무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남수단으로 출발했는데, 당연히 누군가 동행하리라는 예상과 달리 혼자 남수단까지 가게 되었다. 혼자 여행 한번 가본 적 없는데 이 불안한 마음으로 혼자 가야 한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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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없는의사회

대기 시간을 포함해 장장 17시간에 걸친 여정 끝에 우간다 엔테베 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4시였다. 남수단 수도 주바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4시간을 동네 터미널 같고 아무도 없는 공항에서 혼자 기다리려니, 집에 가버릴까 하는 충동이 다시 밀려왔다. 대기 장소를 알려주는 전광판도 없고, 간간히 나타나는 직원들은 여기 앉아 기다리라는 말만 남기고 유유히 사라졌다. 그러다 갑자기 어디선가 작은 비행기가 나타나 나를 주바에 실어다 놓았다. 그런 뒤 숨 돌릴 틈도 없이 모래바람 불어대는 울퉁불퉁 비포장도로를 장장 6시간 동안 달린 끝에 드디어 첫 파견지 '민카만'에 도착했다.


자국 내 분쟁을 피해 국내 피난민들이 모인 민카만

집 떠나고 3일 만에 목적지에 도착하니 바짝 곤두섰던 마음이 좀 편안해졌다. 일단 무사히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들었다. 막상 도착해 보니 걱정했던 것처럼 총성이 오가는 상황은 아니었고 오히려 '평화롭다'는 느낌이 들었다. 엔테베 공항까지 이어졌던 집으로 돌아갈까 하던 마음도 지금까지 온 여정을 생각하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바로 전임자와의 인계가 시작되었는데 휴식을 취할 새도 없이 인계를 받으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내가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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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카만에 자리한 국경없는의사회 입원 병동의 대기실 ⓒ국경없는의사회

민카만은 북쪽의 보르 지방에서 일어난 반군과의 무력 분쟁 때문에 도망친 국내 피난민들이 모여든 곳으로, 그 지역에서 국경없는의사회는 진료소 4곳과 입원 병동을 운영하고 있었다. 호흡기 감염, 위장관 감염, 영양실조, 외상 환자들이 주를 이뤘고, E형 간염과 콜레라, 홍역 같은 전염성 질환과 말라리아 환자들도 찾아왔다. 내가 맡은 역할은 그 진료소 4곳을 운영하는 일이었다. 인력과 물품을 관리하는 우리나라의 파트장(수간호사)과 비슷한 역할인데 한국에서는 주로 환자 간호만 하다가 관리직을 맡게 된 것이다.

단 하루도 조용히 지나가는 날이 없었다. 그 중에서도 나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현지 인력들과의 마찰이었다. 아무런 예고 없이 결근했다가 며칠 뒤에 천연덕스럽게 다시 나와 일하고 있거나, 상사의 지시에 즉시 문제를 해결하는 한국과는 달리 내가 무엇을 지시해도 그저 웃으며 '알겠다'고 대답만 하고 움직이지 않아 언성을 높이며 싸운 적도 있다.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너무 답답하고 힘들어서 울기도 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느긋한 아프리카 사람들의 문화에 적응할 수 있었다. 나 혼자 아무리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서둘러봐야 일이 잘 굴러가는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현지 직원들과의 갈등 말고도 나를 힘들게 한 또 다른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현지 환경이었다. 가장 처음 부딪힌 문제는 화장실이다. '푸세식' 화장실의 눈까지 따갑게 할 만큼 지독한 냄새와 극도로 흥분한(?) 파리 수십 마리 때문에 나는 며칠이나 제대로 일을 볼 수가 없었다. 해는 어찌나 쨍쨍 내리 쬐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얼굴에 주근깨가 잔뜩 돋기 시작했다. 말라리아 예방약의 부작용 때문에 매일 이상한 꿈에 시달리고 잠을 깊이 잘 수도 없었다. 우기에는 비가 정말 하늘이 뚫린 것처럼 왔고, 그렇게 비가 오고 나면 숙소 앞에 작은 호수가 생기고, 범람한 강의 물고기가 떠내려 와 숙소인 텐트 안까지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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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제르에서 온 보건홍보직원이자 나를 위해 한국 라면을 잔뜩 사다준 라비, 그리고 미국에서 온 조산사 에리카와 함께. ⓒ국경없는의사회

이런 상황 속에서도 내가 3개월이나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같이 일한 국경없는의사회 동료들 덕분이다. 프랑스, 독일, 스페인, 포르투갈, 헝가리, 케냐, 미국 등 세계 각지에서 온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의 목표를 위해 움직이는 감동적인 현장에 내가 있다는 사실에 더할 나위 없이 가슴 벅찼다. 내가 너무 힘들어서 엉엉 울 때 엄마처럼 다독여준 텐트메이트 베로니크, 휴가 갔다가 나를 위해 한국 라면을 하나 가득 사온 라비, 첫 현장 파견이라 아무것도 모르는 내게 정말 많은 것을 알려준 최고의 파트너 파빌라 등, 40여명의 동료 하나 하나가 지금까지도 정말 소중한 사람들로 내 마음속에 살아있다. 나를 엄청 속상하게 만들었던 현지 직원들도 이제는 그립기만 하다.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된 첫 현장 파견

3개월의 남수단 현장 파견은 나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남수단에서 돌아온 뒤로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관이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이다. 예전의 나는 주변사람들과 나를 끊임없이 비교했고, 괴로워했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 내가 못한 일에 대한 후회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첫 파견을 마치고 나서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가졌고, 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달았다. 만약 임무 도중에 포기했더라면, 우간다 공항에서 집에 돌아와 버렸다면 어쩔 뻔했나 아찔하기까지 하다.

나에게 첫 번째 현장 파견은 선물 같은 연습게임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 경험을 통해 나 스스로는 많이 성장했지만 현장에 과연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을까 돌아보게 되었는데, 두 번째 파견부터는 연습게임에서 익힌 것을 본격적으로 발휘해 보고 싶다. 지금 혹시 구호 현장에 나가는 것을 고민하고 있는 여러분이 있다면 마지막으로 영화 <창문 너머 도망친 노인>에 나오는 대사를 한마디 전해드리고 싶다.

'소중한 순간이 오면 따지지 말고 누릴 것, 우리에게 내일이 있으리란 보장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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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 차선아 ⓒ국경없는의사회


차선아 | 국경없는의사회 간호사
간호대를 졸업한 뒤 대학 병원 소아과 병동 간호사로 3년간 일하던 중, 어릴 때부터 꿈꿔온 구호 활동을 실천하기 위해 국경없는의사회에 지원했다. 2014년 여름에 첫 현장 활동으로 3개월간 남수단에 다녀왔으며 지금은 한국에 돌아와 일하며 다음 파견을 준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