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허핑턴포스트 블로거의 분석과 의견이 담긴 생생한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 한국 Headshot

기약 없는 내전, 죽음에 익숙해진 사람들

게시됨: 업데이트됨:
인쇄

2013년 12월부터 무력 분쟁이 계속되고 있는 남수단. 그중에서도 북부 유니티 주 벤티우(Bentiu)는 이번 분쟁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고 있는 지역이다. 지난 우기에 벤티우 유엔 민간인 보호 구역은 무릎보다 더 높이 차오른 물과 싸워야 했는데, 우기가 끝나고 물이 빠지기 시작하자 한동안 잦아들었던 교전이 다시 심해지기 시작했다. 현재 국경없는의사회(Medecins Sans Frontieres, MSF)는 벤티우 유엔 민간인 보호 구역 안에 산부인과, 소아과, 결핵 병동, 수술실 등을 갖추고 응급 의료 구호를 하고 있다. 벤티우 파견을 마치고 귀국한 한국인 간호사 이영수가 남수단 벤티우 이야기를 전한다.

2014-11-28-MSB11351.jpg

ⓒJean-Pierre Amigo/MSF

2014-11-28-YoungsooLEE_Bentiu11.jpg

2014년 8월 우기에 홍수로 무릎까지 올라오는 물에 잠겨버린 남수단 벤티우 유엔 민간인 보호구역. 현재는 물이 빠지고 마른 땅이 드러났다. ⓒ국경없는의사회

한국에 돌아온 뒤로 사람들이 자주 묻는다.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온 기분은 어떤 것이냐고. 하지만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아직 잘 모르겠다. 겨우 할 수 있는 한 마디는, "세상이 참으로 조용하다"는 것뿐이다. 이제는 자다가 빗소리가 들려도 보호구역 사람들을 걱정하며 깨어나지 않아도 되고, 작은 충격 소리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그 소리가 어느 방향, 어느 정도 거리에서 들려오는지 생각하지 않아도 되고, 시종일관 무전기에 귀 기울이지 않아도 된다.

겨우 3개월의 벤티우 생활. 2013년부터 이미 남수단에 세 차례 다녀왔고, 이전 두 차례의 파견이 이번 3번째보다 배는 길었는데도, 이번에 돌아와 맞는 휴식은 기분이 다르다. 벤티우에 있었던 때가 마치 아주 오래 전처럼 느껴지다가도, 두고 온 동료들을 생각하면 아직도 내가 그곳에 속해 있는 것만 같다. 돌아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교전이 시작되었으니, 정신 없이 바쁠 동료들을 생각하면 이제 그만 쉬고 다시 돌아가야 할 것만 같다.

파견을 마치고 귀국하는 동료에게 나는 언제나, 이곳 현장은 잊어버리고 이제 다음을 준비하라고 말하곤 했다. 교전이 한창이던 지난 8월 귀국한 소아과 동료가 매주 이메일을 몇 통씩 보내며 환자들의 경과를 묻고 우리를 걱정할 때도 나는 그러지 말라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이제는 나 자신에게 같은 충고를 한다.

지난 2013년 12월 분쟁 발발 이후 벤티우의 주인은 이미 네 차례나 바뀌었고, 10월 29일 교전이 벌어진 뒤로는 아직 어느 쪽이 벤티우를 장악하고 있는지 확인도 되지 않는다. 유엔이 민간인 보호구역을 설치해 벤티우와 인근 주민 수만 명을 이주시켰지만, 4월부터 우기가 시작되자 유엔 보호구역은 두 개의 전쟁을 치르기 시작했다. 언제 끝날지 기약 없는 내전, 그리고 비만 내렸다 하면 무릎까지 잠겨버리는 물과의 전쟁이다.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삶은 절박하다. 유엔세계식량계획(WFP)에서 보급을 받아온다 해도 물에 잠기면 불을 피울 수가 없어서 밥을 할 수 없으니 보급품을 쌓아두고도 굶어야 하고, 물과의 전쟁을 치르며 유난히 호흡기와 피부과 질환에 시달리는 아이들을 둔 부모들은 퇴원을 거부하며 그나마 물에 잠기지 않은 병원에 머물게 해달라고 사정을 한다. 이따금 차라리 큰 희생을 치르더라도 이 전쟁을 끝내는 무슨 일이 터지기를 기원할 만큼 분노하기도 한다.

2014-11-28-YoungsooLEE_Bentiu2.jpg

2014-11-28-YoungsooLEE_Bentiu33.png

벤티우 국경없는의사회 진료소. ⓒ국경없는의사회

그 안에서 나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어린 생명 하나가 내 앞에서 죽어가는데 열악한 환경 탓에 더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내가 절망감을 느낄 때 "애써줘서 고맙다, 많이 노력한 것 안다"고 도리어 나를 위로하던 남수단 사람들이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주검을 정리하며 나를 위로하던 현지 직원들과 내게 고맙다고 하던 어린 부모들. 오랜 내전을 겪으며 죽음에 익숙해져 버린 남수단 사람들의 모습이 안타깝다가도 이따금은 불현듯 그들에게 화가 나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사실, 더 이상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어서 찾아온 절망감의 또 다른 표현이었을 것이다.

이제 나는 그 절박한 삶의 현장을 과거로 묻어야 하지만 여전히 그곳에서 거친 삶을 살며 웃고 있을 동료들이 그리 쉽게 잊혀지진 않을 것만 같다. 긴박한 생활 속에 함께 일하며, 짧은 시간 동안 우리는 서로에게 가족이 되었다. 게다가 그 파견이 끝나면 평생 다시 만나지 못할 사람도 많다는 걸 알면서도 이렇게 깊은 우정을 나누게 되는 것은 국경없는의사회와 일한 뒤로 내가 감사하다고 느끼는 이유 중 하나다.

파견을 마치고 귀국할 때 미안해 하는 나에게 집에 가서 부모님 건강 잘 챙기라며 오히려 격려해주고, 이미 반은 파헤쳐진 내 텃밭에 토마토를 심으며 이제는 내가 만든 김치를 먹을 수 없다며 안타까워하던 동료들. 죽어가는 환자의 손을 쉽게 놓지 못하던 내 동료들을 볼 때 나는 내가 의료인이 된 것에, 그런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단체의 일원인 것에 감사한다. 일을 마치고 돌아와 함께 석양을 바라보며 서로를 위로하고 함께 웃을 수 있던 그 사람들이 있어서, 나는 어느새 다음 현장 파견을 기다린다.

2014-11-28-YoungsooLEE_Bentiu4.jpg

2014-11-28-YoungsooLEE_Bentiu5.JPG

ⓒ국경없는의사회

이영수 | 국경없는의사회 간호사

24년 경력의 간호사. 11년 동안 군 간호사로 일했으며 2002년 이후에는 미국 플로리다의 병원에서 일했다. 2010년 아이티 대지진 때 긴급구호를 하는 국경없는의사회를 알게 되어 지원을 결심했으며 이후 2013년부터 국경없는의사회 활동가로서 분쟁 지역인 남수단에 세 차례 파견을 다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