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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없는의사회 한국 Headshot

수요일은 모래바람의 캠프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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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 오후는 자타리 캠프에 가는 날이다. 람사 병원에서 약 1시간 정도 차를 타고, 시리아 국경을 왼쪽으로 끼고 동쪽으로 달리다 보면, 저 멀리 허허벌판에 옹기종기 나즈막한 컨테이너들이 보이는 지점이 있다. 그곳을 향해서 달리면 장갑차가 보이는 검문소에 도달한다. 국경없는의사회의 하얀 조끼가 신분증과 다름없다. 검문 경찰이 반갑게 인사하고 길을 내어준다. 첫 번째 갈림길에 유엔난민기구의 간판이 보이는데, 여러 나라의 국기가 그려져 있다. 거의 반사적으로 우리나라 국기가 있는지 탐색하고는, 중간 아래쯤 태극기가 있는 걸 보며 자랑스럽게 느낀다. 그리고는 그 아래로 크게 적힌 'THANK YOU'를 보니 긴장이 좀 풀리는 느낌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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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타리 난민 캠프 내의 국경없는의사회 진료소 ©Diala Ghassan/MSF

검문소를 지날 때의 긴장은 이 갈림길에서 잠시 누그러들더니 이내 곧 슬픔으로 변하였다. 격하게 슬픈 광경은 없다. 컨테이너 집들은 알록달록 벽에 그림을 그려놓거나 아랍어 캘리그래피를 멋지게 적어놓았고, 작은 꽃나무 화분을 집 앞에 놓기도 하며 나름 단장을 한 모습이다. 제법 큰 시장도 있다. 생필품도 팔고, 옷도 팔고, 음식도 팔고, 아이스크림도 판다. 길거리 카페 같은 곳에서 차를 마시는 모습도 차창 밖으로 보인다. 이곳에 도착하는 시간인 오후 3시경에는 학교가 끝나는 모양이다. 하교하는 아이들이 재잘재잘거리며 삼삼오오 즐거운 모습이다.

이렇게 평온한 모습인데, 캠프에 오기 전에 들은 한마디가 내 눈 앞에 이렇게 펼쳐지니 나의 마음 한구석을 찡하게 만든다. '자타리 캠프가 2012년에 생겼으니 이제 4년이 되어가요. 4년의 세월을 지나면서 마을이 차차 형성되어 가는 모습을 보네요.' 4년. 그 기간 동안 이 사람들은 이 허허벌판 캠프의 경계를 허가 없이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외출 허가 받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하나, 최대 외출기간이 2주여서 이 이상 외출 시에는 다시 들어와서 재허가를 받아야 한다). 임시 거주처에 묶여 고향 집으로 갈 날을 기약 없이 기다리고 있다.

자타리 캠프는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난민 캠프이다. 2016년 6월 기준, 7만9000여 명이 그 곳에 머물고 있다고 한다. 마을 하나가 지어졌다고는 하지만, 그곳은 도시도 마을도 아니다.

'이곳에는 병원이 하나도 없습니다'

의료인의 관점에서는, 의료인이 아니더라도, 이 한 문장이 그저 여기가 난민촌임을 확인하게 해준다. 병원으로 허가된 시설은 없지만, 그나마 NGO단체들이 의료시설을 운영할 수 있게 해준 곳은 몇 군데 있다. 그 중 하나가 제 5구역에 위치하고 있는 국경없는의사회의 자타리 의료시설이다. 처음에는 소아 백신 사업 등 소아 의료 중심의 1차 진료를 최초로 시작하다가 점차 다른 NGO단체들이 비슷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이 분야의 의료 제공이 어느 정도 안정화가 되니, 다음 단계로서 수술 후 환자의 재활치료를 중점으로 하는 역할로 새 단장을 하였다.

자타리 의료시설의 철조망 안으로 들어와 차에서 내리니 사막의 모래바람 같은 건조한 바람이 내 얼굴을, 그리고 모래 색으로 빛 바랜 국경없는의사회의 깃발을 휘감으며 노닐었다. 검정색 선글라스와 하얀색 조끼를 걸친 자타리의 팀리더가 우리 팀을 맞이해준다. 가벼운 인사와 물 한 모금을 하고는 회진을 바로 시작한다. 여기에서 머무는 시간은 2시간이 채 되지 않는다. 40병상이 있는 이곳은 자체 의료진으로 상시 운영되고 있으며, 람사의 전문의인 나는 컨설턴트로서 주요 치료 방침을 결정하는 데 참여하고 있다. 의족을 기다리거나 혹은 의족 착용 후 초기 재활을 하는 절단지 환자가 많다. 개방성 골절이 생긴 많은 환자들은 외고정 장치(치료 중인 뼈를 안정화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구조물)를 받고 창상에 대한 치료를 마친 후 이제 안정화 단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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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후 재활치료가 이루어지는 자타리 난민 캠프 내 국경없는의사회 진료소 © Isidro Serrano Selva

이 회진에서 치료 방향의 단계가 결정되기에 환자들의 이목이 집중된다. 가장 큰 관심사는 외고정 장치를 언제 풀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여기 저기에서 엑스레이를 봐달라며, 이제는 풀어도 되는지 판단해달라고 한다. 급성기가 지나 통증은 가라앉고 이제 재활을 빨리 하고 싶은데, 오랜 기간 외고정 장치를 거추장스럽게 달고 있는 것이 어지간히 불편한 모양이다. 뼈가 어느 정도는 붙어야 이걸 빼줄 수 있는데, 심한 개방성 골절은 단순 골절보다 뼈가 붙는 게 더디다. 그래도 오늘은 외고정 장치를 제거해도 될만한 환자가 네 명이었다. 행복한 표정으로 휠체어를 몰며 치료실로 몰려갔다.

집 근처에서 폭탄이 터지기는 전까지는

환자들의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해주고 싶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다. 사실 환자도 안다, 본인이 다친 정도가 어느 정도였고 앞으로 치료가 다 끝나면 어느 정도 장애가 남을지를. 하루 이틀 입원한 환자가 아니다. 그래도 담당의사가 바뀌니 행여나 새로운 소식이 있을까 싶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다시 물어보는 것이다. 앞으로 어떤 치료를 받으면 어깨 관절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느냐며 스무 살을 갓 넘긴 어느 환자가 물었다. 이 환자는 폭탄 피해로 두 다리를 무릎 위에서 잃었고, 왼쪽 위팔의 어깨 쪽 근육과 뼈가 소실되었다. 팔은 달려있는데 어깨부분이 도려내진 모습으로, 어깨 관절의 기능은 전혀 없는 상태이고 팔은 상처조직에 단단히 매달려 있는 상태 정도였다. 다행히 손을 움직일 수 있다. 거의 팔 전체가 절단될 뻔한 손상이었는데, 다행히 주요 혈관 및 신경이 있는 부위의 손상은 적어서, 손이 기능할 수 있게 만들어 놓은 선임 선생님의 노력이 컸다. 환자는 두 다리를 잃었지만 의족을 차고 걸을 수 있으니, 손 어깨가 조금이라도 기능을 더 할 수 있어서 평범한 일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하지만, 환자도 충분히 예상했던 답변이겠지만, 어깨 기능을 살릴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그는 그저 스무 살 청년이었다. 평범한 시민이었다. 집 근처에서 폭탄이 터지기 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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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보통 남자, 국경 너머 생명을 살리다' ©MS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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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 난만한 12살 소년의 상처

다음 환자들을 진찰해 나가다, 밝게 인사를 하는 12살 소년을 만난다. 내내 침대에 모로 누워있는 아이이다. 지난주에 이 아이의 엑스레이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이렇게 심하게 허리뼈가 앞으로 완전히 빠져나간 건, 정형외과 의사로 30년 넘게 외상환자를 치료한 외과팀 리더 선생님도 처음 본다고 한다. 폭파의 여파로 심하게 내동댕이쳐지며 허리가 완전히 꺾어 져서 생겼을 것으로 보인다. 하반신이 완전마비 되고, 허리에는 커다란 열린 상처가 있다. 하반신 마비의 이 아이는 수술 없이는 휠체어에 앉기도 어렵다. 열린 상처가 아물면, 큰 수술이 필요한데, 람사 병원에서 감당할 수 있는 수술은 아니다. 가능한 방법을 모색하다가, 요르단의 대학병원에 의뢰해서 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절차가 시작되어 희망이 보인다. 아이는 그 소식에 기쁜 건지, 외국인 의사들이 와서 진찰하고 상의하고 치료하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지는 건지 마냥 천진난만한 얼굴로 미소를 짓는다. 여러 환자들을 지나 병실의 문을 나갈 때도 멀리서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흔들며 인사를 한다. 그 모습이 겨울을 이겨내고 피어나려 하는 초봄의 매화꽃 봉오리같이 느껴졌다.

회진이 끝나고 차로 향하는 길에 낮게 깔리기 시작하는 태양 볕을 등뒤로 모래바람을 다시 한번 만난다. 한 순간 시야를 가릴 정도로 불어오는 이 마른 지역의 모래바람이 문득 추운 겨울의 눈보라처럼 느껴졌다. 여기는 난민캠프이다. 시리아 내전이 발발한 지 5년이 지나가고 있다고 하는데, 아직도 끝은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차에 오르며 바라 본 건물 위의 국경없는의사회의 빛바래고 해진 깃발은 몇 시간 전과 변함없이, 지난 주와 변함없이 그렇게 모래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 다음주에 다섯 번째 이야기가 연재됩니다.

이재헌 | 국경없는의사회 의사

정형외과 전문의로, 2016년 요르단과 아이티에서 국경없는의사회의 의료 구호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이전부터 국제 구호활동에 관심이 많아 탄자니아를 비롯해 네팔, 필리핀 등지에서 의료 지원 활동을 해왔다. 올해 요르단에서 시리아 전쟁으로 인해 외상을 입은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겪고, 느낀 이야기들을 일기로 적었고, 그 일기는 김보통 작가의 웹툰으로 재구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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