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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없는의사회 한국 Headshot

시리아 전쟁 피해자들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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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영 구호활동가와 시리아 어린아이. Joosarang Lee/MSF

국경없는의사회에서 일을 막 시작했을 때다. 아무래도 국경없는의사회 주요 활동지가 아프리카나 중동 지역이다 보니 평소 익숙지 않았던 지명들이 사무실에서 자주 언급되곤 했다. 국경없는의사회에서 일하기 전엔 한동안 기자로 일했다. 부끄러운 사실이지만 기자임에도 불구하고 (왠지 모든 걸 다 알고 있어야 할 것만 같은 압박감이 항상 있었지만) 솔직히 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에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고 시야 밖에 있는 주제들이라 여겨 잘 알지 못했다. 그 곳은 왠지 전문가들만의 영역이라는 느낌이었다.

여튼 입사 초기, 스스로를 자극시키는 차원에서 아프리카와 중동 국가들이 표기된 지도를 모니터 아래에 붙여놓고 짬이 날 때마다 눈길을 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라 이름을 보고, 회의 때도 입 밖으로 꺼내보고, 이메일에도 한번 써보고 하다 보니 내겐 '다만 하나의 몸짓'과도 같았던 이 지역이 점점 꽃봉오리를 피며 의미 있게 다가오기 시작한 것 아닌가! 가만 들여다보니 모든 꽃이 제각각이듯, 이 나라들도 복잡한 역사의 흐름을 타고 살아남아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이 때 생각난 시가 바로 김춘수 시인의 '꽃'. 아마도 다들 한 번쯤 들어봤겠지만, 글을 이어가기에 앞서 다시 한번 적어본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마음으로 조금씩 가까이 다가오는 현장 활동 소식들을 접하면서 자연스레 다음 단계를 찾게 됐다. 시에서처럼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고. '아, 가서 내 눈으로 보고 싶다,' '나도 거기서 의미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던 찰나. 요르단 출장 일정이 잡혔다. 한국인 활동가 세 분이 있는데, 이들의 활동사항을 렌즈에 담아오고 또 증언을 담아오는 업무였다. 시리아 전쟁의 폐해를 고스란히 담아와 이 같은 인도주의적 위기 상황에서 국경없는의사회가 하는 의료 활동을 한국 대중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다.

그래서 지난 6월 말, 기자가 아닌 국경없는의사회 홍보팀 신분으로 약 열흘 동안 요르단 국경없는의사회 활동 현장을 찾아 취재했다. 요르단이 어떤 곳인가 하면, 여러 인접 국가를 두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북부로 시리아와 국경을 두고 있는 나라다. 이곳 국경지대에 자리잡은 '람사 병원'은 대부분 시리아 환자들을 돌본다. 이미 5년 넘게 전쟁을 치르고 있는 그곳이다. 시리아에서 포탄을 맞고 총상을 입은 사람들 중 중환자만이 간신히 국경 너머로 이송되어 람사 병원에서 치료받는다. 한마디로 전쟁 한복판이다. 도심 속 기자로 일한 지난 6년보다 '국경없는의사회 홍보팀'으로 전쟁의 손길이 뻗친 곳에 있었던 열흘 동안 종군기자 못지않은 긴장감을 느낀 이유다.

생전 처음 중동 국가를 방문한 감회를 만끽할 틈도 없이, 도착 이튿날 곧바로 국경 쪽으로 출동했다. 도착하자마자 현장 프로젝트 코디네이터를 만났다. 동행한 현지 동료가 물었다. 잘 지내냐고. 지금은 비교적 평화로운 것 같아 보인다고. 그러자 코디네이터는 "평화라는 단어는 쓰고 싶지 않다"고 했다. 오히려 폭풍전야 같은 불안감에 언제, 무슨 일이, 어디서 터질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긴장을 놓지 않으련다고 답했다.

그럴 만도 했다. 람사 병원에서 시리아 국경은 말 그대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다. 병원에서 5분 정도 운전해 가면 국경이다. 차로 국경에 최대한 가까이 가볼 수 있었다. 조금만 더 가면 시리아다. 더 이상은 갈 수 없어 그저 차 안에서 저편을 바라보다 눈을 돌려보니 주변에는 상점이 즐비하다. 한때는 사람으로 북적거렸을 텐데. 이제 모두 문을 닫았고 낡은 아랍어 간판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 위로 휑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스산한 분위기를 더한다.

본래 람사 지역 요르단 주민들은 시리아인들과 활발히 교류했다. 불과 5년 전, 내전 발발 전에는 국경을 쉽게 넘나들 수 있었고 시리아와 요르단 사람이 결혼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그래서 요르단 사람 중 친척이나 가족이 시리아에 사는 경우도 허다하다. 출입증을 보여주고 건물에 들어가듯 자유롭게 왕래하던 이들은 전쟁이 발발하자 하루아침에 생활권이 반으로 쪼개지는 경험을 하게 됐다.

병원에 도착해 간단히 이곳 저곳 둘러보는데 갑자기 한국인 의사선생님이 수술 중이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수술 종료까지 남은 시간은 불과 10분. 곧장 카메라를 둘러매고 수술실로 황급히 향했다. 바지, 윗도리, 마스크, 헤어캡 등 필요한 복장을 다 갖춰 입고 수술실로 들어섰다. 수술대 위에 누워있는 환자를 둘러싸고 의사 세 분이 한창 마무리를 하고 있었다. 환자의 오른쪽 무릎 바로 밑 절단면은 피부로 감싸 꿰매고 있었고 왼쪽 다리에는 외고정 장치를 박아 고정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환부에, 의사 가운에, 테이블에, 수건에 붉은 피가 흥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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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중인 이재헌 구호활동가(오른쪽). 환자는 스나이퍼 총에 다리를 맞았다. Joosarang Lee/MSF

맨정신으로 수술 중인 수술실에 들어오다니. 환자도 아니고 의사도 아닌 입장에서 수술실을 누비는 내 모습에 어색해 할 틈도 없이 '기자 모드'로 변신, 곧장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환자는 스나이퍼 총에 다리를 맞았다. 한쪽 다리뼈는 왕창 부서졌고 다른 한 쪽은 한국인 의사선생님의 노력으로 간신히 살려냈다. 내가 보고 사진 찍는 모습은 영화 속 스나이퍼가 아니라 실제 스나이퍼가 만들어낸 처참한 광경이었다. 전쟁의 문턱 앞에 와있다는 것이 이제서야 실감났다.

기자로서 난 무언가를 '알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것 같다. 화제의 중심에 있는 사람에 대한 정보를 캐기 위해, 누가 한 말인지, 그 누구는 어떤 사람인지, 그 말을 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지... 혹은 더 좋은 여행지를 찾기 위해, 더 싸고 맛있는 음식을 파는 곳을 발굴하기 위해, 사고가 발생한 경위를 파악하기 위해... 취재하면서, 대화하면서, 기사를 쓰면서 끊임없이 정보를 얻으려고 노력했고 그렇게 얻은 정보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그렇게 기사를 쓰면서 어느덧 수많은 이야기꽃을 주변에 한 가득 키웠고 그 화려함에 도취돼 내가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착각했다.

그런데 이곳에는 내가 모르는, 그저 '몸짓'에 지나지 않았던 이야기가 훨씬 많았다. 종군기자가 아닌, 그냥 한 도시에서 일하는 기자로서 직접 볼 일은 없었던 이야기들을 마주하게 됐다. 남성 환자들이 모여있는 병동은 들어가고 싶어도 들어갈 수 없었다. 나는 여성이기 때문에. 아주 잠깐, 병실 입구에서 안을 들여다봤다. 죄다 팔다리를 하나쯤은 잃었거나 붕대를 잔뜩 감은 사람들뿐이다. 입구에서 풍기는 진한 땀냄새와 아랍 특유의 냄새 너머 병실 안쪽 환자들의 눈빛이 보였다. 누군가는 멍한 눈으로, 누군가는 호기심에 가득한 눈길로, 또 누군가는 잔뜩 경계하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모습이 생각난다.

아이들 병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분위기는 더 밝았지만 여기서도 새로운 광경은 이어졌다. 포탄에 엄지손가락을 잃은 어린 시리아 소년이 침대에 앉아있다. 이 소년은 팔꿈치가 덜렁거리는 상태로 병원에 왔다. 완치가 어려울 것 같아 팔꿈치를 90도 각도로 굳혀버리려고 했는데, 기적적으로 조금씩 팔꿈치를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90도 이상 팔을 펼 수 있게 됐다. 내가 병동으로 들어오자 아이들은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나를 신기해 하면서도 경계하는 눈으로 쳐다봤다. 말은 서로 통하지 않았지만 내가 찍은 사진을 보여주자 금세 미소 지으며 사진을 더 보여달라는 표현을 한다. 눈으로, 표정으로, 몸짓으로도 충분히 대화가 가능했던 이 시간이 뇌리에 깊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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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탄에 엄지를 잃은 시리아 어린아이의 손. Joosarang Lee/MSF

요르단을 떠난 직후 들려온 소식은 지난달 국경지대에서 자폭테러가 발생해 요르단 경찰 6명이 사망했다는 소식. 역시 평화라는 단어는 쓰면 안 되는 것이었다. 갈등이 더욱 악화되어 시리아와 요르단 사이 국경은 아예 폐쇄됐다. 더 이상 국경을 넘어 람사 병원으로 오는 시리아인 환자는 없다. 내가 요르단에 있을 때만 해도 한국인 간호사가 참여해 만든 새로운 수술실 오픈을 앞두고 있었다. 더 많은 환자를 받으려고 만든 수술실인데, 역설적이게도 새로운 환자는 국경에 막혀 오지 못하고 있고 새 수술실은 비어 있다. 그저 국경이 열리길 기다릴 뿐이다. 국경없는의사회는 하루 속히 국경이 열려 응급 처치가 절실한 환자들을 받기를 고대하고 있다. 과연 시리아에 갇힌 환자들은 어떻게 될까? 치료 없이 생명을 연장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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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만든 수술실을 둘러보고 있는 박선영 구호활동가. Joosarang Lee/MSF

아는 사람만 아는 이야기,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이야기다. 나는 국경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보고서야, 팔다리가 잘려 몸이 온전치 않은 사람들을 직접 보고 나서야 알게 됐다. 적나라하게 펼쳐진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전쟁'이라는 이름 아래 훼손당하는 생명을 만났다. 최소한의 삶을 보장받고자 하는 이들의 소망을 느꼈다. 같이 눈을 맞추고 미소 지으며 이들의 마음을 조금은 알 수 있었다. 왜 진작 관심을 가지지 못했을까, 이름을 불러주지 못했을까, 그저 저 멀리서 움직이는 몸짓에 지나지 않도록 방치했을까. 한 가지 확실한 건, 이 이야기들이 증발되어 날아가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다.

시의 마지막 부분을 다시 써본다.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도 이들의 이야기가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었으면 한다.
잊.혀.지.지.않.는.

이주사랑 | 국경없는의사회 언론 홍보

언론정보학, 공연영상학을 공부하고 뉴욕에서 일간지 기자로 일했다. 사회부, 문화부에서 기사를 쓰다 귀국해 한국 국경없는의사회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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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단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