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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식 Headshot

86세 택시 기사님이 말하는 장수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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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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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딸 민지가 가끔 흉보는 게 있어요.

"아빠는 택시를 타면 꼭 그렇게 기사 아저씨랑 수다를 떨더라?"

저는 독서가 취미인데요, 책 속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만나는 재미가 있어요. 택시를 타도 마찬가지예요. 기사님 한분 한분이 다 한 권의 책이에요. 그 속에 다양한 이야기가 있지요. 말걸기를 좋아하는 기사님을 만나면 이런 저런 삶의 지혜를 엿듣는 재미가 있어요.

요며칠 연휴 기간에 서울 시내 가족 나들이를 자주 다녔어요. 경리단 길 '더 부스'에 가서 한낮에 피맥(피자+맥주)도 즐기고, 현대미술관 서울관 나들이 간 김에 삼청동 수제비도 먹고. 그러다 택시를 탔는데, 기사분이 일본어를 잘 하시더라고요. 딸들 앞에서 자랑하느라 얼른 일본어로 대꾸했더니 깜짝 놀라시더군요. 젊은 양반이 어떻게 일본어를 그렇게 잘 하느냐고. 책 한 권을 외우면 회화는 절로 술술 나오는데... (그 와중에, 책 홍보...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 여전히, 절찬리 판매 중. ^^) 기사님은 일제 시대에 학교에서 일본어를 배웠답니다. 올해 연세가 86세인데 아직도 정정하시더군요. 깜짝 놀랐어요. 그 나이에도 일을 하신다니.

"우리 때는 학교에서 일본어만 썼어요. 이름도 죄다 일본식이었지. 내가 국민학교 친구가 없어요. 학교에서 다 일본식 이름으로 불렀거든. 야마다니, 마스오니, 그러다 해방이 되고 전쟁이 일어났지 뭐야. 전쟁이 끝나고 돌아와서 친구를 찾으려고 해도 그 친구들 한글 이름을 몰라서 찾을 수가 없어요."

"기사님 사회 생활하시면서 만난 친구들은요?"

"그 친구들은 다 죽었어요. 하나 남은 친구도 얼마 전에 가고. 이 나이가 되니까 놀려도 해도 같이 놀 친구가 없어... 할 수 없이 일이나 계속 하는 거지, 뭐."

요며칠 택시를 타면서 느낀 점. 택시 기사님들의 평균 수명이 꽤 올라갔어요. 정년이 없는 직업일수록 은퇴가 느려지네요. 앞으로 면허증을 가지고 일하는 직종은 시장 포화가 올 것 같아요. 예컨대, 의사나 변호사 등등. 86세에도 일을 하시는 기사님께 건강의 비결을 여쭤봤어요.

"술 담배를 안 해요. 몸에 나쁘다는 건 해본 적이 없어요. 그리고 화를 안 내요. 스트레스 받지 않고 사는 게 중요하거든."

택시를 몰다 보면 이상한 손님도 만나지 않느냐고 여쭈었더니.

"며칠 전 밤에, 술 취한 사람을 태웠는데 집에 다 왔는데 안 일어나는 거야. 자는 사람을 깨웠더니, 갑자기 욕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랬어요. '아이고, 점잖아 보이는 분이 왜 이러십니까.' 그러면 대개 머쓱해서 그냥 가요. 만약 내가 '너 나이가 몇이야?'하고 화를 냈으면 맞붙어 욕을 하겠지. 그럼 무조건 나만 손해야. 나보다 어린 손님에게 욕먹고 기분이 좋을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어지간하면 화를 내지 않아요. 내가 보기에는 그게 최고의 장수 비결이야."

재테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주식 투자 수익? 부동산 임대수익? 가장 중요한 재테크는 건강 관리입니다. 노후에 가장 소중한 자산이 건강이거든요. 아프면, 치료비와 간호비용도 들지만, 무엇보다 소득을 올릴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집니다. 오래도록 현역에서 일할 수 있는 몸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최고의 노후 대비예요. 그런 점에서, 화를 좀 줄이고 살아야겠네요. ^^

며칠 전 책에서 읽은 구절.

'아침에 길을 가다 우연히 나쁜 사람을 만났다면, 그 사람이 나쁜 거다. 그런데 당신이 하루 종일 만나는 사람이 다 나쁜 사람이라면, 당신이 나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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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고 좋은 것만 보면서, 살려고요. 온 가족의 현대미술관 나들이, 좋았어요. 예쁜 그림도 보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 이것이 행복이 아니면, 무엇이 행복일까요?


* 이 글은 필자의 블로그 [공짜로 즐기는 세상]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