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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렝게티 사자에겐 냉장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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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자니아 세렝게티 사파리 첫날 저녁에 가이드가 일행을 모아놓고 일정을 설명했어요. '3일차 일정에는 2가지 옵션이 있다. 여행사 안내서에 나온 대로 둘째날 밤에 세렝게티에서 캠핑을 하고 3일차에 세렝게티 중심부를 보거나, 2일차 3일차 캠핑을 모두 응고로응고로 산기슭 한 장소에서 하고 세렝게티 남부만 보는 방법. 원안대로 가면 이동거리가 많고, 후자를 선택하면 중심부는 못 보지만 세렝게티 남부에 집중할 수 있다. 나는 후자를 권한다. 왜? 동물들의 이동(Migration)이 지금은 남부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니까.'

힐러리의 조언대로 3일차에는 세렝게티의 남부로 향했습니다.


  • 세렝게티란 마사이족 말로 평원이랍니다. 사방팔방 지평선만 보이는 대평원.
  • 세렝게티에 초식동물은 정말 많아요. 사슴, 물소, 얼룩말 등.
  • 초식 동물들은 이렇게 무리를 짓고, 줄을 지어 이동하는데, 정작 사자나 표범같은 육식 동물은 찾기가 어렵습니다. 먹이사슬 피라미드의 바닥의 초식 동물은 개체수가 많고 피라미드 위로 갈수록 그 수는 점점 줄어듭니다. 그래야 생태계가 유지되지요. 포식자가 너무 많으면 결국 다 같이 멸종하거든요. 생태계의 평형을 이루기 위해 모든 생명의 개체수가 조절된다는 이야기는 '세렝게티 법칙'이라는 책으로도 나와있습니다.
  • 저 멀리 지프차가 서 있는 게 보이면 무조건 달려갑니다. 그곳 어딘가 사냥꾼(predator)이 있다는 뜻이거든요.
  • 치타입니다. 실제로 보면 정말 우아하고 멋져요. 군살없이 쫙 빠진 몸매, 날렵한 유선형의 얼굴까지, 지상 최고 속도를 자랑하는 달리기 선수답습니다.
  • 고양이과 짐승답게 상당히 쿨합니다. 근처에 가도 별로 신경쓰지 않아요. 이렇게 기품 있는 분이라면, 집사가 되어 모시고 살아도 좋겠지만... 이미 집에서 모시고 사는 아름답고 사나운 마님이 있는 관계로 패스... ^^
  • 누워서 졸며 하품만 쩍쩍 합니다. '동물의 왕국' 다큐를 보면, 치타가 사냥하는 모습을 내내 틀어주니까, 치타는 종일 달리기만 하는 줄 알았거든요? 아니에요. 세렝게티 치타들의 일과는 하루 종일 늘어져 자기입니다.
  • 부지런하기는 하이에나가 부지런하더군요. 끊임없이 다닙니다. 다른 사냥꾼이 남긴 먹이를 주워먹어야하니까요.
  • 하이에나는 들개처럼 생겨서 가까이서 보면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대니가 그랬어요. "Disney didn't do them justice." '디즈니가 너무 했네...' 라이온 킹이나 만화영화를 보면 항상 야비하고 비열한 악당으로 나오잖아요. 그런데 실제로 보니 동네 형 같아요. 조금 모자라는 순박한 형... ^^
  • 이렇게 짚차들이 모여있다는 건...
  • 표범 가족이 있거나
  • 늘어져 자는 사자 가족이 있다는 거죠.
  • 그 넓은 세렝게티를 종일 헤매고 다녀도, 만나는 사자들마다 다 꾸벅꾸벅 졸거나 늘어져 자기만 합니다.
  • 하루 종일 늘어져 자는 사자들만 찍다보면, '내가 여기까지 사자 부X 쳐다보려고 왔나...' 싶습니다. (위 사진의 맨 오른쪽 녀석...) 사자들이 이렇게 하루 종일 쉬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세렝게티 사자에겐 냉장고가 없기 때문입니다. 한번 사냥하면 2,3일은 배부르기에 그냥 자면서 쉰다는 거죠. 괜히 많이 잡아봤자 고기만 상하지요. 냉장고가 있다면 배가 불러도 사냥을 나갈 겁니다. "여보, 냉장고가 비었어요!" "알았어..." 야생에서는 그날 하루 잡아 하루 먹고 삽니다. 영화 '아저씨'의 원빈인거죠. '난 오늘 하루만 산다.' 인간의 삶이 피곤한 이유는, 잉여가치를 돈의 형태로 축적할 수 있기 때문 아닐까요? 10대 대기업이 사내유보금을 550조원을 쌓아놓고도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요구에는 인상을 씁니다. 상속세 안 내려고 꼼수쓰다가 탈 나는 사람도 있고요. 사자들에게서 가진 자의 여유를 좀 배웠으면 좋겠어요.
  • 사자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풀을 뜯지는 않아요. 사슴이 풀을 먹는 걸 보고, '맛있나 보네? 나도 먹어볼까?'하고 풀을 먹는다면, 그거야 말로 사자 풀 뜯는 소리인 거죠. 우리 나라 재벌은 너무 부지런해요. 안 하는 사업이 없어요. 동네 골목마다 커피 체인점을 내고 빵집을 내어 동네 작은 가게들의 상권을 침해하지요. 그냥 먹을 만큼 먹고 배가 부르면 좀 쉬었으면 좋겠어요. 사자가 너무 부지런떨면 세렝게티는 망할 겁니다. 냉장고가 없는 사자가 휴식을 취하듯, 재벌들도 과도한 보유금은 상속세나 세금의 형태로 사회환원도 하고 여유롭게 쉬었으면 좋겠어요.
  • 사파리 여행 중 용변은 부시 토일렛 Bush Toilet이라 해서 우거진 수풀 뒤에서 해결하는데요. 문제는 우거진 수풀이 사자나 표범 등이 숨어서 초식 동물을 기다리는 곳이라는 거지요. 저는 물을 안 마시고 버텼어요. ^^ 여기까지 와서 사자 밥 줄 생각은 없으니까.
  • 지프차 그늘에서 늘어져 자는 치타 가족. 저는 이런 삶의 자세를 배우고 싶어요. 사파리가 생기고, 매일 쫓아다니는 지프차들이 얼마나 귀찮겠어요. 그런데 치타들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아요. "어라? 저 부릉부릉 시끄러운 기계 또 왔네? 저놈은 덩치가 커서 그늘이 많이 지지. 그래, 오늘은 저기서 볕을 피해보자..."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치타의 여유에서 배웁니다. ^^
  • 사샤와 월터가 힐러리에게 그럽니다. "결국 우리는 사자랑 치타, 자는 모습만 보다 가는 거야?"
  • 난감한 표정의 힐러리. "사냥은 그렇게 쉽게 볼 수 있는 게 아닌데..."
  • 결국 차를 몰아 다시 초원을 헤매고 다닙니다. 그러던 어느 순간...
  • 태어난지 1주일도 채 안된 새끼 톰슨 가젤이 나타났어요. 새끼 가젤은 저너머에 있는 치타가 보이지 않는 모양입니다.
  • 가젤을 보자마자 바로 달려들거나 하지는 않아요. 몇 분 동안 한참 가만히 있습니다. 치타의 끈기가 놀라워요.
  • 방심한 가젤이 등을 보이며 가는 순간
  • 정말 순식간에 사냥이 끝나더군요. 이렇게 톰슨 가젤 한마리를 잡으면 그후 3일은 굶는답니다. 욕심을 부려 몸이 무거워지면 안 되니까요. 날렵하고 가벼운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단식한다는 치타... 저보다 낫네요... ㅠㅠ 문득 치타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랜 기다림을 견디다, 기회가 오면 벼락같이 치고 나가는 인생. 그러자면 기다리기를 잘 기다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참고 기다리는 게 진짜 실력이 아닌가, 그런 생각. 몸을 가볍게 하고, 시간을 기다리는 그런 치타가 되고 싶어요. 이렇게 세렝게티 사파리가 저물어갑니다.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그런 여행이었어요.


ps. 힐러리는 최고의 사파리 가이드입니다. 힐러리의 메일 주소를 소개합니다. 한국에서 온 미키의 소개로 연락하셨다고 하시면 됩니다. hilarychrispine8@gmail.com



* 이 글은 필자의 블로그 [공짜로 즐기는 세상]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