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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열심히 일하는 게 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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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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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을 만나면 묻는 질문이 있다.

"드라마 피디는 시청률이 대박 나면 월급 더 받는 거냐?"

"아니. 시청률이 30%든 5%든 받는 월급은 큰 차이가 없어."

드라마 PD처럼 성과가 눈에 보이는 직업도 없다. 시청률로 모든 게 판가름 난다. PD로 살면서 어쩌면 이게 가장 큰 스트레스다. 나의 업무 성과를 주위 사람이 다 안다. 앞집 아저씨가 회사에서 일을 잘 하는지 못 하는지, 사업이 잘 되는지 안 되는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내 드라마의 시청률은 뉴스로 뜬다. 망하면 주위에서 다들 안타까워한다. 시청률이 안 나와서 혹 월급이라도 깎이는 것 아니냐며 걱정한다. PD들의 급여가 성과연봉제가 아닌 것은 다행이다. 성과와 보상을 연동한다면, 안전하게 시청률을 보장해주는 막장 드라마만 연출하려고 할 테니까. 경쟁이 치열한 시간대에는 아무도 들어가려 하지 않을 테니까. 무엇보다 새로운 포맷이나 장르에 도전하는 피디가 없어질 테니까. 친구에게는 이렇게 말했다.

"시청률이 더 나온다고 월급을 더 달라고 하는 건, 시청률이 낮을 때 월급을 깎아도 좋다는 얘기거든? 창의력이 중요한 조직에서 시청률과 급여를 연동하는 건 결코 바람직하지 않아."

"네가 시청률 올릴 자신이 없어서 하는 소리가 아니고?"

드라마가 대박 나고 호평을 받으면 굳이 월급을 더 받지 않아도 이미 행복하다. 오히려 돈이 필요한 건 드라마가 쪽박 났을 때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어디 멀리 여행이라도 떠나거나 집에 틀어박혀 술이라도 마시려면 돈이 든다. 시청률이 잘 나오면 주머니에 돈 한 푼 없어도 행복하지만, 망하면 월급을 아무리 많이 줘도 우울하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시청률이 안 나온다고 회사에서 월급을 깎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랬다.)

몇 년 전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의 저자인 임승수 선생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는 이상적인 사회를 버팔로 사냥으로 먹고 사는 100명의 인디언 마을로 비유했다.

마을 사람들 모두가 하나씩 창을 들고나가 버팔로를 사냥한다. 모두들 창을 던지지만, 버팔로를 맞히는 건 그중 서너 명이다. 그렇게 잡은 버팔로 고기를 100명이 사이좋게 나눠먹으며 산다. 그러던 어느 날, 인디언 하나가 나선다.

"매번 버팔로를 맞히는 건 난데, 왜 내가 너희들이랑 고기를 나눠먹어야 하지? 이건 불공평하잖아. 야, 안되겠다. 지금부터 각자 창에 이름 써. 그래서 버팔로에 꽂힌 창에 이름 적힌 사람만 고기 먹기."

이제 새로운 룰을 가지고 사냥에 나간다. 버팔로를 맞힌 사람은 배 터져라 먹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쫄쫄 굶는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고 버팔로를 한 번도 맞히지 못해 결국 굶어죽는 사람이 나온다. 100명이던 마을은 70명이 되고, 다시 50명이 된다. 50명이 사냥을 나가면 예전처럼 버팔로를 몰기도 힘들고 창을 던져도 한두 개 맞은 버팔로는 그대로 달아나버린다. 결국 마을 사람 모두가 굶어죽는다.

나는 PD 사회야 말로 100명의 인디언 마을이라고 생각한다. 성과가 잘 나올 때도 있고, 또 안 나올 때도 있다. 버팔로를 잡을 때도 있고, 놓칠 때도 있다. 100명 중 저성과자 30명을 추려내도, 남은 70명 중에서 다시 저성과자는 나온다. 저성과자가 나온다는 것은 노동자 개인의 잘못이기보다 어쩌면 조직의 문제다. 적재적소에 인력을 배치하고 일에서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못한 탓이다. 조직 관리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건 실패에 대한 포용이다. 빗맞아도 다음 사냥에 나가 다시 창을 던져야 한다. 성과가 좋지 않다고 업무에서 배제하는 건, 실패의 경험에서 배워 새롭게 도전할 수 있는 여지를 없애는 일이다.


어린 후배들이 보기에, 세상이 살 만하다고 느끼는 건 빌빌하던 선배가 자신에게 딱 맞는 기회를 만나 펄펄 나는 모습을 보여줄 때다. 패자부활전의 기회가 있어야 모두에게 희망이 있다. 한 번 실패하면 영원히 내쳐지고, 성공을 반복하는 자만이 기회를 얻고, 승자 역시 실패하는 순간 버려지는 세상이라면, 그곳이야말로 지옥이다.


창의 산업에 있어 성과에 대한 보상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패의 용인이다. 실패에 너그러운 조직만이 도전 정신을 키우고, 창의성과 협업을 기른다. 창의적인 조직문화를 망가뜨리는 것이 바로 성과연봉제다. 지금 정부는 지하철, 철도, 공공의료, 금융 등 공공부문에서 성과연봉제를 도입하겠다고 하는데, 이는 미친 짓이다. 2008년 미국의 글로벌 대형 투자은행들은 위험한 파생상품을 팔아온 직원들에게 높은 성과급을 주었다. 그 결과 나타난 것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다. 한국 정부가 기업의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규제를 완화한 결과 벌어진 것이 세월호 사건이듯이. 자본주의 경제에서 위기는 일을 안 해서 나타나는 게 아니라 너무 열심히 일한 탓에 나타난다. 공급이 수요를 초과할 때 대공황이 찾아오듯이.


지난 정부도 일을 정말 열심히 했다. 4대강 사업을 속도전으로 밀어붙여 녹조의 창궐을 불러왔다. 이번 정부도 창조경제를 한다면서 미르 재단이며 K 스포츠 재단을 속도전을 밀어붙이더라. 일을 너무 열심히 하는 게 탈이다. 구덩이에 빠진 사람은 삽질을 하면 할수록 더 깊은 수렁에 빠져든다. 잠시 삽질을 멈추고 숨을 돌리는 게 낫다. 쉬운 해고와 성과연봉제를 무리하게 밀어붙이는 정부에게 권하노니, 부디 휴식을 좀 취하시라. 그대들은 너무 열심히 일하는 게 탈이다.

* 이 글은 필자의 블로그 <공짜로 즐기는 세상>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