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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식 Headshot

오키나와에서 만난 '주5일 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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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추석, 76세의 아버지와 49세의 아들(네, 접니다.), 둘이서 오키나와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한 2일차 여행기입니다.

숙소를 떠나 렌트카를 몰아 처음 도착한 목적지는 무라사키무라. 원래는 일본 사극 세트장인데 관광지로 활용하고 있다는군요. 드라마 세트장은 겉보기만 멀쩡하고 내부는 실용성이 없습니다. 촬영이 끝나면 쓸 수가 없어요. 사극 세트장을 한옥 스테이로 만들면 좋겠지만, 그러자면 방풍 온방 냉방 장치를 다 해야 합니다. 드라마 PD로서, 일본에서는 드라마 세트장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궁금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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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사키무라 건물 모습입니다. 일단 겉모습은 멀쩡합니다. 드라마 앵글에 잘 나와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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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 세트장답게 문도 웅장하고, 담도 고풍스럽습니다. 시간 여행을 온 것 같네요. 현판에 무슨 '국제 도장'이라고 쓰여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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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으로 들어가 보니, 외국인들이 일본 전통 무술을 배우고 있었어요. 아, 이거 아이디어네요. 동양의 무술 영화를 보며 오리엔탈리즘에 매력을 느낀 여행자가 이곳에 와서 무도를 배웁니다. 사극 세트장 속에 와 있으니, 자신이 무슨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것처럼 느끼겠지요? 껍데기만 있는 옛날 식 건물을 도장으로 활용하는 것도 아이디어군요. 하지만 제가 한 수 배우고 싶은 사범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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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한쪽에서 잠을 자는 고양이 사범님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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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지가 된 세트장, 한 편에서 낮잠을 잡니다. 배는 따뜻한 볕에다 두고, 머리는 시원한 그늘에 두고. 열정으로 가득한 뜨거운 가슴과 냉철한 지성이 깃든 차가운 머리, 이것이 사부님께서 가르쳐주시는 삶의 자세가 아닐까요? 무엇보다 저는 그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곳에서 태평하게 낮잠을 즐기는 모습, '니들은 놀아라, 나는 잘란다.'의 그 심오한 공력을 배우고 싶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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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사키무라는 체험 왕국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는데요, 이렇게 조각에 채색을 하거나 도자기 인형을 만드는 등, 직접 만들어보는 체험 프로그램이 여러 개 있습니다. 물론 체험비는 입장료와 별도로 받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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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사람들은 이렇게 아기자기한 것을 만들며 노는 것을 좋아하는 듯합니다. 오키나와 월드 문화왕국과 류큐무라 같은 역사 문화 테마파크가 근처에 또 있는데요, 날이 더워서 우리는 무라사키무라 한 곳만 봤어요. 한국의 용인 민속촌에 비교하면 규모가 너무 작고 볼거리도 좀 빈약한 편이었어요. 크게 추천하지는 않아요. ^^ 이젠 차를 몰아 에머랄드 빛 해변으로 유명한 오키나와의 바닷가를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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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잔파미사키입니다. 옆에 잔파 비치라고 아이들이 놀기 좋은 모래사장도 있습니다. 저녁 숙소는 오키나와 본섬의 가운데 있는 나고시에 있는데요, 그냥 내비를 찍으면 나하 시에서 나고로 가는 고속도로를 안내합니다. 저는 해안선 드라이브를 좋아해서 바닷가 목적지를 중간에 몇 곳 경유하는 걸로 했습니다. 구글 지도로 경로를 잘게 나누다 보면 고속도로 대신 해안도로 안내가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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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엔 만자모로 향했습니다. 만 명의 사람이 앉을 수 있는 너른 벌판이라 하여 만좌모 萬坐모랍니다. 드라마 촬영지로도 유명하여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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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이며 해식 동굴이며 제주도의 풍광을 떠오르게 합니다. 오키나와는 일본의 제주도 같아요. 저는 나이들면 이곳에 와서 한 달씩 살다가 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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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정상회담이 열린 바 있는 반고쿠신료칸입니다. 아버지가 입장료를 내는 곳을 싫어하셔서 무료 관람이 가능한 이곳을 찾아왔는데, 역시나 딱히 볼 건 없네요. 돈을 내야, 제대로 보는데...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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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에 카페 테라스가 있는데요, 창밖으로 바다 풍광을 보며 식사와 차를 즐길 수 있는 곳입니다. 가격도 합리적이에요, 커피가 400엔, 식사가 800엔. 이곳에 모인 각국 정상들의 모습을 흉내내며 그럴싸한 티타임을 갖고 싶었으나... 역시나 돈 쓰는 걸 기겁하시는 아버지 때문에 그냥 밖에서 사진만 찍고 돌아나왔어요. ㅠㅠ

나중에 마님과 따님들을 모시고 다시 올 겁니다! 그때는 여기서 점심도 먹고 디저트도 먹고 차도 마실 겁니다!

도로 옆 휴게소에서 오키나와 소바를 사 먹고 (좀 짜요... 여기 음식이 대개 그렇지요.) 숙소로 왔습니다. 9월의 오키나와는 아직도 많이 더워요. 온도가 30도가 넘습니다. 햇빛이 강해서 한낮에 어른을 모시고 돌아다니기는 힘들어요. 그래서 보통 오후 2시에 체크인해서 4시까지 숙소에서 낮잠도 자고 좀 쉽니다. 해 질 무렵 선선해지면 동네 산책을 나가지요.

저녁을 어디서 먹을까? 숙소 근처 동네를 돌아다니다 피자 가게를 골라 들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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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 옆 표지판이 나를 불렀어요. 화요일 수요일에 쉰다는 간판의 알림이 마치,

'당신들도 1주일에 5일 일하고 2일은 쉬지 않나. 주말을 이용해 오키나와에 오지 않나. 그럼 우리도 주중 2일은 쉬어야 하지 않나. 이 아름다운 섬에서 살고 일하는 우리 직원들도 이틀은 쉬면서 다이빙도 하고 해변에 앉아 쉬면서 책도 읽어야 하지 않겠나'

라고 말하는 듯했어요.

저는 이런 생각을 가진 식당 주인이 차려주는 식사라면 맛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평소 서울 시내를 걷다 24시간 영업하는 순대국집이나 설렁탕집 간판을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저는 드라마 촬영을 하면서 숱하게 밤을 새봤고, 지금도 야간 교대 근무를 하기에 밤에 일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압니다. 얼마 전에도 회사에서 젊은 스태프 하나가 일하다 쓰러져서 그 길로 세상을 떠났어요. 밤을 새우며 일하다 보면, 목숨을 조금씩 덜어서 팔아서 사는 기분입니다. 그래서 24시간 영업하는 식당을 보면 마음이 아파요.

왜 24시간 식당을 돌릴까요? 새벽 2시에 손님이 그리 많지도 않아요. 새벽 2시에 문 닫고 7시에 시작해도 되지 않을까요? 저는 서울 시내 24시간 영업 식당이 많은 이유는, 땅값이 사람값보다 비싸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가게 운영에 있어 임대료가 많이 들고 인건비가 적게 든다면, 가게를 쉬지 않고 돌리는 게 수익의 극대화를 위한 길이니까요. 사람이 땅보다 못한 대접을 받는 세상... 땅값을 내리기는 쉽지 않으니 사람의 가치라도 올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저임금을 인상하고 준수하는 것, 사회가 일하는 이들에게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배려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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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아래 바다로 해가 지는 멋진 풍경을 지닌 피자 레스토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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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근히 손님도 많고, 가격도 착했어요. 2인용 피자 한 판에 1000엔. 생맥주 한 잔에 500엔. 사장님의 인품 덕인지, 근무조건이 좋은 덕인지, 피자 맛도 좋고 스태프들이 다들 싹싹하고 친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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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시원한 생맥주 한 잔 하자고 하시기에, 평소에 술을 즐기지 않는 저도, 간만에 목을 축여봤습니다.

이렇게 지상 낙원 오키나와에서 보내는 둘째날이 가네요.


* 필자의 블로그 <공짜로 즐기는 세상>에서 다른 오키나와 여행기를 읽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