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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곡성' | 쉬운 답을 경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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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폭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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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을 보고 극장을 나서며, 블로그에 리뷰를 써야지, 하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스포일러가 될까 걱정이 되더군요.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보고 이해한 것이 과연 진짜 이 영화의 결론일까?' 누가 보든 결말은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영화, 그것이 바로 '곡성'의 진짜 매력입니다.

보는 사람마다 헷갈리게 만드는 영화, 나홍진 감독은 왜 이런 영화를 만든 걸까요? 페이스북을 보니 '이 영화를 보라고 추천하는 이들은 혼자 당하기 억울해서 그런 거다' 라고 하는 분도 있더군요. 하지만 저는 이 영화를 진심으로 강추합니다. 그 이유는 셋입니다.

1. 보는 시간 내내 시간 가는 줄 몰랐어요. 몰입감 최고입니다.

2. 보고 나서도 풀리지 않는 의문 탓에 이런 저런 리뷰와 나무 위키와 감독 인터뷰을 붙들고 있어요. 극장을 나온 뒤에도 관객을 물고 놓아주지 않아요.

3. 고민고민하다 어느 순간, 머리를 탁 쳤어요. '아! 이게 감독이 의도했던 영화의 주제로구나. 감독이 '곡성'이라는 거대한 낚시를 통해 낚고자 했던 것이 이거구나!' 그때 새로운 쾌감이 옵니다. 각자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는 재미가 있어요.

예전에 그런 영화 카피가 있었지요.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볼 것이다.'

곡성의 주제는 '무엇을 믿든, 믿고 싶은 걸 볼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믿고 싶은 대로 세상을 봅니다. '곡성'은 그런 우리 자신을 보여주는 거울 같은 영화에요. '저 사람이 범인이구나!' 하고 미끼를 덥석 물었지만, 우리는 단지 우리가 믿고 싶은 걸 본 것뿐입니다.

곡성을 본 후, '트럼보'와 '빅 쇼트'라는 두 편의 영화가 떠올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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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트럼보'

제가 좋아하는 미드가 '브레이킹 배드'고, 시트콤이 '루이'인데, 그 두 작품의 주인공(브라이언 크랜스턴과 루이스 C.K.)이 나와서 반가웠어요. 1930년대 대공황을 겪은 미국인 중 자본주의에 염증을 느끼고, 공산주의에서 대안을 찾고자 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2차 대전이 끝나고 미소 양국간 냉전이 시작되면서 이런 사람들은 소련의 스파이라는 모함을 받게 됩니다. 매카시가 주도한 사상 검열에 반대하다 감옥까지 간 10명의 영화 제작자들이 있어요. '할리우드 10'이라고 불렸지요. 그중 한 명인 달튼 트럼보의 이야기입니다. 블랙리스트에 올라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가명으로 시나리오를 쓰며 생계를 꾸려갑니다. 그 중에는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은 '로마의 휴일'도 있어요.

영화를 보면, 매카시즘의 추종자들은 스스로를 애국자라 규정하고, 자신들에게 동조하지 않는 사람들은 소련의 첩자라 몰아붙입니다. 결국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맹목적인 확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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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빅 쇼트'.

크리스천 베일, 브래드 피트, 라이언 고즐링 등 초호화 캐스팅이 화제였던 영화지요. 영화를 보면 배우들이 왜 출연했는지 알 수 있어요. 정말 누군가는 꼭 해야 할 이야기거든요. 2008년 미국의 금융 위기를 예측하여 그걸로 떼돈을 번 월스트리트의 투자자들 이야기입니다. 주택담보 파생상품이 가져올 부동산 시장 폭락의 위험을 아무도 예측하지 못합니다. 결국 은행이 도산하고, 투자회사들이 망하지만,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이들은 빚을 얻어 집을 산 서민들이지요. 결국 많은 이들이 집에서 쫓겨나고 거리로 나앉게됩니다.

분명 투기자본의 탐욕이 빚은 참사이지만, 미국 정부는 국민들의 혈세를 들여 금융권의 구조조정을 돕습니다. 정부 보조금을 받고 임원들은 보너스 잔치를 벌이지요.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어요. 극중에서 그럽니다.

"누군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외국인 이민자와 가난한 자들 탓에 나라가 망했다고.'"

불법이민자 탓에 실업이 늘어나고, 실업 탓에 주택 담보 대출을 제때 갚지 못해, 부동산 시장발 금융 위기가 발생했다고 말입니다. 이게 지금 도널드 트럼프가 하는 말이잖아요?

미국의 경제 위기가 자본가들의 탐욕 탓이라고 말하는 버니 샌더스,

불법 이민자 탓에 중산층이 무너졌다고 말하는 도널드 트럼프,

지난 1년간 미대선에서 돌풍을 일으킨 두 사람의 입장은 정반대입니다. 얼마 전 치러진 오스트리아 대선 투표에서 무소속 좌파 후보가 50.3%, 극우 후보가 49.7%를 득표했어요. 여론이 양극단으로 반반 딱 갈린 겁니다. 국론의 분열이 21세기 세계 정치의 테마인가 봐요.

20세기 초반, 나치의 유대인 학살은 정보 부족, 혹은 정보 조작에 의해 일어났어요. 만약 아우슈비츠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독일 국민이 알았다면 그런 비극이 가능했을까요? 그 시절에는 악행을 숨기기가 너무 쉬웠지요.

21세기에 들어와 미디어 조작은 힘을 많이 잃습니다. 소수의 언론사가 여론을 독과점하는 시대가 아니거든요. (얼마 전 끝난 우리나라 총선이 그 점을 잘 보여줍니다. 심지어 여론 조사도 제 역할을 못했지요.) 미디어가 다양해지고 정보는 차고 넘치지만, 이젠 새로운 형태의 미디어 독점이 일어납니다. 개개인이 자신이 보고 싶은 정보만 보고, 그 내용만 믿고 산다는 겁니다.

모두가 각자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보고 사는 것, 이것이 나홍진 감독이 말하고자 했던 우리 시대의 비극 아닐까요?

영화 '곡성'을 보고 깨달았어요. 쉬운 답을 제시하는 사람을 경계해야 하는구나.

"저 사람만 없어지면 마을에 평화가 찾아올 것이야!"

이런 주장에 현혹되면 안 됩니다. 그런 주장이 나치 학살을 낳았고, 미국에선 트럼프를 만들었고, 유럽에서는 극우 정당을 만들었으니까요.

"쉬운 답을 경계하라."

이것이 영화 '곡성'을 보고 제가 느낀 점입니다.

ps.

어제 올린 '엑스맨 : 아포칼립스' 리뷰는 오늘 '곡성' 리뷰를 위한 떡밥이었습니다.

오늘의 '곡성' 리뷰는 '트럼보'와 '빅 쇼트'를 위한 낚시구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