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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톨러런스 투어'가 불편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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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UMP SAUDI
Anadolu Agency via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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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ump saudi

알고 보니 미국의 탈진실(post-truth) 대통령은 '유일무이한 참종교(One True Religion) 문제를 다루기에 완벽한 사람이었다.

도널드 트럼프가 아닌 다른 사람이 사우디아라비아, 이스라엘, 바티칸 시국을 돌며 세 가지 아브라함 종교에 전세계의 관심을 끌었다 해도, 버락 오바마나 조지 W. 부시, 심지어 엘레노어 루즈벨트였다 해도 관용의 문제가 종교간에 일었을 것이다.

다른 신들을 섬기는 사람들이 자신의 신만이 유일한 신이라고 주장할 때, 같은 신을 섬기는 다른 종파의 사람들이 자신들이 섬기는 방식만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할 때 생기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완곡하게 부르는 이름이 다원주의이다.

우리는 지진, 필멸성, 남성 탈모의 시작 등 다른 불편한 현실을 대할 때와 마찬가지로 이 딜레마를 부정하는 것으로 대처한다. 다원주의는 종교적 박해, 종교 재판, 집단 학살, 강압적 대화, 내전, 십자군, 종족 학살의 무덤 옆을 휘파람을 불며 지나간다. 우리는 교리에 따른 전쟁에 단도직입적으로 맞서지 않고, 공통의 가치에 대해 함께 품고 있는 존중을 이야기하고, 종교적 다양성은 인간 역사를 좀먹은 벌레가 아니며 문명의 일부라고 주장한다.

비종교적 경험들에 대해서는, 현대의 다원주의는 종교가 없는 사람들도 모두 같은 일원으로 대한다. 다양성은 무신론자와 불가지론자도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환영한다. 영적이지만 종교는 없다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신은 위대하다, 신은 죽었다, 신은 자연이다, 신은 비유다, 신은 당신이다, 신은 나다, 신은 미스터리다, 신은 현재다. 다원주의는 이 모든 해석들을 신이 야훼다, 그리스도다, 알라다라는 해석과 마찬가지로 끌어안는다.

이 메시지는 아름답고, 앞뒤가 맞지 않으며 굉장히 미국적이다. 이것은 종교와 민주주의 사이의 긴장에 대한 가장 덜 나쁜 대답이다. 우리의 문화가 이런 식으로 해석하기를, 우리의 정치가 이것을 보호하기를 우리는 바란다. 믿음들이 충돌하는 이 세상에 보내는 지극히 포용적인 메시지이다.

donald trump

사우디아라비아의 와하브파 살라피스트들은 시아파 무슬림에 맞서는 수니파의 전쟁 자금을 댄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방문은 "세 가지 아브라함 종교 중 가장 신성한 곳 중 하나"를 찾아간 것이며 "모든 신앙의 추종자들에 대한 관용과 존중"의 정신으로 찾아간 것이라고 천명한 것은 아이러니다. 트럼프는 그러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부적합한 사람이다. 그는 대선 후보 시절 "나는 이슬람이 우리를 증오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가 숭배하는 유일한 대상은 자기 자신이다. 트럼프의 연설문을 쓴 사람들이 우리가 다 같은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며 찬가를 불러댄 것은 위선이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힘들다. 뻔뻔스럽고 냉소적이며 오만하다.

그러나 트럼프는 양립할 수 없는 종교들이 말하는 각자의 진실들을 하나로 화합시킬 수 있는 능력 한 가지를 우연히 가지고 있다. 그가 진실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 트럼프는 모순에 개의치 않는다. 그에게 있어 팩트는 팩트가 아니다. 그저 책략, 고려해 볼 대안에 불과하다. "나를 믿어라"는 "진실"을 의미한다. "가짜"는 "진실"이다. "가짜"는 못됐다는 의미다. 여기는 인식론적 놀이동산이다. 즐겁게 놀아보라.

진짜로 진짜인 게 아무것도 없다면, 진실된 유일한 종교로 치켜세울 것도 없다. 관용은 모든 믿음이 평등하고 유효하다고 본다. 트럼프는 모든 믿음이 평등하고 무의미하다고 본다. 다원주의는 서로 다른 말을 하는 예언자들을 다 받아들이고 서로 다른 예언들을 화해시킨다. 하지만 예언들이 그저 가짜 뉴스에 불과하고, 종교간의 대화는 가짜 대화이고, 궁극적 관용의 궁극적 결말이 재앙이 아니라면 그건 그냥 연예 프로그램이다.

donald trump

다원주의의 핵심에는 자기 기만이 있다. 평화로운 공존이라는 이유로 우리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진실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스스로를 속인다. 트럼프는 그걸 뒤집는다. 중요한 것이 있다는 생각 자체가 멍청하다는 것이다. 교리는 멍청이들이나 갖는 것이고, 허무주의는 축복인 셈이다.

다원주의의 퍼즐을 풀기 위한 해결책으로, 트럼프의 모르쇠 접근보다 더 나아 보이는 대안이 있다. 켄 윌버는 이것이 모든 신학과 사고 체계의 최대공약수, 가장 큰 공통점을 찾는 것이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타인이 내게 하길 원하는 대로 타인을 대하라는 황금률이 있을 수 있다. 칸트의 무조건적 도덕률, 존 롤스의 무지의 베일이 그렇다. 이름이야 무어라 부르든, 이러한 원칙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여러 종교와 도덕 철학이 우리에게 권하는 바다. 어떤 신이든, 어떤 논리든, 어떤 패러다임이든 간에 이는 마찬가지다. 서로의 차이에 관용을 품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서로의 거울에서 자기 자신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구약 성서의 아브라함 이야기가 언제나 불편했다. 내가 읽었을 때보다 덜 무섭게 해석하는 관점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나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를 떨칠 수가 없다.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는 신의 명령은 아브라함의 절대적 순종을 시험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이는 내가 신의 법을 문자 그대로 따르지 않으면 죽음으로써 대가를 치르게 될 거라는 경고였다.

이 이야기가 다른 아브라함 종교들에도 이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 나는 불편하다. 우리의 진정한 공통점은 근본주의, 광신주의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나는 영적으로 아담과 연결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아담의 이야기는 선악에 대한 지식을 인간의 손에 넘겨준다. 그래서 아담은 에덴 동산에서 쫓겨났다. 하지만 에덴 이후의 삶을 진실 이후의 삶으로 바꾼 사람은 없었다.

* 이 글은 허프포스트 US에 게재된 시나리오 작가, 사우스캐롤라이나 교수(커뮤니케이션학) 마티 카플란의 글 The Trouble With Trump's Tolerance Tour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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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사우디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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