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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니까'가 이유가 될 수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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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Y SOLDIER
Mari via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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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올린 글이나, 평소 제가 올린 글을 보고 가끔 이런 질문을 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군 인권은 관심 없으신가요?"
"군인의 처우에 대해 관심이 있으신가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무척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예전에 썼던 글 중, 짧게나마 군 인권을 신장시키려는 정책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는 모 후보와 그것을 스스로 거부하는 한 청년의 트윗을 옮겨적기도 했었습니다.

저의 연인은 현재 군인입니다. 비단 저의 연인뿐 아니라 제가 아끼는 많은 동생과 친구들, 그리고 심지어는 친인척 중 매우 가까운 사이의 남동생까지 현재 군인의 신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보통 연인을 군대에 보낸 사람을 '고무신'으로 칭하고 연인을 '군화'라고 칭하지만 저는 단 한 번도 저를 그 호칭으로 부르거나 연인을 군화라고 부른 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어떠한 집단이 특성이 연인의 애칭이 되는 것이 싫었기 때문입니다.

연인을 군대에 보낸 분들은 대부분 훈련 기간 동안 훈련소에서 올려주는 사진들을 찾아보기 바쁩니다. 어디 소대에 몇 번째 줄에 있더라는 등, 모두 같은 머리 스타일을 하고 같은 옷을 입어 구분이 어려운 인파 속에서도 콩알만하게 나온 연인의 얼굴을 구별해내고, 그것을 저장하여 몇 번이고 바라보는 일. 모두가 기쁨으로 여기는 그 일을 저는 단 한 번밖에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연인에 대한 애정이 얕고 냉정해서일까요? 아닙니다. 저 역시 사진이 공개된 첫날, 소식을 친구를 통해 전해 듣고 떨리는 마음으로 사진들을 클릭했습니다. 얼마 안 가 똑똑히 얼굴이 나온 사진을 확인할 수 있었고 저는 웃으며 그 사진을 저장했습니다. 연인의 친언니와 사진을 주고받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작게 나온 얼굴 사진이라도 더 얻을 수 있을까 싶어 페이지를 뒤로 넘기던 저는 크나큰 충격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단 한 장의 사진이 저를 너무나도 슬프게 만들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보면 별거 아닐지 모르는 그 사진 한 장. 바로 얼굴도 모르는 장병들이 속옷만을 입은 채 신체검사를 기다리는 장면이었습니다. 멀리 있는 사람은 얼굴도 잘 보이지 않았으나 가까이 있는 사람은 등줄기부터 엉덩이를 포함한 모든 신체 부위 뒷부분이 다 드러난 상황이었습니다. 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대체 이것을 왜? 얼굴을 보여주고 장병들의 생활을 전하는것이 목적이라면 대체 이사진은 왜 여기에 올라와 있을까?

남자인데 뭐가 어떠냐. 군인인데 어떠냐. 중요부위가 보이는 것도 아니고 그 정도쯤은 여자도 아닌데 뭐가 어떻다고 호들갑이냐. '군인이란 게 원래 그렇다.' 네 저는 그것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군인은 원래 그렇게 해도 되는 집단이라는 의식. 저는 그것이 너무 두렵습니다. 저는 과장을 조금 섞어, 그 사진이 현 군인들의 인권이 어떻게 취급되고 있는지를 쉽게 보여주는 사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회에서는 잘 만들어지고 잘 빚어낸, 자신이 자신 있는 몸매와 상황을 갖추어 자신의 '동의'를 거치지 않고는 업로드되지 않을 누군가의 벌거벗은 사진이, 군대라는 이름 속에 속하자마자 너무나도 당연하고 쉬운 것이 되어버리는 현상이 저는 두렵고 참담했습니다. 저는 그 후로 단 한 번도, 연인의 사진을 찾아보러 훈련소 사이트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누군가의 벌거벗은 날것의 모습을 그조차 모르는 상황에서, 타인인 제가 목도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진을 보았냐는 연인의 전화에도 사실대로 이야기하였습니다. 인터넷 편지를 쓰는 난에 올라와 있는 것이 아니면 보지 않았다고. 이유를 말하자 연인은 바로 납득하고 저를 이해해주었습니다. '남자니까 '괜찮다. '군인이니까' 괜찮다. 이런 발언들은 적어도 당사자들의 입에서 나오면 안 되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자신에게 씌워진 정당화의 프레임을 스스로 내뱉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 분위기가 군인들의 위치를 더 낮게 만듭니다.

이번 동성애자 군인 색출사건에 있어서, 저는 이것이 절대 군 인권과 떼어놓을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제가 생각하는 군 인권 문제와 생각의 궤를 같이합니다. 사회에서는 성인 동성애자가 상호 동의하에 성관계를 맺었다고 해서 감옥에 갇히지 않습니다. 경찰이 그들을 잡아가 취조하며 '좋아하는 체위는 어떤 것인지' '동성과 관계를 맺은 횟수는 몇 번인지'등을 묻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군대 내에서는 그것이 이루어질 수 있었을까요? 심지어 영내에서 관계를 가진 것도 아니고, 성인과, 합의하에 관계를 맺은 군인이 구속되었을까요?

답은 하나입니다.

군인은 '그렇게 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도 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까라면 까야 하는 존재이고, 무엇을 해도 '군대니까'라는 말로 모두 방패막이가 가능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군형법 내에 개인의 성 지향성을 이유로 구속 조처를 취할 수 있는 조항이 어떻게 있을 수 있을까요? 군기를 위해서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에는 여군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입니까? 군내에 여군이 전혀 없다면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군 내 이성간 성폭력 사건은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나요? 이것이 왜 '동성애자'군인만의 문제냐는 겁니다.

남에게 성행위를 강요하거나, 원하지 않는 신체적, 언어적 성애 표현은 성별을 떠나 성폭력이며 범죄입니다. 그런데 이성애자 군인이 영내 밖에서 동의하에 이성과 관계를 맺는다고 해서, 그들을 처벌하거나 잡아가나요? 오로지 동성애자인 군인에게만 이것이 '잘못'으로 적용됩니다. 그렇게 해서 지금 A 대위는 제가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감옥에 앉아 있을 것입니다.

이 일을 현 군인이 벌인 '동성애' 사건으로만 바라보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같은 조건을 지닌 사람일 때, 군 내에서라면 얼마나 쉽게 그의 인권 탄압이 이루어질 수 있고, 그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압박과 성적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취조가 이루어질 수 있는지에 대해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같은 사람의 특성이, 군인일때는 잘못이 되고 범죄가 될 수 있는 이 상황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저는 '동성애자'에 국한되어 있는 목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것은 변명이나 잘 보이려는 뇌물성 글이 아닙니다. 만약 그런 것을 원했더라면 저는 좀 더 이슈가 될 수 있으나 논란이 일지 않을만한 주제를 택해 글을 썼을 것입니다. '안전하고' '모두가 편하고' '재미있는' 글들을.

저는 진심으로, 이러한 사건이 현재 군대에서 한 개인의 인권을 탄압하고 말살하는 것이 얼마나 쉽게 자행되는지에 대해 직접적으로 알 수 있는 지표라고 생각합니다. 왜 같은 값일 때, 군인이라면 좀 더 싸구려로 취급받아야 할까요? 그들을 '계급'을 통해 압박하고, '약자'로 만드는 것이 누구입니까.

어떠한 계급이나 집단을 특징짓고 구분하여 그들을 탄압하는 일은, 절대 단 한 순간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서서히 일어납니다. 모두가 '그 정도쯤은 괜찮지'라고 하는 생각의 틈을 노립니다. 모두가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하며 간과할 때, 물은 이미 사람들의 발치까지 올라와 찰랑거리고 있습니다.

'나보다 낮은 곳'이란 없습니다.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탄압이 당연시 여겨지는 사회에서 언제까지고 안전한 사람이란 없습니다. 그런 사회에서의 인권 탄압은 언제 어디서나 내 일이 될 수 있으며 그것을 간과하고 방임하는 것은 나의 목줄기를 남에게 내어주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스스로' 내야 합니다. 누군가가 대신 말해주겠지 하지 말고, 언젠가는 더 나아지겠지 하고 기대어서 무기력하게 기다리지 말고, 왜 이것은 말씀 안 하시나요, 왜 이것은 신경을 안 쓰시나요 하고 남에게 묻지 말고 자신이 직접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부당함과 불합리함을 직시하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저는 이 나라, 이 땅의 국군장병들이 그들의 노동과 시간의 가치를 인정받고 합당한 대우를 받길 원합니다. 또한, 그들이 '같은 값'일 때 그 값을 평가절하당하고 저렴한 가격표가 붙여지는 현 상황에 커다란 슬픔을 느낍니다. 군인이라는 신분하에 그들의 인권이 짓밟히고, 개인의 특성이 무시당하고 핍박받는 현실에 분노를 느낍니다.

"변화는 운명의 바퀴에 의해 굴러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끊임없는 투쟁을 통하여 나타난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자유를 위하여 우리의 등을 똑바로 펴고 투쟁해야 한다. 네 등이 구부러지지 않는 한 그 누구도 네 등에 올라탈 수 없다." -마틴 루터 킹.

누군가의 등이, 그들의 성 지향성을 이유로,
억지로 굽혀지는 일이 더는 없기를 바라며 연대를 표합니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