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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세요. 결국엔 바뀌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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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987'을 관람했다. 낯설어진 스무 살의 나를 만났다. 최루탄에 맞아 숨진 연세대생 이한열의 후배로 나오는 여학생 연희의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어요?"라는 가슴 치는 대사가 흘러간 시간을 단숨에 소환했다. 기억의 밀실에 유폐됐던 양심과 현실의 부조화를 꺼내 놓으니 다시 심장이 뛴다. 돌직구로 날아온 연희의 질문은 어디서 많이 들었던 얘기다. 계란으로 바위를 깨는 심정으로 맞섰던 질풍노도의 시대에 체념이 삶의 일부가 된 기성세대로부터 수없이 들었던 충고였던 것이다. 이제 그분들에게 "보세요. 결국엔 바뀌었잖아요"라고 되묻고 싶다.

1987년 1월 14일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서울대생 박종철군을 물고문해 죽게 한 경찰관은 영등포교도소에 수감된 뒤 억울한 심정으로 밤새도록 찬송가를 불렀다. 그는 절대자가 젊은 대학생의 억울한 죽음을 어떻게 생각하실지도 생각했을까. 추웠던 78년 겨울 대학 2학년인 나를 다뤘던 3인조 중 한 사람이 떠올랐다. 그는 '휴식 시간'에 담배를 권하면서 "고등학생 아들이 공부 잘하는 방법을 알려 달라"고 했다. "너를 쥐도 새도 모르게 파묻어 버릴 수 있어"라고 협박했던 악마의 눈에 담긴 아비의 깊은 사랑을 봤다.

"어쩌면 잘 보일 수도 있겠다"는 헛된 기대를 품고 피투성이가 된 몸으로 비굴하게 조언을 해 줬다. 아주 짧은 순간 "타인의 육체와 영혼을 학대하는 직업으로 사랑하는 가족을 부양하는 생활인이구나"라는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을 몸으로 깨닫게 해 준 야만의 시대였다. "감히 불온하게도 민주주의를 꿈꾸다니"라며 적의(敵意)를 드러내는 세상과의 불화를 어떻게 끝내야 할지를 몰라 막막했다.

87년 민주화운동의 기폭제가 된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이 세상에 드러나게 한 힘은 기득권 공생 관계인 '내부자' 카르텔을 깬 전문가의 반격에서 나왔다. 주역은 서울지검 공안부장인 최환과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부검의 황적준(현 고려대 의대 명예교수)이다. 두 사람은 공무원인 동시에 법률가와 의사라는 전문직이었다. "부검 없이 화장하자"는 권부의 압력에 맞서 최환은 법률가의 양심에 따라 부검을 하자고 했고, 황적준은 의사의 직업윤리에 따라 사인(死因)을 사실대로 적었다. 만일 두 사람이 조직 논리에 굴복했다면 사건은 "탁 치니까 억하고 죽었다"는 단순 쇼크사로 끝났을 것이다.

최환은 평소 학생과 재야인사를 무더기로 구속해 악명 높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어떤 부모가 서울대생 아들을 얼굴도 못 보고 8시간 만에 화장하느냐"라고 정색했다. 결정적인 순간에 '권력의 개'가 아닌 양심의 편에 선 것이다. 치안본부장 강민창이 "무력으로라도 부검을 막겠다"고 했지만 "시신을 인도하지 않으면 특수 공무집행방해 현행범으로 당신을 체포하러 가겠다"고 맞섰다. 서슬 퍼런 강민창도 꼬리를 내렸다.

공은 황적준에게로 넘어갔다. 그는 "정권이 무너질 수 있다"는 압박에도 '경부압박에 의한 질식사'(목이 욕조 턱에 눌려 숨 막혀 죽음)라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의사로서의 양심이자 직업윤리 때문이었다"고 술회했다. 황적준은 경찰 수뇌부의 회유 과정이 담긴 일기장이 언론에 공개된 뒤 국과수에 사표를 냈다.

다른 사람들도 사건의 전모를 알리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박종철군 사망 사실을 최초로 보도한 중앙일보 신성호 기자, 고문치사가 단순 쇼크사로 은폐·축소됐다는 사실을 보도한 동아일보 황호택·윤상삼 기자, 경찰의 사건 은폐·축소 시도를 민통련 사무처장 이부영에게 제보하고 이런 사실을 기록한 그의 '비둘기'(옥중서신)를 재야인사 김정남에게 전달한 영등포교도소 전·현직 교도관들, 이부영의 메모를 전달받아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에 전달한 김정남, 이를 폭로한 김승훈 신부가 그들이다. 그러나 결정타를 날린 것은 전 국민적 분노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었다. 그 강도는 체제 변화의 요건인 최소임계질량(minimum critical mass)을 넘어선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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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시민의 힘으로 직선제 개헌을 쟁취한 1987년 체제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영화가 보여 준 대로 새로운 시대는 결코 저절로 열리지 않았다. 민주주의는 공짜가 아닌 것이다. 분명한 것은 87년의 주역은 학생과 시민이었다는 사실이다. 정치는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한 학생, 권력과 맞섰던 검사와 의사, "독재 타도"를 외친 넥타이부대 시민의 열망이 이끌어 낸 승리의 전리품을 챙겼을 뿐이다. 2017년 '촛불'의 주역도 정치는 아니었다.

민주화 30년, 이제 정치도 제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데도 달콤한 특권에 취해 민심을 읽지 못하고 분권과 협치, 미래의 건설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외면하고 있다. 이대로 가면 다음 분노의 대상은 낡고 무능한 정치가 될 것이다.

*이 글은 중앙일보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