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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은 '짝퉁 박정희' 몰락 이유를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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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 당원'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자유한국당에서 축출된 순간 '짝퉁 박정희' 시대의 조종(弔鐘)이 울렸다. 박근혜는 순(純) 부채의 기피 인물이었다. 박근혜가 집권한 건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분신으로 오인됐기 때문이다.

박정희 집권 18년은 초기·중기·말기로 구분된다. 5·16 쿠데타로 등장해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으로 있던 초기 2년 반은 시행착오의 시기였다. 군홧발에 무너진 제2공화국의 책상 서랍에서 잠자던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실행했지만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 화폐 개혁도 좌절됐고 흉년까지 들었다. 되는 일이 없었다.

사면초가에 몰린 박정희는 민정 이양 약속을 깨고 출마해 1963년 10월 대통령이 됐다. 이후 유신독재 체제로 돌입한 72년 10월 이전까지의 중기 9년은 경제 기적의 기틀을 닦은 황금기였다.

죽어서 권력을 놓게 되는 79년 10·26까지는 권력 유지 자체가 목적이 돼 버린 암흑기였다. 박근혜가 스물두 살의 나이로 퍼스트레이디가 된 건 하필 74년이었다. 박정희는 고도의 균형감각과 절제를 바탕으로 치밀한 국가 발전전략을 실행하던 냉철한 황금기의 지도자가 아니었다. 이 시기의 '나쁜 박정희'는 수시로 계엄령과 긴급조치를 발동해 헌법을 학대했다. 박근혜가 '짝퉁 박정희'가 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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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퍼스트레이디 박근혜가 비판을 수용하고 모순과 갈등을 통합할 줄 아는 능력을 갖춘 황금기의 '좋은 박정희'를 만났더라면 지금의 비극은 없었을 것이다. 박정희는 대통령에 당선되자 가장 앞장서 반대해 온 동아일보 사장 최두선을 국무총리로 모셨다. 육당 최남선의 동생이다. 5·16 쿠데타를 반대하고 진압에 나섰던 이한림은 건설부 장관을 시켰다. 쓴소리를 하던 서강대 교수 남덕우를 재무부 장관과 경제기획원 장관으로 기용해 9년3개월 동안 전권을 줬다. 통 큰 용인술이었다.

생각이 다르면 블랙리스트에 올리고 장관이든 검찰총장이든 가차 없이 찍어 낸 박근혜와는 딴판이다. 박근혜는 3부 요인과 5대 권력기관 수장을 모두 영남 출신으로 가득 채웠다. 재임기간 중 국가 의전서열 10위까지의 11명(국회부의장 2명) 가운데 8명이 같은 사투리를 쓴 적도 있다. 영남 출신 총리를 단 한 사람도 쓰지 않은 박정희의 균형감각은 눈을 씻고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말기 이전의 박정희는 특정 지역의 인물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고 권력기관을 상호 견제시키면서 국정 운영의 건강도를 높였다.

빛나던 박정희 용인술도 말기엔 일그러졌다. 영원히 갈 것 같았던 권력을 총격으로 중단시킨 중앙정보부장 김재규, 최후의 장면을 목도한 비서실장 김계원은 어이없게도 모두 동향인 영남의 군 출신이었다. 박근혜가 비선 실세 최순실과 문고리 3인방에게 의존하다 추락한 것은 초·중기의 '좋은 박정희'가 아닌 말기의 '나쁜 박정희'를 배웠기 때문일 것이다. '짝퉁 박정희'인 박근혜의 '100% 국민 통합 공약'은 애초에 불가능한 꿈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김영삼·김대중·노무현과는 달리 고난과 투쟁의 가시밭길을 걷지 않고 청와대에 입성했다. 실정(失政)을 거듭한 박근혜가 최대 공신이다. 그렇다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짝퉁 박정희'의 반복이다. 그런데 '내로남불'의 대명사인 홍종학 전 의원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으로 밀어붙이는 건 박근혜 구태 청산이라는 문재인 정부의 탄생 이유를 잊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기야 문 대통령은 스스로 약속한 인사 5대 원칙(위장 전입, 논문 표절, 세금 탈루, 병역 면탈, 부동산 투기)도 지키지 않았다. 이러니 캠코더(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 인사라는 비난이 나오는 것이다. 반복되는 보은 인사를 보면 문 대통령은 아직도 '짝퉁 박정희'가 몰락한 진짜 이유를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국민 무서운 줄 알아야 한다. 부마항쟁으로 권부의 심장에서 총성을 울리게 했고, 촛불로 불통의 권력자를 퇴출시킨 집단이다. 기업에선 "친노조 정책으로 다 죽게 생겼다"는데 공정거래위원장이 "재벌 혼내 주느라고 늦었다"고 입방정을 떨면 아무리 지지율이 높아도 한 방에 갈 수 있다.

'짝퉁 박정희'는 강제 퇴장당했지만 '좋은 박정희'의 가치는 아직도 유효하다. 박정희는 장관에게 실권을 주고 현장에서 정책의 결과를 점검했다. 늘 쓴소리를 듣고 싶어 했고, 아부하는 친한 친구에게 화를 내며 술잔을 집어 던진 깨어 있는 지도자였다. '탈원전'과 '최저시급 1만원' 정책에서 드러났듯이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하지 않고 힘센 청와대 참모 중심으로 끌고 가는 문 대통령과는 달랐다.

문 대통령은 '짝퉁 박정희'의 몰락 이유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그러면 '민주주의'와 '좋은 박정희'를 모두 가진 문재인 시대를 활짝 열 수 있다.

* 이 글은 중앙일보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