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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지지자들이 모두 인종차별, 성차별주의자들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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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UMP
Brendan McDermid / 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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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국 보스턴에서 국제 정치를 공부하고 있는 사람이다. 미국 선거일인 11월 8일 당시 나는 유럽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 후 보스턴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코미디인지 호러인지 분간이 가지 않던 긴 트럼프 서사시의 엔딩을 친구들과 함께 축하하기 위해 일정을 앞당겨 귀국했다. 그날 모인 내 미국 친구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힐러리에게 표를 던졌다. 그 중 몇몇은 선거 당일 뉴햄프셔주에서 힐러리 당선을 위해 자원봉사를 하고 오는 길이었다. 2008년 오바마 캠패인에서 일하다가 오바마 당선 이후 미국 국방부에서 일했던 친구도 있었다. 모두가 힐러리를 적극적으로 지지한 것은 아니었다. 한 아랍계 미국인 친구는 힐러리의 친이스라엘 성향 및 강경한 군사외교노선 때문에 힐러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무슬림인 그에게 트럼프 대통령이란 상상하고 싶지 않은 것이었으므로 그도 힐러리에게 투표했다. 아무튼 우리 모두는 힐러리가 대통령이 되기를 바랐고, 또 그렇게 될 것으로 믿었다.

저녁 9시. 이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맥주를 마시며 웃고 떠들고 있었다. 트럼프가 조금 앞서고 있었지만 보수적인 지역부터 개표한 것이겠거니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트럼프가 정말 미국 대통령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처음 든 것은 그가 플로리다를 이겼을 때였다. 선거 당일까지도 힐러리의 당선 확률을 확신했던 뉴욕타임스가 트럼프 당선 확률이 80% 이상인 것으로 보도하자 우리는 할 말을 잃었다. 펜실베이니아주가 트럼프에게 넘어가 사실상 그의 당선이 확실시되었을 때 우리는 트럼프의 당선수락 연설을 차마 볼 수 없어 서둘러 헤어졌다.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며칠간 TV와 인터넷이 없는 산 속에 들어갈 예정이니 찾지 말라는 이도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나는 트럼프를 지지하는 단 한 명의 미국인도 알지 못한다. 아무리 이 나라가 진보 대 보수, 엘리트층 대 비엘리트층, 백인 대 유색인종, 해안 지역 (동부와 서부) 대 내륙 지역 등으로 분열되어 있다고 하나, 내가 6년째 몸을 담고 있는 나라에 대해, 나와 같은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이렇게도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에 기가 막힌다. 보스턴이 미국내에서도 진보적인 도시인 데다 내가 학계라는 울타리 안에서 지식인들만 접하고 살았으니 트럼프를 지지하는 계층 (도심에서 떨어진 변두리에 거주하고 대학 교육을 받지 않은 저소득 백인들)을 만날 일은 거의 없었다. 그렇지만 인종차별, 성차별적인 발언을 일삼고 세금도 제대로 내지 않은데다 정치 경험도 전무하고 정책에 대한 무지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다는 것에는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동의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 생각은 완전히 틀렸다. 거의 모든 미국 언론, 여론조사, 전문가들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트럼프에게 표를 준 이들이 참을 수 없이 미웠다. 유색인종과 여성들마저도 많은 수가 트럼프를 지지했다는 사실에 치가 떨렸다. 그런데 이제는 왜 이들이 트럼프를 지지했는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들은 오랫동안 미국 사회에서 소외되어 왔다. 미국 경제가 나아졌어도 이들은 그 혜택을 보지 못했다. 세계화에 따라 미국의 제조업 분야가 노동력이 싼 나라들로 생산기반을 옮기면서 교육 수준이 낮은 비숙련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진보층은 그것이 세계화에 따른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만 했다. 그런데 사실일지언정 그런 말은 그들에게 별로 위안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의 진보지식인들과 언론은 그들의 불만에 귀 기울여 주고 같이 해결책을 찾으려는 노력을 충분히 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러한 지역에서 소위 '앵그리 화이트(angry white)'라고 불리는 성난 백인들뿐만 아니라 유색인종들까지도 트럼프에게 표를 준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트럼프를 지지한 이들이 다 인종차별, 성차별주의자들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이유이다. 트럼프 지지자 중에도 트럼프가 어떤 정책을 펼지 걱정된다는 이들이 다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기득권을 대표하는 진보엘리트 힐러리가 그들을 위한 정책을 펼 것이 아님을 확신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네들 편에 서 주지 않을 것이 분명한 힐러리보다는 차라리 예측불가능한 트럼프에게 도박을 걸었다.

트럼프 대통령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시위를 벌이는 이들이 있다. 이들의 실망감과 두려움이 폭력적인 행동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들의 분노가 이해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이는 성숙한 행동이 아니다. 싫든 좋든 국민들이 민주주의 절차에 의해 뽑은 지도자는 인정해 주어야 한다. 지금 시위를 하는 것은 트럼프를 지지한 사람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며, 그들의 반감을 더 높이는 행동들이다. 시위는 트럼프 행정부가 실정을 했을 때 하는 것이 옳다.

이에 반면 곧 현실을 받아들이고 대책 마련에 나선 이들도 있다. 내가 속해 있는 두 개의 학교에서도 이런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선거 바로 다음날 사람들은 상심해 있는 서로를 아무 말 없이 꼭 안아 주었다. 하버드 케네디스쿨 학장은 바로 학생들을 모아 놓고 만인에 대한 평등 정신을 강조하며 이곳 학생들이 리더십을 발휘해 미국을 더 좋은 사회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플레처 법률외교대학원 복도에는 불안해 하고 있을 유색인종, 여성 및 성소수자 학우들에게 보내는 따뜻한 격려 메세지가 붙여졌다. 학생들은 바로 긴급 회의를 소집해 앞으로의 4년간 미국 정책이 크게 엇나가는 것을 막고 트럼프 행정부를 견제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토론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트럼프 행정부의 미래가, 또 미국과 세계의 미래가 꼭 절망적이지는 않다고 본다.

이번 미국 대선을 보면서 2012년 한국 대선 생각이 떠올랐다. 그때 나는 한국 유학생 친구들을 초대해 떡볶이를 만들어 먹으며 개표 방송을 보고 있었다. 5년간의 기나긴 이명박 정권이 끝나고 진보 정권이 들어설 것이라는 생각에 들떠 있다가 박근혜의 승리를 예상하는 출구조사 결과를 보고 말을 잇지 못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5년을 어떻게 기다렸는데... 앞으로 5년을 더 버틸 자신이 없었다. 그래도 이런 감정들이 잦아들고 나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정말 잘 해주기를 바랬다. 민주주의 사회인데 어떻게 내가 지지하는 지도자만 있을 수 있나. 국민이 민주주의 절차에 의해 뽑은 대통령이니 어쩌겠나. 그래도 나라가 잘 돌아가야 하지 않겠나. 그래서 그동안 대한민국이 국민이 뽑지도 않은 사람에 의해 움직였다는 사실에서 오는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건 계약 위반이다. 우리는 투표를 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선거 결과도 받아들임으로서 민주주의 시민으로서의 규칙을 지켰다. 그런데 그 지도자는 민주주의 절차에 따라 국정을 운영하지 않음으로서 그 암묵적인 계약 조건을 위반했다. 이에 대해 우리는 반드시 책임을 지워야 할 것이다.

지도자로서의 기본적 자질과 덕목을 갖추지 못한 이를 지도자로 선출하는 대가는 매우 크다. 우리도 4년 전에 그러한 실수를 범했고, 그래서 지금 그 대가를 호되게 치르고 있다. 트럼프의 당선이 우려스러운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곧 다가올 대한민국의 차기 대선에서는 같은 실수를 하지 말자. 이미 나라꼴이 말이 아니다. 북한, 미국 등 국외에서 발생한 변수로 국가가 위기에 처했는데 국정이 마비되어 마음이 답답하다. 보수니 진보니 하는 이념적 분열을 넘어, 이 위기를 잘 풀어낼 수 있는 지도자를 뽑을 수 있도록 국민 모두가 함께 노력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