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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특허전쟁 | <1> 특허괴물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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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프롤로그

작년 크리스마스 다음날, 오랜 친구 G.G와 오랜만에 아침 식사를 함께 했다. 우리가 만난 곳은 허름한 샌드위치 샵이었는데, 한국으로 말하자면, 해장국집 같은 개념이다. (내 옆자리에는 TV에서 자주 보이는 흑인 래퍼가 그 유명한 썬그라스에 슬리퍼를 끌고 츄리닝 차림의 여자친구와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다)

특허전문 변호사인 G.G는 미국 100대 로펌의 지적재산권 팀장이다. 그는 미디어 거물인 루퍼트 머독의 특허전쟁을 지휘하며 전용기에서 독대를 했고, 현재 IT분야 탑10기업들이 그의 고객명단에 올라있다. 그만큼 바쁜 그였기에, 연말에 겨우 시간을 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와 여러가지 상황에 대한 논의하던 중에, 내게 아주 흥미로운 얘기를 했다. "구글이 소프트웨어 특허 자체를 무효화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구글은 공식적으로 부인하고 있지만, 적어도 지적재산권 분야를 넘어 ICT 산업의 미래 지형을 송두리째 바꿔버릴 수 있는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만큼은 분명하다.

"구글과 오라클이 벌이는 세기의 특허전쟁"

(지금부터 몇 회에 걸쳐 여러분에게 들려줄 이야기의 제목이다. 일반 독자들을 위해 전문 기술이나 법적 용어를 최대한 배제할 생각이니, 마음 편히 즐기기 바란다)

2015-02-24-googlevsoracle.jpg

(임규태)

1) 특허라는 제도는 왜 생겨났는가?

본론에 들어가기 전, 우리는 먼저 특허제도의 탄생 및 존재 이유에 대해 생각해야한다. 나는 특허제도가 생겨난 이유를 "기술의 공공재화" 관점에서 이해한다. 이게 무슨 말인지 알기쉽게 예를 들겠다.

어느 엔지니어가 누구도 생각지 못한 혁신적 엔진을 발명했다. 그는 자신이 직접 제작한 엔진을 만들어 팔아서 생계를 유지했다. 그는 자본이 적었기 때문에 생산할 수 있는 엔진의 숫자가 적었다. 이 엔진의 우수성을 인지한 기업이 그에게 기술을 가르쳐달라고 했지만, 기술을 뺏길 것을 우려한 그는 거절한다. 결국 그 기술은 그의 죽음과 함께 사장된다.

만약 그가 자신의 엔진에 대한 특허를 확보하였다면?

그가 개발한 엔진 기술은 특허라는 공개 문서를 통해, 누구나 존재를 알 수 있게되었다. 자본과 제조 기술을 갖춘 많은 기업들이 그 엔진으로 성능이 우수한 자동차를 만들어 팔게 되니, 자동차 산업은 급속히 팽창하고, 보통 사람들은 그 혜택을 누리게 된다. 발명자는 특허를 자동차회사들에 라이센싱하는 댓가로 충분한 보상을 받는다.

위의 예에서 보는 것처럼, 특허의 본래 의미는 "새로운 기술을 대중에 공개하여 보다 많은 사람이 활용하는 것" 이다. 특허는 기술의 발명자를 확인시켜주는 공증 문서로, 기술의 호적등본이다. 여러분이 기억해야하는 것은 특허의 원래 탄생 목적은 "기술의 공유"였다는 사실이다.

2) 소프트웨어 특허의 탄생

80년대 PC의 대중화에 이어 90년대 인터넷이 대중화되면서, 소프트웨어 산업이 급성장을 한다. 그 과정에서 추상적인 개념의 집합인 소프트웨어에 대한 지적 재산권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에 대한 논란이 벌어진다. 그 기나긴 논란은 생략하고, 결론만 말하겠다. 98년 미연방법원의 "State Street Bank & Trust 대 Signature Financial Group" 판결을 통해 문자 그대로 거의 모든 소프트웨어가 특허가 될 수 있는 시대가 열리게 된다.

State Street Bank 대 Signature Financial 사건" (1998년)

Signature Financial은 뮤추얼 펀드를 운용하는 방법인 "Hub & Spoke"에 대한 특허를 확보한다. 이 기술은 여러개의 뮤추얼 펀드를 매일 하나의 펀드 (Hub)로 모은 후, 각 펀드 지분을 서로 비교하여, 가격을 결정한 뒤 펀드 수익, 회계처리를 수행하는 프로그램이다. 그러자, 발끈한 State Street Bank는 수학적 알고리즘으로 구성된 비지니스 방법일 뿐이므로 특허를 취소해야한다고 미연방법원에 청원한다. 하지만, 그들의 바람과 달리 연방법원은 비지니스 방법이 특허가 될 수 있다고 결정했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유용하고 확실한 (useful and tangible)" 결과를 생산하는 어떤 소프트웨어 및 프로세스도 특허로 보호될 수 있다고 못을 박아버린다.

이 역사적인 판결문으로 뭐든지 상상하는 것은 특허가 될 수 있었고, 덕분에 소프트웨어 특허의 양적 팽창 (질적이 아님!) 을 초래한다. 이런 특허버블 현상은 90년 후반의 닷컴 버블에 기름을 붓는 역할을 하게 된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이, 잘나갈 시절에는 아무런 문제가 보이지 않는다.

3) 2000년대 특허 소송 전성시대

2000년 여름, 닷컴 버블이 붕괴하면서, 수많은 인터넷 기업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아비규환이 벌어진다. 이 시점부터 이미 망했거나, 망해가는 기업들이 보유한 특허들을 꺼내 돈을 벌려는 시도가 본격화 된다. 여기에는 2가지 흐름이 있었다.

(1) 왕년에 잘나가던 기업들이 경쟁에 뒤쳐지면서, 생존의 위협을 받자, 자사가 쌓아두었던 특허를 꺼내 동종 라이벌들에게 라이센싱 협박하는 생계유지형 비지니스 모델. 대표적인 경우가 SanDisk다.


SanDisk의 플레시 특허전쟁

2007년 10월, 플래시 카드 원조인 SanDisk는 세상의 모든 플래시메모리 저장장치 제작사들을 특허침해로 고소하면서 플래시전쟁을 시작한다.이 소송의 범위는 플래시 기반의 USB카드 뿐 아니라, 당시 상품화되기 시작한 SSD까지 포함하는 가히 블럭버스터 급이었다. 당시 그 대상이 무려 25개 기업이다. 이 소송의 범위는 플레시 드라이브 뿐 아니라, SSD까지 포함하는 가히 블럭버스터 급이었다.

(2) 특허괴물 (Patent Troll, 또는 NPE: Non-Practicing Entity). 특허괴물은 자신들이 물건을 만들어 팔지 않으면서, 자신들이 보유한 특허 기술을 사용한 기업들에게 라이센싱 요구를 하고, 말을 안 들으면 소송전쟁을 불사한다. 여러분이 어디선가 들어봤음직한 램버스(Rambus)가 그 원조 격이라고 할 수 있다.

램버스 (Rambus)

90년대 말, 여러분의 책상에 놓인 데스크탑 PC에 꽂혀있던 램버스DRAM를 발명한 회사다. 하지만, 이 회사는 실제 제품을 만든 적이 없다 (고, 창업자가 예전 미팅에서 친절하게 내게 설명해줬다). 램버스DRAM은 컴퓨터 속도 향상의 병목인 DRAM의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이는 새로운 인터페이스를 제안한 것이다. 당시 램버스의 기술을 목격한 반도체의 메이져 기업들은 이 기술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램버스에 라이센스를 주는 것을 기피한다.

이에 열받은 램버스는 인피니언을 시작으로 기나긴 소송전쟁을 개시한다. 결국 이 세기의 특허소송은 인피니언의 내부 문건이 드러나면서 램버스의 극적인 승리로 돌아간다. 기술 역사를 바꾼 인피니언의 내부 메모는 다음과 같았다. "...결국 모든 컴퓨터는 이 기술을 채택하게 될 것이다. 다만 우리가 램버스에 로열티가 지불하지 않기를 바랄 뿐..."

4) 특허괴물의 창궐

2000년대 후반의 특허 소송전에서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이 특허괴물이다. 기업 대 기업간 특허분쟁은 서로가 보유한 특허를 주고 받는식으로 퉁칠 수 있다. 하지만 NPE들은 애초부터 제품을 만들 의사가 없기 때문에, 라이센싱 이외에 다른 협상의 여지가 없다. 심지어 이들은 신생기업이 충분한 이익을 쌓을때까지 기다리는 인내심도 있다.

2008년 서브프라임발 위기 이후 특허괴물의 문제는 더욱 심각해지는데, 그 이유는 경제위기로 실물경제가 죽으면서 투자할 곳을 잃은 사모펀드가 고수익을 노리고 배팅을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애플, 구글을 비롯한 IT기업들은 특허괴물의 대응에 골머리를 앓게된다.

2015-02-24-thenextweb.com.png

(특허괴물이 연관된 특허소송건수: from thenextweb.com)

5) 소프트웨어 특허 버블

특허소송전 대상이 되는 특허 중 상당수가 소프트웨어 특허라는 사실은 문제의 해결을 더욱 어렵게 했다. 바이오나 의약 분야 특허는 화학공식으로 깔끔하게 정의되기 때문에, 특허 기술에 대한 논란의 소지가 적다. 따라서 이 분야 기업들이 발명자와 특허 라이센스를 맺는 것이 보편화 되어 있다.

하지만, 소프트웨어는 전혀 성격이 다르다. 추상적 앨고리즘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소프트웨어는 특허의 범위가 불분명하다. 더구나 하나의 프로그램은 오랜 세월동안 발전을 거듭한 컴퓨터 역사가 고스란히 반영된다. 결국 소프트웨어 특허소송전은 기술적으로 별로 의미없는 끝없은 (때로는 황당한) 법률 공방으로 이어지면서, 특허관련 법률 시장을 비정상적으로 키우게 된다.

이번 글의 마무리

자, 오늘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여러분이 기억해야 하는 것은 2000년대 ICT 산업계가 특허전쟁터가 된 주요 원인이 금융과 법률 시장에 있다는 사실이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챙긴다는 말은 현대 기술산업에도 여전히 적용된다. 다음 글에서는 "공유경제와 특허의 충돌"에 다루겠다.

* 이 글은 "세기의 특허전쟁 | <2> 공공의 적 특허"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