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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고의 예정된 몰락 | 2. 레고 키즈의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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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레고의 예정된 몰락 | 1.성공의 패러독스〉에서 이어집니다.

나는 레고가 자신들의 본질적 가치 - 단순함, 추상성, 확장성- 를 유지하면서, 살아날 수 있는 길이 있었다고 확신한다. 그 이유는 레고가 자신들의 본질적 가치를 버리고 상업적 성공에 몰두하는 사이, 레고의 DNA를 계승한 후계자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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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크래프트

그 후계자는 바로 "마인크래프트"이다.

이 게임을 설명하는 것은 아주 쉽다. 한마디로 "온라인 레고"다. 온라인 상에서 3D 블럭을 이용해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만들 수 있고,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쏘고 찌르는 게임이 대세인 한국에서는 조금 낯선 이 게임은 2011년 출시 후 현재까지 1억2천만장이 팔려, 역사상 2번째로 많이 팔린 게임이다. 현재 1위는 테트리스이지만, 마인크래프트의 세계는 지금도 끊임없이 확장하기 때문에, 1위 등극은 시간문제다.

주목할 점은 이 엄청난 게임을 스웨덴의 마커스 페르손이라는 게임 프로그래머가 혼자서 심심풀이로 (!)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마인크래프트의 탄생 스토리는 목수였던 크리스티안센이 만든 나무 장난감에서 시작한 레고의 탄생 신화의 데자뷰다. 나는 그를 서슴지 않고 "레고 키즈"라고 부른다. 그의 사고 체계가 레고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면, 단순한 블럭을 연결해 무한 확장하는 마인크래프트의 세계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에게 친숙한 '클래시 오브 클랜'을 만든 핀란드 게임사 '슈퍼셀'은 2012년 이 게임을 출시할 당시 직원이 85명 이었다. 이 작은(?) 회사의 작년 (2016년) 매출은 2조원이고, 그해 텐센트에 9조원에 팔렸다. (당시 직원수는 160명). 이런 밸류가 가능한 이유는 게임의 핵심 기능을 제외한 전 부분을 아웃소싱하기 때문이다. 게임 개발뿐 아니라, 회사 조직과 운영에 레고적 사고가 없다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한국 게임사들은 슈퍼셀처럼 되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정작 슈퍼셀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 말을 꺼내는 순간, "우린 안되요"라는 말부터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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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클래시 오브 클랜, 아래: 슈퍼셀의 전 직원들

소프트웨어 분야의 레고 키즈들

소프트웨어 분야로 시야를 확대하면, 레고적 사고의 영향력은 더욱 커진다. 모바일-소셜네트워크-클라우드-빅데이터-인공지능으로 이어지는 흐름에서 분산 컴퓨팅은 필수다. 요즘 핫하다는 비트코인과 블록체인도 분산 컴퓨팅의 일종이다. 그리고 이 분산형 트렌드를 주도하는 것은 "레고 키즈"들이다.

핀란드의 대학생 리누스 토발츠가 심심풀이(?)로 만든 리눅스는 25년이 지난 오늘날, 데스크탑 PC를 제외한 모든 전자기기- 대형 서버에서부터 모바일 기기, 반도체 -에 들어간다. 어디든지 이식 가능한 리눅스가 없다면, 요즘 회자되는 소위 4차혁명은 존재할 수 없다. 리눅스가 세상에 나올 무렵, 사람들은 떠꺼머리 대학생이던 리누스 토발츠의 실력을 과소평가했다. 하지만, 10년 뒤, 그가 여가 시간에 2주 만에 만들어 무료 배포한 Git은 지금 소프트웨어 협업의 패러다임 자체를 송두리째 바꾸고 있다. (그럼 한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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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눅스의 미미한 시작, "나는 지금 재미로 PC에서 돌아가는 무료 OS를 하나 만들고 있어요. 이건 GNU처럼 거창하거나 프로페셔널한 건 아닙니다..." : pinterest

프로그래밍 언어 분야는 더욱 주목할 만하다.

30년 전, 스웨덴의 에릭슨이 개발한 분산형 언어인 erlang은 에릭슨의 몰락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가, 최근 극적으로 부활했다. 페이스북이 20조원에 사들인 메신저 WhatsApp이 erlang으로 개발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수억명의 사용자들이 무리없이 정보를 주고 받으려면 분산 구조 이외에 다른 선택은 없다. 덕분에 erlang 개발자는 현재 실리콘 벨리에서 가장 몸값이 비싼 인력이다.

erlang에서 진화한 새로운 분산형 언어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스칼라와 컨쥬어 같은 함수형 언어들이다. 문제는 분산 언어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내려면, 사고 체계 자체가 달라야 한다. 결국, 나의 딜레마는 이러하다.

정해진 절차를 충실히 수행하여 정해진 결과를 얻도록 길들여진 이들에게 "시작도 끝도 없는 공간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레고 블록들이 끊임없이 메시지를 주고 받으며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세상"을 어떻게 이해시킬 수 있단 말인가!

결론: 인간의 본성과 창의적 교육

절친한 교수의 막내 아들인 벤자민이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의 일이다. 어느 날 이 아이가 집안에 들어서는 내 손을 잡고 컴퓨터 방으로 끌고가더니, 마인크래프트 속에 자신이 만든 집을 구석구석 설명해주었다. 예전에는 레고로 했을 행동을 마인크래프트에서 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레고는 언어가 서투른 아이들이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었고, 지금은 마인크래프트가 그 대를 이어받은 것뿐이다.

내 글을 읽고 레고 (또는 마인크래프트) 과외를 시켜야겠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부질없는 짓이다. 한국의 아이들도 북유럽의 아이들만큼 레고 놀이를 했지만, 레고 키즈를 길러내지 못했다. 아이들은 레고 놀이라는 행위 자체보다는 독립적 사고를 용인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구성원(부모세대)의 인식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창의적 교육이라는 모순적 개념에 대해서는 언젠가 다룰 기회가 있을 것이다)

끝으로 오늘날의 레고를 있게 했던, 창업자의 아들이자 2대 회장인 고드프레드가 1963년 제정한 '레고 10계명'을 소개한다. 여기까지 내 글을 읽어내려 온 분이라면, 깊은 마음의 울림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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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