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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같은 진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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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고등학생이 있었다. 특성화고에 진학한 그녀는 애완동물을 좋아해 애완동물 관련 기술을 전공했다. 그렇지만 3학년 때 나가는 현장실습은 정작 LG U+의 콜센터로 가야했다. 왜? 첫번째 미스터리.

- 그녀는 해지 방어 부서에서 일하게 됐다. 해지하려는 고객을 붙잡고 해지하지 말라고 설득하는 부서다. 콜센터계의 베테랑들도 일하기 힘들어한다는 곳에 실습생인 그녀가 배치된 것이다. 왜? 두번째 미스터리.

- 그렇게 일하던 실습 5개월째인 어느 날, 그녀는 저수지에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일하는 게 아무리 힘들어도 그렇지, 겨우 5달밖에 안 일했는데 그것 때문에 자살을 하다니? 세번째 미스터리.

- LG U+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자살했는데, LG U+는 자기 소관의 일이 아니라고 한다. "우리 탓이 아니다"도 아니고, 아예 자기 소관이 아니란다. 왜? 네번째 미스터리.


이 이야기는 가상이 아니다. 그녀의 이름은 홍수연, 전주의 어느 특성화고에 다니던 학생이다. 올해 1월 23일 저수지에서 발견되었다. 나는 오늘 LG U+ 본사 앞에서 열린 그녀의 추모문화제에 다녀왔다.


첫번째 미스터리부터 살펴보자. 본디 현장실습이란 학교에서 배운 이론적 지식을 현장에서 직접 적용해봄으로써 실무능력을 키우는 것이 목적인 교육 활동이다. 그런데 수연 양은 애완동물 관련 기술을 전공했는데도 실습은 통신사 콜센터로 보내졌다. 이는 특성화고 지원정책이라는 정부정책 때문이다. 중소기업청은 특성화고의 취업률이 45.5% 이하면 지원금을 끊는다. 학교는 취업률을 어떻게든 채우려고 학생들을 전공과 상관없이 비어있는 일자리들로 그냥 보내버린다. 교육을 담당해야할 학교가 인력파견업소로 전락해버린 셈. 어떤 학교는 현장에 적응하지 못하고 학교로 돌아온 학생들에게는 '빨간 조끼'를 따로 입혀서 낙인을 찍는 징계를 내린다.

두번째 미스터리. 콜센터 업무 중에서도 유달리 어렵고 힘들다는 해지방어를 고작 전공 관련도 없는 고등학생 현장실습생에게 시켰다.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LG U+는 인건비를 아끼려고 상담인력을 애초에 적게 배치한다. 애초에 인력이 별로 없는데, 해지 방어부서는 심지어 너무 힘드니까 사람들이 아무도 안 가려고 해서 사람이 더 부족하다. 인력이 너무 부족하니까 그냥 특성화고에서 꽂아주는 아무것도 모르는 고등학생들을 배치시킨다. 현장실습이 목적이니까 임금도 적게 줘도 되고, 부족한 인력도 채울 수 있고, 일타이피인 셈.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자유시장주의자님들이 말씀하시는 "대기업의 합리적인 이윤추구 목적"이 이렇게 실현된다. 대기업은 값싸게 노동력을 부려먹고, 특성화고는 취업률 채워서 정부 지원금을 타가고, 정부는 특성화고가 이렇게나 산업 인력 생산에 효과적이라고 떠들 수 있고. 우리는 여기서 정부-기업-학교의 공고한 연맹구조를 목격하게 된다.

세번째 미스터리. 콜센터에서의 감정노동이 힘들다 어렵다 하는데, 대체 뭐가 얼마나 힘들길래. 제리케이의 4집 제목은 [감정노동]이다. 타이틀곡은 "콜센터". 콜센터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에 대한 곡이다.

"쉽지 않더라고 하루종일 웃어야 하는건
눈물이 많았던 너, 별로 안 울게 됐고
표정이 많았던 너, 그걸 다 까먹게 됐어
우리 기분은 아무도 묻질 않아
무시당하는 건 그저 내 목소리만 들리기 때문일까"

감정을 포장하여 판매하는 노동, 감정노동. 고객에게 웃음과 친절을 포장하여 판매하는 노동자들은 대개 여성이기 마련이다. 콜센터 노동자의 대부분도 젊은 여성들이다. 나를 떠받들고 "상냥하게 응대"해주는 사람은 "열등한" 여성이어야 한다. 그래야 내가 진짜 "왕"이 된 기분이 드니까. (고객은 왕이라는 말이 한국 사회에 끼친 해악이 얼마나 클지 나는 쉬이 가늠조차 안된다.) 콜센터 노동자들은 매일 고객들의 불만을 상대하는건 물론이고 온갖 성희롱까지 시달린다. 안그래도 강도 높은 일인 감정노동을 수연 양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더 가혹하게 겪어야 했을 것이다. 콜센터 노동자의 45.9%는 우울증, 32.1%는 불면증을 앓고 있다. (*통계는 2015년 부산여성회 조사 결과)

정신적으로도 힘든 일인데 물리적인 시간까지 많이 요구하는 게 콜센터의 노동이다. 콜센터는 그녀가 매일 고객들에게 돌려야 하는 전화의 갯수, 그러니까 "콜 수"를 채워야만 퇴근을 시켜줬다. 콜 수는 하루 평균 100-200 개다. 하루종일 제대로 된 휴식시간도 없이 앉아서 일하고, 밥도 제때 챙겨먹지 못한다. 콜센터 노동자 68.6%가 근골격계 질환이 있고, 38.5%가 생리불순에 시달리며, 66.1%가 소화장애를 앓고 있다. 수연 양의 퇴근 시간은 6시였지만 그녀는 늘 2-3시간씩 더 일하기 일쑤였다. 아버지에게 그녀가 보낸 마지막 문자는 "아빠, 나 콜 수 못 채웠어." 였다.

네번째 미스터리. 자기 회사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자살했는데 자기 소관이 아니라고 말하는 LG U+. 위에서 얘기한 제리케이 '콜센터'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우리 목소리가 이 회사의 얼굴이자 이미지라지만
우린 여기 소속도 아니지"

LG U+ 콜센터는 엄밀히 따지면 LG U+가 아니다. 이게 뭔 개소리냐면, LG U+ 콜센터는 'LB휴넷'이라는 업체가 운영하는 곳이다. 한마디로 하청업체. 뭐, 맨날 반복되는 소리다- 일은 자기들이 시키고 관리감독도 자기들이 다 하는데 문제될 일만 생기면 사용자는 우리가 아니라 하청업체라고 말한다. 이것도 "대기업의 합리적인 이윤추구 목적" 덕분에 생긴 관행이다. 결국 사람은 죽었는데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이런 일들은 반복된다. 참고로 말하자면, 홍수연 양이 일했던 곳과 같은 곳, 같은 부서에는 4년 전 자살한 노동자가 있었다. 그럼에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고, 결국 4년이 지나 홍수연 양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누가 홍수연 양을 죽였는가. 밤낮으로 그녀를 착취한 기업, 그곳으로 그녀를 떠민 학교, 그리고 산업인력 생산을 핑계로 노동인권 사각지대를 외면한 정부. 이들의 공고한 연맹이 그녀를 죽였다. 노동자를 위한 나라는 없다. 여성을 위한 나라는 없다. 청소년을 위한 나라는 없다. 이 셋 모두였던 홍수연 양을 위한 나라는 없었다. 그녀의 죽음은 사회적 타살이었다.

오늘은 근래 들어 유달리 추운 하루였다. 연단에 오르신 수연 양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1월 23일은 올해 겨울 중에서도 유달리 추웠다고. 이렇게 추운 날이면 자기 딸은 저수지 안에서 얼마나 추웠을까, 생각한다고. 자기는 아직도 2017년 1월 23일을 살아가고 있다고 말하셨다. 머릿속이 띵했다. 이 분의 시간은 2017년 1월 23일에 멈춰있다. 2014년 4월 16일에 시계가 멈춰있는 이들처럼...

글을 쓰다 보니 어느새 만우절이 되었다. 얼핏 보니 타임라인은 온갖 유쾌한 거짓말들로 넘쳐난다. 나도 "이거 사실 거짓말이야!"라고 글을 끝내고 싶다. 언젠가는 그럴 수 있는 날이 올까.

홍수연 양, 그 곳에서는 헤드셋 벗고 편히 쉬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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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1일 전북 전주시에서 열린 LG유플러스 실습생 故 홍수연 양의 추모집회.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4월 1일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