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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학원 안 다녀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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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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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 다녀오는 길이다. 오랜만에 언니 가족을 보기 위해서였다. 오랜만에 만났지만 분위기는 무겁다. 세월호 사건 때문이다. 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틈틈이 뉴스와 페이스북 등을 통해 좋은 소식이 없나 챙겨보게 된다.

그러다 언니가 "고민을 많이 해봤는데, 나 지환이 학원 안보내기로 했어."라고 이야기를 한다. "정말?" "응. 사실 지환이가 초등학교 6학년이 왜 중3 수학을 미리 공부해야 되냐고 물어볼 때마다 미리 안 배우면 안되니까라고 밖엔 답을 해줄 수 없었는데. 이젠 내가 결심을 해야겠어."라고 한다.

"이번 세월호 사건 보면서, 우리나라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건, 언제든 이렇게 헤어질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 만약 그런 일이 우리에게도 닥쳐서 그렇게 허망하게 지환이를 보냈을 때, 내가 이 아이에게 해준 게 학원 뺑뺑이 돌리고, 늘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와 쓰러져 자게 해서, 서로 이야기 나눌 시간도 없게 하고 그런 것밖엔 없다면, 내가 날 용서 못할 것 같아. 지환이에게 행복이란 걸 가르쳐 주지 못했는데...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학원 끊고, 지환이가 하고 싶은 것 마음껏 하라고 할 생각이야. 고등학교 졸업하면 이제 어른이라 내 품을 떠날 텐데, 그럼 이제 7년 남은 거잖아. 그동안 지환이 아빠랑 나랑 지환이랑 정말 행복한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어. 도서관에 가서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여행도 자주 다니고" 그 이야기를 하며 언니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나도 괜히 코끝이 찡해졌다.

"무조건 대학을 가야 하는 것도 아니고. 또 꼭 한국에서 대학에 들어가야 하는 것도 아니고. 이 추세로 가면 지환이 대학 갈 때면 등록금이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 비쌀 것 같은데, 어딜 못 보낼까 싶고... 무엇보다 한국 사회 시스템에 맞게 아이를 키우다보면 이 아이도, 나도, 우리 가족도 다 괴물이 될 것 같아. 책 많이 읽히고, 맘껏 뛰어다니게 하고, 자기 하고 싶은 것 하다가, 정말 본인이 하고 싶은 걸 발견하면 그때 그걸 할 수 있도록 도우려고." "그래 언니! 사실 내가 지환이를 키우는 게 아니라 책임지고 이야기할 수 없지만 잘한 선택 같아, 지환이가 행복할 수 있도록 키워보자. 이모로서 나도 열심히 도울께."

그날 저녁 2박 3일 제천에 캠프를 다녀왔던 지환이가 돌아왔다. 오랜만에 만나 서로 얼싸안고 얼굴을 부비다, 언니가 이야기를 꺼냈다.

"지환아. 엄마가 기쁜 소식 전할 게 있어. 이제 너 학원 안 다녀도 된다." "어? 왜? 진짜?" "응. 진짜. 좋제?" "응" "근데 아직 실감 안나제?" "응~ 그런데 내일 오후부터 진짜 실감날 것 같다." "대신 너한테 더 큰 책임이 주어지는 거다. 너 시간을 너 스스로 의미 있게 쓰는 것. 처음엔 잘 안 되겠지만 잘 해보기. 알았지." "응~~"

"그리고 슬픈 소식 하나 전해줄게. 다음주 가기로 했던 수학여행 취소 됐다." "알고 있다. 육상부 샘한테 들었다. 그래서 내 친구들이 선장 욕했다." "응?" "그 선장 때문에 우리 못가게 된 거잖아. 우리 13년 만에 가는 수학여행인데!!! 근데 이모야. 선장이 구출된 뒤에 돈 말리고 있었다며?"

순간 언니랑 나랑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5초 간의 정적이 흘렀다. "우리 반 아이들 49명이 같이 하는 카톡방 있거든. 거기서 얘들이 우리도 시위해야 하는 거 아니냐며 막 그랬다."언니와 나, 따로 할말이 없어 "아... 진짜 너무 부끄럽다..."며 고개를 흔드는 걸로 답을 대신했다.

한국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건, 삶을 산다는 건, 마치 시한부 인생을 사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인생이 그러한 것은 알지만, 언제, 어디서, 어떻게 갑작스레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질지 모르는 시한부 인생은 비극이다. 한국 사회의 모든 모순이 다 엉겨붙어 있는 세월호 참사를 보며, 우리 모두는 난파되어도 구조여부를 알 수 없는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는 절망감에 고통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 맞닥뜨리는 현실이 그렇다고 해서, 내일 우리 아이들에게 이 현실을 물려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세월호와 함께 우리의 몸도, 마음도 꺼져가는 것 같지만 이럴수록 마음을 단단히 잡아 매야 하는 이유다.

아이들과 승객들을 내버려둔 채 배를 떠나버린 선장과 승무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하지만 선장은 물론 배의 핵심부서인 갑판부와 기관부 선원 17명 중 12명이 모두 6개월~1년의 계약직이었다는 사실에도 우린 주목해야 한다. 수백명의 인명을 책임져야 할 선장과 승무원들을 책임의식을 갖기 힘든 비정규직으로 채용한 회사와 그에 대해 문제제기 하지 않은 정부와 정치권에 대해서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 비정규직 비율이 높은 사회는 자기 직업에 자긍심을 가지기 어려운 사회라는 것을, 그래서 위기시 서로의 손을 잡아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생존만을 챙길 수 밖엔 없는 위험한 사회가 됨을 더 세게 경고하지 않았던 언론과 지식인들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 대한민국이란 배가 점점 비정규직 선원으로 채워지는 것을 앎에도, 때론 무관심으로 때론 무기력함과 무능력함으로 바라만 보았던 우리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

여기에는 진보, 보수가 따로 없다. 야당 한편에서는 이명박 정부 때 규제 완화를 하지 않았으면 세월호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고 이야기한다. 청해진해운이 2012년 당시 18년이나 된 일본 퇴역 여객선을 사들여 운행할 수 있었던 것은 2009년 이명박 정부 시절에 이뤄진 20년으로 묶여 있던 여객선 선령 제한을 최대 30년으로 변경한 해운법 시행 때문이라고 한다. 적절한 지적이다. 하지만 궁금한 점이 하나 있다. 그렇다면 이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과 다른 진보 정당은 이것을 왜 막지 못했나. 왜 개정해내지 못했나. 보수적인 정부가 규제완하라는 이름으로 생명보다 자본을 우선시하는 정책을 펼칠 때, 그들을 날서게 비판하던 민주진보 정당들은 어디에 있었나? 지금이라도 이야기해줘서 고맙지만, 지금에서야 마치 이럴 줄 알았다는 듯 이야기를 하는 것은 어찌된 일인가?

집으로 오는 기차 안, 언니가 카톡을 보내왔다. "이렇게 얼굴 보니 참 좋다. 자주 내려와. 그리고 많이 도와줘. 나 이렇게 결심했지만, 또 분명 흔들릴 거야." 그래서 언니에게 답을 보냈다. "응!! 알았어. 그리고 흔들려도 돼. 당연 쉽지 않은 결정, 흔들리면 쉬었다, 다시 하고 그럼 되지. 너무 부담갖지 말고, 있는 모습 그래도 가보자. 그렇게 하다보면 언젠가 언니의 결정에 자신감이 생기는 순간이 올거야. 힘내!"

이렇게 서로를 격려하며 카톡을 주고 받았지만, 사실 언니도 나도 알고 있다. 아이가 아이답게 뛰어놀고, 좋은 책을 읽으며,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 초등학교 6학년이 초등학교 6학년 교과 과정을 배워야 한다는 것, 이 상식적인 것을 지키는 것이 한국 사회에서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말이다. 상식을 지키는 것이 용기가 필요한 일이 되어버린 사회에서, 그나마 이런 실험을 할 여유가 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은 아닐까, 혹 대한민국이라는 난파선에서 우리만 살자고 바둥거리는 일은 아닐까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기도 하다.

그렇기에 이제 고민해야 한다. 상식을 지키는데 용기가 필요하지 않는 사회가 되게 하는데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한다. 선장에게 책임감을 요구함과 동시에 선장이 직업윤리를 확고히 가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규제완화라는 명분으로 자본이 생명보다 앞설 수 없도록, 자본을 견제할 정치세력과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 정치권이 재난이 발생했을 경우만 움직이지 않고, 일상적으로 우리 사회 곳곳을 돌아보고, 구멍난 곳이 없는지 살필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런 국가적 재난이 닥쳤을 때 정부가 우왕좌왕하거나, 문제를 덮는데 급급하지 않고, 정확한 원인규명과 발빠른 문제해결 능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야당 정치인들이 경제민주화, 민주 대 반민주와 같은 거대 담론과 여당에 대한 안티 정서에 기대어 자기 역할을 다한 양 으쓱할 때, 정작 20년 이상 노후된 배가 우리 아이들을 태우고 다니는 것에는 아무런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던 것에 문제제기해야 한다. 그래서 야당이 반대만을 이야기하는 집단이 아니라, 정부의 무능력함과 실기에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춘 대안정부가 되게 해야 한다. 그래야 여당 또한 긴장하여 국정 운영에 최선을 다할 수 있게 된다. 또한 나와 내 동료가 자기 직업에 대한 자긍심과 책임감을 가진 노동자로 제 몫을 다하는 사회를 만드는데, 우리 또한 정치, 사회적으로 조직되지 못한 것을 반성해야 한다. 그리고 조직되어야 한다.

우리 아이들이 시한부 인생이 아닌 오래오래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영위하게 하는 것. 우리들의 몫이다. 세월호 재난 대처 과정에서 함축적으로 나타난 우리 사회의 수많은 문제들. 그 헝클어진 매듭을 풀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정치, 경제, 사회적 기반을 만들어 내는 것. 물에 빠진 아이들에게 구명조끼를 던지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

이 글을 마무리하는 지금. "승객 여러분. 이제 곧 이 열차의 마지막 종착지인 서울역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잊어버리신 물건은 없는지 다시한번 확인하시기 바랍니다."라는 안내 방송이 나온다. 지난 16일, 세월호에서도 "승객 여러분. 이제 곧 이 배의 마지막 종착지인 제주여객터미널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잊어버리신 물건은 없는지 다시한번 확인하시기 바랍니다."라는 방송이 흘러나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제주역에 내린 아이들이 "와~~~ 제주도다!!" "엄마, 나 제주도 잘 도착했어. 잼있게 놀다갈께!"라는 카톡을 보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해야할 일이 많다. 서로에게 구명조끼를 던져주며, 생명줄을 내려가며, 사회안전망 단단한 사회 만들어보자. 어쩌면 이것은 먼저 간 아이들이 우리들에게 남긴 마지막 명령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