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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두 편이 섹스에 미치는 영향 | 여자의 욕망은 진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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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색은 차갑다, 다들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세상에는 파란색을 따뜻하게 느끼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자기 방식대로, 타인들의 기준이 아닌 자기만의 눈으로 세상을 느끼고 또 표현할 줄 아는 사람들을 난 좋아하고 또 존중한다. 그래서 일부러 찾아봤다. <가장 따뜻한 색 블루>라는 영화를...

2013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2014년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작품이기도 하고)을 받은 영화라 다소 지루할 거라고 예상했다. 평론가들이 칭송하는 '나뭇잎'이 많은 영화들이 대게 그러하듯이... 그런데 아니었다. 지루하기는커녕 너무도 섹시해서 한밤 중에 내 맘 속에 불길이 활활 타오는 것 같았다. 난 분명 이성애자이고 내 옆에는 남편이 누워 있는데 레즈비언들의 사랑 이야기에 내 자신이 이토록 애틋하게 동요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로.

그런 나를 보며 남편은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이거 보고 여자들이 레즈비언에 대한 환상을 품을 수도 있겠는 걸." 그 말에 나도 정직하게 답변해 주었다. "기회가 없어서 그렇지. 내가 만약 당신 만나기 전에 엠마 같은 여자를 만났다면 나도 여자를 사랑하는 레즈비언이 됐을 수도 있었을 것 같아."

심지어 난 울었다. 엄청 에로틱하기도 했지만 너무 슬퍼서 울었다. 울면서 생각했다. '이성애든 동성애든 다 똑같구나. 사랑에 빠진다는 건 누구에게나 자기 생애 가장 믿을 수 없이 찬란한 마법이고, 내 의도와 상관 없이 그 사랑이 변해가는, 시들고 죽어가는 모습을 본다는 건 너무도 슬픈 일이라는 점에서.'

살아 있는 패션의 제왕 칼 라거펠트(그도 동성애자다)가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엄마, 호모 섹슈얼이 뭐예요?" 그러자 아티스트였던 그의 어머니가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응, 그건 말이다. 머리카락 색깔 같은 거란다. 누구는 금발이고, 누구는 갈색인 것처럼." 얼마나 명쾌하고 또 우아한 표현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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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성 모랄을 앞세워 동성애를 비정상 취급하거나 옹호하거나 동정하는 그 모든 것이 죄다 촌스러운 시대가 됐다. 그래서도 이런 영화가 만들어진 게 아닌가 싶다. 지난주 개봉한 또 한 편의 레즈비언 영화 <커피 한 잔이 섹스에 미치는 영향> 말이다. 동성애를 전혀 이슈화 않은 채 오늘날 중년 여성들의 권태와 섹스의 문제를 너무도 비범하면서도 현실적으로 다룬 영화다.

"여자 나이 마흔이 되면 얼굴과 엉덩이 둘 중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 그리하여 앙상한 '얼굴'을 포기하고 매끈한 '엉덩이'를 선택한 40대 가정주부 '애비'가 그 주인공이다. 한 여성으로서 자신의 욕망은 철저히 외면당한 채 종종 산더미 같은 세탁물 앞에서 일상에 매몰된 현실에 진저리치곤 한다는 점에서 애비는 동성애자인지만 보통의 40대 주부와 다를 게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이 던진 공에 머리를 맞은 사고 이후 애비의 일탈이 시작된다. 너무도 대범할 정도로 모험적인 일탈. 일이 필요했던 애비는 낡은 아파트를 사들여 보수하는 일을 시작하며 섹스와 교감에 대한 갈증까지 푼다. 제 손으로 우아하게 꾸민 아파트에서 특별한 손님들을 맞기 시작하는데, 그 전에 먼저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이야기를 시작하는 방식으로...

"뭐랄까? 레즈비언, 중년 여성, 섹스, 매춘이라는 별로 산뜻하지 않은 소재로 만든 매우 산뜻하고 우아한 영화랄까? 무엇보다 그렇게 '인간적인 매춘'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재밌고! 그리고 그게 말도 안 되는 판타지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느껴진다는 거. 그런 점에서 에로티시즘 영화의 최고 고전 <세브린느>가 지금 현실에 맞게 진화한 느낌이랄까?" <커피 한 잔이 섹스에 미치는 영향> 관람 후 남편에게 유자 에이드 한 잔을 가져다주며 내가 했던 말이다.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 6월호 특별판에 실린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