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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남과 진중권에게 '예술 모독죄'를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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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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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다카시라는 팝아트 작가가 있다. 지금도 그렇게 인기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한때 어디 가나 그의 작품을 볼 수 있었다. 정말이지 보고 싶지 않아도 볼 수밖에 없었다. 정확히 2000년부터겠다. 루이비통의 아트 디렉터 마크 제이콥스의 의뢰로 다카시가 루이비통 모노그램 가방에 그림을 그려넣기 시작한 때부터였으니까.

패션 잡지 에디터 생활을 오래했지만 루이비통을 싫어했고, 루이비통 가방에 그려진 무라카미 그림은 더더욱 싫어했다. 그냥 내 정서에 맞지 않았고 내 취향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라카미 다카시를 작가를 존중했다. 존중을 넘어 어떤 면에서 존경스러운 작가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그는 "사업 잘 하는 것은 가장 매력적인 예술이다" 라고 했던 앤디 워홀의 추종자답게 사업을 잘 했다. 철저하게 상업적인 문화 산업과 관계를 잘 맺으면서도 아무 것도 숨기지 않았다. 워홀의 '공장' 못지 않은 규모의 대형 스튜디오를 몇 개씩 운영하며 카이키키라는 회사까지 차렸다. 자신은 '개념'만 잡아 지시를 내리고 그림은 스태프라고 부르는 조수들 혹은 직원들이 그렸다. 하지만 그는 그 사실을 결코 숨기지 않았다. 숨기기는커녕 공동 작업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을 작품에 일일이 다 명기할 정도였다. 어떤 작품에는 25명의 스태프 이름이 적혀 있고, 또 어떤 작품 뒤에는 무려 35명의 조수 이름이 적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건 조수들의 작품이 아니라 무라카미의 작품이다. 붓 터치 같은 건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무라카미는 자기가 직접 그리든 다른 사람이 그리든 어떤 손의 흔적도 작품에 남겨서는 안 된다고 고집하고 닦달한다. '슈퍼플랫(Superflat)' 그게 그의 작품 컨셉이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은 미술과 명품, 고급문화와 대중문화, 동양과 서양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이기에 그 스스로 '슈퍼플랫'이라는 단어를 만들었다. 무지막지하게 현란한 일본의 소비 문화가 피상적이고 공허한 느낌이 들도록 캔버스 표면을 유리처럼 매끈하게 표현해야 하기 때문 그의 조수들이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다. 잿소로 밑칠을 얇게 스무 번이나 하고 물감을 한겹씩 여러 겹을 칠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람자 눈에는 방금 전에 한 번 칠한 것처럼 보여야 하기 때문에 직원들이 아예 이를 갈아 붙인다.

예컨대 '나쁜 사장' 놈이라고. 하지만 '나쁜 사장'일지 몰라도 아무도 그에게 대작 시비를 걸지는 않는다. 대작 시비를 건다면 그거야말로 현대 미술에 무지한 인간이기에 대꾸할 가치가 없다. 대신 이런 욕은 할 수 있다. "시장이라는 인간이 스튜디오에서 자고 먹는대. 아예 집다운 집이 없다는데? 얼마나 지독한 인간인지 부조리해 보일 정도라니까."

무라카미가 어느 대학을 나왔지는 모르겠다. 일본도 우리 같은 지독한 학벌 중심 사회이지만 아무도 그런 건 문제 삼지 않는다. 다만 그가 '오타쿠' 출신이라는 건 모두들 안다. 오타쿠답게 부조리해 보일 정로도, 동시대 감각에 집중하기! 삶과 작품을 일치시키는 진짜 예술가라는 얘기다.

1990년대 초반부터 부상하여 지금까지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가로 통하는 마우리치오 카텔란이라는 작가의 경우는 더 재밌다. 그에겐 스튜디오가 없다. 어시스턴트도 없다. 그렇다고 직접 그림을 그리거나 작품을 생산해내는 건 아니다. 그는 주로 전문가들에게 '오더'를 주고 은행에 가서 대출을 받아 돈을 지불하고 작품을 가져다 전시회를 연다. 심지어 전시할 작품이 없을 때는 남의 갤러리에서 훔치기도 하고, 베니스 비엔날레가 할당한 전시 공간을 이탈리아 향수 회사의 광고 에이전트에게 팔아넘기기도 했다. 작품이 없어도 그러한 퍼포먼스 자체가 누구도 감히 생각해 본 적 없고 흉내낼 수도 없었던 그만의 작품이었던 거다. 작품 제목이 시사하듯, '빌어먹을 레디 메이드'다운 작품.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우리치오 카텔란이 '사기죄'로 고소 당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도난죄'가 적용되어 감옥행을 간신히 면한 적이 있지만 '사기' 친 적은 없다. 심지어 난 마우리치오 카텔란이라는 작가를 사랑한다. 현대 미술이라는 것이 결국은 뒤샹과 워홀의 영향력 아래 나오는 고만고만한 것이라면 카텔란은 뒤샹과 워홀을 뛰어넘는 최초의 예술가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관행이나 관습, 규제, 규정, 혹은 우리가 절대적이라고 믿는 모든 것에 질문을 던지는, 그것도 넌지시 던지지 않고 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로 충격적인 방법으로 던지는 '진짜 아티스트'이기 때문이다. 진정 '미움 받을 용기'가 필요했을 거다. 정치, 사회, 교육, 종교, 미술계의 '부패'를 겨냥한 폭탄 같은 작품을 보여주고, 그 작품으로 세상 어디에나 '부패'가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자각하지 못하는 '눈 먼' 현대인들의 눈과 심장에 충격을 주고도 그토록 태연하려면.

그 비교 대상의 수준이 좀 저열하여 민망하지만 '어버이 연합' 뉴스를 집어삼킨 이슈다 보니 '대작' 시비에 휘말린 조영남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미학 전문'을 자칭하는 평론가 진중권은 '조영남은 사기꾼인가?' 묻는 칼럼에서 '대작은 예술계의 관행'이라며 조영남을 두둔하고 되레 '현대예술'에 '무지'한 대중을 조롱했다. 결코 '현대 예술'에 무지하지 않은 나조차 분노심에 몸을 떨었다. 틀렸다. 내가 아는 한 어떤 식으로든 세상의 '관행'에 역행하는 게 예술이다. -뒤샹이든, 워홀이든 모두 그걸 해냈다. 처음으로, 멋지게,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방법으로-

그런 점에서 조영남의 화투 그림은 예술이 아니다. 관행에 따른 손쉬운 돈벌이 수단이 어떻게 예술이 될 수 있단 말인가? 구매자 앞에서 물감이 잔뜩 묻은 앞치마를 두르고 캔버스 앞에 앉아서 작업 중인 척했다는 얘기를 들으면 코웃음이 나온다. 전문 화가들에게 물어봐라. 앞치마에 물감 묻히고 다니는 건 아마추어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할 거다. 그러니까 조영남은 화가인 척 연기하고 쇼맨십으로 그림을 파는 사업가였던 셈인데, 그조차도 잘 못했다. 무엇보다 상도덕이 없었고 양심이 없었다. 작품당 겨우 10만원을 주며 화가의 노동력을 착취했으니 말이다.

조영남의 변명과 그를 두둔하는 진중권의 글을 읽고 있으면 누군가의 지적처럼 '미술계는 사기가 관행'이라는 말처럼 들린다. 그런 점에서 '사기죄'가 아니라 두 사람 모두에게 '예술 모독죄'를 적용시켜 그 죄를 묻고 싶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화가들에게 조수가 없다. 돈도 안 되는 그 일이 뭐 그리 좋다고 고독하게 그림과 대결하는 시간을 만들기 위해 '노가다'나 시간 강사 같은 아르바이트를 하며 최저 생계비를 벌며 힘겹게 사는지 모르겠다. 남들 눈에 경제력 없고 현실감각 없는 얼빠진 '루저'처럼 보일지라도 예술가로서 자신이 도달해야만 하는 지점이 있기 때문에 고통스러워도 어쩔 수가 없다. 가야만 한다. 육체가 고단해도 그 영혼이 도달해야만 하는 지점을 향해 꾸역꾸역 가는 거다. 남이 알아주거나 말거나. 자기 손으로 직접 붓질을 하든, 남이 하든 말이다.

이상한 건 천하의 미학 전문 지식인인 진중권은 조영남처럼 소수가 아니라 다수의 예술가들의 현실을 왜 모르냐는 거다. 심지어 조영남 욕하는 작가들 그림 보면 별 거 아니라는 식의 얘기를 창피한 줄도 모르고 해 제 무덤을 판다. 아, 맞다. 유유상종이라고 했지. 끼리끼리 모여서 서로 추어주고 발라주고 두둔해 주는 모양이다. 그것만이 오직 살 길이라는 듯이....

미안하지만 그 무리들에게 진중권이 운운한 '시대착오' 라는 단어를 되돌려주고 싶다. 산업시대가 끝났듯 '돈 버는 게 예술이다'라고 했던 앤디 워홀의 시대는 끝났다는 얘기다. 지금은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시대이니 그의 얘기를 들려주겠다.

"아트로 하여금 우리 삶이 더 나아지도록 하는 것, 그것이 오늘날 아트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아트, 그것을 위해 나 역시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해야 한다는 걸 난 종교처럼 믿고 있다. 그건 일종의 좋은 테라피다." -마우리치오 카텔란

* 본문 내용 중 (특히 미대 여대생) 부분은 부적절한 표현이라는 지적을 반영, 제외했습니다. (업데이트 : 2016년 6월 3일 14:20 )

* 매일노동뉴스 '김경의 컬처클럽'에 게재된 글을 수정·보완한 글입니다